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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Nov 10. 2020

평생 이렇게 살았던 것처럼...

자가격리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가족

드디어 자가격리가 모두 끝이 나고 일상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 딸이 온다고 결정되었을 때, 자가격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를 가지고 남편과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딸아이는 자기 방으로 올라와 자리 잡았다.


우리 부부의 인연을 아는 이들은 남편과 딸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우리 세 사람이 이렇게 편하게 함께 지낼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사실 우리의 관계는 참 특이하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 사랑에 빠져 결혼한 우리 부부도 이미 몹시 특이해 보이겠지만, 사실 나의 남편을 먼저 사랑한 사람은 내가 아닌 나의 딸이었다. 그리고 남편도 나의 딸을 사랑했고,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딸아이의 에세이 선생님에서 시작해서 멘토가 되어주었던 그는 내가 막연히 존경하는 분이었고, 자기가 그토록 아끼는 제자를 보러 기꺼이 로마까지 날아가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분"과 대화도 나눠본 적 없던 사이였다. 오랜 기간 스카이프를 통한 수업을 하면서, 단순한 지식 나눔이 아니라, 아이의 인격이 형성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에 오늘날의 우리 딸을 만들어내는 데 아주 큰 공을 세운 분이기도 했다. 나는 늘 멀리서 그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가 교환학생을 하던 시절, 외로웠던 순간에 객지에서 만나면서, 기존의 멘토와 멘티를 넘어선 부녀적인 사랑을 서로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그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 줄 알고 있었기에 급기야 내가 정중히 감사의 인사를 전하게 되면서 우리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내가 아이를 가르치며 지켰던 원칙과 교육철학이 그의 철학과 너무나 잘 통했듯이,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열면서 우리는 서로 얼마나 잘 통하는지, 원하는 것이 얼마나 비슷한지에 대해 너무나 놀라워했다. 그리고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는 나의 딸을 우리 딸(our daughter)로 부르고 싶은데 그리 해도 되겠느냐고 정중히 내게 물어왔고,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 하시라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해서 딸아이는 세명의 형제까지 얻게 되었다.




딸아이가 지금 사용하는 방은, 남편의 막내아들이 쓰던 방이었다. 남편의 자식들은 모두 독립하여 집을 떠났고, 아이들의 방은 사용되지 않게 된 지 오래되었다. 간간히 방문객들이 오면 사용하는 방이 되었을 뿐이다.


전에도 딸이 잠시 방문하러 오면 늘 그 방을 사용하곤 했었는데 이제 오래 머물으려고 오니 남편은 정말 이 아이의 방으로 꾸며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침대가 오래되었다 보니 매트리스가 너무 낡아서 힘이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딸아이는 디스크를 앓은 경력이 있어서 장기적으로 지내려면 새 매트리스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 도착 전에 미리 단단한  폼 매트리스로 주문을 해두었다.


그런데 배달된 매트리스를 장착해보니 기존에 있던 베드 프레임에 딱 맞지 않았다. 길이는 남고  폭은 넘쳐서 살짝 삐져나왔다. 그러나 사용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어 보였고, 주문할 때부터 이런 부조화는 예정된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러려니 했다.


남편은 처음부터 이 일을 우려하였고 침대 프레임을 수리하고 싶다고 했다. 딸아이는 심지어 프레임이 없이 매트리스만 있어도 된다고 했었지만, 기존에 프레임이 이미 남편이 직접 만든 거였다는 사실을 알고 절대 없애버리지 말라고, 그대로 사용할 거라고 출발 전부터 말했었다.


아이가 집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항암 치료 중이었고, 우리 모녀는 아래층에서 자가 격리를 하게 되었다. 날씨는 계속 비가 왔고, 항암 기간에는 남편도 외출할 수 없었기에 목재를 사 올 수도 없었고 날짜는 그렇게 흘러갔다.


자가격리 끝나는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남편은 출근을 시작했고, 나는 아이의 시트를 새로 다시 빨고 정리하여 침대에 씌워두었다. 퇴근해서 그것을 본 남편은 자기가 저 침대를 안 고쳐줄 거라고 생각했느냐며 순간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게 아니고, 어차피 침대로 쓰는데 지장이 없고 당신이 만든 것이라고 아이가 좋아하니 그대로 써도 좋을 것 같다고 대답해줬다.



남편은 그다음 날 당장 나무를 사 왔고, 그것을 자르고 다듬었다. 안 그래도 바쁜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나에게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내 모든 아이들에게 침대를 만들어줬어. 걔네들은 모두 자기 침대를 가졌었지. 나는 나의 넷째 딸도 그렇게 되길 바라. 그게 내 마음이야." 나는 비로소 그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고 그 말을 그대로 딸아이에게도 전했다. 어떤 의무감이 아니라, 그렇게 해 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었다.



침대 길이를 줄이고 폭은 넓혀야 했기 때문에, 가로로 침대 밑에 받치는 부분을 모두 새로 해야 했다. 그래서 침대를 완전히 분해하는 것은 필수였다.  그러다 보니 결국 침대 기둥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새로 만든 셈이 되어버렸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오래된 목재와 새 목재가 나란히 같이 있으니, 오래된 부분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결국 그다음 날 다시 나가서 나머지 부분을 위한 목재도 모두 다 다시 사 왔다. 그리고 나와 아이가 호박을 파고 있는 동안, 밖에서 또 자르고, 다듬고를 반복하였다. 내가 나가서 카메라를 들이대자 쑥스럽게 웃음을 터뜨리는 남편. 만드는 내내 즐겁기만 한 그의 정성스러운 손길은 보는 사람을 함께 행복하게 만들었다.


