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이론과 정신분석학, 트라우마를 공부하면서 기억에 관심이 많아졌다. 해서 관련 이론서를 번역해 올린다.
앤 화이트헤드 Anne Whitehead의『Memory: New Critical Idiom』(Routledge 2008)이다.
New Critical Idiom 시리즈는 Routledge 출판사에서 다양한 문학 전문 용어 혹은 개념에 대한 충실한 안내를 목적으로 기획된 입문서 시리즈이다. 시리즈 기획자에 따르면 용어의 명확하고 충분한 예시와 설명의 제공, 해당 용어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대한 역사적 전개의 제시 등이 그 특징이라 하겠다.
문학·문화 연구의 기본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입문서를 찾고 싶다면 이 시리즈만큼 접근성 높은 책을 찾기가 어렵다. 물론 입문서이기 때문에 학문적 깊이나 창의성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어쩌면 광범위한 이론적 논의를 축약을 시도할 때 가질수밖에 없는 단점일 것이다.
기억에 관한 연구는 뇌과학과 신경과학, 철학, 심리학 및 정신분석학, 사회학과 역사학, 문화 연구를 아우르는 다학문적 지형을 갖는다. 이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기억’이라는 용어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여행하는 개념travelling concept'으로 기억을 접근하고 있다. 즉 기억 개념을 고정시키지 않고 다양한 ‘학문 분야들 사이, 역사적 시기들 사이, 지리적으로 분산된 학문 공동체들 사이’를 여행하면서 기억의 의미 변화, 이러한 차이의 양식에 대한 평가를 수반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기억 개념을 서구의 학문적 전통의 중요한 역사적 지점을 (1) 고대·중세·초기 근대, (2)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유 속에서의 기억의 (재)개념화, (3) 프랑스 혁명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후기 근대의 ‘기억 위기memory crisis’, (4) 20세기의 집합기억collective memory 개념과의 접속으로 각 시기별로 나누어 기억 개념의 의미 변천을 다루고 있다. 특히 기억 연구의 문학 문화적 전환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적 연구의 전통을 잇고 있다.
1장 고전적 기억 이론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Mnemosyne 개념을, 2장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에서는 기억과 자아the self의 관계를 존 로크, 데이비드 흄, 루소, 워즈워스를 경유하여, 3장에 이르러 우리 시대와 관련하여 후기 근대의 기억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 니체, 프로이트, 베르그송, 프루스트, 그리고 현대 트라우마 이론으로 이어지는 지적 계보를 추적한다.
내가 관심이 있는 대목이 2장 루소와 3장 전체이다. 이번에는 3장에서 베르그송과 프루스트를 제외하고, 정신분석학에서의 기억 개념과 트라우마적 기억을 번역하기로 한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기억’보다 ‘기억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기억이란 때로는 ‘기억술art of memory’(고전 기억이론), ‘자아를 규정하는 낭만주의적 기억 개념’(근대), ‘트라우마적 기억(정신분석학 및 심리학)’, ‘긴밀히 연결된 사회 집단이나 네트워크에서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집합기억collective memory’ 등으로 단일한 개념으로 포괄될 수 없다. 물론 나는 루소의 ‘자아를 규정하는 낭만주의적 기억 개념’과 현대 정신분석학 및 심리학에서 트라우마적 기억에 더 관심이 있다.
오늘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관심이 있고 좋아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Ⅲ. 비자발적 기억 INVOLUNTARY MEMORIES
이 장에서 나의 중심 관심사는 기억과 후기 근대성의 관계이다. 보통 기억에 대한 불안이 부상하기 시작한 시점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간주되며, 이는 근대화의 가속화, 산업혁명의 영향, 그리고 기술적 전쟁의 출현과 관련된다. 이러한 요인들은, 발터 벤야민이 지적했듯이, 전통적 공동체와 삶의 양식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탐구 대상으로 삼게 된 트라우마적 증상들을 낳았다.
19세기 말의 기억에 대한 부상은 이후 20세기 후반의 ‘기억 열풍memory boom’과 구별되는 현상으로 흔히 간주된다. 이 둘 사이에는 나치즘과 공산주의 아래에서 자행된 전체주의적 만행이 놓여 있다. 특히 홀로코스트의 참상은 현대 기억 연구에서 중심적 중요성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홀로코스트는 기억 의식의 단절을 표지하는 사건으로 간주되며, 재현과 기억의 가능성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켰고, 그 공포를 살아남은 이들의 트라우마적 기억에 집중된 연구적 관심을 낳았다.
이후 전개에서 나는 지속적인 후기 근대의 ‘기억 위기’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대안적 서사적 궤적alternative narrative trajectory을 추적하고자 한다. 이 개념은 리처드 터디먼이 분석한 ‘장기 19세기long nineteenth century’ 기억 위기 개념에 빚지고 있다. 그는 이 위기의 기원을 프랑스혁명으로 인한 문화적·역사적 단절에서 찾았다.
앞 장의 결말에서 내가 읽은 워즈워스의 「틴턴 애비 Tintern Abbey」에 대한 해석은, 혁명 전후 시기의 전례 없는 사회적·경제적·법적 변화가 기억의 작용에 대한 특별히 강렬한 관심의 출현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터디먼 역시 혁명을 기억의 근본적 붕괴로 보았으며, 그 결과 기억은 동시에 상실된 것이자 과도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쓴다.
“19세기 초부터 우리는 기억에 대한 불안이 두 가지 주요한 장애―너무 적은 기억과 너무 많은 기억―이라는 인식 속에서 응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억이 병리적으로pathologization of memory 변했다는 인식은 불안과 반성의 이중적 반응을 낳았으며, 이러한 두 과정은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의 분석은 또한 수잔나 래드스톤Susannah Radstone의 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녀는 20세기 후반의 기억에 대한 매혹이 19세기의 관심으로부터의 단절이라기보다는 그것의 ‘심화deepening’라고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19세기에 등장한 공동체·전통·과거와의 양가적 관계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더욱 강렬하게 작동하게 되었다.
그녀는 19세기와 20세기의 기억 개념 간 연속성을 인식하며, 이들이 다루는 근본적 문제는 동일하게 유지된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문화적·사회적·기술적 변화가 20세기 후반의 기억에 더 큰 압력을 가했다는 점에서 구분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한 그녀는 홀로코스트가 현대 문화에서 기억이 갖는 공명resonances의 중심에 있음을 정확히 지적한다. 그녀는 이를 기억 연구의 급진적 단절 혹은 단층caesura로 보지는 않지만, 그 영향이 지대하고 부정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이 장에서 나의 논의는 19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트라우마적 기억의 형식에 대한 심화된 관심을 프로이트, 베르그송, 프루스트, 캐시 카루스, 샬로트 델보의 텍스트 독해를 통해 추적한다. 나는 오늘날 트라우마 기억을 둘러싼 가장 첨예한 논쟁들이 본질적으로 19세기의 문제의식과 논쟁들에 깊이 얽혀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이는 사유의 근본적 연속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과거가 현재를 고착시키는 힘에 대한 후기 근대의 집착이 여전히 진행 중이며 해결되지 않은 위기임을 시사한다.
19세기의 기억 위기가 20세기 후반에도 형태를 달리하며 지속되었다는 점을 처음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나는 니체의 유명한 에세이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은 그가 1874년에 발표한 『반시대적 고찰Untimely Meditations』의 두 번째 논문이다.
터디먼에게서 19세기의 기억 위기는 기억이 원치 않게 떠오르며 점점 더 침입적이고 병리적인 형태를 띠는 현상을 의미했다. 그는 이를 “너무 많은 기억의 질병the disease of too much memory”이라 부르며, 이러한 조건에서 개인적 주체성은 과거의 지속성에 압도되어, 오히려 그에 의해 지배되고 사로잡힌 존재로 변한다고 분석한다.
