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랭 쿠키를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눈처럼 입안에서 살살 녹는 감촉이 너무나 좋았지만, 설탕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데다가 제대로 하면 너무 심하게 달아서 아예 잊고 산 지 오래였다.
그러다가 최근 남편이 갑상선 암 수술 이후, 동위원소 치료를 위해서 저요오드식을 하면서, 먹을 게 너무 없어지고 말았다. 주식도 그렇지만 간식은 더더욱 그랬다.
저요오드식이는 그야말로, 요오드 들어간 음식을 최대한 제한하는 식사인데, 천일염을 비롯해서 모든 바다에서 나는 것들은 다 먹으면 안 된다. 그리고, 모든 유제품, 감자 껍질, 간장, 달걀노른자 등등 생각지도 못한 복병들을 만나면서, 먹는 즐거움이 송두리째 뺏겨버리게 된다.
매일 아침 요거트에 몇 가지를 넣어서 갈아먹던 남편의 아침식사가 불가해져서, 나름 호박죽도 끓여보고, 호두 밀크도 만들어보고... 그러고 있기는 한데, 맨날 아쉽다.
나는 보통 아침에 버터랑 코코넛 오일을 넣어서 방탄 음료를 만들어 마시는데, 달걀을 하나 통으로 넣기도 한다. 그런데 문득 아침을 준비하다가, 노른자만 넣고 흰자를 빼서 이걸로 머랭 쿠키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노른자만 못 먹지, 흰자는 먹어도 되니 말이다.
머랭 쿠키는 그리 만들기 어렵지 않다. 다만 좀 인내심이 들어가야 하고, 더불어 설탕을 들이붓는다. 머랭 쿠키가 서 있는 힘은 전부 설탕에서 온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하지만 나는 설탕을 끊고 더 이상 먹지 않는데, 이 역할을 과연 다른 대체 감미료가 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가 생각해보니 전에 어디선가 에리스리톨로 마카롱도 만든다고 했던 것을 본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머랭쿠키는 그보다 쉬우니 충분히 가능하겠다 싶었다. 나는 일반적으로 감미료를 되도록이면 사용하지 않으려 하고, 부득이 사용하면 주로 자일리톨을 쓰는 편이지만, 이 경우에는 에리스리톨이 더 나을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에리스리톨은 가열하면 녹았던 것이 다시 크리스탈화 되기 때문에 머랭을 지탱해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약간 화한 맛이 나긴 하겠지만 비슷한 질감을 내기에는 에리스리톨 만한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일반 설탕같은 크리스털 형태는 머랭에서 잘 안 녹을 수 있으므로 파우더로 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집에 파우더형 에리스리톨이 남은 것이 있어서 쉽게 도전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쩐지 불안하여, 꼭 넣지 않아도 되겠지만 타피오카 전분을 추가해서 레시피를 만들었다. 머랭을 만들 때 전분을 넣는 일은 흔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옥수수 전분을 사용하지만, 나는 탄수화물이 낮은 타피오카 전분을 애용한다. 전에 레몬 머랭 파이를 만들 때에는 미리 전분물을 만들어서 익혀서 사용했었는데 이번엔 좀 간단하게 하고 싶어서 흰자 거품을 올릴 때 그냥 함께 넣었다. 그래서 전 과정이 다 아주 쉬웠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남편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사실 자기는 머랭쿠키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건 진짜 맛있다고 했다. 시판 머랭쿠키는, 아마 오랜 보관을 위해서인 듯한데 좀 딱딱하다. 그리고 남편은 그 질감을 싫어한다. 그런데 얘는 정말 입 안에서 꿈처럼 녹는다. 겉면은 살짝 바삭한 거 같은데 그렇다고 딱딱하지 않고, 깨물어 입안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린다. 정말 딴생각하면서 집어먹으면 앉은자리에서 한 판 가볍게 끝낼 그런 맛이었다.
머랭 만들기는 전동 거품기만 있으면 어렵지 않지만, 몇 가지 기본 규칙이 있다.
우선, 달걀노른자가 절대 섞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머랭은 기본적으로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 포인트인데, 노른자가 들어가면 지방이 들어가서 무거워진다. 즉, 거품이 오르지 않는다. 달걀을 반으로 깨서 껍질을 이용해 노른자를 걸러내는 방식은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고, 나도 즐겨 쓰는 방법이지만, 아차 하면 껍질에 노른자가 찔려 터지면서 전체 흰자를 다 망치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전용 도구도 나와서 판매된다.
하지만 내가 제일 믿는 방법은 사실 맨손이다. 손가락 사이로 흰자를 흘려내려가게 하면 대체로 안전하다. 단, 손에 기름기가 없어야 하며, 손이 거칠다면 오히려 터지기 쉽다. (그리고 이 방법을 사용할 때는 사진을 못 찍는다!)
아무튼 이 기름기가 관건이므로, 흰자 거품을 올릴 때 사용하는 볼은 스테인리스나 유리를 추천한다. 플라스틱은 씻는다 해도 사이사이에 낀 기름기를 깨끗이 제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 번째 팁은, 실온의 흰자가 거품이 더 잘 오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업을 시작하려면 먼저 흰자를 준비해서 스텐볼에 담아놓고 다른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고 나서 다른 재료들을 계량하고, 팬에 유산지도 깔아놓고, 짜는 주머니에 깍지도 끼워놓으면 좋다.
