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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Oct 18. 2020

딸이 온다!

드디어 보더가 조금 열렸다.

지난 3월 말, 딸과 생이별을 하고, 그리고 7개월이 흘렀다. 전쟁과도 같은 상황, 이럴 때일수록 가족이 가까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아이를 보내 놓고, 나는 한 두 달이 지나면 상황이 정리되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때의 이야기는 여기 시리즈로 있다.


아이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엄마의 한국 집으로 들어갔다. 살기 위해 마련한 집이 아니라, 갑자기 정리하면서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을 모아놓기 위해 장만한 집이었다. 낯설고 생소한 그곳에서, 그래도 자신의 물건이 있어서 좋다며 스스로 위안하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상황은 점점 악화되면서 우리는 지쳐갔다. 캐나다 국경은 단단히 닫혀있었다. 그러던 5월 말 어느 날, 가족의 합체(Family Reunification)를 위해서 외국에 있는 가족에게 특별히 국경 문을 연다고 총리가 직접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거기에 내 딸은 없었다. 만 22세가 넘은 자식은, 성인이라고 분류되어서 직계가족으로 인정이 되지 않았다. 나이가 몇 살이든 부모님은 초대받아 들어올 수 있었지만, 자식은 성인이라는 이유로 부모를 찾아올 수 없었다.


이 얼마나 모순되는 정책인가? 거꾸로 자식이 여기에 영주권이 있으면, 국가밖에 있는 부모는 들어올 수 있는데, 그 반대의 상황은 허용이 안 되다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미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가 코비드 때문에 짐을 쌌는데,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 딸. 가을에 대학원에 가려고 합격하고 학교도 이미 선택한 상태였기에, 한국에서 새로이 자리를 잡으며 직장을 잡을 상황도 아니었다. 있는 직장도 잃는 시국에 연고도 없이 그곳에서 직장을 구할 수 있지도 않을뿐더러, 언제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어딘가에 취직을 하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냥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상태의 삶이 계속되었다.


일찍부터 홈스쿨링을 했었고, 친구들은 거의 모두 미국에 있었기에 딸은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 스물세 살, 한국에서의 보통 생활이라면 아직 한참 아이인데, 성인 자녀라고 부모를 방문하지 못하다니...




우울함이 깊어져 가면서, 우리는 이민국에 편지를 썼다. 아이의 사정상 한국에 그렇게 혼자 가있는 것이 힘드니, 집에 와서 좀 쉬다가 나중에 미국으로 가게 선처를 해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관광이 목적이 아니고 피치 못할 사정이라 생각되면 허가해준다는 글을 보았기에 정말 열심히 썼지만, 편지는 가차 없이 거절되었다. 심지어 사람이 죽어도 장례식을 위해 올 수 없는 마당에 이것은 가당치 않은 부탁을 한 셈이었다. 거절 답장의 내용은 마치 로봇이 쓴 것처럼, 22살이 넘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혹시라도 올 수 있게 될까봐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가 취소를 했다. 남편의 생일이 6월 초였기 때문에, 그거에 맞춰서 직접 와서 축하를 해주고 싶어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결국 선물은 아마존에서 보내고, 카드 내용은 내게 보내서 내가 대신 출력해서 카드에 붙여줬다.  (그 내용이 이번에 방 정리하면서 나왔다. 가슴이 찡 했다.)


예전에 자기 생일 때, 엄마를 보내는 티켓을 해줬던 것처럼 자기도 아빠에게 가는 티켓을 선물로 보내고 싶었으나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다고, 직접 가지 못해 미안하고, 하지만 마음은 함께 보낸다는 종류의 내용이었다.


