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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26. 2020

어느 더웠던 날...

에어비앤비에 묵는 듯한 착각을 만들기로.

한 한 달쯤 되었을까?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확실히는 모르겠다. 식후에 어둑해진 다음, 우리가 새로 만든 앞마당 정원을 나가서 구경하면서였을 것이다. 어느 날, 화단에 태양전지 램프를 나란히 꽂아놓고, 밤에 그게 잘 켜지는지 확인해 보려고 나가서는, 바라보면서 흐뭇해하다가, 갑자기 "근처를 한 바퀴 걸을까?" 하면서 시작된 것 같다. 그렇게 하루 걷고 나니 다음 날 또 걷고 싶어 졌고, 그러다 보니 저녁식사 후에 어둡고 선선한 거리를 걷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밴쿠버는 일 년에 딱 두 달 날씨가 좋다. 여름에만 화창하고 일 년 내내 늘 비가 온다. 레인쿠버라는 말이 생겼을 만큼 비는 일상이다. 여름을 좋아하는 내게, 계속 으슬으슬 추운 날씨는 정말 힘든데,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오고 추웠다. 그게 내 우울이 깊어지게 한몫을 하기도 했다.


좀 빠꼼 따뜻해지는 듯하다가 다시 서늘해지고, 다시 비가 오고 반복을 하였는데, 요 며칠 진짜로 더웠다. 33도를 찍었으니, 이 지역으로서는 획기적인 날씨였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오면서 이층으로 바로 올라가지 않고 남편의 서재로 들어섰다. 우리 집은 원래 이층에 부엌도 있고, 거실도 있고, 침실도 있고, 모든 생활이 이층에서 이루어진다. 아래층은 해가 들지 않아서 지하실처럼 서늘하다. 그래서 반지하처럼 사용된다. 


서늘한 남편의 서재, 소파에 앉으니 그냥 눌러앉고 싶어 졌다. 장난 삼아서, "우리 오늘 여기서 잘까?" 했더니 남편이 웃는다. "왜?" 


그냥... 에어비앤비에 묵는 것 같은 기분을 내면 어떨까 해서...



그렇다. 작년 이맘때에는 시칠리아의 바다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코비드 19 때문에 여행도 못 가고 매일 집콕만 하고 있으니 그냥 잠시 이런 기분을 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한국에 살 때에도, 어느 더운 여름날 내 퀼트 작업실에서 잠을 잤던 적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창문에서 시원한 한강 바람이 불어와서, 창 앞에 걸어두었던 모시발이 천정까지 날려서, 그걸 보며 누워서 그 상황을 만끽했던 기억이 난다. 항상 역광이어서 제대로 된 사진을 못 찍었던지라, 옆에 있던 핸드폰을 들어서, 누운 채 찍은 사진은 퀼트를 접은 내가 아직도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이다.






한 집에서 방만 바꿔놓고 에어비앤비라고 우긴다는 것이 사실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뭐 어떤가? 우리 남편의 장점은, 이럴 때 핀잔을 주지 않고 분위기를 맞춰주는 데에 있다. 묵묵히 손님용 침대커버와 베개 등등의 침구를 챙겨 와서는 소파를 당겨서 침대처럼 만들고 그 위에 커버를 씌우기 시작했다.



남편이 아이 셋을 키워 낸 이 집에는 빈방이 여러 개 있다. 아이들이 각각 방을 하나씩 나눠서 사용했었고, 지금 이 방은 남편의 서재이다. 그래서 손님들이 오면 여러 개의 방 중에서 적당한 것을 선택해서 내어주는데, 꽤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작년 여름 결혼식 할 때에는, 친정식구들과 시댁 식구들이 와서 다 같이 우리 집에 묵었을 정도였으니까.


이 방은 남동생 내외가 사용했었다. 당기면 침대가 되는 푸톤 소파를 당겨서 저렇게 침대를 만들면 아쉬운 대로 잠을 잘 수 있는 에어비앤비 방처럼 된다. 


후끈후끈한 이층 침실과 달리, 이곳은 무척이나 선선했다. 일 년에 딱 며칠 돕기 때문에 집에 에어컨은 당연히 없지만, 이 방에서는 선풍기 조차 필요 없다. 그래서 이렇게 여행 온 듯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비록, 침대가 짧아서 롱다리 남편은 베개를 잔뜩 쌓아서 위쪽으로 바짝 붙어서 자야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단 두 달뿐인 여름은 또 가고 있구나...



 덧붙임: 작년에 쓰다가 만 유럽 여행기는 언제 다시 쓰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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