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11. 2020

뒷마당에 찾아온 테디베어

반갑지만 반갑지 않은 손님

우리가 사는 광역 밴쿠버 지역에는 곰이 다반사로 출몰한다. 산을 끼고 있는 지형 때문에, 가정집 뒷마당에 수북하게 응가를 해 놓고 가는 곰의 자취는 제법 흔한 일 중 하나이다. (이런 사진은 예쁘지 않으므로 생략) 밤 새 와서 맛있게 익은 과일을 싹쓸이해갔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쓰레기통을 잘 뒤지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쓰레기통에 모두 잠금장치가 달려있다.


주로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다니기 때문에, 그런 시간에는 외출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한적한 산길을 가야 한다면 무리를 지어서 다니기를 권고한다. 등산을 갈 때면 배낭에 딸랑딸랑 소리 나는 종을 매달고 다니면서 인기척을 내서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경고를 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곰을 만났을 때의 수칙을 배운다.


귀여워 보여도 맹수이므로 다가가서 같이 셀카를 찍겠다는 생각은 물론 금물이다. 옛날 우화처럼 죽은 척해서도 안 된다. 곰은 죽은 동물을 먹기 때문이다. 냅따 뛰어서 도망가는 것도 위험하다. 곰이 우리보다 훨씬 빠르다. 대부분, 팔을 높게 들어 몸을 최대한 크게 보이게 하면서, 뒷걸음질로 살살 멀어지라는 것이 권고사항이다.


곰은 상당히 영민하기 때문에, 문을 잠그지 않으면 열고 들어오기도 한다. 집안에 이상한 냄새가 나서 가봤더니 곰이 와서 찬장을 다 뒤지고 맛동산을 까서 먹었다는 일화도 있었다. 산으로 들어가 고사리 캤다가 변을 당했다는 기사도 가끔 나오고, 마당에서 잡초 뽑다가 곰이 덮쳤다는 소식은 정말 끔찍했다.




학교에도 등장하고, 큰길에도 종종 나오는 곰은 물론 우리 집도 여러 번 다녀갔다.


한 번은 새벽 3시에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창밖을 내다보니, 어디서 가져왔는지 쓰레기 봉지를 가지고 옆집 마당에서 씨름을 하고 있었다. 또 얼마 전에는, 베란다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엄마곰이 아기곰 두 마리를 데리고, 우리 집 뒷산을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해가 져 어스름해서 사진은 못 찍었지만, 우리가 앉아있는 곳에서 10미터도 안 떨어진 곳이었다.


남편의 예전 일화는, 베란다에 있는데, 아기곰이 우리 집 뒷마당 체리나무를 타고 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뒷마당 담장 위에서 엄마곰이 유유히 걷고 있었다고! 곰에게 담장 따위는 장애물이 아니다. 아기 곰이 있으면 반드시 근처에 엄마 곰이 있고, 이 엄마곰은 상당히 위험하다. 자식 앞에 물불을 안 가리기 때문이다.


밴쿠버 지역 곰은 흑곰들이다. 회색곰이나 그리즐리 베어 같은 크고 흉폭한 종류는 아니고, 사이즈도 그에 비해 작다. 대부분 사람을 피해 다닌다고 하지만, 큰길에서 어슬렁 거리는 일도 그리 드물지 않다.


요즘 들어 부쩍 곰이 동네에 출몰한다는 소식이 자주 있었다. 지역 커뮤니티에 종종 소식이 올라오고 있어서 안 그래도 마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나는 신경이 쓰이는 중이었다. 마당에서 스컹크도 만난 적 있고, 부엌문 열어놓은 틈으로 들여다보는 족제비와도 눈이 마주친 적이 있고, 다람쥐도 집으로 들어올 뻔하기도 했지만, 정원 손질하다가 곰을 만난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부엌에서 식기세척기를 비우고 있는데, 밖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엊그제 바람이 많이 불어서 나뭇가지들이 좀 부러져 떨어졌었는데, 오늘도 떨어지나? 그러면서 베란다로 나서 내다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뒤돌아서 들어가려는데 다시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확인해보니 우리 집 음식물 처리기 지지대가 창고 뒤편으로 보이면서 움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곰이 틀림없었다. 일단 나는 베란다 위에 있으니 안전하다 생각하고 찬찬히 다시 살펴보았더니 곰이 움직이며 보이기 시작했다. 낑낑 매며 씨름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2살쯤 된 곰의 크기였다.


우리 음식물 처리기는,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서 비료로 만들어주는 도구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방식으로 되어있어서 곰이 열기 쉽지 않지만, 분명히 어딘가를 세게 쳐서 부러뜨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먹을만한 것도 없을 텐데... 에효...


1분이나 넘어서 좀 줄이려고 했더니 안 올라가져서, 그냥 원본으로...


열심히 뭔가 먹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이웃집에게 문자를 넣었다. 뒷산 쪽에 곰이 나타났으니 나오지 말고, 애들 조심시키라고 말이다. 그러자 고맙다는 답장이 오면서, 함께 시끄러운 소리를 내자고 했다. 나는 바비큐 도구들을 이용해서 두드리고, 이웃집에서도 뭔가 시끄러운 소리를 냈더니 놀란 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멀리 가지는 않더라는! 이때 시간이 오후 3시 반쯤이었는데, 이런 백주 대낮에 곰은 너무나 여유로웠다.



우리 정원을 유유히 걷는 곰을 향해 우리는 소리를 시끄럽게 내고, 급기야 이웃집 여인은 돌도 던졌다. 그러나 슬쩍 피할 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를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물이라도 뿌리고 싶었는데, 호스 분무기로는 그리 멀리 나가지 않았고, 너무 꼭 잠가져 있어서 내 힘으로는 열리지가 않았다.


곧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왔고, 호스에 마개를 뽑아 멀리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물이 닿자 얼른 몸을 피했지만, 역시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다.


우리가 최근 지저분한 가지들을 정리한 뒷산으로 가는 길


소리도 내고 난리를 쳐봤지만 별무소용이었다. 한 발짝 더 떨어졌다가 다시 다가왔다가, 미련을 못 버린 듯 아쉬워했다. 이 소동은 대략 20분 정도 소요된 듯했다. 결국은 발길을 옮겨 서서히 사라졌다.



저렇게 돌아갔다가 다시 또 왔다는!


곰이 가버리고 나자 남편이 나가서 음식물처리기를 확인했다. 뚜껑 부분이 부서져 있었다. 일단 대충 얹어놓기는 했는데, 매번 돌려줘야 하는 저 기기를 이제는 돌리면 다 쏟아지게 생겼으니 뭔가 대책이 필요할 듯하다. 예전에 남편이 설치했던 훨씬 큰 음식물처리기는 돌기만 하고 절대 부서지지 않아서 그 이후로 한동안 곰이 안 왔었다는데, 지지대가 부러진 그것을 다시 설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 나는 마당에 나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남편이 귀가한 후에 나가는 걸로... 목에 호루라기 라도 하나 달고 있든지 해야겠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은 좋지만, 곰이 다시 안 왔으면 좋겠다. 자꾸 사람 사는 곳에 오다가 사람을 해치기라도 하면, 사람도 물론 다치지만, 한번 그런 곰은 찾아서 사살하기 때문이다. 사람 맛을 본 곰은 또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살려두면 안 되는데, 서로 마음 아픈 일이다.  그래서 이 손님은 반갑지만, 실상은 반갑지 않은 손님인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