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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Nov 15. 2020

따르릉! 자전거를 샀다

나란히 가을을 달리기 위해서...

남편이 문득 말했다. 요새 자꾸 살이 찌는 거 같으니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사실 이것이 그의 다짐은 아니다. 물론 빈말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도 늘 그러지 않은가, 운동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못하는 현실... 남편은 한때 자전거를 타면서 건강을 관리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랑 결혼한 이후에는 거의 타지 않았다. 물론 거기에는 나의 책임도 있다.


우리가 처음 연애하면서, 같이 자전거를 타면 어떻겠느냐고 남편이 제안을 했다. 나는 그저 재미있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그냥 한 번 시도해볼 만하다는 것이었고, 사실 나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어쩌나 같이 타면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는데, 어느 날 남편은 나를 자전거 상점에 데리고 갔다. 그 방면으로 문외한이던 내게 있어서 자전거 가격은 상당히 비쌌다. 점원이 이것저것 골라주고 추천해주는데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연애 초기였으니 내 의견을 마구 피력하기에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때였지만, 이렇게 가격이 나가는 것을 덜컥 구입해놓고 안 탄다면 참으로 민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남편처럼 키가 큰 사람과 함께 타려면 허약체질은 나 같은 사람은 따라가기도 버거울 것이라 생각도 아니할 수 없었다.


내가 망상 거리는 모습을 보고 그는 당장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상점에서 나와서 웃으면서 물었다. 사실은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은 것이냐고...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나도 한때는 자전거를 좀 탔던 적도 있었고, 딸아이와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가서 같이 자전거를 타자고 약속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타지 않은지 수십 년이 넘었고 나는 그냥 상당히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꼭 그렇게 했어야 했을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어디선가 자전거를 빌려서 타볼 수 있으면 시도해보고, 내가 좋아하면 그때 사자고 의견을 맞추고는 그냥 흐지부지 되었다. 


결혼 후에는 남편이 봄방학 기간에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고 온 일도 몇 번 있긴 했지만, 신혼에 마누라 혼자 두고 그렇게 나가게 되는 일은 사실 좀처럼 없었다. 더구나 그럴 시간도 없었고... 그래도 가끔 지나가는 말로, "자전거를 타야 하는데..." 하고 말하는 것은 남편의 입버릇 같았다.







딸아이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 대학시절, 학교에 신청하면 자전거를 빌릴 수 있었기에 후반부에는 늘 자전거로 장도 보고, 필요한 곳을 돌아다녔다. 작은 도시여서 버스도 한 대 밖에 없었고 그나마 자주 오지 않았기 때문에 자전거가 없었으면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엘에이에 취직해서도 면허를 따지 않았기 때문에 차를 살 수도 없었고, 대부분 걸어서 다니면서 해결하다가 결국은 자전거를 하나 장만했다. 아주 저렴한 것으로 월마트에서 산 자전거를 참으로 잘 활용하면서 8개월여를 타고 다녔다. 



한국에 가서는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으니 자전거 탈 일은 없었고, 한두 번 친구 만나서 여의도에서 탔었다는 정도였는데... 여기 와서 아래층에서 자가 격리하면서 새아빠의 자전거를 늘 보면서 자전거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나 보다.


남편이 자전거 타야겠다는 말이 떨어지자 딸아이가 바짝 붙었다. 나도 자전거 하나 사서 같이 타면 좋겠다고. 그리고 자기가 타다가 두고 가면, 엄마가 새 자전거 샀다는 부담 없이 편하게 가끔 타도 되지 않겠냐고 했다.




남편의 반응은 "아자! 드디어 자전거를 같이 탈 사람이 생겼구나!" 이거였다. 마누라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미루던 것을 딸이 하겠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그래서 당장 중고마켓 뒤졌다. 아이 체형이 맞는 것으로 이리저리 고르다가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적당한 가격에 나온 물건을 보고, 당장 다음 날 사러 나갔다. 흥정도 살짝 해보고 그렇게 건진 자전거는 꽤 쓸만했다. 오는 길에 바로 마켓 들러서 헬맷도 샀다. 헬맷도 중고를 살까 하다가, 그래도 헬맷은 안전을 위해서 쓰는 것이니까 새 거로 사기로...


그리고 다음날 모처럼 화창하길래 시운전을 나가는 부녀. 나는 앞마당 낙엽 보며 이웃집 소닐라와 수다 떠는 사이에 둘은 어느새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왔다.



두 사람 쳐다보는 나는 어찌나 행복한지. 지난 일곱 달 동안 힘들었던 마음들이 녹아내리는구나. 살면서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 그리고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다른 것들은 다 견뎌낼 수 있을 거 같다.


가을은 완전히 깊어져 버렸고, 낙엽은 모두 떨어졌고, 날씨는 추워졌지만, 마음은 그렇게 춥지 않다. 이 코비드 셧다운이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고, 떨어져서 아직도 못 만나는 가족들이 있을 텐데,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겁다. 어서 빨리 이 일이 정리되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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