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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pr 19. 2021

모종 만들기, 궁상맞은 준비부터

집에서 순전히 취미로 작게 하는 모종 만들기 1단계,장비빨을세워봐?

초보자는 모종을 사서 심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편안한 방법이지만, 가드너의 입장에서는 봄을 기다리는 동안 집에서 모종을 만들면서 관찰하는 것도 재미 중 하나이다. 발아시켜서 모종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지만, 씨앗을 한 봉지 구입하면 넉넉한 양이 들어있으니 초보자라 해도, 실패를 하면 어떤가, 그러면서 또 많은 것을 배울 테니 말이다. 


그런데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려면 장비가 필요하다. 새로운 취미를 하는 데 있어서 일명 장비빨을 세우는 것 또한 재미난 일이다. 가드닝도 그렇다. 아주 잘 드는 원예 가위도 필요하고, 진창을 걸어 다니는 부츠도 필요하다. 꼬마 삽과 필요한 도구들을 담아가지고 다니는 작은 도구 상자도 필요하고, 집안에서 식물을 키우게 돕는 그로우 라이트로 있으면 좋겠다 싶고...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에는, 과연 내가 이걸 얼마나 오랫동안 즐길 수 있을까 잘 모르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를 하기가 꺼려지는 것이 또한 인지상정이다. 되지도 않을 모종 만든다고 모종 트레이를 샀다가 안 쓰고 그냥 처박아두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모종 만들기의 첫 단계인 모종 화분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보려고 한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이미 눈치를 채셨으리라. 뭔가 돈이 안 들거나 적게 드는 팁이 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맞다. 하지만 처음부터 공짜를 들이밀면 감동이 떨어지니, 모종 만들기를 위한 각종 틀들을 여러 가지로 다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1. 모종 트레이

이것이 바로 장비빨 세우고 싶게 만드는 그 첫 번째 물건이다. 나는 궁상맞게 하고 있는데, 남들이 이렇게 근사한 넓은 판에다가 모종을 잔뜩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참으로 부러운 생각이 든다. 나도 거기에 모종을 심고 싶다는 생각이 절정에 이르면 이것을 사야 한다. 내가 작년에 구입한 물건은 이것이다.


자그마치 모종 72개를 만들 수 있는 작은 화분 구멍이 가지런히 붙어있는 모양이다. 모종을 더욱 잘 자라게 해 준다는 육각형으로 되어있다. 그럴 리가! 육각형이 진짜로 신비의 힘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이런 모종 트레이의 좋은 점은, 화분 아래쪽에 쟁반이 있어서, 물과 흙을 받아준다는 것이고, 또한, 그래서 항상 모종을 촉촉하게 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위에는 투명한 플라스틱 뚜껑이 있어서, 역시 발아의 적정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게 해 주는데 큰 도움을 준다. 


앞에 쑥 올라와 웃자란 천일홍과 뒤에 작게 나있는 채송화들... 초난감!


그렇다고 완전 유용한 것은 아니다. 같은 모종을 정말 많이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사실상 이것은 그렇게 의미가 있지 않다. 왜냐하면, 나처럼 줄 별로 각기 다른 씨앗을 심는다면 난처한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씨앗의 발아 조건은 씨앗마다 많이 다르고, 특히나 발아기간은 정말 차이가 난다. 심고 나서 이삼일이면 싹이 트는 애들도 있는 반면, 어떤 것들은 한 달이 걸리기도 한다.


문제는 발아의 조건과 생육의 조건이 다르다는 것이다. 발아할 때에는 따뜻하고 습도가 높은 것이 일반적으로 좋지만, 발아 이후에 제대로 성장하려면 온도는 그보다 낮아져야 하고 햇볕을 많이 쬐어야 한다. 통풍도 선선하게 잘 되는 것이 좋은데, 아직 발아가 안 된 친구들을 위해서, 멀쩡히 태어난 아가가 계속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하는 곤란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미 발아된 싹들은 순식간에 웃자라버리는데, 너무 웃자란 아이들은 약해서 나중에도 자리를 못 잡는다. 어떻게든 그 점을 극복해서 진행해보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좋지 않았다. 


귀엽게 잔뜩 올라와버린 일 년생 양귀비


즉, 모종 트레이를 쓰고 싶다면, 한 판에 한 가지 종류만 넉넉히 심는 경우에 사용할 것. 이것이 팁이다. 내 모종 트레이라면 반으로 분리되니, 적어도 반을 같은 것으로 채우고, 싹이 나면 통째로 꺼내서 볕 아래로 옮겨줄 수 있도록 준비한다.



