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문제는 원[초]장면이 왜 그토록 트라우마적인가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것은 왜 너무 이르거나 혹은 너무 뒤늦은 것일까요?......주체 탓을 하며 가까이 다가오는 아이의 이미지, 원망이 가득한 그 응시와,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의 원인이 되면서 주체를 추락시키는 것, "아버지,.......안 보이세요?" 라고 하면서 바라봐주길 간청하는 아이의 애원, 아이의 목소리...
『자크 라캉 세미나 11 -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111~112쪽
트라우마 관련 저작을 번역해 올린다. 캐시 카루스 Cathy Caruth의 『수취되지 못한 경험 : 트라우마, 서사 그리고 역사 Unclaimed Experience : Trauma, Narrative, and History』(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6)이다.
제목 "Unclaimed Experience"을 박찬부 선생은 "내 것이라고 주장하여 소유된 적이 없는 경험’이라고 번역한다(박찬부, 「기억과 서사 : 트라우마의 정치학」)
캐시 카루스의 글은 이형진 선생이 번역한 「헤어짐의 말들: 트라우마, 침묵 그리고 생존 Parting Words: Trauma, Silence, and Survival」(『문학과사회』 27권 3호, 2014 가을)이 국내 독자를 만난 적이 있다.
이 저서는 국내에서 최근 『트라우마, 소유하지 못한 경험』이라는 제목과 김성훈, 나익주 선생의 공동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이 서문을 번역할 시점에는 국내 출간 정보가 업데이트 되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
캐시 카루스는 프린스턴 대, 예일대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에모리 대학 비교문학과 설립 및 발전에 관여했고, 현재는 코넬대에서 영어 및 비교문학 부서 소속으로 트라우마 이론 입문 강의를 맡고 있다.
그녀의 학문적 배경이 문학 이론이라는 점, 번역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평가 폴 드만의 영향력이 드리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장에서는 프로이트, 라캉의 정신분석학 뿐만아니라, 역사학 라카프라 Dominick LaCapra와 정신의학의 반 데어 콜크Bessel A. Van der Kolk 를 비롯하여 다양한 학제적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캐시 카루스의 『수취되지 못한 경험 : 트라우마, 서사 그리고 역사』은 90년대 중반 인문학에서 트라우마 연구 기초 틀을 만든 저작이라는 평을 받는다. 2016년에는 20주년 기념판이 발간되기도 했다.
30여년 전에 출간되었던 저작이므로 그간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해 온 <트라우마 연구>를 생각한다면, "낡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고 있는'트라우마'의 인문학적 기초와 토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 시의성은 강조할만하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책 전체 번역을 시도하고자 하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같다. 아쉬운대로 이번에는 <서문>만 번역을 올리기로 한다.(서문 번역 당시 국내 출간을 확인하지 못한 채 책 전체의 번역을 시도하기로 했으나, 번역 기획을 수정한다.)
오늘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길을 꾸준히 걷겠습니다.
<서문 : 상처와 목소리>
공포에 얼어붙었지만 Though chilled with horror,,
그는 두 번째 일격을 가하고 with a second blow
그제야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He struck it, and decided then to look.
-토르콰토 타소Torquato Tasso, 『해방된 예루살렘 Jerusalem Liberated』
「쾌락원칙을 넘어서」3장에서 프로이트는 특정 개인들의 삶에서 설명할 수 없이 지속되는 고통의 양상을 묘사한다. 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섬뜩하게 사실적인 악몽nightmares과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이를 재행동화하는 reenactments 모습을 보고, 프로이트는 파국적 사건이 그 사건을 겪은 사람들에게 종종 기이하고 섬뜩하게 반복되는 양상에 대해 의아해한다.
경우에 따라, 프로이트가 지적하듯 이러한 반복 repetitions은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개인 자신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운명fate에 의해 지배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그들에게 가해지고, 그 사건들이 전적으로 그들의 의지나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와 같은 운명에 대한 가장 감동적인 시적 묘사가 타소T. Tasso의 낭만적 서사시 『해방된 예루살렘』속에 제시되어 있다”고 썼다.
