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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Oct 17. 2020

포도주를 담그다!

자그마치 포도를 130kg 구입하여 작업.

집에 저장식품 만드는 것이 일상인 우리 남편의 생활. 이 계절이면 포도주를 담근다. 마땅한 포도를 구하지 못하면 포도주 패키지 세트를 사서 집에서 발효시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진짜 포도만 하랴. 게다가 남편의 식사에는 포도주가 빠지지 않는다. 우리가 물을 마시듯 그렇게 식사와 함께 포도주를 늘 먹기 때문에, 이렇게 담그지 않으면 그 양이 감당이 안 되기도 한다.


작년엔 진짜 포도주는 못 담갔지만 올해는 꼭 하고 싶다고 해서 두 주 전부터 포도 중간상인과 연결을 하려고 시도를 여러 번 했다. 이래 저래 연결이 안 되다가 금요일에 갑자기 연결이 되어서  다음 날 포도를 사러 급히 가게 되었다.


화창하고 쌀쌀한 토요일 아침 9시에 그곳에 도착했다. 보통 게으르게 보내는 주말 아침일 텐데, 사람들이 벌써 모여서 줄을 서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저 버켓들 뒤에 있어서 안 보이지만, 재미난 것은, 대부분이 노인이라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번거롭게 이런 거 안 한다. 그냥 쿨하게 사 먹으면 되지... 우리도 그 노인들의 행렬에 합류했다. 그리고 이 버켓들 안에는 포도즙이 들어있다. 이곳에서는 포도주용 포도도 팔지만, 집에서 포도즙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들여온 포도를 짜서 이렇게 통으로도 판매한다. 



입구에는 그날의 물건과 시세 등이 공지되어있다. 열심히 전화로 물어보다가 물건이 들어온다고 하면 재빨리 와야 한다. 안 그러면 구할 수 없다. 올리브 같은 일부 물건들은 미리 예약해야만 하는데, 우리는 운이 좋아서 그날 여분으로 들어온 11 박스 중의 한 박스를 구입할 수 있었다. 물건 구매도 이렇게 그냥 서서 이루어진다. 필요한 것을 말하고 돈 내면, 안쪽으로 무전을 보내서 물건이 올라온다.


아래 사진 왼쪽이 창고 내부, 오른쪽이 오늘 들어온 올리브 박스이다. 



그리고 무전을 받고 올라온 포도 박스들... 총 8개 박스를 구매했다. 1 박스에 36 파운드, 그래서 총 288파운드, 130kg이다! 정말 자잘한 포도가 가득 들은 포도박스! 나는 무거워서 들 엄두도 못 내고 남편이 싣는 것을 그냥 구경만 했다.


포도를 든든히 싣고 나니 아까 들어갈 때에는 눈에 안 들어오던 것이 새삼 들어온다. 산처럼 쌓인 박스가 바로 우리 같은 포도가 들어있던 박스이고, 그 옆에 쌓여있는 것이 포도 줄기다. 세상에! 포도즙을 짜면서 골라낸 줄기가 이렇게나 많은 것이다! 내가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자 그곳에서 일하는 분이 이것을 찍으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바로, 오늘 나온 포도 줄기! 색이 아직 산화되지 않아서 연두색이었다.



포도 향 가득한 차를 타고 오면서 우리 부부는 연신 킬킬거렸다. 사과 쟁여다가 사과주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이렇게...! 더불어 구매한 올리브도 저장해야 하고, 그저 일복이 터졌다. 한 친구가 페이스북 보더니, "외국 가면 빵이랑 과일이나 먹으며 꽃이나 보고 살 줄 알았더니 매일 김장을 담그고 사는 모양"이라고 했는데, 그게 딱 맞는 말이다. 내가 입이 촌스러워서 그렇게 예쁜 것만 먹고살지는 못하니 어쩌겠는가!




집에 돌아와서는 곧장 작업에 돌입했다. 포도는 정말 쉽게 상하기 때문에 빨리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부지런히 차에서 내려서 뒤뜰로 데려갔다. 이렇게 두 번에 나눠서 옮겨야지, 무거워서 한꺼번에 싣지도 못하겠다.



이 포도가 바로 그 유명한 카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다. 자잘한 알갱이가 잔뜩 달려있고, 하나 떼어서 먹어보니, 그 안에 씨가 가득했다. 그냥 포도로 먹기는 곤란한 종류였지만, 풍미는 아주 좋았다. 판매하는 이가 말하길 이것이 old vine이라 했다. 즉, 충분히 성숙한 포도나무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지난번 애플 사이다 만들기 (클릭) 글을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이 장소가 익숙할 것이다. 우리 집 뒤뜰의 작업장소이다. 애플 사이다 만드느라 착즙 했던 도구가 오른쪽에 보인다. 포도 착즙 전에, 먼저 만들었던 애플 사이다 비니거의 착즙을 먼저 여기서 하였다. 그렇게 해서 발효통을 확보하느라...