머랭 만들기 재료에는 흔히 타르타르 크림(cream of tartar)이 들어가는데, 구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레몬즙이다. 산성 성분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에 식초를 넣어도 되지만, 아무래도 풍미까지 생각한다면 역시 레몬즙이 정답이다.
사실 옛날에는 손으로 일일이 거품을 올려야 해서 머랭 올리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지만, 요새야 전동 거품기가 있으니 사실 이게 큰 일은 아니다. 전동 거품기 없을 때, 딸이랑 둘이서 번갈아가며 손으로 거품을 올렸던 기억이 있다. 팔 아프지만 그래도 재미난 추억이었다.
거품을 올리기 시작할 때에는 느린 속도로 시작한다. 처음부터 세게 올리지 말고, 일단 달걀이 거품에 적응하게 둔다. 전체적으로 거품이 촘촘해지기 시작하면, 그때에 부재료들을 넣고 마저 거품을 끝까지 올리면 좋다.
설탕을 이용해서 머랭을 만들 때에는 엄청난 양의 설탕을 여러 번에 나눠서 넣음으로써 거품이 놀라서 죽지 않도록 해준다. 그런 경우에 정말 웬만하면 거품이 망가지지 않는다. 오버 휩 되지 않으므로 안심하고 돌려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흰자 머랭을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설탕이 넉넉하지 않으면 금방 달걀이 과도하게 휘핑 되어서 망가지기 쉽다.
이번에도 어찌나 조심스럽던지... 사실, 망쳐서 오버 휩 되면 달걀흰자를 하나 더 넣어서 손으로 저어주면 복구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비율은 이미 망가졌다고 볼 것이다. 만일 자신이 없다면, 분량의 흰자를 한꺼번에 넣지 말고, 거품 빳빳하게 세운 후에 나머지 흰자를 넣어서 추이를 보는 것도 방법이다.
더 거품을 올리고 싶었지만, 지난번에 레몬 머랭 파이 할 때 오버되었던 아픈 추억 때문에 살짝 거품을 덜 올렸더니 예쁜 모양의 머랭으로 짤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나름 톱니 모양이 있는 틀로 짰지만, 그냥 뭉개지고 말았다.
그래도 최대한 예쁘게 짜서 오븐에 넣었다. 굽는 시간을 고민을 했는데, 일단 230°F(110°C)로 예열한 오븐에 넣어서 15분 정도 구워주고, 그다음에 온도를 200°F(95°C)로 낮춰서 다시 40분을 구웠다. 굽는다기 보다는 말린다고 생각하는 것에 더 가깝다.
안을 들여다보니 꼭지가 약간 노릇해졌다. 오리지널 머랭 쿠키는 사실 흰색을 유지해야 한다. 구름처럼 하얗게! 그러나 얘는 백설탕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포기했다. 질감만 좋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들여다봤다.
마음 같아서는 후딱 꺼내서 맛을 보고 싶지만, 참아야 하느니라... 불은 껐지만, 오븐을 열지도 않은 채 1시간을 그대로 두었다. 그러고 나서는 살짝 열어서 나무주걱을 문틈에 끼워놓았다. 그렇게 하면 오븐 안에 남은 수증기가 빠지면서 안의 과자가 눅눅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도합 2시간을 꾹 참고 나서 꺼내서 한 입 깨물었더니...!
완전히 입에서 살살 녹았다! 이때의 기쁨이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 말이다. ㅎㅎ 설탕을 안 쓰려다 보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다. 단 맛은 내가 즐기지 않으니 상관없지만, 원하는 질감이나 부풀기에 미치지 못해서 아쉬운 때가 은근히 많다.
그러나 오늘은 성공! 여러분도 성공하시길!
50~60개가량
재료:
달걀흰자, 4개, 실온 준비
소금 1/8 작은술
에리스리톨 파우더 1/3컵 (Swerve Confectioners 사용)
타피오카 전분 1큰술 (옵션 - 저탄고지 하는 분들은 생략)
바닐라 1/2 작은술
레몬즙 1/2 작은술
1. 쿠키 시트 2개에 유산지 깔아 두고, 파이핑을 원하면 미리 깍지 끼워 준비한다.
2. 완전히 깨끗한 유리나 스테인리스 볼에 달걀흰자를 넣고, 전동 거품기의 중간 속도로 저어준다.
3. 어느 정도 거품이 올라 뽀얗게 되면, 소금 넣고 잠깐 돌려주고, 나머지 재료도 차례로 넣어서 거품을 올린다.
4. 뽀얀 단계를 지나, 거품기 자국이 생기기 시작하면, 거품기를 강으로 올려서 20초 정도 돌린다.
5. 머랭의 힘을 체크하고, 빳빳하게 끝이 서면 완성. 과하게 거품 올리려고 욕심부리지 말 것.
6. 오븐을 230°F(110°C)로 예열하고, 머랭을 짜준다. 숟가락으로 하나씩 떠 올려도 된다.
7. 15분 구워주고, 온도를 200°F(95°C)로 낮춰서 다시 40분 굽는다.
8. 끝이 약간 갈색이 되는 듯하면 불을 끄고, 오븐 안에서 완전히 말린다. 2시간 이상.
머랭의 크기에 따라서 시간이 달라지므로, 잘 관찰하여 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