니체는 이러한 기억의 짐memory as a burden으로서의 인식을 가장 예리하게 사유한 철학자로서, 터디먼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인간을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와 비교하며, 동물들이 “모든 순간을 즉시 잊어버리는 행복”을 부러워한다. “매 순간이 정말 죽어서 안개와 밤 속으로 가라앉아 영원히 사라진다.”(국역, 291쪽) 반면 인간은 누적된 과거의 무게에 짓눌릴 위험에 처한다. “이 과거의 하중은 그를 짓누르거나 옆으로 휘게 만든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어두운 짐으로 그의 앞길을 힘들게 한다.”(국역, 291쪽)
니체는 이 견디기 힘든 짐에 저항하며 ‘망각의 옹호defence of forgetting’를 제시한다. 그는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복잡해지는 역사의 망각을 권한다. 왜냐하면 기억의 과잉이 인간으로 하여금 행위와 삶의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체가 보기에 이 병은 역사가들만의 것이 아니다. 19세기 전체가 이미 ‘역사의 병malady of history’에 감염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에세이의 결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역사적인 것the unhistorical’과 ‘역사적인 것’은 개인, 민족, 문화의 건강을 위해 동일한 비율로 필요하다’.(국역, 384~385쪽) 즉, 기억만큼이나 망각도 건강과 행복의 필수 조건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서두에서 밀란 쿤데라는 다시금 니체의 역사와 망각에 대한 사유로 돌아간다. 니체와 마찬가지로, 쿤데라 역시 과거의 무게와 그것이 부과하는 과도한 기억의 짐에 괴로워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국역, 12쪽)
에드워드 케이시Edward Casey가 지적하듯, 쿤데라가 씨름하는 중심 질문은 본질적으로 19세기와 동일한 문제의식을 유지한다. 즉, 기억이 너무 많을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기억의 길인가, 망각의 길인가?. 그러나 쿤데라는 이후 전개에서 니체와는 상반된 응답을 제시한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은 연애 시에서 여ㅐ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국역, 12~13쪽)
쿤데라에게서 망각의 가벼움lightness of forgetting은 더 이상 ‘찬란한splendid’ 것이 아니라 허위적spurious인 것으로 나타난다. 망각은 존재의 짐을 덜어줄 수 있지만, 동시에 더 불안한 방식으로 우리를 무책임하게 해방시켜, 우리를 ‘하찮은 존재insignificant’, ‘반쯤만 실재하는 존재half real’로 느끼게 만든다.
반면, 기억의 무게weight of memory는 우리를 얽매지만, 동시에 타자와 현실에 대한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19세기의 니체와 20세기의 쿤데라 모두에게, 과거는 압도적이고 짓누르는 짐으로 경험된다. 니체는 이 짐에 대해, 비록 이론적으로나마, ‘망각의 가벼움lightness of forgetting’을 제시함으로써 대응한다. 그러나 쿤데라에게는 기억이 도덕적·윤리적 차원을 획득한다.
기억하는 행위는 고통스럽고 짓누를 수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책임responsibility’이다. 그는 암묵적으로, 최근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적극적으로 망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참을 수 없는unbearable’ 일이며, 오히려 그 고통의 무게를 자신 안에 짊어지는 것이 인간적 책임의 길임을 시사한다.
니체와 쿤데라의 병치는, 간략하나마, 19세기의 문제의식이 20세기 후반의 기억 개념 속에서 어떻게 ‘심화deepening’되고 강화되었는가를 보여주려는 시도다. 두 작가는 모두 과거의 압도적 존재, 전통의 무게,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라는 주제를 중심적으로 탐구하지만, 이들 압력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변주된다.
이후의 논의에서 나는 후기 근대의 ‘지속적이고 미해결된 기억 위기late-modern memory crisis’의 굴곡과 전개를 보다 구체적으로 추적하고자 한다. 나의 분석은 여러 철학자와 문학가의 사유를 통해, 과거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긴급한 붕괴감—즉, 기억이 동시에 회피적elusive이면서도 과도하게 침입적인overly intrusive—이라는 역설적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살핀다.
또한 나는, 기억을 재개념화reconceptualizing하고 재형상화refiguring하는 바로 그 과정에서, 이들 작가 다수가 ‘근대’라는 범주 자체에 대한 자기반성적 성찰을 수행하고 있음을 논증한다. 즉, 그들은 기억을 탐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속한 근대적 조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함께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신비스러운 글쓰기 판 FREUD’S ‘MYSTIC WRITING PAD’>
정신분석학 용어의 고전적 사전인 장 라플랑슈Jean Laplanche와 J.-B. 퐁탈리스J.-B. Pontalis의 『정신분석 사전 The Language of Psycho-Analysis』에는 ‘기억’ 항목이 없다. ‘회상remembrance’이나 ‘망각forgetting’ 또한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공백이 프로이트가 해당 주제에 무관심했다는 결론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데이비드 패럴 크렐David Farrell Krell이 지적했듯, 기억은 정신분석학적 기획의 핵심에 놓여 있다.
“정신분석은 자신이 다루는 질병의 근원과 그 치료의 근원을 모두 기억 속에서 찾는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을 기억의 과학적 치료로 체계화했을 뿐 아니라, 탁월한 기억력을 지닌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분석가에게 세션 중에는 필기하지 말고, 세션이 끝난 후 기억을 통해 대화를 기록하라고 강조했다. 하랄트 바인리히Harald Weinrich는 프로이트가 기억술mnemotechnics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관찰했으며, 터디먼Terdiman은 더 나아가 정신분석학 자체를 서구 문화의 ‘마지막 기억술 Art of Memory’로 규정한다.
이후의 논의에서 나는 프로이트가 고전적 기억술 가운데 플라톤적 전통에 기반하고 있음을 제안한다. 그는 ‘말을 통한 치료talking cure’의 구상에서 소크라테스적 대화dialogue를 참조했고, 무의식 개념에서는 플라톤의 ‘밀랍판 wax tablet ’ 비유를 차용했다. 그러나 터디먼의 분석은 프로이트의 고전적 원천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19세기 기억 위기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것에 초점을 둔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프로이트는 기억 분석에서 전례 없는 밀도를 부여했으며, 특히 과거가 현재 위에 행사하는 힘을 탐구했다. 정신분석은 기억 위기를 극대화하고 가장 투명한 빛 아래 드러낸다”.
프로이트는 연구의 기원부터 과거가 증상, 꿈, 언어적 실수의 형태로 ‘호출되는 called out' 순간들에 주목했다. 그는 자기 기원을 망각한 암호적 수수께끼들, 즉 현재에서는 설명 불가능한 현상들이 사실은 고통스럽고 아직 인식되지 않은 기억의 귀환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인식했다. 터디먼의 표현을 빌리면, 프로이트 이전에는 기억의 범위와 권능이 이토록 ‘편재적ubiquitous’이고 ‘주권적sovereign’인 것으로 상상된 적이 없었다.
“히스테리 환자는 주로 회상reminiscences으로 고통받는다”(SE II: 7, 원문 강조).
이 유명한 문장은 1895년에 출간된 『히스테리 연구Studies on Hysteria』에서 비롯되며, 프로이트는 여기서 히스테리 증상과 억압된 기억(buried memory 특히 유년기의 사건)을 명확히 연결시킨다. 기억 자체는 환자에게 접근 불가능하지만, 증상symptom이라는 응축된 형태로만 나타나며, 그 영향은 여전히 현재에 작용한다. 프로이트는 억압된 기억이 “침입 후에도 오랫동안 활동을 지속하는 이물질처럼 작용한다”고 보았다.
분석가는 최면hypnosis을 통해 이 기억을 의식으로 불러낼 수 있었고, 환자가 그 기억을 언어화하며 동시에 감정적 정동affect을 재경험할 때, 그 병적 영향은 완전히 소멸했다. “각각의 히스테리 증상은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사라졌다”(SE II: 6). 『히스테리 연구』에서 프로이트는 신중하게 히스테리 증상의 근본 원인으로 성sexuality을 암시했다. “신경증neuroses의 획득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원인을 말할 수 있다면, 그 병인은 성적 요인sexual factors에서 찾아야 한다”(SE II: 257, 원문 강조).
그러나 이러한 연관을 명시적으로 제시한 것은 이듬해인 1896년, 「유전과 신경증의 병인Heredity and the Aetiology of the Neuroses」논문에서였다. 이 글에서 그는 처음으로 히스테리와 아동기 성적 학대의 기억 간의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명확히 밝혔다.
주체가 무의식적 기억으로 보존하고 있는 사건은, 다른 사람에 의해 가해진 성적 학대sexual abuse로 인해 발생한, 성기 genitals의 실제적 자극을 동반한 조숙한 성적 경험이다. 그리고 이 치명적 사건이 일어나는 시기는 성적 성숙 이전, 즉 8세에서 10세 이전의 유년기로 규정된다. (Freud SE III: 152; 원문 강조)
따라서 히스테리 증상은 환자의 과거, 특히 유년기의 성적 학대 경험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사건을 기억 형태로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환자는 이 사건들에 대해 의식적으로는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분석가가 다루는 과거는 프로이트에게서 본질적으로 정태적static이며 불변하는unmoving 것으로 간주된다. 그는 정신분석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정신분석의 임무는 ‘잠긴 문을 여는 것’이다.” (SE II: 283)
즉, 기억을 방해하는 장애물 또는 저항resistance이 제거되면, 과거는 그 원래의 완전한 형태로 복원되거나 드러난다. 이때 기억은 변형되지 않은 채, 마치 봉인된 상자 속 내용물이 열리듯 다시 의식의 표면으로 소환된다.
