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신식 재봉틀보다 아름다운 스티치를 만들어주는...
지난번에 아기 이불을 만들고 나서 그 예쁜 파프 재봉틀은 친구에게 돌아갔다. 빌려다 놓은 지 거의 2년이 되었고, 사실 많이 사용하지 않았지만, 막상 보내기 직전에 이불을 하나 만들고 나니 정이 듬뿍 들어버려서 보낼 때 마음이 허전해졌다.
물론 재봉틀을 진작에 하나 살 수도 있었지만, 한국에는 고가의 재봉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완전 컴퓨터화된 기종으로, 아름다운 재봉틀이다. 이곳에 올 당시 가져올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이 두고 왔는데, 언젠가는 꼭 가져올 물건이다.
내 재봉틀 사랑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단돈 10만 원짜리 작은 재봉틀이 그 시작이었다. 참 놀라운 사실은 이런 작은 재봉틀로도 정말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작품은, 낡은 셔츠를 이용한 쿠션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어린 딸의 옷을 참 많이 만들어 입혔다. 툭하면 장력이 틀어지고, 밑실이 엉키곤 했지만, 또 낑낑 매고 들여다보고 손 보면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막판에는 북집이 다 닳아서 더 이상 기능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두 번째 재봉틀은 미국에 잠시 살던 당시, 나의 상황을 보고 도움을 주고 싶던 사촌동생이 멀리 코네티컷에서 로체스터까지 재봉틀을 싣고 와서 임시로 빌려줬던 것이었다. 당시 신식으로 기능 많고 스티치 많은 시어스 백화점에서 나온 재봉틀이었다. 손으로만 만들던 퀼트를 처음으로 재봉틀로 시도하여 작은 이불을 만들게 해 준 재봉틀이었고, 감사의 뜻으로 작은 베이비 퀼트를 만들어서 함께 돌려줬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구입한 파프(PFAFF) 7570 재봉틀은 명품 재봉틀이었다. 당시 중고 가격이 200만 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재봉틀은 정말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당시 최신 고가형 재봉틀이었고, 힘이 좋아서 두꺼운 것도 잘 박히는 독일의 명품이었다. 파프 재봉틀만이 가진 듀얼 피드(Dual Fee)는 정말 특별한 매력이었다. 보통 재봉틀의 노루발 뒤에 작은 또 하나의 발이 달려서, 천을 살살 당겨주는 장치이다. 그러면 밀리지 않고 크림처럼 천이 박혀서 나간다.
나는 당시에 퀼트에 완전히 푹 빠져 있었고, 티브이에 나오는 명강사들의 퀼트 강의를 녹화해놓고 보고 또 봤다. 그리고 서점에 가면 할인코너(Bargain book)에 가서 재고정리 특가 세일을 하는 퀼트 책들을 집어와서 집에서 여러 가지로 실험을 해보곤 했다. 패브릭 샵에 데려다 놓으면 하루 종일도 놀 수 있는 만큼 원단에 대한 사랑도 깊었지만, 또한 월마트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원단들도 잘만 구매하면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한 마에 단돈 천 원 하는 할인 원단을 보고 떠오른 디자인이 있어서 성큼 4마를 구입해왔다. 그렇게 해서 새 재봉틀로 만든 나의 첫 작품 퀼트는 지금도 내가 몹시 사랑하는 작품이다. 모든 과정에 나의 설렘이 들어있어서 그러하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 가라지 세일을 갔는데, 오래된 재봉틀을 판매하는 것을 발견했다. 온통 쇳덩어리였고 엄청나게 무거웠다.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그 재봉틀을 보며 신기해했고, 나는 마침내 재봉틀에 관한 책까지 구매하고 재봉틀의 종류와 사용법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 공부가 나에게 참 유용했다. 그 이후로 어떤 재봉틀을 내 앞에 데려다 놓아도 두려움 없이 다룰 수 있었고, 누구든 재봉틀이 잘 안 되면 우리 집에 들고 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졌으니까 말이다.
