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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Nov 27. 2020

아, 행복하다!

퍼즐 조각이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 모녀는 퍼즐 맞추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시간 날 때면 퍼즐을 펴놓고 놀기를 좋아했다. 300~500피스 정도는 그냥 눈감고도 순식간에 맞추는 수준이고, 1000피스도 대부분 반나절이면 충분히 끝낸다. 명절 연휴에는 휴식한다면서, 널브러져 앉아서 퍼즐을 맞추곤 하였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자그마치 20년도 더 전에 미국에 잠시 살았을 때, 3000피스짜리 퍼즐을 단돈 1달러 주고 구입해서 한 보름간 맞췄던 적이 있다. 새것이 아니었던 관계로 모자란 조각이 있을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아마 퍼즐 맞추기 기록상 가장 오래 걸렸던 것이 이것일 것이다. 물론 이때 딸아이는 3살쯤 되었기 때문에 퍼즐 맞추기에 결정적 역할은 하지 못했다. 아무튼 그렇게 완성 후 차마 해체하지 못하고, 본드로 뒷면을 붙여서 결국 한국까지 가져와 틀 짜서 벽에 참 오랫동안 걸어두었었다.



그 덕에, 베르사유 궁전의 이 아름다운 정원을 보면서 딸과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다. 내가 유학하던 시절,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 와서 방문했을 때, 자전거를 빌려서 이 베르사유의 넓은 정원을 돌아다녔던 이야기는 특히나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나중에 혼자서 배낭을 멜 수 있을 만큼 크거든, 그때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가서 이곳을 가자고 약속했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계속 벼르다가 2년 전 드디어 아이 로마 교환학생 때 그 꿈을 이룰 뻔했었다. 그러나 시실리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는 파업으로 인해 뜨지 못했고, 우리는 당시 예약해놓았던 에어비앤비까지 모두 날리는 쓰라린 경험을 하였다. 그래서 그 약속은 아직까지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더 늙어서 배낭을 메지 못하게 되기 전에 이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





어느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퍼즐을 여러 개 구입하여, 연말 연휴 동안 신나게 맞추며 놀은 적이 있었다. 그것이 딸아이 겨우 8살 때의 일이었는데, 어찌나 잘 맞추던지!  이렇게 맞췄던 것 중 하나는 완성 직후, 친구의 집들이 선물로 가기도 했다! (그것만 사진에 없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늘 풀어서 담아두고 가끔 하나씩 꺼내서 맞춰보곤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아이 데리고 캐나다 와서 2년 지냈던 당시에, 잠시간 살다 갈 것이므로 필요한 물건들을 대부분 가라지 세일을 통해서 구입했는데, 어느 날씨 좋던 4월, 샤워 커튼을 하나 살까 하고 가라지 세일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누가 중고 샤워 커튼을 팔겠는가! 당시엔 참 궁하다 보니 그렇게까지 생각했는데, 당연히 가라지 세일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몇 권 집어 들다가 퍼즐을 발견했다. 워낙 좋아하는 품목이다 보니 하나만 살까 했더니, 이 할아버지는 묶음으로만 판다. 5개 한 묶음에 3불. 그래서 보다가, 옆에 3개짜리 묶음에 있는 거랑 5개짜리 묶음에 있는 거랑 섞어서 한 묶음으로 하고 싶은데.. 하고 망설였더니, 두 묶음 다 해서 4불에 가져가라고 하신다. 원래 가라지 세일에서 4불은 큰 지출이지만, 워낙 풍성하니, 뭐 그러지요! 하고 집어 들었다. 그러자 옆에 두 개 있던 것까지 다 집어주면서 다 가져가라고 하셨다. 하하! 복 터졌네! 언제 다 하지? 그러고는 집에 와서 당장 하나 맞췄던 기억이 있다. 저 풍경화 퍼즐은 진짜 예뻤는데, 한국으로 돌아올 때 다 처분해버렸다. 지금 보니 아쉽네! 예쁜 퍼즐 찾기 어려운데...


원래 바느질 쟁이였던 나는, 이렇게 멋진 퀼트가 퍼즐로 나온 것을 보고 냉큼 집어서 맞추면 좋아하기도 했다!


아이가 미국의 대학에 가면서 우리의 퍼즐 맞추기 놀이는 그렇게 중단되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방학을 맞이해서 집에 온 아이의 손에는 선물 보따리가 들려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트리 밑에 늘어놓았고,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퍼즐이었다. 2000피스 퍼즐. 하루 종일 매달려서 그날로 완성을 해버렸는데, 그림이 너무 예뻐서 맞추는 내내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지나간 퍼즐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으니, 과거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작년 크리스마스 때, 시누가 보내 준 선물 중에서  올빼미 부엉이 그림이 잔뜩 들은 퍼즐이 있었다. 내가 부엉이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고, 또한 퍼즐을 즐긴다는 사실도 알고 계셔서 딱 나를 위한 퍼즐이라 생각하고 보내주신 것이었다. 너무 감사하게 받았는데, 막상 그 퍼즐을 맞출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이 긴 코비드 기간 동안 나는 딸아이와 떨어져 지내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했고, 퍼즐은 그렇게 잊힌 채 거실에 계속 놓여있었다. 그런데 그 퍼즐을 발견한 딸아이가 며칠 전 불쑥 이걸 집어 들고 맞추겠다고 나선 것이다.


