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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n 02. 2021

반갑지 않은 손님들

노크도 없이 찾아오는구나!

지난 일요일 오후, 앞마당 옆쪽에서 야생 당근(Queen Anne's Lace) 모종을 옮겨 심고 있는데, 어디선가 다급히 부르는 남편의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어디서 부르는 것이지? 두리번거리다 보니, 집 안에서 부르고 있었다. 내가 대답하니, "Come here! Right now!" 원래 이렇게 명령법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닌데 왜 그러지? 그런데 다시 다급하게 "현관문 열어줄게 그리로 빨리 들어와!"


곰이 뒷마당에 찾아온 것이었다. 곰이 뒷마당에서 보트 창고 쪽으로 이동한다면, 그 안을 통해서 바로 내가 있는 곳으로 불쑥 나타날 상황이었기에 그렇게 급히 불러들인 것이었다.


남편은 이층 작은 방을 손 보고 있었는데, 창밖을 내다보는 순간, 곰이 우리 뒷마당의 텃밭을 기웃거리며 염탐하듯 코를 킁킁거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만일 나와 남편이 함께 이층 데크에서 발견했다면, 같이 사진 찍고 구경하고 그랬겠지만, 상황은 그보다 긴박했던 것이다.


내가 실내로 들어오자 남편은 경적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는 곰이 종종 나타나기 때문에, 큰 소리를 내서 쫓아버리기 위해서 작년부터 해양 비상 경적을 늘 가지고 다닌다. 큰 소리를 내면 곰이 가버리기 때문이다  


작년에 곰이 들어와서 소동을 피웠던 스토리는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 년간 경적을 쓸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사용하려니 상비용으로 가지고 있던 것 두 개는 작동을 안 했고, 다행히 하나가 작동을 해서 큰 소리를 내서 쫓아버릴 수 있었다. 딱히 곰이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순순히 물러가기는 했다.


우리는 마당에서 곰이 완전히 간 것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전에는 주로 밤에 인가에 내려온다고 들었었는데, 요새는 낮에도 자주 나타난다. 화면 속에서 만나는 곰은 사랑스럽게 생겼지만, 내 집에 들어오면 순식간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되어버린다.


왼쪽 검은 그림자가 발자국, 그리고 앞 왼쪽의 빈자리에 상추가 있었다.


곰이 가고 난 이후에 마당에 나가보니,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혀있었다. 아스파라거스는 하나가 부러졌고, 상추도 하나가 송두리째 뽑혀서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옆에 있는 텃밭도 밟아서 양파도 쓰러져있었다. 다부진 곰 발자국의 피해가 그 정도인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만일 내가 뒷산 쪽에서 꽃이라도 심고 있었으면 어쩔 뻔했겠는가!




우리가 사는 지역에는 다양한 동물 손님들이 방문한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 손님들이 모두 반가운 것은 아니다. 사실 대부분이 반갑지 않다. 반갑다면 벌새 정도? 붕붕 거리며 우리 창문 앞의 꽃에서 꿀을 빠는 모습은 사랑스럽다.


일반 새들도 종종 심술을 부린다. 그래도 걔네들은 대부분 양반이다. 새들 먹으라고 새 모이통도 장만해두었는데, 온통 헤치면서 먹는 바람에 주변이 늘 지저분해진다. 게다가 청설모가 그 음식을 탐내서 그걸 뺏아 먹으려고 아주 극성을 부린다. 보통은 청설모가 싫어하는 종류로 구매하는데, 지난겨울 마침 그게 다 떨어져서 일반용을 샀더니 모이통에 매달려서 극성을 떠는 모습이 내게 잡혔다.


얘는 거꾸로 매달렸다가 떨어졌는데, 얘 친구는 하염없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신공을 발휘한다.


딸은, 그래도 귀여운데 같이 나눠먹게 두면 안 되겠느냐고 하지만, 사실 얘네들도 말썽을 부린다. 다람쥐나 청설모들은 겨울이 되기 전에 먹이를 열심히 모아서 땅 밑에 저장을 한다. 영민하여 나중에 찾아 먹지만, 어디에 묻었는지 까먹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그 덕에 밤이나 도토리 종자가 멀리 이동하여 자라기도 하겠지만, 문제는 그것을 찾겠다고 여기저기 뒤지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툭하면 베란다 화분을 뒤집어 놓는다.


오늘은 후다닥 소리에 나가봤더니, 상추 화분을 파헤쳐 놓고 도망을 갔다. 에구, 불쌍한 상추! 안 그래도 엊그제 애벌레의 공격을 받아서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그래도 혹시나 다시 잎이 자라지 않을까 두었더니 오늘 또 변고를 당했다!


