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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Nov 02. 2019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

아니면, 누구랑 하느냐...?

그런 말이 있다. 뭘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사실 흔히 그렇다. 똑같은 선의를 베풀어도 받는 입장에서 고맙게 느껴질 수도 있고, 선심 쓰고 생색낸다 생각되어서 기분이 오히려 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다음에 따라 나오는 이야기는, 어떻게 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누가 하느냐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 있다. 똑같은 농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재미있을 수도 있고,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어제 페이스북에서 성희롱적 발언에 대해서 논하면서 얘기가 나왔는데, 생면부지 만난 적도 없는 페친이 내 바닷가 사진에다가 대고 "수영복 사진 인증하세요"라고 쓰면 그건 기분이 상할 일이지만, 남편이 말한다면 그것은 그저 웃고 끝날 것이다.


음, 이야기가 옆으로 빠졌네. 아무튼 어제 할로윈 행사를 무사히 마쳤다. 우리나라 명절이 아닌 할로윈은 사실 한국에서는 별로 즐길만한 일이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상당히 큰 행사이다. 아이들은 이때 일 년 치 사탕을 모두 챙긴다고 할 정도이고, 며칠 전 내가 포스팅한 글에서도 소싯적 딸의 캔디 수확물의 양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애들은 이때다 싶어서 특이하게 차려입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몰려서 이웃집을 돌면서 사탕을 받아내는데 나름의 사회생활의 경험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 후 처음 맞는 할로윈을 좀 재미나게 해보고 싶었다. 맛있는 펌킨 파이도 굽고, 옷도 재미나게 차려입고 신나게 즐겨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면서 아무것도 준비를 못했고, 마침 멀리 갔다가 한 상점에서 파격 세일 중인 모자만 덜렁 두 개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모자 두 개... 그래도 근사해 보여서 옷을 잘 입으면 괜찮을 거 같았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남편도 예전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했었으나 다 버리고 요새는 그냥 사탕만 준다고 했다.


딸램은 전날 사장님 댁에 출장 가서 그집 딸램이랑 마카롱 만들고, 오늘은 마녀 복장으로 출근한다고 아침에 사진을 보내왔다. 엄마가 예전에 만들어준 마녀배달부 키키 컨셉이라는데, 빗자루만 있으면 정말 딱이겠다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멀리서 신경쓰고 있을 엄마를 위해서 걱정말라고 사진 보내주니 너무나 고맙다. 마카롱은 원래 전문가처럼 척척 만드는지라, 올해에도 할로윈 기념으로 잊지 않고 만들어주는 센스!


딸아이의 할로윈


그러나 우리집에서는 결국 할로윈 당일에 조차 나는 종일 바빴고, 딸램처럼 코스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상세한 준비는 결국 하나도 못 하고 남편의 퇴근을 맞았다. 그제서야 우리는 부랴부랴 이른 저녁을 챙겨 먹고 준비를 시작했다. 남편은 이미 종류별로 많은 사탕과 초콜릿 등등을 사다 놓았는데, 그 양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사실 나는 이런 달다구리는 몸에도 안 좋고 누구에게 주는 것도, 내가 받는 것도 달갑지 않지만, 이 행사는 나의 그런 취향을 전혀 고려할 수 없는 것이었고, 남편은 그 무엇보다도 인색한 것이 싫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정말 풍성하게 사놓고, 애들이 아무리 많이 와도 모자라지 않아야 하는 것이 철칙이었다.


우리는 사탕봉지를 종류별로 열어서 바구니에 그득하게 담았다. 물론 그러고도 훨씬 더 많은 양이 남았지만, 애들 주고 나서 더 채워 넣을 요량으로 준비했다.



그리고 나는 보라색 모자에 맞춰서 보라색 벨벳 블라우스를 입고, 보라색이 들어간 스카프를 둘렀다. 음... 뭔가 아쉬우니 화장을 좀 하고, 입술도 보라색으로 칠하고, 얼굴과 목에 흉터를 그려 넣었다. 남편은 흰색 재킷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니 아쉬운 대로 실크가운을 걸치고, 하얀 모자에 어울리게 하얀 장갑을 착용했다. 우리가 같이 서니 나름 그럴듯했다.

 


6시가 되니 아이들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했고, 6시 반부터 1시간가량은 정신없이 바빴다. 그리고 사탕도 부지런히 부지런히 리필해야 했다.


각양각색으로 꾸민 아이들의 태도도 각양각색이었다. 자신 있게 문을 쾅쾅 두드리고 "Trick or Treat이라고 외치는 아이, 초인종을 누르고 차분히 기다리는 아이, 수줍어서 입도 떨어지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부모에게 교육을 받고 와서는 "I like your house decoration. (이 집 핼러윈 장식이 멋지네요)"라고 암기한 듯 외우는 아이들도 몇 명 있었다. 돌아서서 가다가 부모의 채근에 다시 고개 돌리고 "Thank you."라고 말하는 애들도 있었다. 할로윈이 첫해면 다소 뻘쭘할 것이고, 경험이 여러 해 되었다면 훨씬 능숙하겠지.



사탕을 주는 입장도 사실 다양하다. 진짜 무섭게 차리고 애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그저 소박한 수준!  사탕을 주는 방식도 다양한데,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사탕을 하나씩 쥐어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바구니를 내밀며 직접 골라가게 하기도 하지만, 남편은 한주먹 가득 퍼서 각각의 주머니에 담아주기 때문에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좋아서 소리를 꺅꺅 지르곤 했다. "You give a handful!"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handful 이라는 말은 한 손에 가득 들만큼 많다는 뜻이다. 또 This is the best house! 라고 신나서 친구들을 부르기도 했다. 사실 그저 사탕 몇 개 더 주는 것인데, 작은 것으로 생색내지 않고 준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하는 듯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두 시간이 지나고 나자 사탕은 거의 다 소진되었다. 사실 막판에는 열심히 퍼주다가 모자라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도 잠시 했었지만, 7시 40분이 넘어가자 마법처럼 애들이 사라졌다. 역시 마법의 날인가?


사실 이 활동은 별거 아니다. 그냥 현관에 둘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애들이 오면 사탕을 주고, 그 애들을 구경하는 단순한 놀이인데, 이게 왜 이렇게 재미난 건지. 사탕이 바구니에서 푹 파인 것같이 줄어들면, 다음 애들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봉지를 털어 넣기도 하고, 잠시 짬이 나면 앉아서 사탕 바구니를 뒤지기도 한다. 난 이제 달다구리를 전혀 안 먹지만, 예전에 나름 좋아하던 Tootsie나 Reese's 같은 것들을 보면서, 나 이거 좋아했는데.. 이런 얘기도 나누고...  마주 앉아서 같이 이러고 논다는 것이 왜 이렇게 즐거운지!


그리고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서로가 함께 하는 시간이 이렇게 늘 편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를 믿고 의지한다는 뜻인것 같다고. 결혼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마치 평생 같이 살아온 것처럼 편안한 관계... 그렇다고 해서 있든 없는 상관없는 게 아니라, 볼 때마다 신나고, 함께 있음이 좋은 관계... 실제로 이런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하다며 우리는 할로윈 밤도 그렇게 속닥거리며 보냈다. 마녀와 마법사도 그렇게 했을까?


사탕의 before / after  다 소진되고 요거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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