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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08. 2021

발렌타인 맞이, 코코넛크림 초코볼

고소한 코코넛크림이 들어있는 바운티 바를 무설탕으로 집에서 재현하자!

옛날 옛적에, 거의 30년 전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나는 무작정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가정 형편상 불가한 일이었고, 나도 나이가 먹을 만큼 먹었기 때문에 그저 시집이나(!) 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렇게 주저앉고 싶지는 않았다. 과외도 하고, 학원강사도 하고, 고등학교 시간 강사도 하면서 모이지 않는 돈을 모아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비행기표를 사고 나니 달랑 200만 원이 손에 남았다.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하셨지만, 나는 지금 여기서 포기한다면 평생의 한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서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지만,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고 후회하는 쪽으로 선택을 했고, 다행히 파리 제13대학에서 제일 먼저 합격 소식을 들었다. 학교는 가서 바꿀 수 있을 테고, 일단 이것으로 비자를 받을 수 있으니 준비는 척척 이루어졌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부모님께는 손 절대 벌리지 않을 테니 가는 것을 허락만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조선시대 집안 같은 분위기였던 우리 집에서 아버지는 정말로 침통해하셨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유학은 실패로 끝났다. 처음 가서 원하던 파리 7 대학의 담당교수를 찾아가, 내 논문을 보여주며 입학허가를 받을 때만 해도 나는 나름의 핑크빛 꿈을 꾸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지내는 지역의 시스템이 너무 느려서 일 년 가까이 체류증이 나오지 않았고, 나는 패스트푸드 집 아르바이트조차 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가져간 돈은 집을 구하니 바닥이 났고, 가난은 바짝 내 현실로 다가왔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Madame!" 이라며 손을 내미는 걸인들을 보면서, "아, 나도 저 옆에 앉고 싶다!" 그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면 십원 단위를 비교하며 벌벌 떨었다. 

image by Mars

하지만 가난 속에서도 좋은 사람들도 만났고, 운 나빴던 일들과 운 좋았던 일들이 교차되었는데, 그중, 한 친구가 내게 건네준 초코바 바운티(Bounty Bar)는 정말 맛있고 신기한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들어와 있는 초코바는 아마도 한 가지였던 것 같다. 안에 땅콩이 들은 스니커즈였거나 그것의 아류 같은 것이었겠지. 


이 이름도 생소한 초코바는 한 입 깨물었더니 그 안에서 달콤한 코코넛이 기분 좋게 씹히는 꿈같은 맛이었다. 포장에 있는 코코넛 야자수만큼이나 이국적인 맛에 나는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물론 내 형편에 이것을 스스로 사 먹는 것은 엄청난 사치였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이 맛이 생각이 나서 사 먹으려 찾아봤지만, 당시에는 구할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또 세월이 지나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그렇게 살던 어느 날, 미국에 사는 동생네가 한국에 놀러 오면서, 올케가 "형님 뭐 사다 드릴까요?" 하는데 문득 그 바운티 바가 다시 생각났다. 그래서, "그냥 바운티 하나만 사다 줘. 여기서는 구할 수가 없더라."라고 말했는데... 귀국한 올케의 가방에서 나온 것은 바운티 바가 아니라 바운티 키친타월이었다! 


살림하는 올케의 입장에서 바운티는 집에서 늘 이용하는 물건이었다. 다만, 내가 왜 굳이 미국에서까지 이런 키친타월을 사다 달라고 하는지 영문을 몰라서 의아하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둘이서 이 휴지 붙들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간식이다. 한국의 슈퍼마켓에는 세계의 모든 간식이 다 있으니까. 그리고 이곳 캐나다에서도 심지어 달러 스토어에서까지 쉽게 살 수 있는 품목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이런 달다구리 간식을 사지 않는다. 설탕을 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이 맛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물론 사 먹으면 만족스럽지 않다. 이미 내 입맛이 변했으니 골치가 아프게 달 것이다.


그러다가, 안 그래도 코코넛 요구르트도 만들고 있고, 이래저래 더욱 코코넛 종류와 친하게 지내면서 문득 이것을 무설탕으로 만들어 먹으면 너무나 맛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의 재료를 점검하고 실천에 돌입하게 되었다. 





아, 여기까지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제 코코넛크림 초코바를 만들어보자.


일단, 안에는 코코넛이 들어가는데, 대부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코코넛채(shredded coconut)이다. 곱게 갈린 것부터 넙적하게 썰은 것들이 다양하게 팔리고 있는데, 과육이 너무 크면 식감이 떨어지므로 최대한 작은 입자가 좋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무가당이며, 이왕이면 유기농이 좋을 것이다. 