히스테리의 원인이 환자의 아동기 성적 유혹seduction의 기억에 있다고 주장한 지 몇 년 만에, 프로이트는 곧 아동기 기억의 타당성과 신뢰성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갖게 된다. 그는 1899년의 논문 「어린 시절의 기억과 덮개-기억Screen Memories)」(국역, 『일상생활의 정신 병리학 – 개정판 프로이트 전집 5』)에서, 생생하게 보이는 아동기의 기억—특히 일상적이거나 무관심한 사건에 관한 기억—이 실제로는 훨씬 더 강한 정동적 의미를 지닌 전혀 다른 경험들의 대체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논한다.
아동기의 기억은 흔히 기억 화상(畫像, mnemic image)에 의해 ‘차폐(遮蔽, screened)’된다. 이 화상은 원래의 사건과 어느 정도 유사성을 지니지만, 동시에 그것을 가리고 전위(轉位, displace)한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우리가 아동기에 대한 어떤 진정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마 우리가 소유한 것은 아동기에 관한 기억일 뿐일지도 모른다.”
즉, 아동기의 기억은 실제 그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회상하는 순간의 관점에서 재구성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동기의 기억은 드러난 것이 아니라, 그때 형성된 것이다”(SE III: 322, 원문 강조).
1901년의 『일상생활의 정신병리The Psychopathology of Everyday Life』에서도 그는 같은 논지를 반복한다.
“소위 가장 초기의 아동기 기억들은 진정한 기억 흔적이 아니라, 나중에 가해진 수정revision—즉 이후의 다양한 심적 요인들의 영향을 받은 재구성물이다”(SE VI: 47–48).
이 시점에서 프로이트는 기억을 더 이상 ‘원초적 인상original impressions’의 저장소로 보지 않는다. 대신 그는 기억 행위 자체—기억의 과정—를 과거가 거주하는 자리로 본다. 과거는 이제 정태적이고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의 관심사에 의해 능동적으로 재형성re-shaped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연된 기억의 작용(delayed action, 사후성 Nachträglichkeit) 속에서 과거는 단순히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달하고 변형되며 진화한다. 따라서 이제 분석가의 과제는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재구성reconstruction’이다—즉,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었던 방식’으로 서사화 narrativization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기억 개념의 전환은 곧 정신분석의 방법론적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는 억압된 기억을 회복하기 위해 사용하던 최면hypnosis 기법을 빠르게 포기하고, 대신 ‘말을 통한 치료talking cure’를 채택했다.
프로이트는 1914년의 논문 「기억하기, 되풀이하기 그리고 훈습하기 Remembering, Repeating and Working Through」에서 이 새로운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방법은 더 이상 특정한 과거의 한 순간을 “초점에 가져오는 것 ringing a particular moment into focus”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대신 분석가는 “그때그때 환자의 의식 표면 surface of the patient’s mind에 드러나 있는 것”을 탐구한다(SE XII: 147).
따라서 기억하기 이제 현재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 즉 현재적 맥락에 의해 형성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분석 장면에서 환자는 자신의 과거를 단순히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며 동시적인 것’으로 경험한다(SE XII: 152). 이는 환자가 과거의 태도와 행동 양식을 현재 속에서 재-행동화re-enact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분석가는 환자의 노골적 회상이나 전이 감정 transferential feelings에 자신의 다른 기억과 연상associations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개입할 수 있으며, 이는 과거가 단순히 반복되거나 재현reproduction되는 것이 아니라 전복subverted되고 해체undone된다. 함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분석의 초점은 과거가 천천히 전개되고 발전하도록 허용하는 것, 그리고 환자의 현재적 삶의 변화된 조건—분석 장면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에 맞게 수정revised되도록 돕는 데 있다. 따라서 최면 하에서 증상이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사라지는 것에 기대던 초기 모델과 달리, 프로이트는 「기억하기, 되풀이하기 그리고 훈습하기」의 결론부에서 ‘분석의 고된 과업arduous task’을 강조한다(SE XII: 155). 이 과업은 분석가와 환자 모두에게 상당한 시간과 인내의 투자를 요구하는 지속적 과정이다.
프로이트의 ‘말을 통한 치료’ 개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회상recollection과 대화 사이에 설정된 긴밀한 관계이다. 환자는 자신의 과거를 말로 풀어내며 자기 서사narrative of the self를 구성하지만, 프로이트에게서 회상은 결코 독립적 내면 과정이 아니다. 기억은 반드시 우회detour를 거쳐야 하며, 그 표현은 대화 상대자interlocutor—즉 분석가analyst—를 통과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이 지점에서, 에드워드 케이시Edward Casey가 지적했듯이, 프로이트는 명백히 플라톤적 사유의 한 전통에 기대고 있다. 즉, 지식과 진리의 회상anamnesis이 타자와의 대화 속에서 발생한다는 소크라테스적 구조를 무의식의 해석과 기억의 언어화 과정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의 상기설doctrine of recollection은 프로이트의 기억 개념과 상당한 친연성을 보여준다. 심리치료에서 정화적 회상abreactive recollection이 변증법적 대면 confrontation을 통해서만 가능하듯, 철학적 회상—즉 anamnesis-역시 변증적 반문(엘렝코스, elénchus)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발생한다. 플라톤의 『메논 Meno』에서처럼, 프로이트의 기억 개념 역시 변증법적 과정에 기초한다. 이 과정은 환자가 오랫동안 자신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을 다시 회상하도록 이끌어낸다. 따라서 ‘말을 통한 치료’는 고전적 소크라테스식 대화의 한 형태에서 기원하며, 그 구조를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플라톤적 모델에는 대화 상대자interlocutor—즉 분석가—가 기억의 내용에 특권적 접근권privileged access을 지닌 교사로 암묵적으로 설정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앨런 영Allan Young은 정신분석의 발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문가의 개입 없이는, ‘기생적 기억parasitic memory’의 소유자는 그 내용도, 그것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 남는다.”
그러나 영은 여기서 분석 과정에서의 환자analysand의 능동성을 과도하게 축소하는 위험을 감수한다. 분석가가 기억을 환기시키는 촉매catalyst로서 필요하긴 하지만, 실제로 기억을 ‘발견’하고 그것을 훈습work through하는 주체는 환자 자신이다.
에드워드 케이시Edward Casey가 지적하듯, 프로이트는 플라톤으로부터 “회상이 탐색search으로서 일어난다”는 ‘활동주의 activism’ 전통을 물려받는다. 그러나 케이시는 곧 두 사상가가 기억 연구의 역사 속에서 특이하게도 나란히 위치한다고 덧붙인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기억을 능동적 과정이자 동시에 수동적 과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주의와 수동주의의 긴장은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로부터 오늘날까지 놀라울 정도로 독립적으로 지속되어 왔다”.
이때 수동성은 정신분석에 플라톤의 또 다른 핵심 모티프—‘밀랍판 wax tablet’의 은유—를 통해 들어온다. 이 은유는 무의식의 모델을 제공하며, 기억을 각인imprinting의 형태로 다시 개념화한다. 따라서 이하의 논의에서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모델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하며, 이 모델이 지금까지 살펴본 정신분석의 재구성revision과 재현representation의 경향을 동시에 상충하고 전복subvert하는 방식을 보여주고자 한다.
프로이트는 1915년 논문 「무의식 The Unconscious」에서 처음부터 기억을 신경학적으로 국소화하려는 시도를 명확히 거부한다. 19세기 의학 담론에서는 기억 저장memory-storage의 위치를 뇌 해부학적 구조anatomy of the brain와 대응시키려는 시도가 대규모로 이루어졌으며, 이에 관한 방대한 문헌이 존재했다. 그러나 프로이트에게 이러한 시도는 근본적으로 실패였다.
“정신 과정이 일어나는 장소를 알아내려는 갖가지 시도, 말하자면 표상을 신경 세포 속에 저장된 것으로 생각하고 자극(흥분)은 신경 섬유를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생락하려는 모든 노력은 완전히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SE XIV: 174, 국역, 172쪽)
터디먼Terdiman의 표현을 빌리면, 이러한 기억 개념은 “지극히 산문적인 현실주의prosaically realist”에 속하며, 기억을 저장과 각인된 흔적의 고정fixing of inscription으로 파악한다. 이 모델에서는 “뇌에 들어간 것은 변형 없이 다시 나올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과도한 문자적 실재론literalism을 버리고, 대신 심리의 지형학적topographical 모델을 제시한다. 이 모델은 “정신 기관의 신체의 어느 곳에 위치해 있든지 간에, 그 정신 기관 내의 영역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 해부학적인 위치나 국소 부위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것이다.(SE XIV: 175, 국역, 172쪽)
그는 우선적으로 의식conscious, 전의식preconscious, 무의식unconscious의 세 체계를 구분한다. 전의식은 무의식의 내용이 의식에 도달하기 전에 검열censorship을 수행하는 중간 영역이다. 의식은 외부 자극external stimuli이 등록되는 장소로, 따라서 기억을 저장하기에는 부적절하다. 기억이 의식에 저장된다면 새로운 자극을 수용할 능력이 빠르게 제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의식이야말로 기억이 거주하는 장소, 즉 기억의 저장소site of memory로 개념화된다. 중요한 점은,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무시간적timeless’인 영역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무의식 조직에서 이루어지는] 과정들은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일어나는 것도 아니며,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즉 무의식 조직의 과정들은 시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SE XIV: 187, 국역, 190쪽)
즉, 일단 어떤 기억이 무의식 체계 안에 각인되면, 그것은 불변하고 수정 불가능한 것immutable and unchangeable이 되며, 외부의 영향이나 재해석revision에 열려 있지 않게 된다.
