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계획 세우기

방학을 끝내야 할 때

by 라슈에뜨 La Chouette

딱 학교를 그만두고 났을 때, 우리 모녀가 얼마나 의욕이 충만했을지는 아마 누구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비장한 각오가 당연히 있었다. 집에 있는다고 해서 마냥 흐트러진 상태로 늦잠 자고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기만 한다면 그건 홈스쿨링 아니고 포기가 아니겠는가? 딱 그런 다짐이었다.


하지만 학교 방학과 동시에 시작했던 홈스쿨링이기에 우리도 방학을 했고, 한 달 반가량은 놀았다. 규칙적인 일정이란 것은 아무것도 없이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보니 다시 스케줄 있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드디어 학교 개학일이 다가왔고, 우리도 그 일정에 맞춰서 개학을 준비했다. 홈스쿨링 개학.


느닷없이 "오늘부터 시작!"이라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나름 워밍업부터 시작했다.


우선은 우리가 홈스쿨링을 왜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편안한 마음으로 계획을 짜고 수정하는 것에 며칠을 할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첫날은 일단 정돈부터 시작했다. 공부도 집중해서, 노는 것도 집중해서 하기로 했으니, 책상 위도 정리하고, 잡동사니를 최소화하였고, 방도 뒤집어엎어서, 대충 이것저것을 버렸다. 내가 버린 것은 아니고, 모처럼만에 잔소리를 좀 했다.


하루 종일 정리에 일요일을 다 보냈으니 아이는 다소 속상한 듯도 했지만, 그래도 내일 일을 조금 당겨서 했다는 홀가분함이 있는 것 같고 나름대로 뭔가 털어내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리를 끝내고 밤에는 샤워 후에 아빠와 바둑을 두는 시간을 가졌고, 잠자리에 들 때에는 평소처럼 책을 몇 장 읽어줬다. 당시에 읽던 책은 "빨강머리 앤"이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면서 우리는 두근거렸다. 우리의 개학 첫날은 어떻게 될 것인지!




홈스쿨링을 체감하는 첫날, 개학날이라면 부랴부랴 아이를 깨우고 호들갑을 깨웠을 개학 첫날인데, 우리는 아직 스케줄도 세우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억지로 깨우지는 않고 그냥 둬봤다. 10시까지 늘어지게 잔 아이가 눈을 비비며 멋쩍은 듯 걸어 나왔다.


엄마는 이제 깨우지 않을 테니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키며, 이런 생활도 며칠 남지 않았음을 다시 이야기해주었다. 오전에는 전날의 방청소 마지막 뒷정리를 하고, 점심 먹고 나서는 둘이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웠다.


일주일 단위로 진행되는 시간표와 하루 안에서의 시간 활용을 정해놓은 계획표, 이렇게 두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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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하는 오전 수업에는, 영어와 학교 교과 수업을 하기로 했다. 학교와 똑같이 진행되지는 않지만, 교과를 어느 정도는 훑어볼 계획을 세웠다. 오후에는 재량학습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해보기로 했다. 음악이나 미술도 넣고, 컴퓨터도 넣고... 그리고 한동안 손 놓았던 피아노도 넣고, 둘의 건강을 위한 요가도 넣었다. 다시 돌이켜 보면 정말 꿈도 야무졌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이것저것 계획을 세우면 다 그렇게 될 줄 알았을까?


물론 나름 생각하기에, 시간표가 있지만, 그것을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다. 다른 활동을 하게 될 때에는 융통성 있게 조절을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계획표를 다 짜고 나서 둥글게 그린 계획표 꾸미기 시간을 가졌다. 스탬프도 찍고, 그림도 그리고, 신나게 꾸미기를 했다. 워밍업 데이였으므로 별다른 계획도 없었기에 빨리 하라고 채근하지 않고, 실컷 꾸미게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다 한 후에는 정리를 하고, 장 보러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런데... 밖에 나갔더니, 동네 이웃들이 평상에 앉아있네. 나도 거기 주저앉고, 아이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놀기 시작했다. 결국 중간에 나 혼자 후다닥 슈퍼 다녀오고, 오는 길에 떡볶이 사다가 저녁은 그렇게 이웃들과 파티로 해결하고 9시 넘어서 아이 줄넘기까지 하고 들어왔다.


첫날부터 계획은 어긋나고 있었다. 9시에 잔다는 것도 틀렸고, 11시에나 자면 성공이다 싶었다. 하지만 조바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이게 처음이고, 시작부터 꼬인다고 생각하면 멀고 먼 길을 어떻게 가겠나 싶었다.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고, 그다음 날은 조금 더 나아지고, 그렇게 되면 될 거라고 스스로 위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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