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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 Feb 25. 2023

10. 사진을 찍다.

여권 사진을 찍었다. 필터 없이 찍은 사진 속에 나는 좀 이상했다. 

오른쪽, 왼쪽이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오른쪽 눈은 왼쪽보다 더 컸고, 입술은 조금 비뚤어져 있었다. 턱은 내 생각보다 좀 더 각졌고, 눈 아래는 누렇고 검었다. 눈썹은 조금 길이가 달라 보였다. 평상시 찍던 셀카 속에 나와 왜 이렇게 다를까.   

   

생각보다 사람 얼굴은 대칭이 아니에요.     


원본 사진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내게 사진사분이 말했다. 이제 그는 커서를 이리저리 옮겨 가며 보정을 시작했다. 오른쪽 콧구멍을 복사해서 왼쪽 콧구멍을 바꿔 넣고 크기를 조정했다. 

눈도 마찬가지, 오른쪽만 쌍꺼풀이 있어 유난히 차이가 나는 왼쪽 눈 크기를 키웠다. 조금씩 얼굴 대칭이 완성되어 갔다. 언뜻 볼 땐 까맣게 꽉 차 보였던 눈썹이었는데 사진을 확대해 보면 빈틈이 있었다. 그곳을 꼼꼼히 채워 넣고, 얼굴의 잡티를 모두 지웠다. 목주름도 싸악 지워주셨다. 뾰족하진 않았지만 둥그스름한 달걀형이라고 생각했던 얼굴 윤곽도 원본 사진으로 놓고 보니 꽤 각져 있었다. 커서가 한 번 지나고 나니 티는 많이 안 났지만, 살짝 부드러워졌다.     


얼굴이 대칭될수록, 부드러워질수록, 깨끗해질수록 조금 걱정이 됐다. 이러다 공항에서 나를 못 알아보면 어쩌지? 저기요. 눈은 그냥 원래대로 해주세요. 그거라도 그냥 놔둬 주세요. 

여권 사진을 수없이 찍어보셨을 사진사님께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좀 머쓱했다. 그래도 내가 나로 보일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보정하다가는 나는 없어질 것 같았다. 

늘 필터 있는 사진을 찍다가 원본을 보니 처음엔 어색하고 좀 싫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렇게 점점 보정이 되어 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니,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필터가 자동으로 작동하는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다. 그동안 나는 필터 속 나를 나로 착각하고 살고 있었다.      


사진뿐만 아니었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나와 실제의 나는 보정 전 사진과 보정 후 사진과 같다. 둘은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원본에 있는 걸 지우고, 어긋나있는 것을 똑같이 맞추는 작업을 산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타인에게 나를 보여 줄 때는 보정 후 사진을 내민다. 이렇게 보정 작업을 잘 사는 것이라고,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믿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 보정을 지켜보는 입장이 되고 나니, 원본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유쾌하지 않았다. 적어도 눈만은 그냥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뭐 하나쯤은 원본대로 놔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보기에 아름답지 않아도 말이다.      


필터 없는 사진으로 ‘나’를 제대로 찍어보고 싶다. 얼굴만 말고, 몸을, 생각을 찍고 싶다. 다 고쳐도 한가지쯤은 그대로 남기고 싶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한쪽이 커서 꺼내 보면 이상해 보이지만 원래 그래서 남기고야 말게 되는 것. 그런 것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온통 흠밖에 보지 못하고 고치겠다고 다짐하는 일 말고, 이건 정말 그대로 남겨 두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게 될 무엇. 그것을 찾아내는 눈. 내 오른쪽 눈. 더 큰 눈이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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