이것이 이번에 사용하는 도구다. 애플 착즙기랑은 또 다르지 아니한가! 빨간 손잡이를 돌리면, 이렇게 요철 같은 곳으로 포도가 통과되면서 착즙이 되어서 아래 있는 발효 통으로 곧장 떨어지는 구조다.



아무래도 영상으로 보는 게 느낌이 쉽게 올 테니 엉성한 영상을 끼워 넣어보자.


위 동영상처럼 하다 보면 어느새 발효통이 가득 찬다. 우리는 이런 통을 4개를 만들었다.


발효통에 떨어진 포도즙에서 줄기를 제거하고 있다.


사실 남편은 이 포도의 줄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을 좀 했다. 옛날엔 이 줄기가 함께 들어있으면 텁텁한 맛이 난다고 알뜰히 제거했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거기서 깊은 풍미가 나온다며 선호하는 분위기가 또한 유행이다. 그래서 이걸 제거할 것인가, 함께 넣고 발효시킬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일단 착즙을 하고 그다음에 적당히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줄기들! 자세히 보면 포도가 제법 많이 달려있다. 줄기만 모아서 만드는 와인도 있다고 했기에 남편더러 그거 만들 거냐 했더니 안 하겠단다. 그래서 이 줄기는 내가 쓱싹 했다! 식초를 만들 수 있는지 시도를 해보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이 줄기니 당분은 상당히 부족할 것이다. 당연히 즙도 없고... 그래서 애플 사이다 비니거 만들듯이 물을 섞어서 시도하기로 했다. 



물과 설탕의 희석 비율은, 물 1리터 당 설탕 1/4컵 정도면 적당하다. 혹시라도 모를 수돗물의 소독약 성분을 날리고 균도 죽이기 위해서, 물을 팔팔 끓여서 설탕을 섞고 식혀서 사용했다. 뜨거운 물을 포도 줄기에 부으면, 거기에 존재하는 자연 이스트 균이 죽기 때문에 반드시 실온으로 식혀야 한다.


자, 이제는 우리가 할 만큼 했고, 나머지는 자연에 맡길 일이다. 나는 왼쪽의 줄기를 관찰할 것이고, 남편은 오른쪽의 와인을 관리할 것이다. 



오른쪽 와인을 보면, 아직 발효가 시작되기 전인데, 건더기가 거의 잠길만큼의 액체가 보이니 참으로 신통하다. 우리가 할 일은 얘네들을 계속 관찰하면서 매일 저어주는 것이다. 꼭 저어줘야 하는 이유는 발효가 골고루 되게 하기 위함도 있고, 또한 곰팡이가 피지 않게 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계속 움직이면 곰팡이는 피지 않는다. 


이것은 사실 균들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유익균이 이기느냐 곰팡이 균이 이기느냐에 따라서 발효과정이 달라 지기 때문에, 유익균들이 전세를 점령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이런 것을 시작하고 나면 사람이 참 조바심이 생기고 인내심이 부족해지기 쉽다. 하루 지나고 다음 날이 되었는데, 와인은 그리 활동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음... 이스트를 넣었어야 하는 것일까? 상하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은근 신경이 쓰이지만, 믿고 계속 보기로 했다. 


사실 착즙 하던 날에 이미 날씨가 너무 차가웠기 때문에 포도도 엄청 차가웠다. 발효통을 만져보니 아직 그리 온기가 닿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 이틀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리고 사흘쯤 지나자 엄청나게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내가 낮에 저었을 때, 그리고 남편이 저녁때 저었을 때의 동영상을 구경하면, 발효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발효 소리를 듣기 위하여 음악은 아예 삽입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발효는 날짜가 가면서 계속 변화했다. 한 이틀간 열심히 타오르다가, 지금은 잔잔하게 발효가 진행 중이다. 색도 많이 변해서 붉은 기운이 많이 돈다. 농도도 더 진해진 것처럼 보인다. 포도 줄기를 모아놓은 곳도 발효가 열심히 진행되고 있다. 


저어주기 전에는 이렇게 3층으로 분리된다.
색이 확연히 달라졌다.
줄기를 모아놓은 통도 마찬가지로 색의 변화가 보인다.


이제 일주일 되었다. 아마 하루 이틀쯤 더 한 이후에는 2차 발효통은 데미잔으로 옮겨갈 것이다. 대체적인 과정은 지난번에 올렸던 애플 사이다와 상당히 비슷하다. 추후 어떻게 되는지는 다음에 다시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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