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홈스쿨링이 기억났다

by 라슈에뜨 La Chouette

그러던 아이는 3학년에 올라가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2학년 때까지의 선생님들은 아이의 장점을 주로 바라봐주셨는데, 3학년 선생님은 아이들의 단점을 지적하기 시작하셨다. 흔히 말하는, 돈을 밝히거나 아이들을 차별하는 그런 나쁜 선생님은 전혀 아니었다. 다만 아이들이 스스로 잘 알아서 하는 아이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다보니, 모든 것들이 성에 안차고, 답답하였던 것 같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이 귀엽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에 아기를 낳아 육아를 시작하던 선생님은, 3학년이면 이제 다 큰 아이들이니 무엇이든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잘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못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자 그때까지 의욕에 넘치던 우리 아이는 오히려 잘하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해가기 시작했다. 스티커와 즉흥적인 칭찬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그 보상이 사라질 때 나타는 현상과 비슷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학교에 가는 즐거움은 사라졌고,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생각도 함께 사라졌다. 어떻게 해도 잘 보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뭔가 실수를 했는데, 선생님께서 아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시면서, 어떻게 그렇게밖에 못하느냐는 듯한 반응을 보이셨다고 아이는 기억하고 있다. 뭐든 잘못할 때에는 같은 반응이 돌아왔고, 아이는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했다. 정확하게 알고 있거나 정말 잘하는 것이 아니면 남 앞에 꺼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굳어져버렸다. (이 공포에서 벗어난 것은 정말 거의 다 커서였다!) 잘하지 못하는 것은 시도하면 안 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무슨 꿈을 꿀 수 있겠는가?


지금의 학교의 교육은 그때보다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실제적으로 가르치는 과정은 미미했고, 대부분의 시간은 테스트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리코더를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가면, 그날 리코더 부는 법을 간단히 설명한 뒤, 다음 날까지 “꼬까신”을 불어오라고 했다. 악기는 그런 식으로 다룰 수 있지 않다. 소리를 내기도 버거울 것이다. 이 의미는 결국, 대부분의 아이들이 문화센터나 학원에서 이미 리코더를 배웠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훌라후프를 가져오라고 해서 구입해서 들려 보냈다. 그날 선생님은 운동장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200번씩 돌리라고 하셨다. 처음 들고 간 훌라후프를 무슨 수로 200번을 돌리겠는가? 두세 번 돌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정상인데. 잠시 후, 200번 돌리지 못한 아이들은 운동장을 여러 바퀴 돌라는 벌을 주셨다. 200번을 채우지 못한 많은 아이들은 은근슬쩍 다 한 척하고 있었고, 곧이 곧대로의 성격을 가진 아이들만 결국 운동장을 돌았다. 아이는 집에 와서 우울해했고, 학교에 너무나 가기 싫다고 했다.


사실 나는, 싫은 것도 해야 하고, 학교도 사회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부대끼면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는 학교에 가기 싫었고, 편법과 타협하기도 싫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잘하게 될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학원에 보내지 않던 아이를 그러면 나도 학원에 보내야 하는 것일까? 모든 것을 선행학습시키고, 학교에 가서는 테스트만 받으면 되는 것일까? 나는 회의가 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참관수업이 있었다. 나는 내가 아이에게 듣던 것이 얼마나 사실인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음악시간이었는데, 담임선생님은 마치 군가를 지휘하듯 구령을 붙이며 아이들을 통솔했다. 그 모습이 마치 70년대 학교를 보는 것 같았다. 아직도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한단 말인가?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중에 아이에게 듣은 바로는, 쉬는 시간에도 돌아다니거나 떠들면 안 되고, 딱 화장실을 가는 시간 이외에는 얌전히 차려 자세로 앉아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관 수업이 끝나고 엄마들이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자꾸 책을 안 가져오는데 그걸 좀 챙겨달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전혀 모르던 사실이었기에 깜짝 놀랐다. 선생님 역시, 반듯한 성격의 모범적인 아이가 반복적으로 그러니 이상하다고 했다. 나는 3학년이나 된 아이의 책가방을 검사하지는 않았으므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고, 아이에게도 들은 바가 전혀 없었다.


집에 와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아이는 울면서 말을 했다. 어느 날 실수로 "슬기로운 생활" 교과서를 안 가져가서 야단을 맞았다고 했다. 책을 안 가져온 아이들은 뒤에 나가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결국 아이는 수업을 못 받은 채 교실 맨 뒤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그것이 너무 속상했지만 수치스러워서 엄마한테도 말을 못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런데, 그 다음이 참 이상했다. 그 이후로 아침에 아무리 확인을 해도 그 과목 책은 학교에만 가면 없다는 것이다. 아이의 공포가 트라우마를 만들어서 무의식 속에서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그렇게 뒤에 서 있는 것에 점점 더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나는 혼란에 빠져들었고, 지금까지의 학교생활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물론 아침마다 아이의 책가방을 검사하고, 도와주면 아이는 다시 책을 가지고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러면서 나는 미국에서 처음 알게 된 홈스쿨링이 다시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때는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모든 것들이 마치 나를 쳐다보고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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