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결정을 내리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홈스쿨링에 첫발을 내딛으며 안도하다

by 라슈에뜨 La Chouette

그렇게 몇 달간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것 같다.


"그래, 그만두는 거야! 방학 때가 사실은 더 좋잖아? 나들이도 하고, 현장학습도 하고, 책도 많이 읽고..."


그러다가는 다시 마음을 돌이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우리 아이는 학교 다니기 싫다고 하는 그 시기에도 여전히 상위권이었고, 모범생이었고, 교우관계도 원만했다. 선생님이 칭찬해주시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속으로 선생님도 아이를 인정해주고 계셨고, 지금 이 상태로 계속 학교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쨌든 내가 보기엔 훨씬 안전하고 만만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현실안주에 대한 유혹이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경쟁에 사용할 시간을 단축해서 집에서 공부를 가르치고 자유시간을 주겠다는 의지를 가진 나 자신과, 현실에 의지해서, 남들 다 하는 대로 그렇게 따라가는 것이 안전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또 하나의 나 자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서 결정은 쉽지 않았다.


내 안에서의 팽팽한 대립이 계속되면서 결정이 번복되는 동안 나는 홈스쿨링 하는 아이들에 대해서 계속 찾아보았다. 당시 불모지 같기만 하던 시절에도 홈스쿨링을 고민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은 분명 있었다. 그때 찾아봤던 웹사이트 민들레(http://mindle.org/)는 지금 검색해보니 여전히 존재하는구나. 사실 그 사이트를 보면서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안갯속 같은 내 마음을 속 시원하게 풀어줄 해답은 아무 데도 없었고, 그들 역시 뭔가 뾰족한 길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아이들이 행복해 보였다는 것이었다. 뭔가 고민하고 선택하고 도전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3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홈스쿨링 결정을 내렸다. 처음에는 방학 동안 우리끼리 실험해보고, 할 만하면 하고, 아니면 학교로 복귀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었지만, 그러다 보면 또 고민의 기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아서, 그냥 1학기까지만 다니고 그만두는 것으로 하자고 마음을 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다시금 아이에게 다짐해서 물었다, 정말 홈스쿨링을 원하느냐고. 혹시라도 엄마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얼떨결에 따라가는 것은 아닐까, 처음엔 그저 학교 안 간다는데 신나서 야호 했다가 후회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들지 않는다면 엄마가 아닐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참 정신 나간 여자였다. 겨우 초등학교 3학년 된 아이에게 어떻게 이런 어려운 결정을 내리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내 인생을 건 도전이 아니었다. 아이의 인생을 건 도전인데, 어찌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겠는가!


아이의 대답은 이렇게 돌아왔다.


"제가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하는 거죠? 지금까지는 학교가 해준 일들을 이제 제가 해야 하는 거고, 그 책임도 제가 지는 것이고요. 그리고 친구들과 했던 경쟁을 저 자신과 하는 거겠지요? 학교의 주인은 아이들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저의 주인은 바로 제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하고 싶어요. 제가 저를 스스로 만들고 이끌어가고 싶어요. “


어떻게 10살짜리 아이의 입에서 이렇게 똑 부러진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아이에게 이야기해주었더니 자신도 놀랐다) 물론 나의 내면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지만, 그건 좀 더 큰 다음에 이야기해보자 했던 것이고, 일단은 어린 나이니까, 좀 더 자유롭게 어린 시절을 즐기면서 가장 필요한 기초만 너무 떨어지지 않게 챙기자 하는 것이 내 계획이었는데, 아이는 나보다 앞서 나가고 있었구나 싶으니 가슴이 찡해왔다. 사실 살아온 길들을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다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지 알 것은 다 알고 있었다.




드디어 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선생님이 펄쩍 뛰시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도 무척이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 편에 학교로 보낸 쪽지에 온 답장은 나를 더욱 긴장시켰다.


선생님이 써주신 말씀은...


"아이가 학교 생활 참 잘하고 있고, 성적도 친구관계도 좋고 예의도 바르고, 밝고 모범적입니다...." 하는 칭찬 일관된 말씀과 더불어, "특별히 더 알고 싶으신 것을 알려주시면 미리 자료를 준비해놓겠습니다" 하는 말씀...


왜 상담을 하고 싶을까? 하는 의문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정말 이 상황에서 어떻게 홈스쿨링 이야기를 꺼낼까? 나도 난감했고, 아이도 당황하는 기색이 보였다. 다시금 아이의 의중을 떠보았으나,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기는 해도 이 길이 제가 갈 길이라고 생각해요."라는 흔들림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짜아식! 심지가 굳기도 하구나!

선생님은 이번 주 2시 반 이후면 가능하다 하셨는데, 아이는 더 미루지 말고 빨리 말씀드렸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다음 날 바로 학교로 찾아갔다.

전화를 다시 하지 않아서, 내가 당장 오리라고 생각 못했던 선생님은 학급일을 하다가 다소 당황하시는 듯했다. 나는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고, 순간 눈이 동그래지셨던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으셨다. 다 듣고 난 후에는, 결정을 존중한다 하시며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잘 생각하셨어요, 어머니. 공교육은 이미 무너졌습니다. 따님이라면 잘할 거예요"


우리 아이라면 잘할 것이라는 격려의 말씀까지 받고 나니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간 아이를 참으로 힘들게 하였던 선생님이었고, 이런 홈스쿨링이라는 결정을 내리는 데에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던 분이었지만, 방법이 서툴러서 그렇지 마음속으로는 아이들 다 잘 되게 하려는 마음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아직 홈스쿨링에 관한 사례를 접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행정상 최대한 어머님과 아이의 입장에서 잘 해결되도록 하겠습니다."


어찌나 고맙던지... 그리고, 집에 와서 얼마 안 있다가 다시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학교 측에서도 원만히 처리하고 싶다고 하였고, 현 실정상 자퇴 처리는 안되지만, 유예로 해놓고, 혹시 나중에라도 다시 학교에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도록 하며, 또, 나중에 홈스쿨링에 대한 상황이 나아진다면 졸업장도 받을 수 있게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까지 교감선생님이 말씀하셨다니 학교 측과 싸우지 않고도 순조롭게 첫 번째 고민을 해결하게 된 셈이다. (결국 나중에 수업일수 부족으로 퇴학 처리되었지만, 당시에 저렇게 넘어가서 시작을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홈스쿨링이 이렇게 결정이 나자, 그간 몇 달간 고민하고 힘들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다 사라지고 정말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길을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었기에 새로운 고민거리로 머리와 마음이 무거워야 하는데 정반대였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내가 제대로 된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자, 이제 시작이다! 이제 우리의 몫만이 남아있구나. 우리는 이렇게 기대와 응원을 등에 업고,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로 첫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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