자잘한 그림이 많고, 다 비슷한 부엉이 깃털들, 비슷한 배경색 때문에 맞추기 그리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퍼즐의 재미가 아니겠는가! 딸은 그렇게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서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오며 가며 한두 개씩 거들다가, 또 정신이 팔려서 한참 동안 같이 앉아있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느라 정신이 팔려서, 퍼즐 맞추는 중간 사진은 찍지도 않았구나!)


"아유~ 여긴 진짜! 이걸 어떻게 구분해!"라든가, "오, 이거! 이렇게 생긴 거, 특별한데! 그렇지!" 하며 제자리에 딱 맞추고 좋아한다든가... 그러면서 둘이 앉아서 이야기도 좀 나누고, 퍼즐 타박도 하고 있었는데, 딸이 불쑥 말했다.


아, 행복하다!

무심코 던진 듯 이 말이 내 가슴을 찌르르하게 찔러주었다. 참 오랫동안 마음고생한 딸아이. 그래서 마음이 많이 닫혀있다고 느껴왔고, 그래서 내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딸의 마음이 느슨해지고 있는 것을 확연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정말 오랫동안 늘 바빴고, 쫓기듯 일 해야 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고, 현대인의 삶이라는 것이 그렇듯, 쉼 동안에도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늘 증명해야 했다. 방학 때에는 인턴쉽을 해야 했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언제나 바빴던 일상들... 그러다가 코비드 때문에 무너지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된 상황에서, 푹 쉴 기회가 찾아왔으나, 여전히 쉬어지지 못하던 시간들... 이제 드디어 집에 와서 쉬는구나. 식사 후에 쫓기듯 방에 들어가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맛있는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나면 그대로 앉아서 웃고 떠들고 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 시간들이 조금씩 모이면서 아이는 그렇게 살살 녹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 오롯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다. 이것은 충전의 시간이고, 치유의 시간 이리라. 물론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이 있지만, 세상이 꼭 완벽해야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불완전 속에서도 문득 이렇게 행복을 느끼며 무장해제를 할 수 있는 순간은 꼭 필요하다.




하다가 잠시 미뤄두더니 다시 작정을 하고 달라붙은 아이가 나를 불렀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같이 끝내자고... 마무리하는 순간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한 열몇 조각 남아있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가서 같이 나머지를 풀어나갔다. 



그런데, 오! 이런! 한 조각이 없는 것이다. 나는 재빠르게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히 선물 받을 때, 이 퍼즐은 밀봉되어있던 새 퍼즐이었다. 우리가 흔히 그러듯 가라지 세일에서 구입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란 말이다. 내 기억이 맞던가? 아니야, 분명히 새 거였어...


우리는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바닥도 찬찬히 살피고, 의자 위도 보고, 거실 안쪽에 원래 퍼즐 상자가 있던 곳도 다 찾았지만, 나머지 한 조각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에이~ 뭐, 할 수 없지,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딸아이. 완성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냥 이러고 놀았으면 되는 거라고 마음을 턱 내려놓았다. 어차피 인생은 완벽한 것이 아니고, 그래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우리의 아쉬움을 접고, 탁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서너 시간쯤 흐른 후였다! 아이가 "엄마!" 하고 불렀다. "이거 보세요!" 부엌에서 같이 이것저것 정리하고 나서 다시 자기 방으로 가려다가 퍼즐을 슬쩍 쳐다보았는데, 빛이 반사된 그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곳에 빈 구멍이 하나 더 보였단다. "뭐야? 없는 조각이 하나 더 있었던 거야?"라고 생각하며 가까이 가 본 순간, 우리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조각이 거기 놓여있었다. 비어있던 것이 아니라, 얹어져 있었기에 빛을 받는 순간 우리 눈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너무나 색이 똑같아서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세상 이치랑 통하지 않은가! 거기 있어도 우리는 흔히 보지 못하고, 오해하고, 서운해하고, 보이는 만큼만 보는 데에 익숙하다. 각도를 바꾸면 보이는 것, 우리가 스스로 각도를 바꿔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우연히 그것을 다시 발견하고 깨달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한 번 보이기 시작하면 계속 보인다. 세상의 흠도, 또, 세상의 기쁨도...


그래서 오늘, 나는 또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도 이해를 할 수 있는 마음을 한 뼘 다시 키워보도록 노력하고 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숨은 그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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