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두 번째 격리, 그러나 완전히 다른 격리...
며칠 전, 딸이 온다... 는 글을 올리고는 다시 글을 쓸 새가 없었다. 아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 딸이 드디어 왔다. 오기 전까지 사람 마음을 그렇게 태웠는데, 막상 와서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마치 평생 함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맘을 졸이면서, 아이가 오면 먹일 것들을 부지런히 준비했다. 정말 오게 되는 것이냐고... 실감 못한 날들이 지나고 진짜로 오는구나 싶으니 마음이 무척 분주했다. 먹고 싶다던 미역국을 끓이고, 소꼬리와 갈비를 넣고 찜도 했다. 사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게 그렇게 나는 우왕좌왕했다.
뭔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도 모르게 그냥 기진맥진 상태였기에 마음을 진정시키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부지런히 밥을 해서 도시락을 쌌다. 딸이 좋아하는 주먹밥을 쌌다. 전날 미리 해놓았으면 좋았겠지만, 전날에는 속재료만 해놓고, 밥은 아침에 지어야 제 맛이지. 그렇게 눈썹이 휘날리게 도시락을 싸고 있는데, 남편이 놀란 목소리로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비행기가 벌써 착륙했어!
분주히 움직이면서, "연착이 되려는지 알아봐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것이었다. 보통은 이렇게 딸이 올 때면, 비행기 이동 경로도 살펴보고, 시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미리 확인하곤 했는데, 이번엔 나도 어지간히 정신이 없었다보다. 사실 나보다도 남편은 더욱 이런 것을 잘 챙기는데, 이번엔 남편도 항암치료 직후였고 몸이 많이 고단하였기에 놓친 것이다. 남편이 안 그래도 도착 시간을 확인해보려고 하는데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착륙한 것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아이에게 문자가 왔다고? 세상에! 공항까지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어떡하지? 도시락은 이미 찬통에 담은 상태였고 나는 부엌을 정리 중이었다. 허둥지둥 가방을 챙기니, 남편이 딸에게 문자를 보낸다. "엄마, 지금 출발한다, 한 50분 걸릴 거야."라고 읽어준다. 거기다가 대고 내가, "아, 나 바지 좀 갈아입고!"라고 말했더니, 추가로 "엄마 바지 먼저 갈아입는대."라는 문자가 또다시 날아갔다. 아이는 깔깔대고 웃고, 천천히 오라고, 어차피 입국심사도 받고 짐도 찾아야 하니 괜찮다고 답이 왔다.
허둥지둥 나가는 나를 향해, 운전 조심하라고 남편이 당부 당부했다. 가면서 울지 말라고도 덧붙이면서... 정신 바짝 차리고 가야지. 자식이 눈 앞에 와 있는데 가다가 엉뚱한 짓 하면 안 되지. 집중 운전! 속도 규정도 잘 지켜서 재수 없게 경찰에게 걸리는 일도 없어야 하고! (캐나다는 속도위반 심하면 차를 뺏는다!)
운전 중에 남편과 딸이 문자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운전 중이므로 확인이 어렵다. 아이폰 시리더러 읽으라고 하면 되지만, 그러면 지도가 안 뜨니까 그냥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물었다. 아이는 일사천리로 세관을 통과하여 짐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25분이나 더 가야 하는데...
왜 소식이 없지?
그런데 그 이후로는 소식이 안 온다. 나는 궁금해하면서 운전을 계속했다. 분명히 비행기가 텅 비어있었다 했는데, 그래서 짐이 내려오는데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텐데 왜 소식이 없는 거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정면만을 보면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15분쯤 지나서 문자가 다시 울렸다. 아이가 드디어 모든 보안검색대를 다 통과해서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공항으로 차를 몰아 들어가는데 눈물이 나왔다. 남편이 울면서 운전하지 말라고 했는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국장으로 달려갔다. 엄마가 보인다는 문자가 들어왔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없었다. "아닌가?" 하는 아이의 문자가 다시 울렸다. 아이는 건물 안에서 나를 보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는데, 나는 다른 문으로 들어갔던 것이었다. 내가 다시 밖으로 나가자 그곳에 아이가 서 있었다.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움직이지 않은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진짜로 왔구나!