이 시의 주인공 탄크레드Tancred는 어느 칼싸움에서 자기도 모르게 적의 기사 갑옷으로 변장하고 있는 자기의 연인 클로린다Clorinda를 살해한다. 그 여자를 매장한 후 그는 십자군 병사들을 공포로 사로잡고 있는 한 이상한 마을의 숲으로 들어간다. 그는 자신의 칼로 큰 나무를 하나 벤다. 그러나 그 벤 자국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클로린다의 목소리가-그녀의 영혼은 나무 속에 갇혀 있다-들리는데, 그 소리는 탄크레드가 그의 연인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입혔노라 불평하고 있었다.(국역,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292쪽)
탄크레드가 전투 중 사랑하는 이를 다치게 하고, 이후 자신도 모른 채 우연처럼 그녀를 다시 다치게 하는 행동은, 프로이트가 설명한 텍스트에서 트라우마 경험이 생존자의 무의식적 행위와 의지에 반하여 정확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타소의 극화된 이야기에서 보듯이, 재앙의 핵심에 있는 반복—프로이트가 “외상 신경증traumatic neurosis”이라 부를 경험—은 단순히 잊고 지나갈 수 없는 사건의 무심한 행동화unwitting reenactment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프로이트의 예가 보여 주는 문학적 공명 resonance이 단순히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의 극적 사례를 넘어선다고, 어쩌면 프로이트의 트라우마에 대한 개념적·의식적 이론의 한계를 넘는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내게 특히 인상적인 타소의 사례는 단순히 부상을 입히는 무의식적 행위와 그것의 의도치 않은 반복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슬프게 울부짖는 감동적인 목소리이다.
탄크레드는 단순히 자신의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처음으로 자신이 저지른 일을 보라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의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그에게 말을 걸며, 이 발화를 통해 그가 무심코 반복한 과거를 증언한다. 따라서 탄크레드의 이야기는 트라우마 경험을 단순히 인간 행위자가 반복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행위의 수수께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상처로부터 울려 나오는 인간 목소리의 타자성이라는 수수께끼로도 보여 준다. 이 목소리는 탄크레드 자신이 완전히 알 수 없는 진실을 증언한다.
나는 이 문학적 이야기의 감동적인 특성, 즉 무의식적이고 '상처를 입히는 반복'과 '울부짖는 목소리의 증언'이라는 강렬한 병치 juxtaposition 가 바로 프로이트가 트라우마 경험에 대해 품은 직관과 열정적 매혹을 가장 잘 보여 준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프로이트가 트라우마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문학으로 눈을 돌린 것은, 문학이 정신분석학처럼 앎과 알지 못함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앎과 알지 못함이 교차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문학의 언어와 트라우마 경험에 대한 정신분석적 이론이 정확히 만난다.
타소의 시가 제시하는 예는, 내 해석에 따르면, 단순히 더 광범위한 정신분석적 혹은 경험적 진실을 보여주는 문학적 예에 그치지 않는다. 나는 이 시적 서사가, 프로이트의 저작에서 드러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트라우마 이론의 함의를 보여주는 보다 큰 우화이자, 더 나아가 이 책이 탐구하려는 문학과 이론 사이의 결정적 연관을 드러내는 우화로 읽힐 수 있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이중의 상처>
탄크레드가 상처를 반복적으로 가하는 행위는 트라우마 그 자체의 근원적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영어와 독일어 모두에서), 즉 트라우마는 그리스어로 “상처wound”라는 단어로, 원래는 신체에 가해진 손상을 뜻한다. 후대, 특히 의학 및 정신과 문헌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이트의 저작에서 이 용어는 신체가 아니라 마음에 가해진 상처로 이해된다.
