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해마다 5월이 오면,
지난해 앓았던 몸살을
또 다시 반복 경험하는 것처럼
몸이 들떠옵니다.
<Im wunderschönen Monat Mai >
Im wunderschönen Monat Mai,
Als alle Knospen sprangen,
Da ist in meinem Herzen
Die Liebe aufgegangen
Im wunderschönen Monat Mai,
Als alle Vögel sangen,
Da hab' ich ihr gestanden
Mein Sehnen und Verlangen
<아름다운 5월에 >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에
모든 꽃봉오리들이 피어날 때
이 가슴에도
사랑이 싹텄네.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에
모든 새들이 노래부를 때
나 그녀에게 고백했네
나의 그리움과 갈망을.
https://youtu.be/BRTycmIak8Q?si=1vjxldZ1f-rQmd4e
곡들이 짧지만 그래서 잔잔한 여운이 가슴에 내려 앉습니다.
특히 슈만이 그려낸 피아노 선율에 따라
목소리가 화답하며
하이네의 「아름다운 오월에」 가
울립니다.
이제, 그리움으로 가득찬, 사랑을 고백했던
5월의 하이네를 만나러 갈까합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한 하이네는
18세 되던 해에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은행 견습행원으로 훈련을 받습니다.
하지만 시인적 기질을 지녔고 자유분방했던 청년 하이네는
얼마 못가서 프랑크푸르트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고향 뒤셀도르프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의 숙부인 잘로몬 하이네가 있는 함부르크로 오게됩니다.
그의 숙부는 은행장으로, 하이네 가문의 성공적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숙부 밑에서 견습과정을 밟게 되는데,
이는 자발적인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그의 어머니의 의도와 계획이 관철된 결과였습니다.
처음 집을 떠나 생활하는 하이네는 외로움과 고생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자의적인 의도가 아니라 부모의 반강제적인 권유라면 더욱더 그러합니다.
그러나 함부르크는 그리 낯선 곳이 아닙니다.
더욱이 그의 곁에는 숙부가 있었습니다.
하이네가 숙부에게서 받은 인상은 상당히 남성적인 기질이었습니다.
그는 남성다운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고
강한 성격은 고귀하고 균형잡힌 얼굴 표정에서도 나타났다고 하이네는 말합니다.
지금 전해지는 잘로몬 하이네를 그린 초상화를 보면
넓은 이마, 오똑한 코 등에서 하이네가 묘사한 남성다움과 강인함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하이네는
그의 숙부에 대해 ‘아름다움’ 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표현의 특이함은 숙부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담겨있을 것입니다만,
하이네의 사랑의 과정을 따라가보면
다른 무엇인가를 위한 암시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숙부에게는 1남 4녀의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중에서 아말리에는 과연 아버지의 아름다운 눈매와 얼굴 윤곽선을 닮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이네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은
예쁘고 교양있는 사촌 처녀들과 어울려 지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촌지간이라면 가장 가까운 혈족들이었으므로
그들은 합법적이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숙부의 큰딸인 아말리에 는 열 여섯이었으므로
하이네의 대화 상대가 되었었겠지요.
어머니의 반강제적인 권유로 인해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원치 않은 삶을 시작하려고 하는
외로운 하이네에게 아말리에는 아름다운 천사였을 것입니다.
열 아홉의 청년 하이네와 열여섯의 처녀 아말리에는
자연스러운 만남과 사랑을 꽃피워 갔던 것입니다.
파도의 거품 속에서 태어난 여인처럼
내 사랑은 아름다움의 광채 속에 빛난다.
(「서정적 간주곡 17」)
파란 제비꽃 같은 눈동자,
새빨간 장미 같은 두 뺨,
하얀 백합 같은 조그만 손
끊임없이 피고 또 피는구나.
(「서정적 간주곡30」)
비너스, 제비꽃, 장미, 백합 등으로
아말리에를 묘사하는 하이네의 솜씨는 낭만주의의 상투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시적 표현을 멋지게 해낸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입니다.
사랑이란 언어로 속삭이거나 묘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직접적인 느낌과 날 것의 감정 영역이기에
이를 둔탁하고 둔감한 매체로 드러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심리적 집착이 객관화된 언어 표현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너무나 사랑스런 대상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한다는 말입니까?
과연 어떤 단어를 동원해야만
그/그녀가 지니는 아름다움을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요?
3.
장미, 백합, 비둘기, 태양, 이 모든 것을
옛날엔 사랑의 환희에 젖어 사랑했었네
하지만 나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조그맣고 예쁘고 순수한 그 한 소녀.
그녀는 모든 사랑의 샘물, 그녀 자신이 바로
장미, 백합, 비둘기, 태양이기 때문이라네.
유명한 「서정적 간주곡」 의 일부입니다.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48」 으로 더욱 알려져 있는 시편들입니다.