아이가 집을 떠나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가면서 부터이니까, 몇 달씩 떨어져 있는 것은 우리에겐 사실 일상의 일부였다. 그러나 그때는 본인이 선택해서 떠났던 것이었고, 이번엔 그냥 발이 묶여서 자의로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기에 모든 것은 완전히 달랐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아이가 시간이 오래 걸렸던 이유는, 다시금 검사실로 불려 들어갔기 때문이란다. 서류는 완벽하게 준비되어있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다시 불려 들어간다는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왜 왔냐는 질문에 "가족 만남"을 이유로 왔다고 했더니 허가서를 받았느냐고 퉁명스럽게 묻더란다. 그렇다고 했더니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서류를 챙겨가더니, "나 이 서류 처음 본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사천리로 준비가 되고 허가서를 너무나 빨리 받았더니, 아직 공항에 이 서류를 들고 들어온 사람이 없었나 보다. 조회한다고 다 가져간 사이, 옆에서는 영주권자들이 불려 들어와 가방을 다 열고 검사를 받고 있었다고 했다. 왜 한국에 다녀왔느냐는 어이없는 추궁도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가방검사까지 다 받아야겠구나!"하고 한탄스럽게 있었는데, 조회가 끝나자 다행히 그냥 보내줬다고 했다.
이제 집으로!
집으로 출발한다고 남편에게 문자를 하고, 아이에게는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옆에 앉아서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보니 정말 아이가 온 것이 실감이 나왔다. 집에 돌아오자 남편이 문을 열고 반겨주었다, 2미터 전방에서. 나는 이미 아이를 품에 안았고, 남편은 아직 항암치료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니 우리는 이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자가격리는 시작되었다. 그 전날까지 남편의 동위원소 치료 때문에 우리 부부는 이미 나흘째 격리 중이었고, 그것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격리가 시작되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그동안은 남편이 방 안에서 갇혀있고, 내가 음식을 방 앞에 가져다주었다면, 이제 입장이 바뀌어서 남편이 부엌을 자유롭게 출입하고 우리 모녀가 아래층 방에 갇혀있는 삶이 되었다. 남편은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도 가야 하고, 다음 주부터는 출근도 해야 하기에 우리와의 자가격리를 철저히 지켜야 했다. 안기고 싶은 다연이와 안아주고 싶은 그의 마음은 서로 짠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멈춰야 했다.
원래는 내가 아이와의 포옹을 미루고 아이 혼자 격리하자는 것이었지만, 남편이 극구 반대했다. 오랫동안 그렇게 혼자 있었던 아이를 여기 와서까지 그렇게 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밥은 누가 다 차려주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하면 된다고... 그래서 우리는 지금 남편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매일 아침, 뭐 필요한 거 없느냐는 물음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밤 자기 전까지 뭐 필요한 거 더 없느냐는 물음으로 마무리된다. 식사는 예쁘게 쟁반에 받쳐서 배달된다. 세상에 이런 호사가 없구나. 원래 대충 먹는 법이 없는 사람이라, 아무리 간단한 식사도 얌전하고 예쁘게 차려서 준비된다.
내가 준비해놨던 음식들은 예쁘게 담아서 원하는 것들과 함께 서빙해주고, 남편의 주종목은 또 그대로 요리해서 역시 가지런히 담아서 가져다준다. 귀찮을 법도 한데 정말 즐겁게 해 준다. 남편은 절대로 뭔가 해주면서 생색내는 법이 없다. 일급 호텔에서 서빙을 받아도 이렇게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항상 웃으면서 가져다주고, 더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챙겨주는 남편 덕분에 이번 자가격리는 정말 호강이 늘어졌다. 남편이 이층에서 딸그락거리며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를 들으면 냉큼 달려 올라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많이 생소하기는 하다. 미안하고 고맙고 그런 마음...
우리 집 아래층은 해가 잘 들지 않아서, 다른 집들의 지하실처럼 사용하는 곳이다 보니 음식 사진이 다 흔들려서 아쉽다. 실물은 더 예쁜데! 이제 딱 일주일이 지났다. 그래도 바깥으로 해서 뒷마당도 나갈 수 있는 자가격리, 음식 걱정할 필요 없고, 딸과는 도란도란 밀린 이야기 나누며 지내고, 남편과는 2미터 떨어져서 미소를 주고받는 시간, 한없이 감사하고 소중하다.
이렇게 격리가 끝나면 겨울이 찾아오겠지. 하지만 이번 겨울은 지난여름보다 따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