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8일, LPI에서 시작한 공부하는 공동체 꺅텔의 첫 모임이 있었다. 라깡 세미나 11의 강해서인 라깡의 정치학을 기본 텍스트로 해서 이 책으로만 약 6개월 이상 지속될 독서 모임이지만, 독서 모임만은 아닌 모임이다.
책을 읽기 위해 모이는 것임에도 독서 모임만은 아니라고 한 이유는, 단순히 책을 읽고 그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 아닌, 이 라깡의 기표가 어떻게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와 어떻게 변화해 왔는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책의 의미를 이해하고 라깡을 아는 것을 넘어서는, 책 읽기가 아닌 책 먹기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꺅텔을 맡아 진행하기에 앞서, 라깡의 정치학 책에 대한 소개 발제를 준비하면서 병원을 그만둔 이후의 나의 행보나 처음 세미나 11의 강해 수업을 들었을 당시 내가 했던 생각들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아마도 그 당시의 나는 파문 이후의 라깡과, 병원을 그만두고 방황하는 나의 모습을 동일시했던 듯 싶다. 물론 나는 파문당한 것이 아니라 제 발로 병원을 뛰쳐나온 것이지만 말이다. 세미나11을 강해하는 내용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나는 이 세미나11을 진행해 나가는 라깡의 행보 - 전복적으로 프로이트의 텍스트 읽기, 다른 학문에서 가져온 개념을 이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등- 에도 주목했던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동일시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면서 내가 정신분석가로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 지에 대한 방향성을 찾기도 하였고, 간호사로서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나를 장악해 온 담론들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게 되었으며, 꾸준히 무언가를 함으로써 나를 지배하고 있는 고정관념들로부터 어떻게 잠시 이탈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실천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는데,
나는 과연 어떤 실천을 해왔는가, 혹은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가?
Praxis, 실천
이 책에 대한 발제문을 준비하고 꺅텔을 진행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실천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꺅텔은 라깡적인 의미에서의 실천 중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Praxis라는 이 단어는 라깡의 정치학 서문에서도 소개된 바 있으며, LPI의 가운데 글자이기도 하다.
병원을 그만두고 나왔을 당시만 해도, 나는 어떠한 큰 실천을 하나 행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호기롭게 라깡으로 정신분석 임상을 실천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병원을 뛰쳐나와 수년간의 공부 끝에 정신분석가가 된 지금의 나는, 또 다시 어떤 고정관념에 휩싸여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라깡이 말하는 존재에 대한 접근, 혹은 윤리를 나는 실천이라는 행보를 통해 실현하고 있는가?
굳이 답을 내려보자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아무리 라깡이 균열, 공백, 증상이 진리의 전령이라 강조하였다 하더라도 이러한 균열, 공백, 증상은 우리의 '현실'이 없다면 출현할 수 없기에, 붕괴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를 고정시켜 줄 고정관념이 필요하기에, 늘상 모든 것을 파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고정 관념이 잠시 정지되는 순간들을 나는 지켜내고 있는가의 문제는 계속해서 남아 있다. 매일 일정 시간 책을 읽고 글을 써내려가고 있고 그것이 내가 세상의 논리들로부터 잠시 멀어지는 순간이라 믿어 의심지 않지만, 이 또한 하나의 관성이 된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성을 타개할 새로운 방법이 오늘부터 시작된 이 꺅텔, cartel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 먹기 모임이 그러한 고정 관념이 정지하는 순간 중 하나가 되길 바라며, 앞으로 이 시간이 소중히 지켜내 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