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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Dec 12. 2020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처럼 찰나인 듯

살면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을 맞이했다. 무엇을 잃는 데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내 성격에, 유일하게 두려운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리라. 그것도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사람들이 곳곳에 꼬마전구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예년보다 유난히 빛나는 장식을 한 집들이 많은 이유는, 이 암담한 시기에 그래도 이런 반짝임을 보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우리도 그랬다. 집에 크리스마스용 작은 전구들이 있었지만, 좀 더 다양하게 꾸미고 싶은 마음에 하드웨어 스토어에 나가서 더 많은 등을 사 왔다.


나는 남편이 더 새로운 등으로 꾸미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고 따라간 것이었는데, 남편은 내가 한 가지 색으로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 때문에, 그런 등을 사서 달아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길게 줄을 선 가게에서 입장을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가게는 북적였다. 우리는 서로 불빛을 고르라고 미루다가 결국, 나는 남편이 좋아할 만한 파란색을 골랐고, 그는 내가 한 가지 색을 좋아하는 것을 맞추기 위해 파란색을 골랐다. 그렇게 닭살 돋게 우리는 사랑을 확인하며 장난스럽게 등을 사 왔다.


캐나다는 위도가 높아서 겨울이면 해가 진짜 일찍 진다. 5시면 벌써 깜깜하기 때문에, 남편은 그다음 날 퇴근해서 집에 오자마자 어둡기 전에 등을 설치하겠다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때가 4시경이었다. 그날 우리는 마당에 깔을 멀칭용 나무칩도 주문해서 받은 참이었기에 남편은 더욱 마음이 바빴다. 얼른 달아놓고, 마당 일도 좀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으리라. 나는 부엌에서 뭔가 하다가 뒤늦게 옷을 두껍게 챙겨 입고 따라 나갔고, 남편은 사다리에 올라 집 앞 벚나무에 벌써 등을 몇 개 걸은 참이었다. 나는 남편이 가져오라는 거 이거 저거 잔심부름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그가 올라가는 사다리가 어쩐지 불안해 보였다. 앞마당이 기울어있기 때문에 사다리가 뒤집힐까 봐 불안했다.


총 6개를 샀는데, 3개 설치하고 4개째 달기 전에 나에게 어떠냐고, 어떻게 달면 좋겠느냐고 물어보는데, 나무가 워낙 커서 어떻게 달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방에 있던 딸아이도 전화를 해서 불러냈다. 의견 좀 내 보라고 부른 것인데, 아이는 춥기도 하고, 뭐 그 큰 나무에 어찌 다르게 달 수 있을까 싶어서 그냥 방글거리며 구경만 하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반대쪽으로 등을 걸 테니 사다리를 그쪽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차를 좀 옮겨달라고 남편이 말했다  내가 차를 이동하는 동안 아이는 사다리를 붙잡고 아빠를 돕고 있었다. 길가에 주차하고 보니 너무 길 밖으로 나온 거 같아서, 좀 더 안쪽으로 옮기려고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아이가 다급히 나를 부르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떨어졌어요."


오, 세상에! 내 눈 앞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 펼쳐져 있었다. 남편은 바닥에 이미 떨어진 상태였고, 몸은 정원에, 그리고 머리는 길의 아스팔트 바닥을 치고 누워있었다. 다급히 달려가 그의 머리를 안아 올렸는데, 남편은 의식이 없었다. 그의 머리 뒤쪽으로 피가 만져졌다. 이게 현실이 맞을까? 이건 꿈이어야 해.


이럴 수가 없다고! 이럴 리가 없다고 울부짖었다. 남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얼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주고, 아이더러 구급차를 부르라고 했다. 911에 왜 이렇게 전화가 금방 안 걸리는지! 정말 1초가 1시간 같았다. 나는 의식이 없는 남편의 머리를 붙들고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소리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웃집도 아무도 없었고, 날은 저물어가서 어둑어둑한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현실이 아니야. 이런 장면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인데... 세상을 잃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남편을 잃은 수는 없었다. 안된다고 안된다고! 누구 거기 없느냐고 미친 여자처럼 소리 지르며 남편을 불러댔다. 드디어 구급대에 연결이 되었고,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는 주소를 말했다. 나는 이렇게 그를 보낼 수 없었다. 난 준비가 안 되었다고, 가면 안 된다고 소리 지르며 최대한 머리의 흐르는 피를 손으로 막으려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서서히 눈을 떴다. 오, Tim!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편은 자기가 왜 여기 누워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전날 함께 등을 사러 갔던 일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까짓 기억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사랑한다고,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지, 나도 사랑해."라고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남편...