집에는 예전에 코코넛 밀크 만들어보겠다고 사놓은 유기농 코코넛채가 있었다. 일부러 가는 것을 굳이 살 필요 없이 이걸로 해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이것을 손으로 잘게 썰을 수는 없고, 이것을 이대로 기계로 갈아보려 하면, 수분과 유분 때문에 잘 부서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일단 수분을 좀 날려주기로 했다.



마르면 양이 줄어들 테니 수북하게 두 컵을 준비해서, 오븐 팬에 넓게 펴고, 120°C (250°F)으로 예열해서 말리거나 또는 오븐에 말리기 기능이 있으면 그걸 이용해도 좋다. 한 5분 정도 말려주고 꺼내서 수분을 날려준 후, 다시 넣어서 5분 정도 해주면 적당하다. 꺼내서 식도록 둔다. 이때에도 수분이 추가로 날아간다. 손으로 만져서 잘 부스러질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좋다. 색이 약간 노랗게 되는 것은 괜찮은데, 완전히 변하면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으므로, 굽는다기 보다는 말린다는 느낌으로 다뤄주는 것이 좋다.



이렇게 말린 코코넛채는 푸드 프로세서로 곱게 갈아준다. 물론 완전히 파우더처럼 갈아주라는 얘기는 아니다. 어차피 그렇게 갈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씹을 때 질기다는 생각이 들면 즐거움이 떨어지므로, 편하게 씹힐 수 있을 만큼 갈아주면 된다. 가루처럼 얌전한 코코넛채를 구입한 경우는 여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된다. 



다음 단계는 이 가루를 뭉치게 하고 단맛을 얹어주는 것이다. 내 개인 취향으로는 코코넛이 이미 달기 때문에 단맛 내는 재료를 추가로 넣을 필요가 없지만, 밸런타인 기념으로 먹는다면 그건 다른 얘기가 될 것이다. 남편을 위해서 나는 자일리톨을 약간 넣기로 했다. 윤활성분으로는 코코넛 오일이 들어가고, 반죽을 뭉치게 하기 위해서 캔에 들은 코코넛 크림을 넣어줬다. 



이때,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캔을 흔들어서 넣어줬었는데, 그러자 너무 묽게 되어서 난처해지고 말았다. 어떨 수 없이 집에 가지고 있던 코코넛 가루를 넣어서 농도를 맞추기는 했는데, 그 다음번에는 캔을 조심스럽게 따서, 가라앉아있는 코코넛 워터는 그냥 두고, 위에 떠있는 크림 부분만 떠서 넣었더니 훨씬 나았다.



반죽이 완성되면 형태를 잡아야 한다. 처음에는 좀 더 반듯한 진짜 바운티 바처럼 해보려고 틀에 굳이 넣어봤다. 이렇게 랩을 미리 깔아주는 것이 나중에 떼어내기 쉽다. 반죽을 넣어서 꾹꾹 눌러준다. 틀을 굳이 꽉 채울 필요는 없다. 자신이 원하는 두께가 되도록 눌러주고, 틀이 남으면 랩으로 한쪽을 막아서 세워주면 된다. 그리고 잠깐만 냉동한다. 한 10분 정도만 넣어서 안정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오래 넣어두면 진짜로 냉동되고, 그때는 썰면 깨지기 쉽다. 



그런데 썰기는 내 마음같이 예쁘게 되지 않았다. 가지런히 얌전히 나와주기를 바랐는데, 누르는 힘이 약했는지 상당 부분 여전히 부서졌다. 그래서 그냥 마음을 비우고, 잘 된 것들은 손으로 다독여서 작은 네모를 만들고, 뭉개진 부분들을 그냥 공처럼 뭉쳤다. 나중에 보니 그것도 괜찮더라. 괜스레 고생하며 누를 필요 없이 처음부터 손으로 동글동글 빚어도 좋다. 


이제 코팅용 초콜릿을 중탕으로 녹여준다. 흔히 중탕에 대해서 잘 못 알고 있는데, 아래 냄비에서 끓는 물이 위 중탕 볼에 닿으면 안 된다. 그러면 중탕하는 보람이 없다. 뜨거워진 수증기로 그릇을 데운다는 개념으로 해야 한다. 빨리 잘 녹게 하기 위해서는 초콜릿을 잘게 썰어주자. 그리고 초콜릿이 완전히 녹기 전에 냄비에서 내린다. 나머지 열로도 충분히 잘 녹는다. 



