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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꾸 Feb 10. 2019

게임 계의 레전드, 리그 오브 레전드의 마케팅 비결

YOMA Vo.10_2019년 2월호_주제 "리그오브레전드"

 지난 2018년 10월 1일,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의 국제 대회 ‘롤드컵’이 우리나라에서 열렸습니다. 대회에서 치러진 경기들은 전 세계 30개의 TV채널 및 플랫폼에 19개 언어로 송출되었는데요. 놀랍게도 이 대회의 순 시청자 수는 무려 9,960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흔히 '세계에서 가장 비싼 광고판'으로 유명한 미국 프로풋볼 결승전 무대, 슈퍼볼의 시청자 수가 1억 1,000만 명 정도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정말 엄청난 수치라 할 수 있겠는데요. 롤은 이러한 인기를 등에 업고 2018년에도 14억 달러(약 1조 5,773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 e스포츠라는 종목이 시범 운영되는 데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슈퍼볼을 방불케 하는 롤드컵의 시청자 수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는 2009년에 처음 출시된 이래 10년 이상 꾸준한 인기를 누려오고 있는 글로벌 게임입니다. 롤이라는 게임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롤에는 각기 다른 기술을 가지고 있는 140여 개의 챔피언이 존재합니다. 유저들은 이 중 하나의 챔피언을 선택하고, 성향에 따라 5개의 포지션(탑, 미드, 정글, 원거리 딜러, 서포터)을 고른 후 나머지 4명의 유저들과 팀을 이루어 5:5로 대전을 벌입니다. 게임 내에서는 현금 결제가 승패에 어떠한 영향력도 미치지 않으므로 ‘착한 게임’의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과금은 오직 유저들이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 캐릭터의 외형을 바꿀 수 있는 ‘스킨’을 구매할 때에만 필요합니다.


플레이어들은 이렇게 많은 챔피언들 중 하나씩 골라 다섯명씩 팀을 이뤄 승패를 가릅니다!


 그렇다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게임이 나오는 온라인 게임의 세계에서 롤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이렇게 오랜 기간 누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롤의 개발사인 라이엇 게임즈(Riot Games)는 게임 운영의 기본적인 요소들, 즉 게임의 밸런스 조정이나 버그 수정, 새로운 챔피언의 출시 등에 굉장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언제나, 어느 분야에서나 가장 어려운 것이 기본을 잘하는 것이기에 이것만으로도 칭찬받을만합니다. 하지만 롤이 지금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던 데에는 기본을 뛰어넘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데요. 오늘은 지금까지의 게임 홍보의 틀을 깨부수고 있는 라이엇 게임즈의 마케팅 사례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대세 콘텐츠와 각광받는 기술을 결합시킨 이슈 메이킹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롤에는 스킨이라는 상품이 있습니다. 스킨은 챔피언의 외형을 더욱 보기 좋고 화려하게 만들어 주는데요. 라이엇 게임즈는 이러한 스킨에 스토리를 부여하곤 했습니다. 메카물을 연상시키는 프로젝트 컨셉, 일본의 사무라이를 떠오르는 불의 축제 컨셉과 같이 하나의 컨셉 아래 여러 챔피언의 스킨들을 세트로 출시하는 것이지요.


'프로젝트' 시리즈 스킨(좌), '불의 축제' 시리즈 스킨(우) 일러스트


 작년 롤드컵에 앞서, 라이엇 게임즈는 새로운 스킨 컨셉을 선보였는데요. 바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팝의 이미지를 반영한 여자 아이돌 컨셉 ‘K/DA’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순히 게임 속에 상품을 런칭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실제로 K/DA의 데뷔곡 ‘POP/STARS’를 프로듀싱 하였고,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하였는데요. 놀랍게도 K/DA의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담긴 영상 유튜브에 업로드된 지 24시간 만에 재생수가 616만 회를 돌파했습니다. 같은 시간 동안 아이즈원의  데뷔곡 ‘라비앙 로즈’가 455만 회, 워너원의 ‘에너제틱’이 403만 회를 달성했던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감이 잡히실 겁니다.


케이팝 아이돌 컨셉의 스킨 시리즈 K/DA. 가상의 아이돌이 이렇게나 큰 반응을 불러올지 누가 알았을까요?


 라이엇 게임즈는 이렇게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롤드컵 무대 공연에서도 K/DA의 무대를 꾸몄는데, 이 또한 커다란 화제가 되었습니다. 바로 증강현실(AR)을 활용하여 영상 속 K/DA의 멤버들을 무대(영상) 위에 표현해냈기 때문인데요. 그저 게임 속 상품에 불과한 ‘스킨’을 케이팝이라는 문화콘텐츠로 새롭게 탄생시키고, 여기에 증강현실이라는 기술까지 접목시켜 캐릭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 신선한 시도에 언론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업로드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POP/STARS’ 영상의 누적 재생수는 1억 6,300만 회를 넘겼는데요. 빌보드 차트 1위에 빛나는 BTS의 ‘IDOL’의 오피셜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3억 5,000만 회 정도라고 하니, 이 정도면 이슈 메이킹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위기를 기회로 역전시키는 콜라보레이션  



 이야기에는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잘 설계되어 있고, 재미가 있으며, 적절한 정보를 담고 있다면 말입니다. 특히 롤처럼 가상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100개가 넘는 챔피언들이 등장하는 게임의 경우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묶어주는 스토리가 더욱 중요합니다. 챔피언의 개성과 성장 배경, 챔피언 사이의 관계 등 챔피언들을 둘러싼 다양한 정보들은 유저들이 챔피언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해 주고, 플레이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서적인 연결은 해당 챔피언을 계속해서 플레이하고 또 그 챔피언의 스킨을 구매하는 등 게임의 매출을 늘려주는 이유가 되어 줍니다.

