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링 첫 시작은 방학!

잔소리 없는 날

by 라슈에뜨 La Chouette

내가 홈스쿨링으로 아이를 키웠다는 말을 하면, 반드시 돌아오는 말 중 하나는 “정말 대단하세요!”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정말 대단한 것을 애에게 해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흔히 생각하기에 홈스쿨링을 하려면, 엄마가 자기 생활을 완전히 희생해야 하고, 24시간 학교 같은 체제로 집안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숨통이 터져서라도 그렇게 할 수 없다. 혹시 그렇게 홈스쿨링을 하는 집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집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게다가 타이밍적으로 딱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때였기 때문에 시작부터 쉬는 시간을 먼저 갖게 되었다. 아이가 방학을 갖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평생 방학 같은 날들이 계속되겠지만, 그런 것 말고 진짜 방학 말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날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닷새 정도 완전한 휴가를 주기로 했다. 홈스쿨링 시작 전 방학이었다.


그래서 이름 붙이기를 "잔소리 없는 날"이라고 했다. 뭘 하라는 소리를 안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뭐 그리 특별한 것을 하지도 않았지만, 뭔가의 의무사항이 없다는 것이 그냥 좋은 아이였다.


diane198.jpg
diane199.jpg
엄마 닭이 아니라, 엄마 병아리?


주말에 사촌들 놀러 오자 펠트 오려서 인형도 만들고 주머니도 만들고, 내가 바쁜 날은 혼자서 레고 블록놀이도 하고 책도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완전히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놀기도 했지만 나름 할 것을 알아서 챙기기도 했다. 함께 박물관 다녀와서는 컴퓨터에 붙어 앉더니 시키지 않아도 나름의 보고서도 혼자서 적었다. 다만 내가 뭐 하라는 소리를 전혀 안 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닷새로 시작했던 잔소리 없는 날은 생각보다 상당히 괜찮았다. 그래서 이왕이면 이 무더운 여름방학 기간을 그냥 방학처럼 보내보자 싶었다. 무슨 홈스쿨링이 이렇게 날라리냐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원래 목적이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꼭 당장 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잔소리 없는 날들이 계속 이어졌고, 아이는 진짜 방학을 보냈다. 예전 같으면, 방학중에 일기도 꼬박꼬박 써야 하고, 독서록도 써야 하고, 방학과제도 해야 하고, 그리고 방학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보충학습도 엄마와 함께 해야 하는데 이번엔 특별히 정말 방학 같은 자유로운 방학을 보내게 된 셈이다.


시작부터 사촌들과 며칠을 신나게 놀았고, 아빠 휴가 기간을 빙자해서 또 열심히 놀았고, 엄마 따라 체험학습이나 견학만 다녔다. 체험학습은 원래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라서 놀이 삼아 다닌 것이었다. 지난번 겨울 방학 같은 리스트도 없었다. 사실 리스트 뽑아주고 닦달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편안한 방학을 보내게 해주고 싶어서 나는 거의 잔소리 안 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두 주를 신나게 놀더니, 이제는 자기도 좀 그런 모양인지, "이제 좀 뭔가 해야죠?" 하며 나름 리스트를 뽑아서 들고 내게 다가왔다. 이게 바로 숱한 교육학자들이 말하는 자발적 학습의 동기부여였던 것이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오랫동안 시도만 하다가 말았던 영어책도 꺼내오고, 역사책도 꺼내오더니 피아노도 혼자 가서 앉아서 쳤다. 하지만 원래부터 방학 때에는 체험학습 많이 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고, 마침 방학맞이로 민속박물관 견학 코너도 죄다 신청을 해놓았으니, 그 일정만 해도 제법 빡빡했다. 그러니 당분간은 그런 것들 하며 공부는 슬렁슬렁 넘어가고, 날 선선해지는 9월부터 자리 잡고 앉아해보자고 했다.


diary230.jpg
diary238.jpg


그렇게 우리는 7, 8월을 꽉 차게 보냈다. 서울에 있는 작은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찾아다녔고, 여러 가지 견학과 실습을 다 하러 다녔다. 나는 매일같이 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잘 찾아보니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 체험학습이나 공연 같은 것들도 꽤 많이 있었다. 국악부터 서양악기 체험, 미술, 역사까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프로그램을 섭렵했다. 그리고 고궁도 가고, 숲도 가고, 길거리 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참 많은 세상이었다.