그러나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프로이트가 시사하는 바는, 마음의 상처—시간, 자아, 세계에 대한 마음의 경험에 생긴 파열(破裂, breach)—는 신체의 상처와 달리 단순히 치유 가능한 사건이 아니라, 탄크레드가 결투에서 변장한 클로린다Clorinda에게 치명상을 처음 입혔듯이, 너무 이르거나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경험되어 완전히 알 수 없으며, 따라서 생존자의 악몽과 반복적 행동 속에서 다시, 반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때까지 의식 속에서 인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클로린다의 목소리가 두 번째 상처를 입기 전까지 탄크레드에게 들리지 않는 것처럼, 트라우마는 개인의 과거에 놓인 단순한 폭력적 사건이나 원초적 사건 그 자체에 위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건이 전혀 동일화되지 못한 상태 unassimilated, 즉 최초의 순간에는 분명히 알려지지 않았던 그 방식이 훗날 생존자를 다시 찾아와 괴롭히는 양식 속에서 드러난다.
'상처와 목소리'에 관한 우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 그리고 트라우마에 대한 프로이트의 글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그것이 말하는 내용과 무의식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모두에서, 트라우마가 단순히 병리현상이나 상처 입은 정신의 질병 이상의 것임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트라우마는 항상 울부짖는 상처의 이야기이며,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는 접할 수 없는 현실이나 진실을 전하려는 시도로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이 진실은 지연되어 나타나고, 늦게 전달되기 때문에, 단지 알려진 것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과 언어 속에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것과도 연결된다.
이 책에서 나는 특정 시기의 텍스트들—정신분석학, 문학, 그리고 문학 이론의 텍스트들—이 어떻게 트라우마적 경험의 심오한 이야기를 말하고, 또한 그 이야기를 통해 말하는지를 탐구한다. 실제 트라우마 생존자들의 사례를 직접적으로 기술하거나, 트라우마 정신의학psychiatry of trauma을 곧바로 설명하려는 대신, 이어지는 장들은 트라우마의 언어와 관련 이야기 속에서 ‘알고 있음’과 ‘알지 못함’ 이 어떻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탐색한다.
내가 읽는 텍스트들이 프로이트에서처럼 개인사 또는 집단사 속 트라우마 이론과 관련이 있든, 뒤라스 Marguerite Duras 와 레네 Alain Resnais 에서처럼 각자의 파국적 경험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된 두 사람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든, 이들 텍스트 각각은 고유한 방식으로 위기 경험에서 생겨나는 듣기, 알기, 재현하기의 중심 문제를 다룬다.
프로이트가 시사하듯, 트라우마적 경험이 발생하는 순간 완전히 흡수되지 않는 경험이라면, 이 텍스트들 각각은 순차적으로 묻는다. 즉, 단순한 지식으로는 규정되지 않고, 동시에 우리의 증언witness을 거부하면서 요구하는 위기를 전달하고 이론화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질문은 순수 문학 텍스트 내에서 발생하든, 보다 의도적으로 이론적 텍스트 내에서 발생하든, 단순하게 제기될 수 없으며, 항상 어느 정도 문학적 언어로도 발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해를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그 이해를 거부하는 언어이다.
나의 해석적 시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신분석 글쓰기 관련 장과 문학 및 문학 이론 관련 장에서 나는 단지 각 저자가 트라우마적 경험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한 논지를 따라가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예를들면 프로이트의 『쾌락원칙을 넘어서』와 『모세와 일신교』에서의 트라우마 이론, 드 만 Paul de Man), 클라이스트Kleist, 칸트에서 나타나는 언급과 추락하는 몸의 형상, 뒤라스와 르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 속 개인적 파국의 상호 서사, 라캉의 프로이트 텍스트 해석에서의 트라우마 재구성)
나의 주된 과업은 오히려 이 텍스트들 각각 속에서 다른 하나의 이야기, 즉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단어들이나 형상들의 텍스트적 여정을 추적하는 데 있다. 내가 분석을 통해 드러내고 강조하는 핵심 형상들—‘벗어남departure’, ‘추락falling’, ‘불타 소멸함burning’, ‘깨어남awakening’의 형상들—은, 그 반복적 출현을 통해, 실제로 이 형상들이 지닌 수사적 잠재성 과 문학적 공명 resonance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들을 생성한다. 이러한 문학적 차원은 텍스트의 주제적 내용이나 이론이 부여하는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며,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알고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자리에서, 어떤 잊혀진 상처를 증언하는 방식으로 완고하게 지속된다.
