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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Aug 27. 2019

일상 메이크업

민낯의 일상을 메이크업한다

출근하지 않지만

특별한 외출 계획도 없지만

정성스레 세수를 하고 가글을 한다.

스킨과 로션을 톡톡.

부담 없는 가격의 아이크림을 제법 듬뿍 짜서 눈가와 콧등에 얹고 입주변까지 휘릭 한 번 훑는다.

선크림은 피부보호를 위한 기본이고

비비크림과 옅은 빛깔의 립밤은

나 자신을 향한 나름의 존중의식이다.

예뻐 뭐하냐며 방치하고 살지 않겠다는.


정성을 담아 신성한 의식을 치른다.

집중하여 휘리릭. 2분이면 충분하다.

대충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살림한다. 육아한다. 것 뿐이다.

그러나 뭐 대단한 프로젝트라도 진행하듯 

다부진 세로 책상에 앉는다.

'아지트'라 불러주는 작고 기다란 이 책상 위에서 나 삶 다다.

하루를 '기획'씩이나 하고 '디자인'씩이나 하며 시작한다. 첫째 아이의 등하원 시간은 고정이고 둘째 아이의 낮잠 시간도 비교적 일정하다. 홀로 쓸 수 있는 시간 아이의 칭얼거림 병행해야 하시간을 구분하다.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할 일들의 밸런스를 고려하고 적당한 시간대에 배치한다. 비장하고 진지하다. 쓱 훑어보며 상투적인 일정들 색다르게 '디자인'해 본다. 지루한 설거지 시간에는 스치며 가볍게 볼 수 있는 tv 프로그램들을 곁들이고, 책을 읽을 수 있겠다 싶은 시간에는 오감을 흥분시켜 주는 진한 커피와 짙은 핑크색의 달콤마카롱을 더하며 라고 부추긴다.


지긋지긋했다. 육아가 숭고하다지만 살림이 집안을 살린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긋지긋했다.

책 한권을 읽고 나서 실천이랍시고 '기획'이네 '디자인'이네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는데, 묘하게도 뽀록 생기가 돋는다.  그리하여 요즘엔 빛 바랜 일상에 광을 내는 재미로 산다. 매일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잔치를 벌인다.



"기획은 기획자만 하는 게 아니다.
식당을 고르는 일, 메뉴를 선택하는 일,
퇴근 후 만날 친구를 정하는 일,
영화를 고르는 것부터 주말 일과를 정하는 일, 모두가 기획이고, 우리는 매일 기획을 한다.
 
'기획자의 습관_최장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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