아이는 완전히 신이 났다. 자유롭게 이것저것을 경험해볼 수 있었고, 박물관에서도 천천히 보고 싶은 것은 아무 눈치도 안 보고 실컷 들여다볼 수 있었다. 원래 학교에서 체험학습으로 가다 보면 정해진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보는 둥 마는 둥 빨리 지나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지만, 우리는 그럴 이유가 없었으므로, 아이가 뭔가 하나에 꽂히면 실컷 보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이는 그래서 빗살무늬 토기를 보면서 그 시대를 혼자 마음껏 상상할 수 있었고, 집에 와서는 나름의 활동으로 그 토기를 만들어보고 싶어져서 실천해보기도 했다.


해야 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봐야 해서 봐야 하는 것이 아니고, 배워야 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이 모든 과정을 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대로 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방학숙제로 간 것이 아니니 보고서를 쓸 필요도 없었다. 아이가 쓰고 싶어 한다면 써도 되었지만 그냥 닥치는 대로 자기 흡수하고 싶은 대로 흡수하게 두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렇게 배운 것이 모두 기억난다든가, 전부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자기가 무엇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또한 즐겁고 행복할 수 있으면 그 자체로 얻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체험학습의 목표를 놀이에 두고 나니 모든 것이 확실하게 쉽고 행복해졌다. 프로그램에 따라다녀 보면, 일부 프로그램은 엄마가 옆에 앉아있고 함께 참여하는 것들도 있었는데, 그런 곳에서 엄마들의 마음이 쉽게 드러났다. 아이가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기를 원하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아이가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해서 엄마들이 계속 코치를 해 댔다. 심지어 작품에 손을 대다 못해 마지막에는 빼앗아서 마무리를 하는 일도 허다했다. 아이들은 처음에 고집을 부리다가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다가, 시큰둥 해지고는 옆에서 구경이나 하는 처지가 되어버리기 십상이었고, 결국에는 누구 작품인지 모르는 것이 완성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장면은 정말 너무나 흔했다.


남의 일이니 뭐라 말도 못 했지만, 옆에서 보면서 참 안타까웠던 기억이 여러 번 있다. 어차피 그렇게 만든 것으로 딱히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대입 내신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속상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무엇을 하든 그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그 과정이 즐거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렇게 한 달 반 정도를 정말 신나게 놀러 다녔다. 지금 그 당시의 일기를 들춰보면, 정말 놀랄 만큼 하루도 빠짐없이 돌아다녔던 기록이 남아있다. 하루에 두 탕을 뛴 적도 있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도 몸이 약하던 아이가 그 기간 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소아과를 일주일에 두 번 이상도 갔었고, 수시로 고열 나고 아파서, 자는 아이 이마를 자다가 한 번씩 짚어보며 살았었는데, 그 바쁜 일정 속에서도 몸살 한 번도 하지 않고 아침이면 신나게 눈을 떴다.


diary266.jpg


이 사진은 우리가 공연을 보고 돌아오던 어느 날 동네에 걸쳐진 무지개 사진이다. 행복은 어디 있을까? 무지개는 어디서 시작되고 끝이 날까? 이런 이야기들이 동화 속에 자주 나오지만, 이 무지개는 우리 아파트로 떨어지는구나! 결국 무지개는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 멀고 멀다고만 느껴졌던 홈스쿨링도 이렇게 가까이 우리 발등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나도 아이도, 지난 한 학기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비로소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이전 07화드디어 결정을 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