비록 기억이 무의식 안에 보존되어 있지만, 그것이 의식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무의식 체계를 둘러싼 지형적 경계topographical boundary를 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프로이트는 흥미로운 이론적 망설임을 보인다. 즉, 기억이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상태의 변화를 수반하여 기억이 무의식으로부터 실제로 “이동”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일한 기억이 두 번째로 각인되어 의식 체계 안에 새로운 형태로 재등록re-registration되는 것인지—즉 기억이 심리의 두 수준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인지를 질문한다.
결국 프로이트는 두 번째 모델, 즉 ‘이중 각인dual inscription’의 개념을 선호한다. 이 모델은 무의식적 기억 흔적의 영속성permanence을 더욱 강화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의식 속에서의 기억 각인은 사물 표상presentation of the thing과 그것에 대응하는 언어 표상presentation of the word으로 구성된다.”
반면, 무의식 속에서의 기억은 “사물의 표상만으로 이루어진다the presentation of the thing alone”(SE XIV: 201). 즉, 무의식의 기억은 언어화되지 않은 비언어적 흔적non-linguistic trace으로, 언어적 통제나 번역이 불가능한 이질적alien 영역으로 남는다. 이 점을 터디먼은 “무의식은 정신 전체에 ‘출력’을 제공하지만, 그 자체는 어떤 ‘입력’이나 조정moderation, 조율modulation, 약화diminution에도 접근 불가능하다.” 고 해석한다.
이것은 곧 기억의 수동적 모델passive model of memory로의 귀환을 의미한다. 한 번 무의식에 각인된 기억은 다른 심리적 층위에서 재기입retranscription될 수는 있어도, 원래의 흔적original trace 자체는 수정revision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정신분석 자체에 근본적 난제를 제기한다. 무의식에 새겨진 가장 독성강한 고통스러운 기억toxic memories이 제거 불가능하다면, ‘치유cure’라는 개념 자체가 근본적으로 손상된다.
1920년에 출간된 「쾌락 원칙을 넘어서Beyond the Pleasure Principle」에서 프로이트는 자신의 지형학적 모델topographical model을 더욱 발전시킨다. 그는 초기 구상을 수정하여, 등록registration 기능을 의식에서 전의식으로 이동시킨다. 프로이트는 자극에 반응하는 ‘비분화된 물질의 주머니undifferentiated vesicle of a substance’, 즉 가장 단순한 형태의 생명체를 상상한다. 그는 외부 세계와 직접 접촉하는 표면이 점차 분화되어, ‘자극을 수용하는 기관’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외부 에너지의 끊임없는 충격은 결국 이 표면을 영구적으로 변형시키며, 그 결과 표면은 마치 ‘완전히 구워진crust baked through’ 껍질처럼 된다(SE XVIII: 26). 이 표면이 곧 의식 체계를 나타내며, 더 이상 자극을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자극으로부터 내부를 방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즉, 표면 아래의 전의식 체계가 외부 자극에 의해 과도하게 흥분되는 것을 차단하는 ‘자극 방어막’으로 작동한다.
프로이트는 이 구상 속에서, 정신 장치psychic apparatus의 주요 목적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극의 양을 가능한 한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외부 세계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로 충전된 환경”으로 간주된다. 만약 방어막이 없다면, 유기체는 “자극에 의해 즉시 파괴될 것이다.” 따라서 의식 체계의 최외곽층은 ‘특수한 외피 혹은 막’으로 작용하여, 에너지가 원래 강도(强度, intensity)의 일부 만을 가지고 전의식 체계로 전달되도록 한다(SE XVIII: 27).
그러나 트라우마는 자극이 너무 강력하여 이 방어막을 뚫고 들어와 정신 기구의 내부를 범람시킬 때 발생한다. 이때 개인의 1차적 관심사는 침투한 자극의 양을 사후적으로 통제하고, 외피(의식)의 균열을 복구하는 데 있다.
프로이트는 “불안에 대한 대비preparedness for anxiety”가 트라우마에 대한 핵심적 방어 기제라고 본다(SE XVIII: 31). 따라서 트라우마를 경험한 개인은 사후적으로 이 대비 메커니즘을 구축하기 위해 반복적 꿈과 행동 패턴을 통해 초기의 공포fright로 되돌아가며 불안을 재구축한다. 이는 트라우마적 자극을 통제하려는 지연된 통합의 시도delayed mastery이기도 하다.
1924년, 프로이트는 「<신기한 글쓰기 판>에 대한 소고」이라는 짧은 에세이를 발표했다. 이 글은 기억의 작용을 각인(刻印. inscription)의 과정으로 설명하면서, 정신의 지형학적 구조topography of the psyche를 요약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여기서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정의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밀랍판wax tablet’의 은유로 되돌아간다.
이 에세이는 기억 과정의 유비로서 글쓰기 도구writing apparatus들을 검토하는 데서 시작한다. 프로이트가 지적하듯, 기존의 도구들은 ‘보존retention’의 능력과 ‘수용reception’의 능력 중 한쪽만 충족시킬 뿐,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지 못했다. 예컨대 잉크로 종이에 쓰기는 “기록된 메모를 무기한 보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보존 능력을 지닌다. 그러나 종이가 가득 차면 “더 이상 새로운 자극을 수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생긴다. 반대로 분필로 칠판에 쓰기는 언제든 “흥미가 사라지는 즉시 흔적을 지울 수 있다”는 점에서 무한히 수용적이지만, 지속적 흔적permanent trace을 남기지 못한다(SE XIX: 227).
이에 프로이트는 새롭게 등장한 <신기한 글쓰기 판 Mystic Writing Pad>을 제시하며, 이 장치가 두 기능—보존과 수용—을 동시에 결합한 보다 충실한 정신 모델model of the psyche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서판은 밀랍판slab of wax 위에 얇은 투명 시트가 덮여 있는 구조를 가진다. 이 시트는 두 겹으로 되어 있으며, 위층은 투명한 셀룰로이드, 아래층은 얇은 왁스 처리된 종이로 구성된다. 사용자는 뾰족한 침으로 이 이중 덮개 위에 글을 쓰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회상하며 말한다.
“이는 점토나 밀랍판 위에 글을 쓰던 고대의 방식으로의 회귀이다.” (SE XIX: 229)
글씨는 셀룰로이드 표면 위에서 가시적visible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쓴 내용을 지우고자 할 때, 해야 할 일은 단지 이중 덮개double covering sheet를 밀랍판으로부터 들어 올리는 것뿐이다. 그러면 서판의 표면은 다시 아무 흔적도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 즉, 표면celluloid sheet에서는 자극의 흔적이 사라지지만, 밀랍층wax layer에는 보이지 않는 흔적trace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점에서 <신비한 서판>은 무의식적 기억의 이중 구조—표면적 소거와 심층적 보존—을 완벽하게 모사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셀룰로이드 아래의 왁스 처리된 종이는 셀룰로이드 표면과 마찬가지로 글씨를 뚜렷하게 기록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 얇은 종이가 필기침에 의해 쉽게 찢어질 수 있다고 설명하며, 셀룰로이드 층이 바로 이런 외부의 손상을 막기 위한 ‘보호막protective sheath’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신비한 서판>은 정신 장치가 외부 자극의 강도를 가능한 한 최소화하여 수용하려는 경향을 정확히 모방한다. 즉, 셀룰로이드의 외피층은 의식 체계에 해당하며, 그 아래의 수용층—즉 전의식—을 보호하는 방어막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밑에 있는 밀랍판은 글이 쓰인 흔적을 영구히 보존한다. 비록 종이와의 접촉이 끝난 후에도, 그 흔적은 여전히 그 표면에 남아 있으며, ‘적절한 조명에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하게 남아 있다legible in suitable lights’(SE XIX: 230). 따라서 이 밀랍층은 무의식 체계를 상징한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서술에서 분명한 것은, 여기에 보존된 기억 흔적memory traces은 완전히 지워지거나 제거될 수 없는ineradicable 존재라는 점이다. 결국 신비한 서판은 기억의 이중 기능을 모델링한다. 즉, 보존retention과 무한한 수용infinite reception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장치이다.
