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호박 파기로 자가격리 200% 즐기기
매년 10월 마지막 날은 할로윈 데이다. 아이들은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몰려다니며, "사탕을 안 주면 말썽을 부리겠어요!"라고 말하고, 그러면 집주인은 사탕을 한 움큼씩 집어주는 놀이를 하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다. 그런데 올해는 코비드 19 때문에 할로윈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다들 고민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것을 피하자는 분위기이므로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막상 할로윈 장식을 한 집들이 평소보다 많이 보인다는 것이 전체적인 현상이었다. 아마도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무료함을 집 꾸미기로 달래는 것이리라.
우리의 작년 할로윈은 부부가 약간의 분장을 하고 나름 재미있게 보냈다. 나로서는 그것이 할로원 사탕 나눠주기의 첫 경험이었으니 참으로 신선했다. 남편은, 이왕 주는 것, 풍성하게 주자는 주의여서, 아이들이 바구니에서 한 움큼씩 집어 들며 기뻐하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컸다.
그런데 코비드 19 때문에 올해는 어찌해야 할까 처음에는 참 난감했다. 페이스북 지역 커뮤니티 그룹 게시판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의견이 분분히 오갔는데, 결국은 조심해서라도 하자는 분위기였다. 이곳은 애들 키우기 좋은 동네여서, 아이들이 어린 집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남편도 이 집에서 애들 셋을 모두 키웠으니 그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집 앞 드라이브웨이에 천막 지붕을 설치하고 테이블을 높고 집게로 집어서 사탕을 나눠주기로 결정했다. 나는 원래 달다구리를 안 먹고 반대하는 사람이지만 어찌 이 날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그냥 하나의 놀이로 인정하기로...
작년처럼 바구니에 담아두고 한 움큼씩 집어가라고 하는 것은 올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사탕을 미리 비닐봉지에 담았다. 샌드위치 백이어서 제법 많이씩 들어갔다. 그리고 손과 손을 맞대고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2미터 거리를 두고 줄 수 있도록 기다란 집게도 마련을 했다. 열 가지가 넘는 종류의 사탕, 과자, 초콜릿을 나눠 담아서 수북이 쌓인 봉지를 보고 남편은 마냥 흐뭇해했다.
일찌감치 호박이나 팔까?
할로윈 데이는 딸아이의 자가격리가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따라서 격리 기간에 심심하지 말라고 남편이 호박을 미리 감치 하나 사다 줬다. 딸아이는 신나서 호박 카빙을 했는데, 역시 미술 전공 아니랄까 봐 밑그림도 그리지 않고, 근사하게 파냈다. 파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것은 성인 딸이 아니라 중학생쯤으로 보였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이렇게 하고 노는구나!
이제 파기 시작! 이렇게 오른손으로 조준을 하고 왼손으로 밀어줘야 손목이 나가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렇지 않고 한 손으로 힘줘서 파면 금세 힘들어서 못 한단다. 어느 정도 파 보고는 핸드폰에 불을 켜서 안에를 비춰본다.
구멍을 완전히 뚫는 방식보다 속이 비치게 파는 것이 더 이쁘다며 공을 들여서 팠는데, 그만 너무 일찍 파는 사람에 호박이 상해서 할로윈이 되기도 전에 다 주저앉아 버렸다. 어찌나 아깝던지... 그래도 사진 몇 장 찍어둔 게 너무나 다행이다.
안 그래도 호박 몇 개 사다가 더 팔까 했었는데, 이젠 꼭 그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엔 남편이 3개를 새로 사 왔다. 어느새 할로윈이 다가오니 가게마다 품절이 시작되었고, 그래서 간신히 여러 군데를 가서 사 왔단다. 상한 것도 많아서 골라서 사 왔다고 했는데, 우리는 일부러 당장 파지 않고, 할로윈 전날까지 기다렸다.
각각 하나씩 들고 파기로 했는데, 남편은 내일 들어갈 아이의 방에 있는 침대를 손 본다고 하다가 아예 침대를 하나 새로 만드는 바람에 완전히 바빠졌다. 나랑 딸아이는 미리 감치 파기 시작했지만, 역시 손이 느리고 꼼꼼해서 오래 걸렸다. 딸은 또 근사하게 전체로 돌아가는 디자인을 만들었고, 나는 그릴게 마땅치 않다며 징징거리다가 내가 좋아하는 부엉이를 넣기로 했다. 밑그림을 종이에 그렸더니 딸아이가 호박에 그려줬다.
막상 파 보니 내 맘 같지 않아서 이리 고민하고 저리 고민하면서 디자인이 바뀌었는데, 그 과정도 재미있었고, 완성하니 마음에 들었다. 남편은 우리가 그러고 있는 동안 나무를 자르고 손질하더니 뒤늦게 합류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아이들과 팠던 실력은 역시 녹슬지 않아서, 정말 순식간에 Jack-O-Lantern을 만들어내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우리 부부의 열심 호박 파기 순간은 딸의 카메라에 잡혔다. 자가격리 마지막 날 밤이니 어차피 어디 나갈 것도 아니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서 도란도란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알려준 팁은, 안쪽을 더 넓게 파야 나중에 빛이 밖으로 잘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편의 호박은 더 환해 보인다!
호박씨 파낸 것은 오븐에 구워 먹자고 따로 빼놓았다. (레시피는 나중에...) 이제 우리의 호박 완료! 안에 불을 넣어서 어찌 보이는지 구경했는데, 역시 불을 넣으니 분위기가 확실해지는구나! 이렇게 할로윈 전야는 잠들고 있었다.
드디어 할로윈 당일이 되었다. 호박은 앞마당으로 나갔고, 전기 초를 그 안에 넣어서 빛을 받게 하였다. 그리고 비 올 경우를 대비해서 남편이 구입한 천막을 치고, 그 둘레에 할로윈 장식을 달았다. 테이블을 놓고, 사탕 봉지를 바구니에 어느 정도 담아서 올려놓고, 집게도 올렸다. 준비 완료!
분장은 그리 정성껏 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러다 보니 마스크를 꾸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딸내미에게 주문을 했다. 잠시 고민하던 딸내미는 순식간에 세 개를 뚝딱 그려서 들고 나왔다. 덕분에 우리는 그냥 모자 하나씩 쓰고, 마스크 두르는 것으로 우리의 분장을 해결했다.
날이 슬슬 저물면서 아이들이 오기 시작했다. 봉지 안에 열개가 넘는 사탕이 들어있으니 아이들은 그저 신이 났다. 그리고 사실은 나눠주는 우리도 신이 났다. 날은 점점 저물어 어두워져 갔고, 호박은 점점 더 불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사실 아이들이 별로 안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평소보다 많이 와서 사탕이 일찍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나머지 다 털어서 상 위에 펼쳐놓고 예정보다 일찌감치 마무리해야 했다. 약간 모자란 듯한 게 아쉬웠고, 특히나 남편은 늘 절대 모자라지 않게 준비하는 사람이어서 진짜 아쉬워하긴 했지만, 올해가 특수 상황인 만큼 다들 그렇게 납득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 가족은 자가격리 쫑파티를 거하게 하였다는 후문... (이 소식은 다음 포스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