일이 그렇게 되고 나니 맥이 쭉 빠졌다. 아니 화가 치솟아 올랐다. 무슨 나라가 이래? 가슴에 멍이 들어 골병이 들어가는데 다 죽여놔야 속이 시원하겠나? 그래서 결국은 캐나다 총리에게 이메일을 썼다. 내가 쓰고 남편이 다듬어줬다. 자식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이 마음을 알 것이다... 하면서 제발 자식에게도 문을 열어달라고... 그러면서 참조로, 이 지역 의원인 Ron McKinnon에게도 참조를 넣었다. 물론 총리에겐 답장을 받지 못했고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내가 새로운 편지를 다시 써야 할까 하는 즈음해서, 의원에게서 답장을 받았다. 그가 설마 직접 쓰기야 했겠냐만서도, 해결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는 내용의 편지가 도착했다. 이메일이 아닌 우편으로 왔다. 도움을 바로 주지는 못해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힘을 실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답장을 보내준 것은 감사히 생각했다.




그러고 다시 한 달이 흘렀다. 지지난 주 10월 3일, 남편이 퇴근하면서 흥분한 목소리로 뉴스를 확인해보자고 했다. 차 타고 오면서 뉴스를 들었는데 정확하게 알아보자며 급하게 검색을 했더니, 성인자녀 및 형제자매 조부모 손자까지 입국이 가능하게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뉴스를 보면서 눈물이 나왔다. 이민국 자료를 찾아보면서 조마조마하게 읽어 내려갔다. 



허용하지만 아직 확실한 내용은 정리가 안 되었고, 10월 8일에 자세한 확정안이 나올 테니 절대 성급하게 그전에 비행기 티켓을 사지 말라는 내용도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 리스트 안에 분명히 성인자녀가 들어있었다. 이 코비드 상황이 길어지면서 캐나다는 크리스마스 때까지도 이 국경 봉쇄를 계속 이어갈 생각이고, 그러다 보니 이 상황을 장기화하기 위한 방침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어찌 편지를 쓴 사람이 나뿐이었겠는가!


그리고 한 주를 다시 보내고 드디어 10월 8일에 자세한 내용이 발표되었다. 절차가 아주 단순하지는 않았다.  이민국에서 제공하는 양식의 서류를 작성해서 아이가 사인하고, 내가 다시 받아서 사인하고, 공증을 받아서 관련 자료와 함께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서류를 작성해서 아이에게 보냈다. 아이 이름은 그냥 내가 쓰면 되지만, 그래도 사인을 받았다는 증거를 만약을 대비해서 남기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더니, 마침 아이가 한국에서 자는 시간인데 깨서는 전화를 했다. 텔레파시가 통했나 보다. 


그렇게 아이에게 사인을 받고, 나는 다시 남편에게 파일을 보내서, 남편이 이서류를 출력해서 가져왔다. 그리고는 같이 공증인을 찾아갔다. 그런데 공증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가 사인을 해야 하는 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증인의 칸에 날더러 사인을 하라고... 흠! 그것 분명 아닌 것 같아서, 그러지 말고, 그냥 공증인 칸에 사인을 해달라고 우겼다. (그렇게 하길 다행이었다)


집으로 가져왔는데 우리 집에는 스캐너가 없어서, 나도 카메라로 찍어보고, 남편이 어도비 폰 스캐너로도 해보고, 그렇게 해서 아이에게 보냈다. 아이는 제대로 동사무소에서 컬러로 된 영문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겠다고 갔는데, 아뿔싸! 한국은 한글날, 국경일이었다. 그래서 집에 가서 프린터 연결해서 온라인으로 떼서 네가 신청서 넣으라고 해놓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라고 일러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3시쯤 전화가 왔다. 프린터가 고장이 나서, 어떻게 해도 출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걸 미루다가는 신청서가 밀려서 언제 허가가 나올지 모르겠는 기분이 들었기에 하루라도 빨리 하고 싶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캐나다에서 온라인으로 가족관계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집에 있는 프린터는 잉크가 별로 없어서 출력이 너무나 흐린 흑백으로 나왔다. 게다가 폰 스캐너는 화질도 떨어지는데... 그래도 새벽에 기어이 이 사진을 찍고 난리를 쳐서 아이에게 보냈고, 아이는 그대로 접수를 했다. 