이러한 점에서 프로이트의 논의는, 데이비드 패럴 크렐David Farrell Krell이 지적했듯이, <신비한 서판>이 단순히 “밀랍판이라는 원시적 도구로의 퇴행”이 아님을 보여준다(1990: 154). 오히려 이 장치는 보다 복합적인 각인 inscription의 층위를 제시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프로이트의 무의식 모델은 이 암시된 진보를 플라톤으로부터의 ‘발전’이라기보다 오히려 전통적 은유의 반복으로 되돌린다. 즉, 플라톤이 영혼soul 위에 새겨진 글을 영원한 진리의 부패하지 않는 복사본incorruptible copy으로 본 것처럼, 프로이트 또한 무의식에 새겨진 각인inscriptions을 불변하고 무시간적immutable and timeless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로써 정신분석의 치료적 지향therapeutic ambitions—즉 기억 흔적memory trace의 보다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등록 registration에 의존하는 분석적 목표—은 오히려 프로이트 자신의 모델, 곧 ‘서판의 은유’에 의해 해체될 위험을 맞게 된다. <신기한 글쓰기 판>에서 드러난 기억의 문자적 모델model of writing이 바로 그의 개념적 장치conceptual apparatus를 규정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위태롭게 하는 양면적 작용을 하는 것이다.
자크 데리다는 「프로이트와 글쓰기 무대Freud and the Scene of Writing」에서, 프로이트의 <신기한 글쓰기 판>에 대한 한 주석을 정밀하게 독해하며, 프로이트가 정신psyché을 이론화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글쓰기’의 모델을 중심적 도식으로 전환해 갔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데리다는 특히 신비한 서판의 물질성materiality 그 자체에 주목한다. 그는 프로이트가 서판을 ‘밀랍판’에 비유한 대목에서, 프로이트가 말하는 글쓰기 행위가 단순한 표면적 흔적이 아니라 ‘절개적incisional’ 과정임을 지적한다. 즉, 종이나 칠판에 쓰는 행위가 평면 위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면, <신비한 서판>에의 글쓰기는 ‘깊이depth’와 ‘내면성interiority’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이 모델의 중요한 함의는 다음과 같다. 정신 과정psychical processes 역시 글쓰기의 각인inscription처럼 단일한 위치에 고정될 수 없는 비-국소적non-localizable 작용이라는 점이다. 서판의 층위적 구조stratification or layering는 각인이 단일 표면이 아니라 여러 층위에 산포(散布, distributed)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 외부 자극이 정신의 여러 수준에서 다르게 등록되고, 그 폭력성이 점차 약화되는 과정과도 유사하다. 따라서 정신의 각인은 서판 위의 글쓰기처럼 단 한 번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크리스토퍼 존슨Christopher Johnson의 설명을 빌리면, 그것은 “단일한 기원의 부여 자체를 문제화하는 반복a certain repetition that problematizes any assignation of a unitary origin”(1993: 97)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데리다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서판의 층위가 암시하는 시간성의 구조temporal dimension이다. <신기한 글쓰기 판>의 구조상, 셀룰로이드 표면에 새겨진 흔적은 밀랍층과의 접촉이 끊어지는 즉시 사라진다. 따라서 글의 영속적 흔적permanent trace은 사후(事後 afterwards)에만 읽을 수 있으며, 이는 윗층을 들어 올리고, 그 아래의 밀랍 표면을 관찰scrutinize할 때 가능하다. 데리다는 이를 정신기구에 비유하며, 이렇게 쓴다.
"지각perception은 결코 자기 자신에게 현전present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지연된 시간성belated temporality 속에서 작동한다. ‘지각된 것the “perceived”’은 오직 지각 이후after perception, 지각 아래beneath perception에서만 읽힐 수 있다.” (2001a: 282)
따라서 <신기한 글쓰기 판>의 모델은 글쓰기를 더 이상 ‘기호의 수평적 연쇄horizontal chain of signs’로 파악하지 않게 한다. 대신 프로이트에게서 글쓰기는, 데리다의 표현을 빌리면, “심리의 다양한 깊이들 사이에서 접촉이 끊기고 다시 이어지는 과정, 즉 정신적 작업의 놀랍도록 이질적이며 시간적으로 얽힌 직물(織物)temporal fabric of psychical work itself” 로 재구성된다(2001a: 283).
데리다는 「프로이트와 글쓰기 무대」 전반에 걸쳐 <신기한 글쓰기 판>을 하나의 기계machine 혹은 도구instrument로 반복해서 언급한다. 실제로 프로이트 역시 이 서판을 ‘기억의 활동activity of remembering’을 보완하는 [대리]보충supplement으로 제시한다.
“만약 내가 내 기억을 신뢰하지 못할 때 …… 나는 글로 메모를 남김으로써 그것의 작동을 보충하고 보증할 수 있다.” (SE XIX: 227)
이 구상은 글쓰기를 기억을 돕는 보조물an aid to remembering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파이드로스Phaedrus』를 상기시킨다. 플라톤에게서 글쓰기는 회상의 자극prompt to recollection으로는 유용하지만, 동시에 기억 능력 자체를 위축시키는 것atrophy the faculty of memory으로 간주되었다.
데리다는 「플라톤의 파르마콘 Plato’s Pharmacy」에서, 『파이드로스』의 중심 대립—즉 ‘나쁜 글쓰기’(외적 문자, text의 필사)와 ‘좋은 글쓰기’(영혼 위에 새겨지는 진리의 각인, en tei psychei)—이 오염의 원리principle of contamination에 의해 해체deconstructed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두 종류의 글쓰기는 결코 분리되지 않으며, 항상 이미 상호 침투되어 있다 implicated in each other는 것이다. 이 논리를 바탕으로 데리다는, <신비한 서판>에 대한 주석에서 프로이트가 비유를 갑작스레 중단한 지점에 주목한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이와 같은 보조 장치auxiliary apparatus와 그것이 모방하는 기관organ 사이의 유비는 어느 지점에서 더 이상 적용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일단 글이 지워지고 나면, 신비한 서판은 그 글을 내부로부터 ‘재생산reproduce’할 수 없다. 그것이 만약 우리의 기억처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신비한 서판’일 것이다.” (SE XIX: 230)
데리다에게 이 결론은 지나치게 성급한 단절hasty break이다. 그는 이 구절이, 프로이트가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기계적인 보조기억hypomnesis’과 ‘영혼의 글쓰기writing en tei psychei’를 여전히 대립opposition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2001a: 286).
데리다는 오히려 프로이트가 여기서 멈추지 말고, 자신이 이미 제시한 “기억과 <신기한 글쓰기 판> 사이의 유사성”을 끝까지 탐구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그가 정말로 주목해야 했던 것은 “이 기계의 가능성the possibility of this machine”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데리다는 기억과 유사한 작동 방식을 보이는 현대적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언급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비한 서판은 분명 칠판이나 종이보다 훨씬 복잡하며,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재기입된 사본보다 덜 고대적이다. 그러나 다른 기록 저장 장치machines for storing archives들과 비교하면, 그것은 어린아이의 장난감에 불과하다.” (2001a: 286–287)
이후의 관점에서 보면, 프로이트의 <신기한 글쓰기 판>은 현대의 컴퓨터와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에서 전개된 기억 시뮬레이션simulations of memory을 예견anticipate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제한된 모델limited model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공 기억artificial memory의 사례들이 점점 더 자연과 인공natural/artificial, 생명과 기계, 내적과 외적 경계의 구분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데 비해, 데리다는 프로이트가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구분을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의도를 지녔다고 본다.
즉, 데리다의 관점에서 프로이트는 ‘[대리]보충물로서의 글쓰기 writing as supplement’에 대한 플라톤적 이론으로 되돌아감으로써 그 한계를 드러낸다. 그는 ‘외적 글쓰기’, 즉 문자나 기호의 기록보다, 무의식의 ‘내적 글쓰기inner writing ’를 우위에 둔다. 이는 비록 프로이트가 정신기구의 복합적 층위를 통해 플라톤의 ‘밀랍판 은유’를 확장하였음에도, 여전히 내면/외면의 위계적 대립을 보존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다.
이와 관련해 크리스토퍼 존슨은 데리다의 정신분석 해석은 프로이트가 일관되게 반복적으로 주장한 ‘무의식 기억의 파괴불가능성indestructibility of unconscious memory’에 저항resistant한다고 핵심적으로 지적한다.(1993: 99). 즉, 데리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기억의 영속성permanence과 무시간성timelessness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존슨에 따르면, 이러한 무의식 기억의 불변성은 두 가지 한계를 드러낸다. 첫째, 그것은 정신분석의 치료적 효과therapeutic efficacy 자체를 제약한다. 둘째, 데리다의 해석에서도 중요한 ‘해석적 한계’를 형성한다. 그는 데리다가 무의식을 밀랍판으로 형상화한 프로이트의 플라톤적 제스처의 보수성conservatism을 감지하지 못한 ‘해석에서의 맹점site of interpretative blindness’을 남긴다고 평가한다(1993: 100).