나는 100% 베이킹용 초콜릿을 사용했고, 맛을 좀 더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카카오 버터를 좀 섞어줬다. 하지만 없다면 그냥 초콜릿만 가지고 해도 된다. 이미 안에 들어있는 코코넛 부분이 달콤해서 겉의 초콜릿은 굳이 달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시중의 85% 정도의 초콜릿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100% 초콜릿에 자일리톨을 조금 추가해줘도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초콜릿을 녹이면서 태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분리되어서 매끄러운 초콜릿이 되지 못한다. 안 예쁘다는 결정적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코코넛 향을 더욱 풍부하게 해 준다고 여기에 코코넛 오일을 섞고 싶은 충동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꾹 참아야 한다. 코코넛 오일은 실온에서 녹기 때문에, 겉에 둘러주는 초콜릿에 섞으면 손에 닿는 순간 녹는다. 그러니 그냥 초콜릿으로 만족하자.


자 이제, 우리 대한의 민족은 만능 도구인 젓가락을 이용해서 이 코코넛 볼을 초콜릿에 굴려주고, 유산지에 얹어주면 된다. (처음에는 식힘망에서 했는데, 유산지가 더 깨끗하게 떨어진다) 그리고 실온에서 굳힌다. 빨리 하려고 냉장고에 넣고 싶을 수도 있지만, 그러면 결정입자가 크게 굳어지게 되어서 실온에서 빨리 녹는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굳히도록 하자.



다 만들고 나서 보니, 작게 만들길 잘한 것 같다. 딱 한 입에 들어가는 것이 먹기에도 부담 없고, 이런 달다구리는 원래 딱 한 입 먹어야 제맛이 아니겠는가! 큰 거 한 개를 먹는 것보다 작은 거 두 개를 먹는 것이 더 푸짐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반 잘라서 안쪽을 보니 딱 적당한 감촉의 흰색 코코넛이 들어있었고, 달기도 딱 좋았다. 모양이 예쁘게 된 것들을 모아서 네모와 동그라미를 번갈아 상자에 담으니 그것도 모양이 그럴듯했다. 선물은 언제나 포장하기 나름인 것 같다. 이 정도만 밸런타인 선물로도 손색이 없지 않겠나 싶다.



이렇게 해서 집에서도 쉽게 바운티 바를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프랑스에서 한 개 가지고 아껴먹던 시절의 아련함은 그만 느껴도 될 것 같다!





무설탕 코코넛크림 초코바

2.5cm 작은 볼, 24개가량


속재료 :

무가당 코코넛 채 2컵 (수북하게)

코코넛 크림 (캔에 들은 것) 반 컵 - 흔들지 말고, 크림 부분만 건져낼 것

자일리톨 1/4컵

코코넛 오일 1/3컵


코팅용 재료:

다크 초콜릿 150g 잘게 썰어서 준비.

카카오 버터 30g  (없으면 초콜릿으로 대체)


만들기:

1. 오븐을 말리기 기능으로 예열한다 120°C (250°F)


2. 오븐 팬에 코코넛 채를 펴고 5분 말리고, 열어서 한 번 더 뒤적여서 다시 5분 말린다.


3. 코코넛 채를 먼저 푸드프로세서에 넣고 잠깐씩 돌려서 입자가 고와지도록 작동시켜준다.

   (구매한 코코넛채가 입자가 아주 고운 것이라면 여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생략해도 된다)


4. 나머지 속재료를 다 넣고 잘 섞이도록 푸드 프로세서를 다시 작동시켜준다. 

   잠깐 돌리고 섞어주는 방식으로 한다.


5. 9인치 사각 팬에 유산지를 깔고 같은 두께가 되도록 반죽을 단단히 눌러준다.


6. 10분 정도 냉동한다. 너무 오래 냉동하면 잘리지 않으므로 유의할 것.


7. 그동안 코팅용 초콜릿을 준비한다. 중탕냄비에서 타지 않게 조심해서 살살 녹여준다.


8. 냉동실에서 나온 것을 도마에 옮기고 날카로운 칼로 잘라준다. (칼을 살짝 달궈서 사용하면 유용)


9. 속재료를 코팅 초콜릿에 담갔다가 꺼내서 실온에서 말려준다.

   (다시 냉동하면 꺼냈을 때 손 닿자마자 녹으니, 되도록이면 실온에서 서서히 식혀주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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