그 아름다운 구식 재봉틀은 그렇지만 거의 늘 장식용으로 놓여있었고, 나는 대부분의 작업을 파프 재봉틀로 하였다. 쉽사리 장력이 맞춰지지 않았기도 했지만, 잘 되는 재봉틀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퀼트를 할 때, 천과 솜의 세 겹을 한꺼번에 밀어주는 워킹풋(walking foot) 노루발을 장착할 수 없는 디자인이기 때문에, 세 겹을 놓고 박을 때면 약간씩 밀리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재봉틀들을 맛 볼 기회가 생겼으니, 그게 바로, 재봉틀 회사의 협찬이었다. 내가 집을 공방처럼 사용하며 재봉퀼트 수업을 하고 있으니 버니나(Bernina)라는 퀼트 재봉틀계의 명품 업체에서 어느 날 연락이 왔고, 내가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재봉틀을 협찬해주겠다고 하였다. 결국 우리 집에는 최신식 버니나 재봉틀이 수업용으로 놓이게 된 것이다. 너무 고맙지만 내가 과연 협찬받은 만큼 물건을 팔아줄 수 있을까?
나는 원래 장사는 못 하는 사람이라며, 이렇게 가져다 놓아도 내가 팔아준다는 보장이 없다고 처음부터 단단히 말해두었지만, 역시 우리 집에 와서 이 아름다운 재봉틀을 보는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냉장고보다 소음이 적으며, 버터크림처럼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재봉틀을 다루다가, 집에 가서 자신의 재봉틀과 다시 씨름을 하게 되면 어찌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렇게 재봉틀도 몇 개 팔아줘 가면서 집에서 두대의 컴퓨터 재봉틀을 놓고 사용했다. 구식 재봉틀과 어린이 재봉틀까지 하면 집안에 재봉틀이 5대가 놓여있던 적도 있었다.
매년 했던 전시회 때가 되면, 그때는 정말 최고가 제품을 전시장에 진열 협찬해주는 재봉틀 회사. 그 덕에 우리 회원들은 점점 더 고급스러운 재봉틀을 구경하게 되었고, 나를 통해 재봉틀을 구입했던 한 멤버가 결국은 더 고급형으로 갈아타게 되었으니, 나도 얼떨결에 그녀의 첫 번째 재봉틀을 중고로 구입하게 되었다.
테이블까지 딸려온 아름다운 재봉틀. 사실 나는 그보다 더 신형을 원하지도 않았다. 재봉틀은 사실 직선 박기만 된다면 자기가 할 일의 95%는 하는 거라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늘 하는 이야기지만, 작은 소형차로도 부산까지 갈 수 있고, 고급 세단을 타고도 갈 수 있으니, 승차감과 속도와 여러 가지를 비교해보면 가격의 차이는 확연히 있다. 그게 내가 늘 수강생들에게 하던 이야기였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과 자신이 원하는 기능의 타협선을 찾으라고...
지금 한국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재봉틀은 바로 이것이다. 이것을 두고 저가형 비슷한 재봉틀을 또 구입하는 것은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걸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빌려서 사용하면서 한국 가서 가져올 날을 벼르고 있었는데, 코비드가 터지면서 한국에 가는 것이 당분간 불가능해진 덕분에 이제 언제 가져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는 별로 바느질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재봉틀을 갖고 싶었다. 그냥 잘 박히기만 하면 된다고, 결국 중고로 구입하겠다는 결정을 했다. 중고시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정한 맥시멈 가격은 $100. 이것을 넘기지 않겠다고 일단 마음을 정하고, 오래된 재봉틀을 검색했다. 모든 기계는 오래된 것들이 좋지 않던가? 고장 나지 않는 정직한 기계들...
여러 가지 물건들이 눈 앞에 왔다 갔다 했다. 화이트, 쥬키, 바이킹... 이름만 들어도 느낌이 확 오는 재봉틀을 뒤지다가 내 눈에 들어온 싱거미싱. 이 촌스러운 일본식 이름으로 우리와 친숙한, 재봉틀의 선구자 singer machine이 눈 앞에 나타났다. Singer 15-91. 작동 잘 됨, 가격 변동 불가하니 묻지 말 것! 설명도 단순한 이 문구에서 어쩐지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추가 설명으로 워킹 노루발이 달려온다고 되어있었다. 이것은 나를 위한 기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약속을 잡고, 남편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했다. 남편 회사에서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는 아파트였는데, 처음에 잘 찾지 못하고 그 지역을 한참 헤매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는 아파트 앞에 나와서 앉아있었고, 우리가 헤매는 모습을 보고 있었단다. 하하! 물론 그도 우리가 그 사람들일 거라는 확신은 없었으니 지켜만 봤겠지.