리처드 터디먼은 프로이트가 근대 후기의 ‘기억 위기’ 속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프로이트가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힘the power of the past over the present에 대해 지속적이고 강렬한 매혹fascination을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이 과거의 해로운 영향baneful influence이 특히 무의식의 개념 전개에서 가장 날카롭게 드러난다고 보았다. 이 절의 결론으로, 나는 무의식적 기억 흔적의 영속성이 정신분석적 ‘치유’의 가능성에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를 간단히 검토하고자 한다. 프로이트의 초기 저작에서는 치료에 대한 낙관이 뚜렷하다. 그는 히스테리 증상이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가정했다. 크렐이 지적하듯, 프로이트는 “분석가가 환자 안에서 억압된 기억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그 증상은 평온해진 유령처럼 사라질 것”(1990: 108)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말년의 저작 「끝낼 수 있는 분석과 끝낼 수 없는 분석 Analysis Terminable and Interminable, 1937」에서, 프로이트는 분석이 실제로 달성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더 냉정하게 제시한다. 그는 “분석의 ‘종결’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실질적 수준에서 분석의 종결은 분석가와 환자가 더 이상 만날 필요가 없을 만큼 많은 억압된 자료가 의식화되었을 때 도래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다음과 같이 명시적으로 부정한다.
“모든 억압이 해결된 완전한 치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SE XXIII: 220)
더 구체적으로,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분석 과정에서 변형transformation은 일어나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부분적 일 수밖에 없다. 오래된 기제들 중 일부는 분석의 작용에 의해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 남는다.” (SE XXIII: 229)
즉, 프로이트의 후기 사유는 점점 더 명확하게, 과거의 해로운 영향은 무의식의 수준에서 제거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는 누적적 신념을 표현한다. 분석은 우리가 항상 내면에 지닌 과거의 짐을 제거할 수 없으며, 그 짐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선언한다.
따라서 니체의 ‘의지적 망각willed forgetting’은 프로이트에게 불가능한 선택지이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단순히 ‘소멸extinguish’시킬 수 없으며, 그 시도는 오히려 기억의 더욱 강력한 귀환aggressive revival or return을 초래한다. 그러나 분석이라는 과정은,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과거의 짐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우리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유령들을 완전히 퇴치할 수는 없다 해도, 그 가운데 일부를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는 있다.
프로이트는 일생 동안 자신의 ‘기억의 기술 (art of memory, ars memoria)’을 발전시키고 실천한 끝에, 정신분석은 교육이나 통치와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직업impossible profession’이라고 결론짓는다. 이 영역은 ‘애초부터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게 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 소수의 활동 분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SE XXIII: 248).”
<트라우마적 기억 TRAUMATIC MEMORIES>
이 장의 앞선 절들에서 나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작가들의 저작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외상적 기억traumatic memory 개념에 대한 몰두를 분석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터디만Richard Terdiman이 말한 ‘기억 위기memory crisis’―즉, 기억이 부족함too little memory과 과잉too much memory 사이에서 동요하는 근대적 불안―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20세기 후반에는 이러한 긴장이 한층 더 심화·강화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번 절의 목적은 20세기 후반의 트라우마 담론trauma discourse에서 핵심적인 논쟁 지점을 개괄하고, 그 사상적 기원이 이전 세기 초의 논쟁들과 연속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후기 근대late modern’ 전반에 걸쳐 트라우마적 기억을 둘러싼 사고의 연속성continuity of thinking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트라우마 연구가 본격화된 시점은 일반적으로 1980년으로 지목된다. 이 해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III)』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항목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 진단 범주는 베트남 전쟁 이후 귀환한 참전용사들과 임상심리학자들의 정치적·사회적 압력 속에서 탄생했으며, 그 결과 트라우마 신경증(외상성 신경증 traumatic neurosis)의 증상이 사상 최초로 공식적 인정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캐시 카루스Cathy Caruth는 이러한 병리의 제도적 승인official acknowledgement of the pathology이 하나의 강력한 분석 도구로 기능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PTSD 개념은 “주변 모든 것을 삼켜버릴 만큼 강력한 진단적 프레임이 되었으며, 전쟁과 자연재해뿐 아니라 강간, 아동 학대,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폭력적 사건들에 대한 반응들까지도 모두 PTSD의 용어로 이해되기 시작했다”(1995a: 3).
그러나 새로운 범주의 도입은 곧 논쟁을 촉발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첨예한 쟁점은 해리(解離, dissociation) 현상—즉, 트라우마적 경험이 의식적 기억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분리·단절된 채 잔존하는 심리적 작용—의 해석과 그 병리학적 지위를 둘러싼 문제였다.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서 해리 장애dissociative disorders를 PTSD의 핵심 구성 요소로 강조했으며, 특히 1994년 개정판(DSM-IV)에서 그 비중이 더욱 높아졌다. 루스 레이스(Ruth Leys, 2000: 266)가 지적하듯, 캐시 카루스의 『트라우마: 기억의 탐구Trauma: Explorations in Memory』에서 제시된 영향력 있는 트라우마 정의 또한 이 해리 모델model of dissociation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카루스는 트라우마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트라우마란 직접적으로 경험되지 못한 사건의 지연된 경험the delayed experience of an event that was not fully experienced at the time, 즉 그때는 인식될 수 없었던 것이 나중에 반복적으로 되돌아와 주체를 괴롭히는 현상이다.”
즉, 트라우마는 단순히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니라, 당시에는 의식적으로 통합되지 못한 사건이 시간적 지연을 거쳐 회귀하는 경험이다. 이러한 정의는 해리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해리는 외상적 경험이 의식의 연속선에서 분리되어 ‘기억되지 않은 채로 지속’되게 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며, 카루스는 이 분리를 트라우마의 본질적 구조로 간주한다.
트라우마란 때로 지연되어 나타나는 압도적 사건overwhelming event 혹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반응으로, 그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반복적이고 침습적인 환각 intrusive hallucinations, 꿈, 사고, 행동의 형태로 나타난다. 동시에 이러한 반응에는 사건 중 혹은 그 이후에 시작된 정서적 둔화numbing가 수반되며, 사건을 연상시키는 자극에 대해 과도한 각성increased arousal 혹은 회피avoidance를 보일 수도 있다.
카루스가 강조하는 트라우마의 핵심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수용되는 방식 reception, 즉 “즉각적으로는 완전히 통합되지 못하고 지연되어belatedly 나중에야 경험되는 구조”에 있다. 그녀가 주목한 반복적 악몽, 플래시백, 재-행동화re-enactment 등은 모두 해리 현상을 시사한다.
이 개념이 가장 명시적으로 제시된 것은 카루스가 편집한 『Trauma: Explorations in Memory』에 수록된 베셀 반 더 콜크와 오노 반 더 하르트Onno van der Hart의 논문 「침습적 과거 The Intrusive Past」이다. 두 신경생물학자는 트라우마가 뇌에서 일반적인 기억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등록·부호화encoded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특히 해마hippocampus의 기능—시간적·공간적 맥락 속에 기억을 배치하는 역할—을 강조하며, 외상 상황에서는 이 기능이 억제되어 “트라우마 경험의 구체적 내용은 망각되지만, 그에 수반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1995: 172)고 설명한다.
따라서 트라우마의 ‘기억’은 언어적·서사적 회상narrative recall의 메커니즘을 따르지 않으며, 대신 신체감각bodily sensations, 행동적 재-행동화 behavioral re-enactments, 악몽nightmares, 플래시백flashbacks의 형태로 조직된다.
이들은 프로이트적 정신분석과의 거리두기를 강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설명은 기억이 “시간의 흐름이나 이후의 경험에 의해 변화되지 않는다fixed and unaltered”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을 다시 불러온다. 즉, “한 번 새겨진 기억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여전히 트라우마 이론의 심층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카루스는 이러한 신경학적 입장을 요약하며, 트라우마 기억이 “정신에 새겨지고engraved on the mind” “뇌 속에 각인된다etched into the brain”고 표현한다(1995b: 153). 이 표현은 프로이트의 ‘밀랍판 wax tablet ’ 은유를 직접적으로 환기시키며, 기억과 기록inscription의 문제—즉, 기억의 불변성과 재서사의 가능성—이 여전히 후기 20세기 트라우마 이론의 핵심적 논쟁 지점으로 남아 있음을 드러낸다.
