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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y 31. 2021

물망초, 너를 잊지 않을게!

내년에도 하늘하늘 아름답게 또 봄을수놓아주길...

물망초는 이름도 너무 사랑스러운 꽃이다. 어쩐지 낭만적인 이름이라고 느껴지는 꽃. 하지만 나는 이 꽃씨를 심으려 할 때만 해도 막상 이 꽃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막연하게 이름만 들어봤던 꽃인데, 남편이 사두었던 씨앗 무리에서 발견되어 작년 봄에 마당에 뿌리고 언제 나올까 기다리던 수준이었다. 그러나 싹은 나오지 않고 봄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웃집에는 이미 물망초가 한창이었다.


내가 예쁘다 했더니 이웃집 여인 소닐라가 몇 뿌리 뽑아다가 주었다. 그리고 우리 집 죽은 나무 그루터기에도 예쁘게 어울리겠다며, 거기에도 또 가져다가 심어주었다. 그렇게 첫해의 물망초는 소소하게 지나갔다. 꽃이 피는 시기가 짧게 느껴졌고, 그리고는 그냥 작은 풀이 되어서 잊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잊지 말라는 그 꽃말 덕분이었을까? 어느 순간 마당 여기저기에 물망초 싹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봄이 되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겠지만, 그래서 그냥 잡초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 아이들을 잊지 않고 모으기 시작했다. 무슨 풀이든 모여있으면 더 예쁘니까...



그렇게 해서 우리 집 정원의 돌 틈에도 심어졌고, 앞마당 벚나무 둘레에도 심어졌고, 뒷마당 고목의 그루터기 둘레에도 심어졌다. 나는 그렇게 물망초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예쁘지는 않았다, 그냥 초록의 무더기일 뿐, 그리 특징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잎이 아니었다. 



그래도 돌 틈을 메꾸고 겨우내 푸른빛을 보여주는 물망초는 겨울이 죽은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늘 보여주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봄이 왔다. 겨우내 꼼짝 않고 돌 틈을 지키던 물망초 잎들이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크로커스가 피기 시작하는 시기에 물망초는 그렇게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4월이 시작되자마자 고개를 내밀며 내 안에 꽃이 있다고 자랑하기 시작했다. 짤막하기만 했던 물망초들이 조금씩 조금씩 고개를 빼기 시작한 것이다.


덩달아 옆에서 오레가노도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열흘쯤 지나자 꽃망울이 위에서부터 살살 터지기 시작했다. 수줍은 듯 고개를 내민 모양새가 어찌나 귀엽던지!


그리고, 매일 조금씩 조금씩 꽃을 더해갔다.



물망초만 있어도 예쁜데, 튤립과 함께 어우러지니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아름답게 빛이 났다. 멀리서 봐도 예쁘고...



가까이서 봐도 예쁘고... (컴퓨터 화면으로 보면 시원하게 크게 보실 수 있음) 밤에 봐도 예쁘다. 밤에는 작은 별처럼 빛난다. 특이하게도 어떤 꽃들은 분홍색이다. 완전히 분홍색으로 덮인 물망초도 있다던데, 종류가 다르다고 한다. 나는 이대로가 좋다.



그리고 꽃은 점점 줄어들고 씨가 맺히기 시작하면서 물망초의 화려했던 봄의 향연이 사라진다.




물망초의 주기를 정리해보자면, 작년 가을 무렵에는 존재감이 미약해서 어떤 애가 물망초인지 구별도 어려울 정도로 이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봄이 되면서 이렇게 변화하고...


이렇게 화사하게 한 달 넘게 빛이 나다가...


날이 더워지면서 이렇게 녹아내린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다른 꽃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예뻤던 꽃이지만 그냥 얌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꽃이 다 말라 떨어지면서 잎은 누렇게 변하고 앙상한 모습으로 상당히 짠하게 남는다. 꽃이 다 사그라지고 씨가 여물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는 물망초를 모두 뽑아낸다.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계속 남아있고 싶지 않을 테니까. 존엄하게 정리해준다. 그리고 남아있는 씨는 그 자리에 마저 털어준다. 따로 꽃씨를 모으지도 않는다. 어차피 모아도 봄에 심지 않을 테니까. 싹은 지금부터 여름까지 부지런히 나야 하니까 말이다. 하나씩 하나씩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 것이다. 나를 잊지 말라고 말이다. 비록 지금은 다른 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라도...




자세히 보면 물망초 싹은 이렇게 생겼다. 잎이 반으로 싹 갈라진 모양이다. 잡초와 구분해서 기억해야 한다. 여름 동안 정원에 흩어져서 여기저기 올라올 것이고, 우리가 잊지 말고 알뜰히 챙겨서 원하는 곳으로 모아준다면, 자신을 잊지 않은 고마움을 이듬해 봄에 다시 표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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