 

라이벌 관계에 놓여 있는 두 닌자, 제드(좌)와 쉔(우)


 하지만 롤의 게임 스토리는 줄곧 약점으로 지적받아 왔습니다. 대형 게임사가 아니었던 라이엇 게임즈가 롤을 처음 출시할 때부터 향후 출시할 모든 챔피언 스토리와 세계관을 완벽하게 설정한 후 거기에 맞춰 개발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인데요. 게임이 장기간 흥행을 하면서 챔피언의 수는 140여 개로 늘어났고, 그 결과 런칭 초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배경들이 계속 추가가 되면서 스토리의 통일성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롤의 유저들은 ‘스토리는 단지 허울뿐’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라이엇 게임즈는 장기적인 관점의 브랜딩 차원에서 ‘롤 유니버스’를 새롭게 가다듬기로 결정합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설정을 수정하기도 하고, 새로운 개념과 설정을 추가하기도 하면서 스토리를 개선했는데요. 이러한 노력을 임팩트 있게 알리고자 콘텐츠계의 거물 ‘마블 코믹스’와 콜라보레이션을 추진합니다. 라이엇 게임즈에서 새롭게 쌓아 올린 세계관과 챔피언들의 세부적인 스토리를 바탕으로, 마블코믹스가 코믹스의 형태로 제작을 한다고 하는데요. 수많은 히어로들을 다뤄온 마블코믹스와의 협업을 통해 스토리가 약하다는 이미지를 쇄신할 기회를 마련한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마블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와서 유저들에게 ‘대세감’을 느끼게 해 주고, 코믹스라는 파생 콘텐츠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새롭게 발굴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파격적이고 신선한 시도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첫 작품 ‘애쉬:워마더’가 5월에 공개된다고 하는데, 어떤 평가를 받을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와 마블 코믹스가 함께 내놓을 작품이 기대되네요!


3. 먼 미래까지 꾸준히 생태계를 만들어 가겠다는 약속  



 작년 9월, 라이엇 게임즈는 ‘롤 파크(LoL PARK)’의 개장 계획을 알렸습니다. 롤 파크는 오직 e스포츠만을 위한 경기장, 롤 관련 굿즈들을 파는 라이엇 스토어, 롤 세계관의 배경 중 하나인 빌지워터를 모티프로 한 카페, 그리고 최신 사양의 컴퓨터들이 비치되어 있는 PC방으로 구성되어 있는 문화 공간입니다. 라이엇은 롤 파크를 조성하는 데 무려 1,000억 원의  예산을 들였다고 하는데요. 종각에 위치한 그랑서울과 2029년까지 계약을 맺어놓은 상태라고 합니다.


서울의 한복판인 종각역 그랑서울에 위치한 롤 파크 입구
항구도시 빌지워터를 모티프로 한 카페(좌), 롤 말고 다른 게임을 해도 너그러이 허락해주는 '라이엇 피시방'(우)


 고객과의 접점을 높이고 서비스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롤 파크는 체험 마케팅의 하나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롤 파크에는 단순한 체험 마케팅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롤 파크가 목표로 하는 것이 문화, 나아가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e스포츠 선수들이 치열한 경기를 펼칠 LCK 아레나는 콜로세움을 형상화하여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관객석에는 컵홀더와 USB 포트, 개인 물품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습니다. 선수와 관계자들을 위한 공간도 휴게 공간과 메이크업 룸, 인터뷰실까지 깔끔하게 꾸며 놓았는데요. 이 모든 노력은 게임을 매개로 하는 e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좀 더 일상적으로 소비하고, 게임이 열등한 문화가 아니라 충분히 수준 높은 문화 콘텐츠라는 사실을 대중들에게 알림으로써 생태계 자체를 확장하고자 하는 과감한 시도라 할 수 있겠는데요. 오직 리더만이, 그것도 용기 있는 리더만이 펼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는 LCK 아레나.


 새로운 장르와의 결합을 통한 이슈 메이킹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콜라보레이션, 그리고 자신이 속한 분야의 생태계를 확장시키는 대인배적인 마케팅 전략까지! 오늘은 온라인 게임 롤의 다양한 마케팅 사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들을 보고 ‘뭐 돈이 많으면 영상 콘텐츠도 만들 수 있고, 마블이랑 콜라보도 할 수 있고, 서울 한복판에 전용 경기장도 만들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몇 천 억에서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릴 만큼 규모가 큰 국내 모바일 게임 제작사들이 연예인만을 앞세운 천편일률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온라인 게임의 전통 강자 블리자드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걸려 있는 게임 리그를 하루 아침에 폐쇄해버린 모습을 떠올려 보면, 대담하고 새로운 마케팅을 시도하며 유저와 공생하는 생태계를 만들어 가려는 라이엇 게임즈의 행보는 분명 독보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시도로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던져줄지, 한 명의 롤 유저로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야겠습니다. ⓒ라꾸


 * 본 콘텐츠는 요즘 마케터들의 매거진, <YOMA>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하는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를 <YOMA> 매거진에서 확인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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