그의 집 현관 앞에 놓여있는 재봉틀은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는 시연을 요청했고, 그는 실을 끼워서 보여주었다. 할머니가 물려준 재봉틀일까 하는 나의 상상은 빗나갔다. 그는 자신이 직접 쓰기 위해서 이 재봉틀을 구입했고, 오토바이의 시트커버 같은 것들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다. 즉, 힘이 좋은 재봉틀을 원해서 이걸 구입해서 사용하다가, 작업량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공업용 재봉틀을 구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안 쓰고 밀어뒀던 재봉틀을 판매하는 것이라며 좋은 재봉틀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이 녀석이 우리 집에 왔다. 아직 갈 곳을 못 정해서 현관 앞쪽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냥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재봉틀이다. 내 재봉틀이 한국에서 와도 이것은 이것대로 여전히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는 앤틱이다. 도대체 몇 년에 만들어진 재봉틀일까? 나보다 나이가 많을까? 이런 것들을 궁금해하면서 시리얼 넘버를 찾아서 검색을 하였더니 1936년에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세상에! 85세의 재봉틀이다. 음! 이 녀석이라고 하면 안 되겠다, 버릇없이! 하하!
재봉틀을 다 덮으면 책상 모양이 되지만, 안쪽에 있는 재봉틀을 꺼내면 이렇게 위로 올라와 앉는다. 그리고 앞쪽에 작은 서랍이 있어서 자질구레한 소품을 담을 수 있다.
고맙게도 전구에도 불이 들어왔다. 불을 한 참 켜놓으면 뜨끈해진다. 그리고 여기에 달린 이 하얀 노루발이 워킹 풋(Walking Foot)이다.
아래 사진에서, 밑으로 내려와 있는 이 레버가 재봉틀을 작동시키는 버튼이다. 무릎을 이용해서 오른쪽으로 밀면 재봉틀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지난번에 만든 아기 이불은 아직 주인에게 가지 않았고, 나는 거기에 뭔가를 더 얹고 싶다고 고민하다가 베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갓난 아가는 아직 베개가 필요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쓰지 않겠는가? 그래서 구색을 맞춰주고 싶었다. 이불을 만들고 남은 조각을 새 재봉틀로 이어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바늘땀을 만들어내다니! 내가 여러 재봉틀을 익히 다뤄봤지만, 중고 재봉틀이 이렇게 처음부터 그림 같은 바늘땀을 보여주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흔히 장력을 맞추느라 한참 씨름을 하기 일쑤다. 그런데 이 재봉틀은 데려온 이후에 아무것도 손 보지 않았는데, 얇은 천을 박든 두꺼운 천을 박든 바늘땀이 한결같이 가지런히 나왔다. 어디가 앞면인지, 어디가 뒷면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깔끔한 바늘땀이었다.
요새 나오는 일반 재봉틀들은 수평 가마를 사용한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북실을 아래쪽에 넣는데, 위에서 들여다보면 북실이 얼마나 남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편리한 구조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경우에 실 장력을 맞추기가 어렵고, 더구나 플라스틱 북집이다 보니 빨리 닳는다. 내 첫 번째 재봉틀은 그렇게 해서 명을 다 한 경우였다. 그리고 90도 회전한다. 그런데, 구식 재봉틀은 전부 쇠로 된 구조이고, 180도 회전한다. 즉, 재봉틀의 힘이 세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 모델을 넣고 검색을 하면 명품이라는 찬양의 글이 잔뜩 쏟아진다. 이 재봉틀로 박을 수 없는 것이라면 어느 가정용 재봉틀로도 박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앤틱이라서 장식품처럼 거실 한쪽에 놓여만 있어도 아름다울 물건이 이렇게 확실하게 제 역할을 다 해주니 너무나 감사한다. 그 파워풀함을 새삼 경험하면서 경외심이 드는구나.
이제 내게 다시 재봉틀이 생겼다. 나의 바느질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아닌가 보다. 여전히 재봉틀을 보면서 이렇게 가슴이 설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돌이켜보면 내 재봉틀은 첫 번째 저가형 재봉틀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고 재봉틀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다가 내게 온 물건이다. 새것이라는 것이 내게는 그렇게 의미가 있지 않은가 보다. 하긴 나는 무엇이든 그랬던 것 같다. 어떤 물건이라도 중고라고 불편한 마음을 가졌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무슨 물건이든 한 사람과 인연이 다 끝나면 다른 사람과 또 다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주인에게 많이 사랑받지 않았다 해도 두 번째, 어쩌면 세 번째 또는 네 번째 주인일 수 있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사랑해주리라, 지금은 나와 닿아있는 인연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