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 없는 가격의 아이크림을 제법 듬뿍 짜서 눈가와 콧등에 얹고 입주변까지 휘릭 한 번을 훑는다.
선크림은 피부보호를 위한 기본이고
비비크림과 옅은 빛깔의 립밤은
나 자신을 향한 나름의 존중의식이다.
예뻐 뭐하냐며 방치하고 살지 않겠다는.
정성을 담아 신성한 의식을 치른다.
집중하여 휘리릭.2분이면 충분하다.
대충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살림한다. 육아한다. 그것 뿐이다.
그러나 뭐 대단한 프로젝트라도 진행하듯
다부진 자세로 책상에 앉는다.
'아지트'라 불러주는 작고 기다란 이 책상 위에서 나는 삶을 다룬다.
하루를 '기획'씩이나 하고 '디자인'씩이나 하며 시작한다. 첫째 아이의 등하원 시간은 고정이고 둘째 아이의 낮잠 시간도 비교적 일정하다. 홀로 쓸 수 있는 시간과 아이의 칭얼거림을 병행해야 하는 시간을 구분하다.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할 일들의 밸런스를 고려하고 적당한 시간대에 배치한다. 비장하고 진지하다. 쓱 훑어보며 상투적인 일정들을 색다르게 '디자인'해 본다. 지루한 설거지 시간에는 스치며 가볍게 볼 수 있는 tv 프로그램들을 곁들이고, 책을 읽을 수 있겠다 싶은 시간에는 오감을 흥분시켜 주는 진한 커피와 짙은 핑크색의 달콤한 마카롱을 더하며 설레라고 부추긴다.
지긋지긋했다. 육아가 숭고하다지만 살림이 집안을 살린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긋지긋했다.
책 한권을 읽고 나서 실천이랍시고 '기획'이네 '디자인'이네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는데, 묘하게도 뽀록 생기가 돋는다. 그리하여 요즘엔 빛 바랜 일상에 광을 내는 재미로 산다. 매일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잔치를 벌인다.
"기획은 기획자만 하는 게 아니다. 식당을 고르는 일, 메뉴를 선택하는 일, 퇴근 후 만날 친구를 정하는 일, 영화를 고르는 것부터 주말 일과를 정하는 일, 모두가 기획이고, 우리는 매일 기획을 한다. '기획자의 습관_최장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