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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26. 2020

이웃과 소소히 함께 하는 생활

나누고 사고 팔고...

요새 가드닝과 농사를 지으면서, 아무래도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좋으니, 페이스북 안에 있는 가드닝 관련 동호회를 가입했다. 지역 동호회여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 위주의 모임인데, 자기네 수확한 것 자랑하는 글도 올리고, 벌레가 나타나면 이게 무슨 벌레인지, 어떻게 퇴치하는지 물어보기도 하며, 이름 모를 풀이 자라면 그것도 무엇인지 물어본다.


어디서든 그렇듯 오지랖 넓은 사람들과 지식이 넘쳐나는 사람들이 섞여있게 마련이어서, 질문이 올라오면 늘 답을 얻는 편이다. 그런 곳에서는 눈팅만 잘해도 지식이 넓어지는 기분이 든다. 사실 요새 적극적으로 페이스북 활동을 하지 않는 중이어서 대략 눈으로만 휘리릭 둘러보는데, 특히나 시간이 없어지니 가드닝 쪽만 빠르게 훑어보는 날도 많다. 


엊그제는 어떤 이웃이, 자기 집에 아시아 배가 많이 열렸는데,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누구든지 와서 따 가라는 글을 올렸다. 아시아 배라니... 나와 남편은 한국배를 떠올렸고, 그 귀한 것을 나눠준다니 얼른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 손으로 가기는 미안하니, 최근에 수확한 꽃씨를 챙겼다. 꽃씨에 관심이 많은 모임이므로 관심 있느냐 물었더니 "당근이지!"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주소를 묻고 점심 먹자마자 달려갔는데,... 도착해서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이 나무였다. 



친절한 집주인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따 가지고 가서 손 닿는 곳에는 없다며 사다리까지 미리 걸쳐놓았고, 담아가지고 갈 수 있는 봉지도 나무에 걸어놓았다. 마당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며 가족끼리 날씨를 즐기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그러나, 이 배는 우리가 아는 그 한국배가 아니었다. 귤보다도 더 작은 사이즈의 열매들이 가득 달려있는 나무는 내가 한국에서 봐왔던 그 배나무도 물론 아니었다. 한 입 베어 물어보니, 약간의 배 질감이 나긴 했다. 


이걸로 뭐 하지?
한 손에 세 개도 얹을 수 있는 배


첫 손주라며 아기를 안고 와서 자랑하는 주인 민망하지 않게 우리는 일단 열매를 즐겁게 땄다. 남편이 워낙 키가 크니 사다리에 올라가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딸 수 있었다. 봉지 하나를 채워서 따고는 고맙다며 발길을 돌렸다. 집에 가져와서 큰 접시 놓고 담으니 이 많은 게 다 올라앉는다.


비록 우리가 원하던 그런 배는 아니었지만, 나무 한 가득 있는 과실을 나눔 하는 마음은 참으로 정겹지 않은가! 그래서 이렇게 담아서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이걸로 즙을 짜서 고기를 잴 때 쓸 수 있겠고, 아니면 식초라도 만들어볼까나?

 


배 아래로 보이는 테이블은, 온라인 중고시장에 나온 물건인데, 엄청나게 지저분하고 녹슨 것을 8천 원 주고 사 와서 열심히 닦았더니, 어느새 평생 우리 집에 있었던 것 같은 물건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요새는 늘 여기서 식사를 한다. 작아서 그릇을 옹기종기 놓기 바쁘지만, 그 덕에 찬이 많지 않아도 그럴듯해 보인다. 


집에서 안 쓰는 물건은 싸게 팔고, 또 집 앞에 내놓으면 누군가 집어가기도 하고, 또 필요하면 저렴한 것을 구하기도 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서로 가르쳐주고, 도와주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삶에 감사한다.


코비드 19가 갈라놓아도 사람들은 또 이렇게 어우러져 살아갈 궁리는 하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듯싶다. 하긴 사람들뿐이랴.  담장 없는 우리 마당에는 족제비도, 스컹크도, 두더지도, 곰도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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