2. 꼬마 화분

모종 전용 아주 꼬마 화분은 훨씬 유용하다. 일반 플라스틱으로 되어있는데, 일반 꼬마 화분보다 좀 더 얇고 작다. 모종 딱 하나 기르기에 적당한 크기다. 판매되는 곳이 많은데, 나는 그냥 달러 스토어에서 구입한다. 천 원 정도에 15개가 들어있으니, 많은 양의 모종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면, 한 팩만 사서 사용할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간편하게 쓸 수 있고, 다 사용한 후, 깨끗하게 씻어서 다음 해에 또 사용할 수도 있다.


왼쪽은 달러스토어에서 찍은 사진, 오른쪽 여섯개짜리 모종화분은 작년에 모종 사고 뒀던 것들이다


또한 새로 구입하지 않아도, 예전에 모종을 사 오거나 했을 경우에는 그런 모종들을 담아온 화분들을 보관했다가 씻어서 사용하면 좋다.


여기서 잠깐! 사용했던 화분은 반드시 깨끗이 세제로 씻어주기를 추천한다. 물론 보기에도 깨끗한 것이 예쁘고 좋지만, 화분에 묻어있을 수 있는 병균이나 벌레 알 등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 세척 후에 과산화수소수로 소독해준다.



3. 지피 팟(jiffy pot)

jiffy는 영어로 "짧은 순간, 찰나"를 말하는 단어이다. 짧은 찰나를 이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고 자랑하느라 만들어진 물건인데, 상표등록이 되어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피트모스(peat moss)를 압축해서 만들어진 화분이다. 언뜻 보기에 골판지 같은 것으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피트모스는 늪이나 습지 등에서 자란 미생물로 만들어지는 흙 대체제이다. 수분을 많이 함유하는 성질이 있어서 씨앗 발아용 흙을 만들 때에도 흔히 사용되는 재료이다. 즉, 이 화분의 최대 장점은, 여기에 모종을 키운 후, 본 밭에 옮겨 심을 때, 화분에서 모종을 빼느라 애쓸 필요 없이 이 화분 통째로 흙에 심으면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금세 분해되어 흙처럼 되기 때문이다. 

저 뒤에 심은 모습이 보임. 밑을 뜯을 필요가 없이 뿌리가 뚫고 나오지만, 그래도 괜히 뜯음


특히 당근 같은 뿌리채소는 옮겨심으면 뿌리가 제대로 잘 안 자라기 때문에 본 밭에 바로 심어야 하는데, 이런 지피 팟을 이용하면, 날씨 추울 때 미리 준비했다가 간격을 일정하게 해서 심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일부 화초들은 성격이 예민해서 옮겨심으면 잘 죽는데, 그런 화초에게도 아주 적당한 화분이다. 


화분에 물을 주면, 화분 자체도 물을 머금고 있기 때문에 수분이 더 필요한지 아닌지 구분하기도 좋다. 하지만 건조한 곳에서는 화분이 잘 마르기도 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계속 키우는 화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오랫동안 축축하게 키우면 곰팡이도 의외로 잘 피니 주의해야 한다.



4. 지피 펠렛 (jiffy pellet)

그보다 더 편한 것을 원한다면 요런 것이 있다. 솔직히 나는 안 써봤다. 생긴 것이 꼭, 식당 가면 나오는 일회용 물휴지 같다. 아주 조그맣다가 물을 부으면 점점 커지는 것으로 치면 똑같다. (사진출처:아마존)

다만, 물휴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모종용 흙주머니가 탄생되는 것이다. 흙을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다, 그냥 이게 전부다. 바닥에 받쳐놓을 쟁반만 있다면 해결 완료이다. 그리고 밑이 뚫려있어서, 나중에 자라거든 그대로 화분에 심으면 된다. 


때로 화원에서 모종을 사 오면 분갈이할 때, 이 펠렛이 달려있는 것을 보게 되기도 한다. 이 안에 들어있는 흙은 피트모스이기 때문에, 피트 펠릿이라고도 불린다.



5. 달걀 판

나의 애정템 중 하나이다. 그래서 달걀을 사 오면 달걀판을 모아둔다. 플라스틱 판도 좋고, 종이판도 좋다. 어느 것이든 모종 트레이 대신에 아주 유용하다. 올록볼록 들어가 있는 부분에 씨앗을 한 두 개씩 심으면 좋다. 종이로 된 달걀판을 플라스틱 달걀판 위에 얹어도 좋다. 


네임펜으로 이름도 썼다


또 하나, 이렇게 생긴 곳에 담긴 달걀을 먹은 적이 있었다. 어디서 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본판과 기본 뚜껑 위에 평평한 뚜껑이 하나 더 있는 케이스였다. 씨 발아할 때 쓰면 좋을 것 같아서 남겨뒀는데 정말 유용했다. 여기에 상추씨를 발아시켰는데, 뚜껑처럼 윗부분을 덮어준 덕분에 습도 유지가 잘 되어서 이틀 만에 모두 발아에 성공하였다. 씨앗 발아용 인큐베이터인 셈이다. 