Before & After : 이렇게 거칠었던 나무가 사방으로 말끔히 정리되었다.


그날은 자가격리 마지막 날이었다. 남편은 결국 그날 밤에 침대를 완전히 새로 완성했다. 그리고 매트리스를 끼워 넣자 맞춘 듯이 딱 맞았다. 하하! 맞춘 듯이... 가 아니고, 맞춘 것이었으니 놀랄 일도 아니지! 그렇게 해서 딸은 딱 적절한 타이밍에 자기의 방, 자기의 침대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자가격리가 끝나는 아침, 아이는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재빨리 샤워하고 옷 싹 갈아입고는 남편이 누워있는 방으로 가서 노크를 했다. 마치 크리스마스 아침을 기다린 아이가 선물을 풀자고 부모의 방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로미오와 줄리엣같이 (남편이 줄리엣!) 우리 모녀는 아래층에서, 남편은 위층에서 쳐다보며 대화하던 시간이 끝난 것이다. 먼발치에서만 바라봐야 했던 만남이 드디어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셋은 그렇게 침대에 누워서 게으른 아침을 보내며 재회의 기쁨에 깊이 젖어들었다.


딸아이는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꺼냈다. 한국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 혼자서 강릉 바닷가를 갔었는데, 거기 기념품 샵에서 이걸 발견했다고... 엄마가 좋아하는 부엉이! 커플 부엉이 밑에 아기 부엉이가 달린 요 귀여운 종! 정말 애정템이었다! 


집중해서 뭔가 할 때는 입이 뾰족 나오는 딸램!


우리의 이날 저녁은 생굴 파티를 하기로 되어있었다. 남편이 전날, 우리가 사다 먹는 Skipper Otto에서 굴을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자그마치 60개! 작년에는 남편이랑 둘이 먹었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딸도 함께 하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 작년에 굴 먹고 나서 디저트로 먹었던 코코넛크림파이를 올해도 먹자며 구워서 준비했고, 위에 크림 장식은 딸에게 맡겼다. 나는 그냥 한 겹으로 장식하는데 역시나 아티스트 딸내미는 이렇게 꽃다발처럼 꾸며놓아서 더욱 풍성한 크림파이가 되었다.  






저녁이 되고 우리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가족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드디어 함께 저녁을 먹는다고 들떠있었다. 딸아이는 바짝 붙어서 굴을 어떻게 해체하는지 구경하고...


서양식 호스래디쉬(horseradish)와 한국식 초고추장이 준비되었지만, 굴이 너무나 크고 신선해서 아무것도 안 뿌리고 먹어도 충분히 맛있었다. 레몬을 살짝 짜서 얹어도 꿀맛이었다. 프랑스 시인  Leon-Paul Fargue가 그랬지. 굴을 먹는 것은 바다의 입술에 키스를 하는 것 같다고... 


J'adore les huîtres : on a l'impression d'embrasser la mer sur la bouche.

굴에 고여있는 바닷물을 마시면 짭조름한 게 정말 바다의 입술에 키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한국 살 때에는 내 궁상맞은 성격 때문에 이렇게 생굴을 사서 먹은 적이 없었다. 언제나 봉지굴을 사서 좀 먹고, 남은 것은 전 부쳐먹고... 그렇게만 먹었었는데, 음식을 진정 즐길 줄 아는 남편 덕에 이런 호사를 누리는구나! 우리 집이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비법은 외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식 한 번 하고 나면, 특히나 캐나다에서는 부가세와 팁까지 더해서 가격이 훅 올라가게 마련인데, 외식할 값을 아끼면 맛있는 음식을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우리 집 엥겔지수는 높다. 건강을 관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하겠다. (우리 집 식재료 사는 방식 : https://brunch.co.kr/@lachouette/82 )



여기서 사 오는 굴은 큰 사이즈, 중간 사이즈, 작은 사이즈, 그리고 못난이가 있는데, 못난이는 가격이 저렴한 대신, 모양이 삐뚫어서 뚜껑을 따기가 힘들다. 그래서 못난이들은 큰 팬에 넣고 스팀을 올려 짧게 쪄줬다. 살짝 익은 굴은 그야말로 야들야들, 입에서 살살 녹았다. 거기에 버터를 얹어서 먹으니 꿀맛이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자가격리 축하파티는 거나하게 치러졌다. 굴은 원래 두세 개 애피타이저로 먹는 게 보통인데, 이렇게 굴로 배를 두드리며 먹었으니, 본식은 불가하다. 그래서 우리는 곧장 디저트로 옮겨갔다.



모든 것을 싹쓸이하면서 저녁식사 시간은 길고 길어졌다. 우리는 밀린 이야기를 쏟아 놓고 또 하고 또 하고... 그렇게 밤이 깊어가도록 놀았다. 


세상에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못난이 굴도 맛있고, 급히 만들어서 살짝 주저앉은 크림파이도 맛이 있는 것이 우리네 삶 같다. 2주일간의 격리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기다리고 났더니 좋은 시간이 반겨주었다. 앞으로도 세상이 순탄하기만 하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진짜 마음을 내려놓고 함께임을 최대한 즐기고자 한다. 


그리고 남편처럼 사랑하는 법... 많이 주고, 아낌없이 주고, 그리고 그 자체로 기뻐할 수 있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딸내미가 구운 마카롱 사진.  새아빠가 좋아하는 마카롱을 구우면서, 흥겹게 침대를 만들던 그 사람처럼, 딸아이도 그렇게 흥겨워했다. 사랑은 나눌수록 증폭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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