아이는 구급대와 계속 통화를 하면서, 거기서 지시하는 대로 집으로 달려 올라가서 수건을 가지고 내려왔다. 그걸로 남편의 머리의 피를 지혈하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계속 말을 걸었다. 의식을 다시 잃으면 안 된다고... 남편은 일어나 보려고 했다. 그러나 어디가 어떻게 부러졌을지 모르는데 억지로 일어나면 안 되기에 그대로 있으라고 말해줬다. 힘주지 말라고, 피 더 나온다고...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묻는 남편에게 나는 계속 사랑한다고 말했다. 차를 타고 지나가던 한 이웃이 다가와서 상황을 물어보고 함께 있어줬다.


구급대가 도착하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통화기록을 살펴보니 9분 만에 도착한 것이다. 정말 긴 기다림이었는데, 진짜 빨리 왔었구나. 그들은 그 상태에서 재빨리 남편을 점검했다. 그러면서 현재 먹는 약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얘져서, 그냥 달려 올라가서 약통을 모두 가지고 내려왔다. 손이 덜덜 떨렸다. 피를 묽게 해주는 약도 먹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남편은 그 약을 먹고 있지 않았다. 지혈이 안될 텐데 다행이었다.


남편은 의식을 다시 잃지 않았다. 그들은 남편을 점검한 후, 현재로는 괜찮아 보인다고 말했다. 남편에게 목받침을 해주고는,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을 붙잡고 세워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남편은 응급차로 실려 들어갔다. 나는 따라가야 하는데, 가면 안 된다고 했다. 이 망할 코비드 때문에! 남편을 저렇게 보내다니! 구급대원은 계속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들은 구급차 안에서 뭔가 하면서 계속 남편을 체크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남편의 큰 딸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알렸다. 남편의 가장 가까운 피붙이는 이 일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떨려서 말도 잘 이어지지 않아서 딸아이에게 전화기를 넘기고, 딸이 차분히 설명했다. 일단 현재 의식이 있고, 구급대원이 괜찮아 보인다고 했다고 전하고,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잠시 후, 구급차가 출발하겠다며, 들어와서 인사를 하라고 했다. 나는 들어가서 사랑한다고 말했다.  딸아이도 들어와서 역시나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말이 이 이상 뭐가 있겠는가... 이렇게 보내 놓고, 이게 마지막은 아니겠지? 의식을 다시 잃지는 않겠지? 너무 두려웠다. 


구급차는 한 시간 후에 병원에 전화해서 상황을 물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려 했다. 그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남편에게 핸드폰을 가져다줘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그렇게 남편의 전화기를 받아 들고 출발했다. 나는 딸과 함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집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보내야 하다니...




들어와서 피로 물든 손을 씻고, 서로 부둥켜안고 비로소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는 식탁 앞에 둘이 멍하니 앉아있었다. 시간이 정말 더디게 갔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둘이 마주 앉아 심호흡을 여러 번 하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드디어 정신을 가다듬고, 남편 회사 동료에게 문자 해서 사고가 있어서 출근을 못 하니 뒷 일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남편은 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에 회사 결석과는 다른 문제여서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한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아직 아무 결과도 없으니 다시 한 시간 후에 전화를 하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맥이 탁 빠졌다. 한 시간을 또 기다려야 한다니... 그런데 그 순간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의 벨소리는 별도로 설정해놨기 때문에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거기에 적힌 말은...


Love you.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그리고는, 촬영을 기다리고 있다는 문자가 따라왔다. 딸아이와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문자를 할만한 상황이라는 것은 그가 의식을 완전히 회복한 상태라는 뜻이니 말이다. 


