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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루시다(3) :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

by 낭만소년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밝은 방』)의 일부분을 옮긴다.


바르트는 엄마의 죽음이후로 하나의 공백기를 거치게 된다. 그렇지만, 그는 글쓰기에 대한 강한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에게 엄마는 살려두어야 할 존재, 그녀만을 위한 기억을 창조해야 했다.


바르트에게서 사후 명성과 관련하여 기념비를 남기는 것은 감사와 인정의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오래 기억되고, 지속되는 기념비인 것이다.


‘ “기념비”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그러나 마망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견딜 수가 없다(아마도 그녀가 글을 쓴 적이 없고, 그래서 내가 없으면 그녀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


그리하여『카메라 루시다』(『밝은 방)는 사진 이론의 성격을 벗어난다. 그것은 부재하는 대상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애정 어린 헌사"이다. 이 책은 1부 사진 이론과 2부에서 어머니의 사진에 이론을 적용하는 부분으로 나뉜다.


가장 추상적인 '이론'과 깊은 심연에 존재하는 '애도'가 결합된 "혼란"스러운 텍스트이다. 담론과 언어를 주관적이고 개인적 차원에서 "뒤섞는" 텍스트이다.


쇼크로스는 말한다.


"보편적인 성격을 지니는 동시에 개인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 다시 말해 사진 일반에 대한 담론인 동시에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일종의 추도곡이라는 느낌"(『문제적 텍스트 : 롤랑/바르트』에서 재인용)


이 책은 이미 번역되어 있으나, 절판과 품절 상태에 있어서 아쉽기만 하다.


카메라 루시다.jpg


밝은 방.jpg



원문은 『Camera Lucida : Reflections onPhotography, trans. by Richard Howard(New York: Hill and Wang, 1981)』에서 발췌한다.


Camera Lucid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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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8번


나는 어머니가 죽은 그 아파트에서 혼자, 램프 아래서 그녀의 사진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점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내가 사랑했던 얼굴의 진실the truth of the face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그 사진은 매우 오래된 것이었다. 앨범에 붙여두었던 탓에 모서리는 무뎌졌고, 세피아 인화는 바랬으며, 사진은 겨우 두 아이가 작은 나무 다리 끝에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다리는 유리로 둘러싸인 보온 온실, 당시에는 “겨울 온실 정원 Winter Garden”이라고 불렸던 공간 안에 있었다.


사진이 찍힐 당시, 어머니는 다섯 살(1898년), 그녀의 오빠는 일곱 살이었다. 오빠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한쪽 팔을 길게 뻗고 있었고, 그녀는 키가 더 작아 조금 뒤쪽에 서서 카메라를 마주 보고 있었다. 사진사가 “조금 앞으로 나와요, 그래야 보이지”라고 말했음이 분명했다. 그녀는 아이들이 흔히 그러듯 한 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쥐고 있었고, 약간 어색한 자세였다.


부모의 불화로 곧 이혼하게 될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오누이는, 바로 그 불화를 매개로 묶인 채, 윈터 가든의 야자수 아래에서 나란히 서서, 오롯이 둘만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곳은 어머니가 태어난 집, 셰느비에르-쉬르-마른Chennevières-sur-Marne이었다.




NADAR THE ARTIST'S MOTHER.png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진가는 누구라고 생각해?”“나다르(Nadar).”— 나다르: 예술가의 어머니(또는 아내)



나는 그 작은 소녀를 들여다보았고, 마침내 어머니를 다시 발견했다.


그녀 얼굴의 선명함, 손의 순진한 자세, 자신을 드러내지도 감추지도 않은 채 순순히 자리 잡은 위치, 그리고 결정적으로—히스테리적 소녀나 어른인 척하는 인형 같은 표정과는 선명히 갈라놓는—그 표정.


이 모든 것은 주권적 순수함innocence의 형상을 구성하고 있었다(이 단어를 어원 그대로, 즉 “나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이 모든 것은 사진적 포즈를, 그녀가 일생 동안 견지했던 그 버거운 역설—온화함의 주장assertion of a gentleness—으로 변모시키고 있었다.


이 작은 소녀의 이미지에서 나는 그녀 존재를 즉각적이고 영원하게 형성한 친절함을 보았다. 그것은 누구에게서도 물려받지 않은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친절함이 그녀를 그렇게 나쁘게 사랑했던, 불완전한 부모들에게서—요컨대, 한 가족에게서—나올 수 있었겠는가?


그녀의 친절함은 철저히 체계 밖out-of-play에 있었고, 어떤 제도나 구조에도 속하지 않았다(굳이 말하자면 한 도덕 체계의 경계, 이를테면 복음적 도덕성의 한계에 가까웠다). 나는 그것을 다음의 특징(들)로밖에 더 잘 정의할 수 없었다. 우리가 평생 함께 지내는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


이 극단적이고 특이한 상황—이미지와는 추상적으로만 연관될 수 있는 이 사실—조차도, 내가 방금 발견한 그 사진 속 얼굴에 이미 현전하고 있었다.


고다르는 말한다. “정확한 이미지가 아니라, 그저 이미지일 뿐 Not a just image, just an image.”


그러나 나의 슬픔은 정확한 이미지just image를 원했다. 정의이면서 정확성인—justesse—“그저 이미지”가 아니라 “정의로운 이미지 just an image.”



한 번쯤은, 사진이 내게 기억만큼 확실한 감각을 주었다. 이것은 프루스트가 부츠를 벗기 위해 몸을 굽히던 어느 날,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완전한 기억 속에서 involuntary memory” 처음으로 체험한 외할머니의 진짜 얼굴을 떠올렸던 그 경험과 유사했다.


셴느비에르-쉬르-마른의 이름 없는 사진가는, 나다르가 어머니(혹은 아내—정확히는 알 수 없다)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들 가운데 하나로 만든 것만큼이나, 어떤 진실의 매개자가 되었다. 그는 사진 기술이 통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담은 초과적supererogatory 사진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나는 이 진실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반복한다), 겨울 온실 정원 사진은 나에게 슈만Schumann이 붕괴 직전 작곡한 마지막 음악들—특히 게장 더 프뤼에Gesang der Frühe의 첫 곡—과도 같았다. 그 곡은 어머니의 존재와 그녀의 죽음을 향한 나의 슬픔 모두와 조응 accord했다. 나는 이 조응을 무한한 형용사들의 열거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것들은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사진이 어머니 존재를 구성하던 가능한 모든 술어들predicate을 모아 담고 있으며, 그 술어들의 삭제 suppression나 부분적 일탈partial alteration 이 바로 내가 다른 많은 사진들에서 느꼈던 불만족의 원인이었다고 확신했다.


현상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 수많은 사진들은 단지 ‘일상적’ 대상에 불과했다. 그것들은 그녀의 ‘정체성’만을 자극했을 뿐, 그녀의 진실은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겨울 온실 정원 사진은 본질적이었고, 나에게는 유토피아적으로, 유일한 존재의 불가능한 학(學) the impossible science of the unique being.—단 한 존재의 과학—을 성취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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