그리고는 그다음 날 오후, 공증 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아직 접수 안 했으면 서류 다시 해가지고 오라는 말이었다. 정부 측에서 내놓은 서류가 불완전하여 새로 양식이 올라온 것이다. 아직 접수하지 않은 사람들은 새 양식으로 해서 공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미 접수한 사람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마음이 불안해졌다. 서류를 다운로드하여서 급하게 다시 쓰는데, 자꾸 오타가 나고... 연락받은 시간은 이미 공증사무소 문 닫을 때 다 되어가는 상황이었기에 발을 동동 구르다가 그냥 포기했다. 이미 넣은 사람은 괜찮다고 했으니 기다려보자고...


그러고 나서 주말, 월요일 추수감사절... 무겁고 길게 느껴지는 롱 위켄드였다. 중간에 아이와 통화했으나, 물론 답장은 아직 없다고 했다. 연휴가 끝나고 화요일, 다시 업무가 시작되는 날, 남편은 항암치료 준비로 병원에 가 있는 사이에 딸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남편과 내 앞으로 전달된 이메일이었다. 열어보는데 결론이 무엇일까 영어로 한가득 쓰여있는 내용을 눈으로 급히 훑기 시작하는데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허가서 나왔다고! 흑흑, 드디어! 그동안 이걸로 이렇게 마음을 졸였구나!


남편이 병원에서 돌아왔길래 말해줬더니, 알고 있다고 대답을 했다. "내가 병원에 있는데, 아 통과되었구나! 하는 느낌이 왔어." 우리 가족은 가끔 이렇게 이상하다. 딸도 자다가 한국 시간 새벽 2시인데 갑자기 잠이 깨서 이메일함을 확인했더니 2분 전에 도착해 있었다고 말했다.





남편은 아이가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으니, 내가 그곳에 가서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고 나서 데려오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그러면 내가 한국 가서 자가격리 2주일 해야 하고, 그리고 돌아와서 또다시 자가격리를 2주일 하면, 한 달이나 꼼짝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지금 항암치료 시작하는 남편을 두고 가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빨라야 한 달인데... 보내주겠다는 남편의 마음은 너무나 고마웠지만, 고민하다가 결국 그냥 아이가 혼자 오는 쪽으로 정해졌다. 아이는 그냥 빨리 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 급변하는 세상에 언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아느냐며, 자기 혼자 가방 싸서 올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알아서 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일요일로 티켓 구매까지 끝났다!


이제 곧 아이가 온다. 우리는 음식을 계획하고, 장도 보고... 오래된 침대의 매트리스도 새로 주문했다. 남편의 막내아들 생일이 다음 주말로 잡혀있었는데, 우리가 자가격리해야 한다니, 아이들이 미루자고 연락이 왔다. 한 가족이 되어서 서로 사랑하며 아끼는 것이 너무 고맙다. 친형제도 아니고 많이 만났던 것도 아닌데, 아이가 와야 할 순간에 여러 번 못 왔던 것에 같이 가슴 아파하고, 눈물까지 보여줬던 아이들... 서로가 정말 형제자매같이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도 할머니랑 이모가 걱정 많이 해주고, 바쁘던 사촌언니가 최근에는 시간을 많이 내줘서 아이가 많이 힘을 얻었는데, 이렇게 올 수 있게 되었다고 다 같이 너무 기뻐해 주셨다. 어른들 앞에서는 힘든 내색을 안 하는 아이였기에, 그 무게가 더 컸던 거 같다.


모두에게 감사한다. 이모와 사촌언니가 공항까지 배웅을 해줬다. 공항이 너무나 한산하더라고 했다. 아이는 그렇게 비행기를 탔고, 그리고 무사히 집에 올 때까지 나는 또 숨죽여 기도할 것이다.





