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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Oct 11. 2019

엄마의 문구 홀릭

오늘은 노트 다섯 권과 펜 열 자루를 질렀다



삶이 불안정할 땐

다이어리가 촘촘하고 확실한 게 위안이 된다.


오늘 내가 보낸 하루가 헛헛하게 느껴질 땐

체크리스트 위에 확신있게 그어진 한줄 마크에 위안을 받는다.


살림 중에 육아 중에

산만하게 조금씩 읽어나가는 책들은

그나마 필사로 되새기며 독서를 완성한다. 


갈수록 멀어지는 언어에 대한 감각을 붙들기 위해 낯선 단어에 대해 새로운 영어 표현에 대해 감질나는 공부를 하곤 한다.

그 또한 노트에 기록하여

나는 공부하였다는 생색을 남긴다.


지금 미처 살아내지 못하는 나의 취향과 계획들을

하나하나 기록한다.

담아 놓으면 그것들이 휘릭 날아가 버리지 않고 내가 조금 틈이 생길 거라 기대하는 내년봄까지

날 기다려 줄 것만 같다.


신앙마저 놓칠까 두려운 마음에 기도를 적고


자잘한 쇼핑리스트는 미니멀라이프를 하는데도 비는 날이 없다.


그렇게 나는 메모 홀릭에 빠져


좀처럼 통제할 수 없는 전업주부 육아맘의

삶을 장악한다.

혹은 장악했다는 착각을 누린다.


그러니 나는 노트를 사고 펜을 사며 즐겁다.

명품도 아닌데 뭘 죄책감을 갖느냐며

나를 부추겼다.

미니멀라이프를 꿈꾸고 열심히 실천하는 엄마는 열자루의 펜을 쟁여놓고 마음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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