결국, ‘후기 근대의 기억 위기late-modern memory crisis’의 중심에는 이러한 불안의 연속선이 놓여 있다. 그것은 트라우마가 어떻게 등록되고 경험되는가registration and experience의 문제뿐 아니라,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트라우마의 치유(cure), 혹은 그 가능성 자체를 둘러싼 철학적 긴장 속에서도 드러난다.
현대 트라우마 이론에서 두 번째 핵심 논쟁점은 트라우마가 과연 서술되거나 재현될 수 있는가 narrated or represented 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곧 치유의 가능성과도 직결된다. 왜냐하면 서사narrative는 PTSD 치료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반 데어 콜크와 반 더 하르트는 트라우마 기억이 정상 의식 속으로 통합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서사적 기억 체계narrative memory system’로 편입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들은 “환자들이 대체적 시나리오alternative scenarios를 상상함으로써 원래의 완화되지 않은 공포unmitigated horror의 침입적 힘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1995: 178). 그러나 곧이어 그들은 경고한다. 서사적 기억은 과거의 재구성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진실을 왜곡distorts truth하며, 따라서 트라우마 경험을 ‘신성 모독sacrilege’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1995: 179).
카루스 역시 트라우마의 ‘치유’가 경험을 치료의 언어로 희석dilution시키는 위험을 내포한다고 본다. 트라우마가 서사로 전환되면 자신과 타인에게 언어화되어 전달될 수 있지만, 많은 생존자들이 명료한 이야기로 과거를 말하기를 꺼리는 이유는, 바로 사건의 “본질적 불가해성the event’s essential incomprehensibility”—즉 이해를 거부하는 힘force of its affront to understanding—이 손실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한다(1995b: 154).
이러한 문제의식은 현대 트라우마 이론 전반에서 반(反)치료적 입장anti-therapeutic stance으로 나타난다. 즉,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행위 자체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대두된 것이다. 이에 따라 카루스는 트라우마의 의미적 단절gap or break in meaning이해 불가능성과 균열 그 자체—를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표현 양식mode of representation)**을 요구한다. 그녀는 지나친 통합과 조화의 언어가 트라우마의 파열을 다시 은폐하거나 억압할 위험을 경고한다.
반면, 도미니크 라카프라Dominick LaCapra는 트라우마를 지나치게 닮은 방식으로 재현representation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행동화act out’의 위험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즉, 트라우마를 반복적으로 재경험함으로써 비판적 분석critical analysis의 가능성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2001: 186).
결국 이러한 논쟁은 앞서 다루었던 프로이트의 ‘말하기 치료talking cure’에 내재한 모순—즉, 기억의 재현이 과연 치유인가, 아니면 또 다른 반복 강박compulsion to repeat인가—를 현대 트라우마 이론의 맥락 속에서 다시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나는 샤를로트 델보Charlotte Delbo의 마지막 저작 『날들과 기억Days and Memory』에 나타난 트라우마적 기억traumatic memory의 영향력 있는 서술을 살펴보고자 한다. 델보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1942년 3월 프랑스 경찰에 의해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아우슈비츠와 라벤스브뤼크Ravensbrück 수용소로 차례로 이송되었다. 전쟁 말기 적십자에 의해 석방된 그녀는 영양실조와 극도의 쇠약으로부터 회복하기 위해 스웨덴으로 보내졌다.
델보는 이 작품의 서두에서 “허물을 벗는 뱀”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뱀이 “빛나는 새 피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그녀의 신체적 회복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상징한다. 즉, 그녀는 “꺼져가는 눈의 납빛 응시”, “비틀거리는 걸음)”, “겁먹은 몸짓”을 서서히 벗어던지며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이 첫 서술은 독자에게 수용소의 흔적을 서서히 벗어던지고 새로운 삶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적 암시reassuring suggestion를 준다. 그러나 델보는 곧 그러한 기대를 배반한다. 그녀는 아우슈비츠의 ‘가시적 흔적visible traces’만이 지워질 수 있다고 단언한다. 몸은 습관의 기억habit memory을 통해 과거의 삶의 몸짓—“칫솔질, 화장지 사용, 손수건 들기, 식기 사용, 차분히 식사하기”(1990: 1)—을 되찾을 수 있지만, 아우슈비츠의 심층 기억underlying memory은 여전히 내면 깊숙이 묻혀 있으며 제거될 수 없다.
따라서 델보의 글은 처음에는 과거를 뒤로할 수 있다는 서사적 기대conventional narrative expectation에 부합하는 듯 보이지만, 곧 이를 전복overturn하고 독자를 의도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구조를 취한다. 즉, 표면적으로는 회복의 서사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irreducible memory’이 자리한다.
델보가 묘사한 아우슈비츠의 심층 기억underlying memory은 인지적 기억intellectual memory과 정서적 기억emotional memory 사이의 분열split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앞서 제시한 “허물을 벗는 뱀”의 이미지를 확장하여, 기억의 피부skin of memory는 역설적으로 “스스로 새로워지지 않는다 not renew itself”고 말한다. 오히려 그것은 ‘불침투성impermeable’의 껍질로 굳어지며, 이는 프로이트가 『쾌락 원칙을 넘어서』에서 제시한 의식 체계의 ‘굳은 외피baked crust’를 연상시킨다. 다만 프로이트에게 이 외피는 외부 자극으로부터의 보호막이었지만, 델보의 ‘피부’는 트라우마 이후after the trauma 생겨난 것으로, 파괴적인 내부 에너지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기 위한 방어막defensive envelope이다(1990: 2).
델보는 이 내면적 기억을 ‘심층 기억deep memory’이라 부르며, 그것이 감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즉, 이 기억은 “감각과 신체적 흔적physical imprints”을 보존한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이 기억은 피부에 의해 봉합되어 있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이 피부가 ‘균열crack’을 일으켜 과거가 자신을 다시 덮칠까 두려워한다. 실제로 이 방어막은 때때로 무너진다. 특히 꿈 속에서 과거는 압도적 강도와 즉각성으로overwhelming intensity and immediacy 재현relived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쓴다.
“내가 느끼는 고통은 너무나 견딜 수 없을 만큼 커서, 그곳에서 겪은 고통과 완전히 동일하다. 나는 그것을 신체적으로, 온몸으로 느낀다. 나의 몸 전체가 고통의 덩어리가 된다.”(1990: 3)
이에 대조적으로, 델보는 아우슈비츠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기억을 묘사한다. 그것은 타인에게 언어로 전달될 수 있는 기억verbal and communicable memory으로, 그녀는 이를 ‘외적 기억external memory’ 혹은 ‘인지적 기억’이라 부른다. 이 기억은 사유 과정thinking processes과 연관되어 있으며(1990: 3), 심층 기억과는 완전히 분리된 채 존재한다. 델보는 수용소에서 해방된 후 생존을 위해 이러한 기억의 분리 메커니즘mechanism of splitting을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전략은 언제나 불안정하다. 그녀는 “이중적 존재twofold being”로 살아가며, 결코 아우슈비츠의 기억을 뒤로할 수도, 그것을 과거로 안전하게 전치할 수도 없다. 따라서 델보의 말처럼 그녀는 “아우슈비츠 이후after”에 사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확히는 “아우슈비츠 옆에서next to it” 산다(1990: 2).
반 데어 콜크와 반 더 하르트는 논문 「The Intrusive Past」에서 델보의 이중적 존재double existence에 대한 묘사를 임상적 해리clinical dissociation의 한 예로 제시한다. 그들에 따르면, 델보는 자신의 트라우마적 기억을 ‘부분적으로 인식하며partially aware’, 따라서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혼합체a mixture of past and present’로서 자신의 외상 경험을 서술할 수 있다(1995: 178).
이 설명은, 빅토리아 스튜어트Victoria Stewart가 지적하듯, 여러 면에서 델보의 글을 “정확하게 기술한characterization” 평가이지만, 한편으로는 델보의 텍스트가 이미 그들의 독해를 예견하고anticipates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즉, 델보는 해리를 임상적 증상symptom이 아니라, 트라우마적 기억을 서술하기 위한 강력한 서사적 장치descriptive device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2003: 118).
스튜어트는 또한 델보가 묘사하는 것은 임상적 해리에서 흔히 나타나는 기억의 ‘석화ossification’, 즉 과거의 경직된 고착이 아니라, 아우슈비츠 시절의 자기self와의 ‘지속적으로 변하는 관계changing relationship’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델보의 ‘해리 모델’은 트라우마 기억의 복잡성과 불확실성uncertainties을 드러내는 동시에, 과거를 억제하며 생존하려는 끊임없는 투쟁constant struggle for survival의 형식으로 기능한다.