나도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는 다시 답했다. "내가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는데도? 하하!" 나는,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컨디션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온몸이 아프다고 대답했다. 다시 물었다. 몸의 모든 부분을 움직일 수 있느냐고. 그렇다고 대답이 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발 끝을 조금 까딱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래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 부러지지 않았다는 의미라 생각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가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면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한 시간 후에 병원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의사는 전화를 받아서, 현재 스캔한 바로는 이상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엑스레이 결과는 괜찮고, 머리 사진도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괜찮을 거 같다고 말해줬다. 이건 기적이었다. 그 사다리에서 그렇게 떨어졌는데 정말 괜찮은 거 맞아? 큰 딸에게도 전화해서 상황을 알리고, 남편의 누나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은 이 일을 알아야 하니까. 


그렇게 우리는 띄엄띄엄 문자를 주고받으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남편은 통증이 너무나 심하다고 했다. 특히 고관절 쪽이 너무 아파서 결국 그 부분 엑스레이를 다시 찍을 거라는 연락이 왔다.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처음에는 머리만 안 다쳤으면 좋겠다 했다가, 그다음에는 척추가 무사하였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이제 고관절 이야기가 나오니, 그 뼈가 부러지면 한참 고생할 텐데...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팔꿈치와 머리를 꿰맸고, 엑스레이를 다시 찍기 위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열 시쯤 되어 드디어 남편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기쁜 소식이야. 부러지지 않았대. 다만 심하게 부딪혀서 그런 거라 하네. 오늘 밤에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을 집으로 보낸다니... 한국 같으면 어림없는 이야기이다. 일단 다음날까지 사람의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할 것이고, 아침에 입원실로 옮겨서 물리치료하고 거동이 가능해질 때 퇴원시킬 텐데, 여기는 진통제 몇 알 주고는 집에 가라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무조건 모든 것에 감사했다.


데리러 가려면 기운이 있어야 하는데, 그제야 아무것도 안 먹은 것이 생각났다. 남편이 끓여두었던 수프가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아이와 함께 그것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연락이 왔다. 자신의 상태가 많이 좋지 않으니 놀라지 말라고... 난 더 이상 놀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가 떠날 때 봤던 모습을 생각한다면 지금은 그저 황송할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딸과 함께 가서 그를 집으로 데려온 시간이 밤 열한 시. 


그는 발 한 짝도 스스로 들지 못했다. 우리 힘없는 모녀는 그를 부축해서 이층 방까지 올려갈 일이 캄캄했다. 부축받은 그는 발을 끌며 집안으로 들어섰고, 계단은, 뒤를 돌아 앉은 채 팔의 힘으로 올라갔다. 그는 참으로 강한 남자다. 침실로 곧장 가지 않고 앉아있고 싶어 해서, 식탁에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스스로 어리석었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우리 모녀는 살아서 앉아있는 그를 감동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해서 그의 고통스러운 회복 시간이 시작되었다. 온몸에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아니, 있으면 더 놀라울 것 같았다. 피부 표면까지 아파했다. 혼자서 몸을 전혀 일으킬 수 없었고, 의지할 것이라고는 병원에서 준 모르핀뿐이었는데, 그나마 몇 개 되지도 않았다. 그다음 날 남편은 고통에 신음했고, 거의 하루 종일 잤다. 나도 무언가 다른 것을 할 기력도 없었다. 악몽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필요한 마실 것들과 먹을 것들을 가져다주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를 도왔다. 의사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어떻게 해주는 것이 좋겠느냐 물었더니 냉찜질과 온찜질을 번갈아 해주라고 했다. 그 날의 기억은 그저 어둠 속에 있다. 언제 저 사람은 기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암담함을 느꼈다.


차가운 얼음찜질을 마다 않았고, 음식도 꼬박꼬박 먹으며 체력 회복을 위해 노력한 남편


내가 그런 두려움에서 나올 수 있도록, 그다음 날부터 남편은 급속도로 회복하기 시작했다. 혼자 화장실에 가기 시작했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갑자기 부엌에 나타나서 딸아이와 나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무얼 하느냐 했더니 그냥 운동삼아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어지럽다고 다시 방으로 금방 돌아갔지만, 저열한 체력은 가진 나나 딸아이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회복이었다. 남편은 누운 상태에서도 수시로 다리를 조금씩 움직이며 스스로 운동을 했다. 그는 참으로 강한 사람이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참으로 강하다.