두 개의 상추 화분이 모두 파헤쳐져 있었다!


엊그제 찾아왔던 반갑지 않았던 손님은 바로, 배추흰나비 애벌레이다. 아침에 여느 때처럼 데크를 점검하는데, 상추가 초토화가 된 것이 아닌가? 바로 하룻밤 사이에 말이다! 잘 봤더니 먹성 좋은 손님이 찾아와서 거나하게 식사를 하였던 것이다. 웬만해야 같이 나눠 먹지, 그렇게 식탐이 심해서야 어찌 공존하자는 소리가 나오겠느냐 말이다. 염치가 없어도 분수가 있지!


한 마리인 줄 알고 사진 찍고 나니 두 마리!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사진을 찍었더니, 그 옆에 하나가 더 있었다! 둘이서 상추 하나씩 맡아서 싹 긁어먹은 것이다. 구글 렌즈에 검색해보니 나방 애벌레라고 하고, 한국 텃밭 모임에서는 배추흰나비라고 하는데, 그게 무엇이던가 간에 반갑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나비도 더 이상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마당에 흰나비가 나타나면 바로 쫓아 버린다. 마음 같아서는 잡고 싶지만, 나비가 내 마음처럼 잡히지는 않는다. 그래서 많은 텃밭 지기들이 나비 못 앉게 위에 망을 쳐놓는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더니 이런 피해를 보았는데, 이 정도이길 천만다행이다. 텃밭에는 배추가 가득한데 앞으로 어찌 지켜낼지 걱정이 된다.


동영상을 찍었더니 사각사각 먹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온실에 있던 한련화(nasturtium) 바구니를 꺼냈더니 천연덕스럽게 잎 위에 앉아있었다. 보색으로 있으면 모를쏘냐! 에효!



온실 안이라고 안전한 것도 아닌 것이다. 매일 바람 쐬어 주는 화분에 달팽이도 은근슬쩍 붙어서 따라 들어가서 헤집고 다닌다. 호박 위에 달팽이의 끈적한 흔적이 보여서 둘러보니, 옆의 꼬마 화분에 붙어서 알까지 낳아놓았다. 달팽이는 아주 반갑지 않은 손님의 대표주자이다. 그래도 텃밭에는 동 테이프를 둘러서, 아직 거기까지는 들어가지 않고 있다. (동 테이프 두른 이야기는 여기: https://brunch.co.kr/@lachouette/280 )그런 처리를 할 수 없는 꽃밭들이 늘 걱정이다.


피트모스 화분에 붙어서 알을 낳은 모습


그리고 또 최근에 찾아와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은 바로 이 친구! 스컹크이다. 이틀 연달아 천연덕스럽게 내 옆을 지나갔다. 뭐지? 하고 고래를 돌려보면,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냥 스르륵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가버린다.



내가 자극하지 않으면 자기도 나를 자극하지 않으니 그저 감사한다고 봐야겠지. 스컹크가 화 나서 방귀를 뀌면 코가 마비될 뿐만 아니라 눈이 멀 수도 있다고 한다. 그냥 그렇게 공존하는 것 정도는 괜찮다. 달팽이를 잡아먹어 준다면 감사할 듯하다.


그에 비해서 너구리는 골칫거리이다. 먹는 것도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는 데다가, 꼭 먹지 않아도 마구 장난을 치고 말썽을 부린다. 엊그제는 와서 괜스레 이렇게 땅을 파놓고 갔다. 곤드레도 밟아서 쓰러뜨려놓고...



딱히 못 오게 할 방법이 없으니 한 번 적극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난처하다.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두더지도 있다. 와서 뿌리 식물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지난번에 구근을 심을 때에는 맛없으라고 베이비파우더를 뿌려서 심기도 했다.


그밖에도 공벌레 또는 쥐며느리 등등 여러 이름을 가진 벌레도 뿌리나 꽃을 파먹고 있는데 얘네들은 워낙 수가 많아서 컨트롤이 쉽지 않다  


우리 집에는 다행히 아직 방문한 적이 없지만 토끼도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들어간다. 먹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사슴은 가끔 지나간다. 아직 우리 마당까지는 안 내려오고 뒷산 길만 종종 다니는데 맛있는 것들이 있는 것을 알면 쉽게 내려올 테니 걱정이 된다.


유유자적 우리 집 바로 뒷산에서 걷고 있는 사슴 두 마리


반갑지 않은 손님들, 우리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만 한다면 다 반겨줄 텐데... 동물과 대화가 가능하다면 좋겠다  “여기 먹이 줄 테니, 이건 건드리지 마.” 이렇게 다정하게 말이다.


그래도 아직은 이런 모습 보면  여전히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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