흙 넣는 부분에는 아래쪽에 구멍을 뚫고, 그 밑받침에는 물을 부어주면, 일명 저면관수, 즉, 밑에서 물을 공급하는 시스템이 되어서 더욱 좋다.


처음에는 이렇게 해놓고 깜빡 잊었더니, 순식간에 싹이 난 걸 몰라서 웃자라버렸다! 안에서 구부러진 녀석이 보이는가?


그러나 그다음에 상추 발아할 때에는 잘 관리하여 이렇게 발아시켰다. 





6. 달걀 껍데기

내가 제일 많이 쓰는 최애템이다. 사실 작년에도 달걀 껍데기에 시도를 해봤었는데 별로 재미를 못 봤었다. 달걀을 먹고 남은 반쪽의 껍데기는 사실 상당히 얕아서 물이 금방 말라버려서 별로다. 그렇지만 달걀을 깰 때부터 신경 써서 한쪽을 크게 만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씨 발아용 화분으로 손색이 없는 크기가 되기 때문이다.

중간에 혼자 흙이 말라있는 아이가 낮은 달걀 껍데기이다.


가장 좋은 점은 공짜라는 점이다. 달걀을 먹을 때마다 생기니, 꾸준히 모으면 순식간에 참 많아진다. 생각보다 훨씬 튼튼하고, 그러면서도 은근히 숨도 쉬는 재료로 만들어진 달걀 껍데기. 모양도 예쁘고, 얘네들을 달걀 보관통에 보관하면 관리하기도 편하다. 키가 큰 달걀 화분을 만들고 싶으면, 달걀을 쓸 때, 반으로 깨지 말고, 한쪽으로 치우치게 깨야한다. 좀 성가시긴 한데,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더니, 남편이 재미난 도구를 꺼냈다. 원래 반숙 달걀을 아침식사로 먹을 때, 달걀 껍데기 윗부분을 떼어내고 숟가락으로 떠먹는데, 그때 사용되는 도구였다. 이 미키마우스 같이 생긴 귀여운 물건의 손잡이를 누르면 안에서 톱니가 나온다. 


남편이 아침식사로 먹는 음료에 달걀이 들어가는데, 늘 이 도구를 이용해서 잘라서 씻어 가지런히 엎어놓고 출근한다. 센스쟁이 같으니라고!



달걀을 꼬마 화분으로 쓰려면 밑에 물 빠짐 구멍도 만들어줘야 한다. 젓가락을 이용해서 뚫어주면 어렵지 않게 구멍을 낼 수 있는데, 공중에 든 채로 뚫지 말고, 달걀을 바닥에 내려놓고 뚫는 것이 좋다. 공중에서 그냥 들고 뚫으면 원하지 않는 부분이 부서지기 쉽다. 


물을 줄 때에는 손쉽게 저면관수(底面灌水)로 할 수 있다. 물을 위에서 뿌려주는 것보다 아래서 흡수하게 해주는 것이 식물에게 더 안정적이기 때문에, 특히나 이렇게 어린 새싹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달걀 판에 물을 미리 넣고, 그 위에 마른 댤걀 화분을 얹으면, 이 구멍을 통해서 흙이 물을 흡수해 올린다. 이걸 저면관수라고 한다.


저 달걀판에 물을 먼저 담아준다. 구멍 밖으로 뿌리 꼬랑지가 살짝 나왔는데 초점을 다른데 맞춰서...


편리한 점을 또 추가하자면, 보통 씨앗을 심고 나서 이름표를 세우는데, 달걀에 하면 그냥 그 위에 네임펜으로 쓱쓱 쓰면 된다. 날짜까지 적어두면, 발아에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다 키우고 나서 본 흙에 옮겨 심을 때, 화분에서 꺼낼 필요가 없다. 그저 손으로 지그시 쥐어서 달걀을 깨뜨려준 후 흙에 그대로 심으면 된다. 단, 달걀이 생각보다 단단하기 때문에 깨뜨리지 않으면 뿌리가 자라지 못하니 반드시 확실하게 깨줘야 한다. 그러면 부서진 달걀 조각이 들어가서 천천히 분해되면서 흙에 칼슘을 공급해주니 천연비료 역할도 한다.



이렇게 화분으로 쓰지 않더라도, 달걀 껍데기를 깨끗이 씻어서 말려두었다가 부숴서 비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다루기로 하고 넘어가자.