누구에게 신세 지는 것을 절대로 싫어하는 사람이기에, 내가 자신을 돌보느라 시간을 뺏긴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고, 또 집안에 남아있는 할 일들이 눈앞에 삼삼하여 마음이 답답하였으리라. 그 전날이었던가, 딸아이 방을 손 보고 페인트칠을 해서 가구를 옮겨 넣었는데, 그 일은 해놓아서 너무 다행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아마 딸이 아직도 방을 제대로 옮기지 못했으면 그는 너무나 괴로워했을 것이다.


나는 그를 돌보는 일은 정말 기쁨으로 할 수 있었다. 그가 그렇게 내 곁에 있어줄 수만 있다면, 돌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귀찮게 하는 성격이 아니며, 아파도 내색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다. 엄살은 전혀 부릴 줄 모르고, 조금이라도 내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오히려 원하는 것을 좀 내색을 해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을 지경이었다.


방치된 사다리와 설치 중단된 크리스마스 등불을 보면 악몽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 목요일, 사흘이 지났다. 걱정했던 어지럼증도 거의 사라졌다고 했고, 꿰맨 곳들도 아물어 가고 있다. 일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 사람. 아래층에 내려와 보고 싶다고 했지만, 단호히 안 된다고 했다. 남편은 분명히 어서 빨리 다시 일을 하고 싶을 것이다. 설치하다가 만 트리 라이트도 달고 싶을 테고, 정원도 손 보고, 다 하고 싶겠지. 그래서 나도 어제는 좀 기력을 되찾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원의 낙엽을 좀 줍고, 설치하다가 만 을씨년스러운 크리스마스 등불도 낑낑 매고 나무에 감았다. 사다리를 꺼내야 제대로 하겠지만, 꼭 제대로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사다리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긴 등불을 나무에 던져 올리고, 긴 나무 막대로 밀고 당기고 해서 일단 새 등불의 설치를 마쳤다. 오늘은 나머지 등불을 달 것이다.



사고 당시, 어떻게 된 것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남편은, 이제 넘어지던 순간의 기억을 되찾아냈다. 좀 더 뒤쪽으로 손을 뻗으려다가 중심을 잃고 뒤로 떨어진 것이었다고 했다. 딸아이는 아무 손도 쓰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눈 앞에서 고스란히 목격했으니 충격이 몹시 컸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원래 상당히 냉철하고 금세 침착해지는 사람인데, 그 순간은 정말 나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없었다. 딸은 엄마의 그런 모습을 처음 봤다고 했다. 내가 소리 지르던 모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거라고 했다. 딸도 이 트라우마에서 나올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살다 보면 욕심도 생기고, 조금씩 더 바라는 마음도 생기고, 불만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이런 일들은 사람을 정말 겸허하게 해 준다. 전에도 건강한 삶 이외는 더 바라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내 눈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를 안고 울부짖고 난 이후에는, 정말로 더 바랄 것이 없다. 내게 이 사랑하는 사람들만 있으면 무엇인들 하지 못하겠는가. 그가 의식을 찾은 것에 감사하고, 뼈가 부러지지 않음에 감사하고, 그 순간에 남편이 혼자 밖에서 일하고 있지 않았던 사실에 감사하고, 또한 딸이 한국에서 와서 내 옆에서 모든 것들을 함께 나눠줘서 감사하고, 무사히 그를 집에 데려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그에게 감사한다. 


요즘 영어 수업하고 있는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도입 부분이 이런 대목이 있다. "Life doesn't always turn out the way you plan." 삶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늘 이 문장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게 된 것은 정말 그 어떤 계획도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은 인생에 늘 함께 있고, 그것이 때론 좋은 일로, 또 때론 좋지 않은 일로 나타난다. 악착같이 억지로 뭔가를 만들어 내려는 것은 그저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그저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것을 감사하고 살아갈 수밖에... 나는 지금 하루에도 몇번씩 그에게 말 한다. "돌아와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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