<사건의 이야기 THE STORY OF AN ACCIDENT>
이 이야기들의 핵심에는, 폭력적 사건의 본질뿐만 아니라 트라우마에서 단순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수수께끼 같은 증언이 놓여 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우리가 프로이트가 트라우마를 기술하고 개념화하려는 반복적 시도에서 배울 수 있는 중심 교훈 중 하나로 읽을 수 있다. 프로이트의 대표적 트라우마 사례에서, 트라우마 피해자에게 되돌아와 괴롭히는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특히 충격적이고 예상치 못한 사고의 발생이다. 기차 사고 사례—겉으로는 아무런 상처 없이 사고에서 벗어난 사람이, 몇 주 후 충격의 증상을 경험하는 경우—는 프로이트에게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폭력의 충격적 트라우마를 가장 명확히 보여준다.
그러나 프로이트에서 사고의 반복적 이미지는, 예상치 못한 사건 또는 우발적 사건의 예시로서 특히 강력하게 작동하며, 트라우마의 전형적 장면으로 자리잡는다. 이는 단지 우리가 트라우마 사건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만이 아니라, 더 깊이 있게는 트라우마 사건에서 정확히 포착되지 않는 not precisely grasped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즉, 프로이트에서 등장하고 다른 트라우마 내러티브를 통해 전달되는 사고는 단순히 충돌의 폭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불가해성 incomprehensibility의 영향까지 전달한다. 이 이야기들이 말하듯, 피해자에게 되돌아와 괴롭히는 것은 폭력 사건의 현실뿐 아니라, 그 폭력이 아직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방식의 현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건의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트라우마 이야기의 예상치 못한 현실, 즉 지시성의 자리locus of referentiality를 가리킨다. 나는 폴 드 만의 지시성referentiality 개념을 다루는 장에서 바로 이 내러티브와 현실 사이의 연결을 탐구한다. 드 만의 개념은 실제로 지시를 충격과 연관시키며, 특히 추락의 충격과 연결한다. 특히 칸트의 철학 텍스트와 클라이스트의 문학 텍스트를 통한 드 만의 독해를 분석하면서, 나는 그의 지시 이론이 궁극적으로 하나의 내러티브, 즉 추락fall의 의미 문제와 불가분하게 얽힌 이야기로 변환됨을 보여주고자 한다. 추락하는 몸의 이야기는—드 만의 텍스트를 통해 나는 이를 지시의 효과 이야기로 읽는다—예상치 못하게 트라우마의 이야기와 맞닿으며, 트라우마의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지시적 복귀와 연결된다.
따라서 트라우마를 통한 지시 해석, 즉 지시와 간접적으로 연결된 트라우마 이해는 지시의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제거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지연된 효과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트라우마와 역사 TRAUMA AND HISTORY >
따라서 트라우마의 이야기는, 지연된 경험의 내러티브로서, 현실로부터의 도피—죽음이나 그 지시적 힘 referential force-으로부터의 도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에 대한 끊임없는 영향을 증언한다.
타소의 이야기에서, 프로이트를 통해 읽을 때, 탄크레드는 죽음의 영향—상처 입는 사고와 클로린다의 죽음—을 벗어나지 못하며, 오히려 그것을 두 번 살아야 한다. 많은 트라우마 내러티브의 핵심 위기는—프로이트, 뒤라스, 라캉의 텍스트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듯—종종 다음과 같은 긴급한 질문으로 나타난다. 트라우마란 죽음과의 만남인가, 아니면 그것을 살아남은 경험인가?
이 이야기들의 핵심에는 일종의 이중 서사double telling가 있으며, 죽음의 위기와 삶의 상응하는 위기 사이를 오가고, 사건의 참을 수 없는 성격과 생존의 참을 수 없는 성격 사이를 오간다.