감수성 넘치는 피아노 선율과
사랑에 빠져버린 한 청년의 애달프고 구슬픈 언어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슈만이 특별히 하이네의 사랑 시편들에 곡을 붙인 이유가
가사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슈만 또한, 한 아름다운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딸을 사랑했기 때문에
결국 그녀의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고 맙니다.
슈만과 클라라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결혼에 성공하지만,
슈만 또한 하이네의 경우처럼
가슴이 시리고 아픈 사랑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 과정은 일직선상의 사랑의 성공적 결실이 보장된 길이 아니었습니다.
단속적이고, 단절적이며, 끊길듯한 사랑의 끈을
힘써 이어나가는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사랑의 여정은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아픔, 환희와 노여움’ 등이 어우러져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16개의 하이네 시편들에 얹힌 슈만의 피아노 선율은
하나하나가 완성된 독립된 작품들인 것 같지 않습니다.
갑자기 노래는 시작되고,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데,
서둘러 목소리는 빠져 나가고,
선율은 끝이 납니다.
슈만과 달리 하이네의 사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하이네의 실연의 비극은 어쩌면 운명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말리에는 유대계의 엄격한 가정 교육을 통해
훌륭한 집안에 시집을 가기 위한 교양을 충분히 쌓아 가고 있었습니다.
숙부의 계획 속에 하이네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심지어,
그의 입장으로 보기에는 조카와 딸과의 부적절한 관계는
명성에 흠을 내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하이네는 함부르크를 떠납니다.
내고통의 요람,
내 안식의 아름다운 무덤이여,
아름다운 도시여, 우린 이제 작별이다-
잘 있거라! 나는 너를 향해 소리친다.
잘 있거라, 지난날 내 사랑의 발길이 닿은
성스러운 문지방이여,
잘 있거라, 그녀를 처음 만났던
성스러운 장소여.
(「노래들 5」)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너무나 가슴아팠습니다.
때로는 그녀와의 도피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그녀와 영원한 행복의 꿈을 꾸었습니다.
노래의 날개에 실어, 사랑하는 이여,
나 그대를 멀리 데려가리
…
우리들의 자리를 잡고
사랑과 안식을 마시며
행복한 꿈을 꾸고 싶네
(「서정적 간주곡 9」
본대학과 괴팅엔 대학을 전전할 무렵
하이네는 아말리에의 약혼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녀와의 사랑의 교제 기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지만,
실연의 아픔은 지속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약혼은 “그녀의 배신” (「서정적 간주곡 17」) 이었습니다.
피리 소리와 바이올린 소리,
트럼펫 소리 요란하게 울린다.
그러자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내 애인이
결혼식 원무를 추기 시작한다.
그 사이사이에 착한 천사들이
신음을 하며 훌쩍거린다.
…
그녀는 낯선 남자의 선택을 받은
어여쁜 신부가 되었으니까.
(「서정적 간주곡 20」)
자신이 실연의 고통을 안고 사는 동안
그녀는 호사스런 결혼준비와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릴 것을 상상할 것입니다.
하이네는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젠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의 육신은 차갑게 식어버린 유령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에게 남겨진 길은 오직 하나,
죽음을 꿈꾸는 것 뿐이었습니다.
“ 사랑하는 여인을 잃어버렸으므로 / 무덤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곳이다”
(「로만체 4」)라고 절규할 때
그는 정말로 죽음을 결심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을 잃고,
실연의 아픔과 고통속에서 있었던 하이네는 이미 죽은 몸인지 모릅니다.
『노래의 책』 에서 묘사된 유령들의 모습은
그러한 하이네의 이미지들입니다.
숨쉬고 살아있어도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존재 말입니다.
아니,
육신의 죽음이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영혼의 종말,
즉 결실맺지 못한 사랑은
하이네에게 신체의 종말보다 더 컸던 것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는 다시 사랑을 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말리에의 동생 테레제였습니다.
왜 하이네는 아말리에의 동생을 선택했을까요?
하이네가 보기에 테레제는
어쩌면 동일시된 아말리에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가진 개성적 특성들 보다는
아말리에와의 친연성이 하이네를 이끌리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예고된 비극적 운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운명의 결말 또한 예상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두 자매와의 각각의 사랑의 아픔을 안은 채
그는 수많은 방황과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상처와 생채기들은
마침내 도달 불가능하게 보였던 시적 언어로 승화되게 됩니다.
그는
“언젠가 사랑의 영혼이 노래들을 녹이리라 / 언젠가 이 책은 그대 손에 들어가리라”(「노래들 9」) 는
마음으로 사랑과 아픔의 노래들을 만들게 됩니다.
그의 사랑의 조각들이 언어의 결정체를 만난 것은
그가 30세 되던 해 『노래의 책』 을 통해서였습니다.
슈만의 노래처럼 저의 말도 서둘러 끝내려고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