캐나다 영주권자나 시민권자 중 형제자매, 조부모님, 손자 손녀, 미성년 자녀 및, 사귄 지 1년이 넘은 연인을 초대할 수 있는 방법을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아래 링크는 직접 가볼 수 있는 이민국 사이트.


스텝 1:

캐나다 시민권자 영주권자 가족이 아래 서류(imm0006e-2020-10-09)의 Section 1, 2를 작성하여 한국에 있는 확장가족에게 보내준다.

https://www.canada.ca/content/dam/ircc/documents/pdf/english/kits/forms/imm0006e-2020-10-09.pdf


스텝 2:

한국에서 확장가족이 받아서 Section 3 에 전자서명하고, 다시 캐나다의 가족에게 보낸다.


스텝 3:

캐나다 가족이 이를 출력하여, 공증인(commissioner for oaths, justice of the peace, lawyer or notary public) 앞에서 Section 4에 엄중히 사인하고, 공증인은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Section 5에 내용을 작성하고 사인하고, seal을 붙인다.


스텝 4:

캐나다 가족이 이 seal 받은 서류를 스캔하여, 한국의 확장가족에게 다시 보내준다.


스텝 5:

한국의 확장가족은 이 서류와 함께 다음과 같이 입국허가 신청서를 넣는다.


캐나다 입국을 위해서는 반드시 비자나 eTA가 필요하다 (우리는 eTA가 있었다, 없으면 eTA를 따로 신청해야 하는 것인지 이대로 진행해도 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대부분 정식 비자가 아니고 eTA만 있으면 되니, eTA를 기준으로 설명을 적어본다.


https://secure.cic.gc.ca/enquiries-renseignements/canada-case-cas-eng.aspx

위 사이트로 가서 신청서(Webform)를 작성한다.


Type of application/enquiry (required) 이거는 Elecgtronic Travel Authorization으로 선택하고,

그 밑에 나오는 Type of application/enquiry (continued)

Elecgtronic Travel Authorization - Case Specific Enquiries로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밑에 나오는 빈칸에, Family Reunification으로 방문하는 것이니 허가를 요청한다고 쓰고, 가족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IMM-0006e-20-10-09영문 가족관계 증명서를 첨부한다고 적는다. 그리고 eTA가 있다고 밝히고 eTA 번호도 적어 넣는다.


그래서 이 서류들의 스캔본을 첨부파일로 넣으면 신청 완료. 양식 중에, 확장가족의 UCI넘버를 넣는 칸이 있는데, 대부분 없을 것이다. UCI나 ICCRC 넘버 중 하나를 꼭 넣어야만 신청이 가능해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길래 eTA 넘버를 넣었더니 해결되었다.


그렇게 보내 놓으면 2주 안에 답변이 온다고 되어있다. 우리는 정말 빨리 받은 것이다. 


스텝 6:

출국 시, 승인레터 사본, IMM-0006e-20-10-09(6개월간 유효) 사본, 영문 가족관계 증명서, eTA 승인레터 사본, 캐나다 가족의 영주권(또는 시민권)사본, 캐나다가족의 여권 사본, 리턴 티켓을 가지고 공항으로 간다. 여행자보험도 들어서 함께 들고 가는 것이 좋다.


보더를 통과할 때, 방문의 주요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데, 그것은 무조건 family reunification이다. 관광도 할 거다.. 뭐 이런 소리 하면 절대 안 되고, 15일 이상 거주하는 증명이 있어야 한다.(이건 리턴 티켓으로 될 듯)

자가격리 플랜(BC Isolation Plan)은 ArrivCAN의 앱을 다운로드하여 준비하고, 비록 앱을 작성해서 컨펌 번호를 스크린샷 했어도, 비행기에서 나눠주는 양식도 같이 쓰는 것이 좋다고 한다. 보더의 심사관에 따라서 그것을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단다.


모든 가족의 무사 상봉을 빌며, 여기까지 설명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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