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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 Feb 18. 2023

9. 요즘 잘 지내요?


윤의 질문은 무척 단순했다. “요즘 잘 지내요?”     


요즘.은 언제까지를 말하는 걸까? 1주일 근방? 1달 이내? 

잘.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지? 특별히 큰일이 없으면 되는 건가?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데, 또 있었나 싶기도 하고, 무난한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마음의 기복은 좀 있기도 했는데.

지내요. 어떻게 살고 있지? 숨 쉬고 먹고 잠자고 그것으로 사는 것이 되는가?

?. 근데 정말 궁금한 걸까? 요즘. 내가. 잘. 지내는지가?     


생각은 머릿속을 휘젓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윤을 당황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한 번씩은 정말 진지하게 대답하고 싶다. 윤의 질문을 받기 전, 내가 살았던 요즘에 관하여.

나의 어제와 그제, 1주일과 한 달 사이의 스펙트럼 색깔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체로 잘 지냈다고 대답하려는데 왜 잠시 망설였는지도. 분명히 견딜 수 있었지만 좋지는 않았던 시간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언어가 필요했다. 마주하고 있는 사람 얼굴에 서린 그늘을 발견하자마자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걱정과 그늘의 원천을 알고 싶은 궁금증과 한 편으로는 내가 본 그늘이 실체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의 동시다발적인 생각들. 혹시 그늘이 내 얼굴에도 서려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까지를 전할 수 있는 언어, 중첩된 순간에 쓸 수 있는 그런 언어가 필요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을 명료하게 표현할 언어를 찾을 능력이 없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감정의 조각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초 단위로도 헤아릴 수 없는 찰나의 순간, 그 직관의 순간을 나는 언어로 붙잡지 못한다. 모든 것이 뭉뚱그려 단순하게 만든 것으로 대체할 뿐이다. 이를테면, 요즘, 좀, 잘, 괜찮다, 좋다, 싫다, 그런 정도로.      


결국 나는 나의 ‘요즘’과 ‘잘’을 설명하지 못한 채로 요즘 잘 지내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변에 잘 지내는 사람뿐인가보다. 각자의 그늘을 설명할 언어가 없어서, 아니면 설명하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더 많은 언어를 써야 하므로 다 괜찮다고 말하고 말지도.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나는 잘 지낸다. 그런데 그 안에 수많은 일들이 빽빽하게 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잘’ 역시 그렇게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와 당신이 우리라는 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서로의 ‘잘’을 말할 수 있는 언어를 함께 찾아야 한다는 것, 긴 언어를 들어줄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 나는 잘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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