델보의 저서 『날들과 기억』 제목부터 프루스트의 초기 작품집 『쾌락과 날들Les Plaisirs et les jours(1896)』을 의도적으로 반향한다. 여기서 ‘기억’과 ‘쾌락pleasure’의 대치 자체가 의미심장한데, 델보가 제시한 ‘심층 기억’과 ‘인지적 기억’의 이중 구조는 프루스트의 ‘비자발적 기억involuntary memory’과 ‘자발적 기억voluntary memory’의 대립을 연상시킨다.
델보의 ‘심층 기억’은 감각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주체의 의지와 무관하게 밀려드는 점에서 프루스트의 ‘비자발적 기억’과 유사하다. 반면 ‘인지적 기억’은 프루스트의 ‘자발적 기억’처럼 생동감과 강도vivacity and potency를 잃은, ‘죽은 과거’를 제공한다. 브렛 애슐리 카플란Brett Ashley Kaplan은 델보가 ‘쾌락’을 ‘기억’으로 치환한 제목 선택이 “두 용어의 유사성과 거리similarity and distance” 모두를 드러낸다고 분석한다(2001: 326). 그녀에 따르면, 프루스트와 델보 모두에게 기억 행위에는 일종의 쾌락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시간의 해방the release of time” 구조에서 비롯된다.
델보는 프루스트처럼 기억의 정지된 시간suspended time of remembrance에 주목하며, 특히 ‘심층 기억’의 장면들을 감각적 이미지로 강화한다. 그러나 두 작가의 결정적 차이는 기억의 내용에 있다. 카플란이 말하듯, 프루스트의 기억이 “과거의 쾌락적 재창조pleasurable recreation of the past”라면, 델보의 기억은 “기억하는 행위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the unimaginable pain”으로 변한다(2001: 328).
따라서 델보는 프루스트적 기억 구조를 역전reversal시킨다. 그녀는 ‘심층 기억’이 다시 과거의 공포를 불러올 위험을 지니기 때문에, 오히려 ‘인지적 기억’—즉 통제 가능한 서사적 층위—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 카플란은 이를 ‘기억의 쾌락’을 ‘기억의 고통’으로 재작성rewriting of remembrance as pain한 행위로 본다.
그러나 터디만Terdiman의 분석과 연결해보면, 나는 이 장의 앞부분에서 이미 프루스트의 비자발적 기억 또한 분열된 자아split self의 모티프를 통해 강렬한 고통과 위기를 동반한다고 논의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델보의 『날들과 기억』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프루스트의 문제의식과의 연속성continuity을 암시한다. 즉, 서로 다른 역사적·체험적 맥락에도 불구하고, 프루스트의 비자발적 기억은 델보의 트라우마적 기억이 지닌 ‘기억의 강제력the compelling force of remembrance’을 예감하고 있었던 셈이다.
델보가 ‘갈증thirst’을 논하는 대목에서 프루스트와의 친연성이 다시 한 번 강조되는데, 이는 콩브레Combray를 되살려내는 차를 홀짝이는 장면을 환기시킨다. 다시 말해, 브렛 애쉴리 카플런은 델보와 푸루스트 사이의 간극을 강조하며, 델보가 ‘갈증’이라는 단어를 일상의 한 잔의 차를 향한 욕구뿐 아니라 아우슈비츠에서 그녀를 괴롭혔던 ‘심층 기억’의 갈증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델보는 갈증이라는 특정한 예를 사용할 때 프루스트가 감각적 기억이 한 잔의 차 속에 담길 수 있다고 말한 주장에 대해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반박하고 있었다(2001: 325).
그러나 다시 말해, 또 다른 독해 역시 가능하다. 프루스트에게도 언어는 두 개의 층위를 지니고 있었으며, 따라서 자발적 기억이 불러낸 ‘콩브레’는 마들렌을 차에 적셔 맛본 순간 감각을 범람시킨 그 ‘콩브레’와 동일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델보가 기록한 언어의 균열fracturing of language은, 이미 프루스트 안에 잠재되어 있던 것을 지속시키면서 동시에 더욱 강화한 결과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델보는 프루스트적 기억과의 친연성을 암시한다. 이러한 친연성은 최악의 사건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가장 사소한 감각·순간·세부가 전체의 과거를 담을 수 있는 방식을 밝혀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프루스트는,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많은 트라우마적 기억이 지닌 비자발적 성격을 묘사하는 데 접근하고 있다. 이는 특히, 프루스트의 콩브레의 부활에 수반되는 강렬하고도 해소되지 않은 고통에 대한 터디먼의 통찰력 있는 분석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나는 지금까지 델보의 글쓰기를 주로 기억의 긴급성exigencies 과 관련하여 논의해왔지만, 그녀는 또한 망각 forgetting의 문제에도 깊이 천착한다. 델보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시간을 “단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다”고 명확히 말하면서도, 기억과 망각의 불가분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 결과 그녀는 죽은 이들을 기리고 마음속에 붙들어두려는 욕구와,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잊어야만 한다는 동일하게 절박한 욕구 사이에 끊임없이 사로잡힌다.
델보가 과거의 견딜 수 없는 짐 intolerable burden of the past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대목은, 이 장의 서두에서 논의했던 니체로 다시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따라서 이 장을 맺으며, 나는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에서 니체가 제기한 망각의 필요성이 20세기 후반의 도덕적·윤리적 기억의 부담을 고려할 때 더 이상 적절한가라는 앞선 문제 제기를 다시 검토하고자 한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나는 마르크 오제Marc Augé의 도발적 에세이 『망각Oblivion』을 간단히 살펴보고, 특히 그의 결론부인 “망각의 의무A Duty to Forget”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오제에게 기억과 망각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이룬다. 망각은 우리의 기억을 도드라지게 하고, 그것에 형상과 규정을 부여한다. 망각은 기억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작동하는 능동적 행위자active agent in the formation of memories이며, 기억과 망각이 함께 존재하고 서로에게 전적으로 “공모적complicit”이기 때문에, 삶을 가능하게 하려면 두 과정 모두가 필수적이다. 그의 에세이 마지막 부분의 제목은, 기억해야 할 때만큼 잊어야 할 때가 존재한다there is a right time to forget as well as a right time to remember는 니체의 충고를 떠올리게 한다.
중요하게도 오제는 자신의 논의에 강제수용소 생존자들을 포함시킨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에게는 “기억해야 할 의무를 상기시킬 필요가 없다do not need to be reminded of their duty to remember.” 오히려 과거는 언제나 그들에게 현재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2004: 87).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존자들 또한 망각의 의무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다시 살고자 하고 단순히 생존만을 원하지 않는다면, … 일상의 삶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자기 시간을 다시 주도하기 위해서는, 잊기에서 자기 몫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must be able to do their share of forgetting.” 여기서 오제는, 델보가 보여준 생존과 기억 그 자체의 생존 사이의 섬세한 균형을 반향한다.
그가 니체를 다시 호출하는 까닭은, 아마도 생존자들 자신을 포함해 우리 누구도 “잊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릴forget to forget”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2004: 88). 나는 원칙적으로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만, 동시에 수전 술레이만Susan Suleiman의 우려 역시 강조하고 싶다. 술레이만이 지적하듯, 오제가 말하는 ‘망각’은 “어딘가 지나치게 쉽다seems somehow too easy”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 어떻게 망각이 가능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으며, 쉽게 사라질 수 없는 기억의 흔적이 지속되는persistence of memory’s traces 문제를 지나치게 빠르게 넘어간다.
비록 망각이 극악한 범죄의 생존자들에게 어느 정도는 바람직할 수 있을지라도, 술레이만이 상기시키듯 그들은 그러한 ‘망각의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데 “특히 수백만 명의 다른 희생자들이 관련되어 있을 때 더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2006: 216).
이 장 전반에서 나는 후기 근대의 지속적인 ‘기억의 위기crisis of memory’를 설명하는 데 주력해왔으며, 이는 무엇보다도 기억이 지나치게 많다는 감각에 특별한 초점을 둔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니체가 제기했던 망각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때인지 예비적으로 검토하면서 글을 맺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분명 망각은 생존 그 자체에 중요할 뿐 아니라, 서사가 지나치게 정태적이거나 기념비적 형태 static or monumentalized a form로 굳어지는 것을 막는 기능도 수행한다. 그러나 동시에 망각은 그 난점들을 무시한 채 단순히 처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기억하기가 지닌 도덕적·윤리적 부담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 장에서 나는 오늘날의 ‘집합 기억collective memory’ 논쟁 속에서 제기되는, 기억과 기념의 과잉에 대한 최근의 우려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결론에서는 다시 한 번 망각의 문제, 그리고 그와 밀접하게 연결된 용서forgiving의 문제로 돌아가, ‘망각oblivion’이 지닌 주장들과 위험들을 보다 세밀하게 살펴보며 전체 논의를 마무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