7. 종이컵

별로 친환경적이 아니어서 거의 사지 않는 물건이지만, 그래도 집집마다 있게 마련인 물건이다. 가격으로 치면 발아용 화분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다. 덜 궁상맞고 깔끔하게 씨앗을 발아시킬 수 있는데, 화분처럼 사용하려면 역시 바닥에 구멍을 뚫어서 사용해야 한다. 작은 씨앗을 하나씩 발아시키려면 종이 소주컵으로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8. 두루마리 화장지나 신문지

궁상계의 일인자가 되려면 이런 것들이 있다. 사실상 심을 곳이 없어서 심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화분 대신에 택배 스티로폼 박스를 사용하면 아주 훌륭히 그 역할을 해주고, 슈퍼에서 사 먹는 여러 식재료들이 담겨오는 플라스틱 통들도 유용하다. 빵 봉지도 구멍을 뚫어서 사용할 수 있고... 막상 뭔가 심어 키우고 싶다면 그것을 담는 도구는 무궁무진하다. 다만 좀 궁상맞아 보여서 그렇지...


발아용 꼬마 화분도 마찬가지다. 두루마리 화장지의 남은 롤의 아래쪽을 찌그려서 오므린 후 흙을 담으면 화분처럼 사용이 가능하다. 좀 뒤뚱거리는 것 같아도, 흙 넣고 물 적셔주면 진정되어서 잘 서 있는다. 하지만, 화장지 심을 쓰기 위해서 화장지를 빨리 쓸 수는 없으니, 신문지를 이용해도 좋다. 원하는 폭으로 신문지를 길게 자른 후에, 꼬마 캔이나 화장지 심지에 대고 원통형으로 말아준 후, 아래를 접어서 모아주면 된다. 



신문지가 은근히 질기고 힘이 세다. 이렇게 만들어서 심어 놨다가 그대로 밭에 심으면 된다. 다 녹아서 흙이 되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신문지가 남는 게 싫다면 쉽게 찢어내도 된다.


별로 예쁘지는 않다. 정히 쓸게 없으면 그때 고려해보도록! 단점이라면, 정말 빨리 마른다. 그리고 장점이라면 역시 그대로 심어도 다 분해가 된다는 것이고, 역시 겉에 그냥 글씨를 쓸 수 있어서 편리하다.


옮겨 심으면 싫어하는 까탈쟁이 당근 같은 거 심으면 좋다.


단, 이렇게 신문지를 사용하려면, 그 신문지가 콩 잉크로 찍은 것인지 석유 잉크로 찍은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 화분에 굳이 나쁜 잉크 물을 넣고 싶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화분 대용품은 이 정도만 소개해도 충분하리라. 이 외에도 물론 무궁무진하다. 심지어 정수기 필터를 이용해서 만든 화분도 봤으니, 그냥 주위에 둘러봐서 심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이가 나간 디저트 그릇이라든가 예쁜 찻잔을 사용하면 멋들어진 인테리어 화분이 될 수도 있다. 


옮겨 심다가 부러진 채송화를 삽목 중


하지만 도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이왕 궁상을 떨기 시작했으니 하나만 더! 씨앗을 심은 후에 아무 표시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여기에 뭘 심었는지 절대 기억나지 않는다. 아, 물론, 깻잎만 조금 심었다거나 하면 괜찮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팻말이 필요하다. 화분 이름표라고 불리는 이런 물건들이 은근 가격이 비싸다. 


그렇다고 시리얼 박스 같은 것을 이용해서 만든다면 젖어서 금방 찢어질 것이다. 흔히들 아이스크림 먹고 남은 막대를 많이 사용한다. 그걸 묶음으로 파는 곳도 있다. 애들 공작용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 있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이용했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오래된 물건이었지만 이 기회에 유용하게 쓰였다. 내가 해보니 대략 16등분 해서 자르면 적당한 것 같다. 이것이 아니면, 먹고 난 요거트 통도 좋을 것 같다. 깨끗하게 씻어서 가위로 잘라주고, 네임펜으로 이름을 적어주면 된다. 



물론 이외에도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집을 둘러보고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활용하면 좋다. 나는 숟가락과 나무젓가락을 전용으로 옆에 두고 사용한다. 숟가락은 달걀 화분에 흙을 넣을 때 좋다. 모종삽은 그런 용도로는 너무 크다.


젓가락은 정말 용도가 다양하다. 작은 씨앗을 하나씩 집어서 흙에 얹을 때에도 유용하고, 모종을 옮길 때, 작은 구멍에 뿌리를 깊숙이 넣을 때에도 좋다. 



이렇게 해서, 다양한 궁상맞은 도구들 덕분에 우리 집 모종은 무럭무럭 커가도 있다. 다만 너무 궁상맞아서, 우리 깔끔쟁이 남편의 심기가 편하지 않다. 한국처럼 유리로 완전 무장된 베란다가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집 데크는 그냥 허허벌판에 있어서 얘네들이 밤이면 모조리 집안으로 들어오니 너무나 어수선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작년부터 미루던 온실 짓기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개봉 박두!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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