서로 양립할 수 없으면서도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이 두 개의 서사는, 내가 읽는 텍스트들 속에서 ‘역사’라 부르는 것의 복잡성을 궁극적으로 규정한다. 이를테면 『모세와 일신교』에서는 유대인의 이야기와 기독교인의 이야기가 맺는 복잡한 관계가 그러하고, 『쾌락 원칙을 넘어서』에서는 죽음과의 대면과 삶과의 대면이 서로 얽혀 있는 방식이 그러하며, 『히로시마 내 사랑』과 라캉의 ‘불타는 아이의 꿈’ 해석에서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생존자의 지속되는 삶 사이의 심층적 연결이 그러하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텍스트들에서 역사적 증언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한 개인의 삶의 이야기와 어떤 죽음의 이야기가 분리될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 다시 말해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이중 서사impossible and necessary double telling 그 자체이다.
<타자의 목소리>
이 책의 이론적·문학적 핵심은 타소의 이야기와 프로이트의 울부짖는 상처 사례를 통해서도 다른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탄크레드의 이야기에서, 그의 무의식적 검의 반복적 찌르기와 그가 목소리를 통해 인식하는 고통은, 자신의 과거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개인의 경험—자신의 트라우마가 삶을 형성하는 반복—을 나타낸다. 그러나 말을 하는 상처는 정확히 탄크레드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자의 상처, 즉 타자의 트라우마이다.
물론, 이 다른 목소리—클로린다의 목소리—를 이야기 속 예시 안에서 이해하여, 자신의 과거의 “무의식적unwitting” 트라우마를 기억하는 자기 안의 타자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목소리의 발화 는, 개인이 자신의 과거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트라우마가 다른 사람의 트라우마와 어떻게 얽혀 있는가', 즉 '트라우마가 다른 사람과의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식'—'다른 사람의 상처를 듣는 가능성과 놀라움을' 통해—의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다른 사람의 상처가 전달하는 목소리와 발화를 듣는 경험이 바로 프로이트 텍스트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며, 그의 트라우마 이론은 단지 트라우마에 대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의 한가운데에서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탄크레드의 이야기는 동시에 정신분석 글쓰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말을 하는 상처가 탄크레드에게 향하는 형상은, 다시 말해, 단순히 트라우마와 그 섬뜩한 반복의 우화일 뿐 아니라, 정신분석 이론 자체가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증언하는 목소리를 듣는 과정을 보여주는 정신분석 이론의 우화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발화에 귀 기울이는 이 행위는, 신비롭지만 청취와 반응을 요구하는 발화에 대한 귀 기울임은, 뒤라스와 라캉의 텍스트에서도 핵심을 이룬다.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이는 프랑스 여성과 일본 남성 사이의 만남의 중심에 있다. 전쟁 중 독일인 연인을 잃은 프랑스 여성과, 히로시마 폭탄으로 가족이 몰살된 일본 남성은, 서로 다른 문화적 거리와 서로 다른 트라우마의 충격을 넘어, 여성의 발화를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발화하는 타인에게 귀 기울이는 이 행위는, 라캉이 프로이트의 ‘불타는 아이의 꿈’ 내러티브를 재해석하는 중심이 되며, 이는 아버지와 아이 사이의 만남—열병으로 죽은 아이의 시체가 실수로 넘어뜨린 촛불로 인해 타오르고, 옆 방에서 잠자는 아버지가 이를 의식하지 못한 채 꿈 속에서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아버지, 제가 불타고 있는 게 안 보이시나요?”라는 속삭임을 통해 불을 보도록 명령받는 상황—을 강조한다.
이처럼 보이고 들리기를 요구하는 타자의 간청, 타인이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실제로는 불타는 것을 인식하라)고 명령하는 이 부름 call 은, 이 책이 다루는 다양한 텍스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울려 퍼진다. 그리고 이 책의 관점에서, 이는 트라우마의 언어와 그 고통의 무언적 반복 속 침묵이 깊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새로운 읽기와 듣기의 방식을 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