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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루카치(1)

by 낭만소년


오늘처럼 비가 쓸쓸하게 내리던 스무살 무렵. 나는 서점에서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었다. 입시를 앞둔 내가 왜 그곳에서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쏟아지는 빗물에 휩쓸려가는 나의 기억들.



반쯤 열린 베란다 창문사이로 빗방울이 스며들고, 오랫동안 읽지 않았던 책을 꺼내들었다. 책장.. 구석진 곳. 누렇게 뜬 색바랜 표지. 그 시절 초판본의 조야한 색깔. 빛 바랜 종이들 사이...


우악스럽게 그어진 밑줄들... 그 사이로 내 스무살 고민들이 조각처럼 눈에 와 부딪힌다. 누런 먼지들 때문일까. 눈이 시리다.



엷은 연필로 동그라미 그어진 흔적들....『루카치』, 1885~1971, 헝가리 부다페스트 태생, 은행가의 아들, 루카치 그 자신의 사상은 하이델베르크에서 대체로 형성되었으며 문화적으로도 헝가리에 가깝다기보다는 항상 독일적인 것(방점이 점점이 나있다)에 머물러 있었다는 내용, 루카치는 부담스럽고 알기 어려운 용어를 구사하여 아카데미시즘에 파묻혔다는 내용, 이를 에소테리시시즘으로 명명한 부분, 루카치가 지적으로 여전히 베버와 짐멜의 사회학과 딜타이와 라스크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대목, 루카치는 그의 생애 대부분을 문학에 관한 연구로 보냈다는 부분, 서구 마르크스주의 전체를 통틀어 현실적인 성격을 갖는 유일한 작업은 미학 연구뿐이었다는 대목은 두 줄로 밑줄 그어짐.



무엇이 나를 사로잡은 것일까. 반듯하게 자를 대고 그으면서 읽었을 그 시간과 공간....



그 책과 함께 바래가던 『소설의 이론』. 노년의 루카치가 쌓여진 책더미 속에서 양복을 입고 글을 쓰는 포즈. 지금도 나는 내 방의 책상과 방바닥에 책을 쌓아놓는 버릇이 있다. 읽지는 않으면서.... 로렌츠의 각인처럼 겉표지의 저 노인은 청년 이후의 나의 삶을 지배해버린 것 같다—관습적으로만.


책 첫 장에 다음과 같은 문구, “거대한 서적센터의 서가 진열대 맨 위쪽에 없는 듯 자리 잡았던 이 책은 나의 시선의 낚시에 걸려들었다. 기뻤다. 93년 겨울”



94년 무렵,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청산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던 4년간의 사랑이 한 줄로 요약되었다. 언젠가 기형도는 말했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메었다”고. 그는 적어도 행복했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시적 순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가 나는 부러웠다. 질투는 나의 힘이었다.


나의 사랑은 그녀의 대학 졸업과 함께 닥쳐온, 서두르는 결혼 앞에서 산산이 조각났다. 그녀는 나에게 결혼을 요구했고,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미래도 약속할 수 없었다. 복학을 앞둔 내게 그녀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청년 루카치는 결혼을 윤리적 세계의 전형적인 형식이라고 했다. 의무만이 윤리적 삶의 토대가 되는 세계(『영혼과 형식』) 말이다.


사랑은 시인의 삶 자체이다. 결혼은 윤리적 삶 자체(『영혼과 형식』)이다. 당시 내 앞에 놓인 세계는 두 세계였다. 순수 시의 세계와 순수 윤리의 세계(『영혼과 형식』). 나는 동요하고 있었고, 그녀를 떠나보냈다.




과연, 내가 선택했던 사랑의 파괴는 루카치적인 의미의 시인적 삶의 형식을 견고하게 버텨낼 수 있었던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기형도의 시적 순수도 루카치의 시인적 삶의 형식도 살아내지 못했다.


루카치는 이르마 자이들러와 4년동안의 사랑을 맺다가 끝낸다. 그러나 그와 헤어졌던 그녀는 결국 불행한 결혼과 함께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그녀의 자살에 대한 윤리적 죄책감을 씻으려는 그는 ‘에세이 시기’를 종료하고 ‘윤리적 결단’의 길(『삶으로서의 사유』) 로 들어선다.


에세이 시기에 루카치는 삶의 원칙으로서의 예술을 승인한다. 그에게 있어 예술작품으로서의 삶의 형식은 끝없는 동요와 자기 확신의 거부(『영혼과 형식』)였다. 사랑은 그러한 동요와 몸짓을 보여주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1911년 옛 애인의 자살은 순수한 삶의 형식의 파열이라는 실존의 바닥으로 그를 내동이쳤다. 이제 그는 윤리학의 이름으로 삶의 예술을 거부한다.(『삶으로서의 사유』) 동시에 1913년 여름 옐레나 글라벵코와의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나는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1년 동안 나는 사랑을 찾아 헤매이지 않았다. 동요도, 자기 확신도 없었다. 그러다 나는 다른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98년, 루카치의 표현을 빌리자면 윤리적 세계의 전형적인 형식으로서 의무만이 가득 찬 세계, 결혼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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