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을 잘 지키지 못해도 괜찮아
바야흐로 9월 1일. 아이와 내가 홈스쿨링을 시작한 이후로, 시간표에 따라 수업을 하기로 결정한 바로 첫날이 시작되었다.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지만, 역시...
아이는 이 날도 조금 늦잠을 잤다. 하지만 뭐, 조금씩 당겨지고 있으니까 점점 나아지겠지 하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런데 오전 수업을 시작해야 할 시간에 이웃들이 찾아왔다. 내가 부탁했던 물건을 가져왔고, 나는 야멸차게 가라고 하지 못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좀 흘러갔다.
하지만 애초부터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말기로 했듯이, 아이에게는 오후에 할 일을 먼저 하라고 말해주었고, 아이는 스스로 할 일을 체크해가며 나름대로 혼자 피아노도 치고, 한자공부도 하며 시간을 활용했다. 전날, 엄마의 퀼트 모임날, 잔소리가 없었다는 이유로 할일표 체크를 스스로 못해서 스케줄이 엉망이 되어버린 것을 만회하려는 듯했다.
이웃들이 가고 난 후에는 영어와 국어 공부를 했고, 점심식사 후에는 역사를 했다. 그리고 오후 3시, 특별한 일정을 위해서 아파트 평상으로 나갔다.
홈스쿨링을 한다고 하면 다들 제일 많이 하는 걱정이, 친구는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친구를 만날 기회가 없으니 아이가 자연스럽게 고립되리라는 것이었는데, 사실 그렇게 되기 쉽다고 나도 생각했기에, 나름의 방식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계획을 세웠다. 그게 바로 첫날의 오후 일정이었다.
동네에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어린이를 위한 마시멜로" 책을 읽어주겠다고 제안을 했던 것이다. 아이들도 친구이고 엄마들끼리도 친한 관계이니 미리부터 홈스쿨링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는데, 아이들 방과 후에 내가 책을 읽어주겠다고 했더니 엄마들이 모두 몹시 반겼다.
몸이 아파 못 온 친구도 있고 해서 첫날은 4명이 모여 앉았다. 그리고 한 아이는 동생까지 데리고 와서 모두 평상에 빙 둘러앉아서 내가 책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그게 당시에 베스트셀러이기도 했고, 또한 요새 성미 급한 아이들에게 기다리는 미학을 배우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며칠 전 미리 사다 두었던 마시멜로를 들고나가서 먼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냄새도 맡게 하고, 잘 알지 못하던 마시멜로를 소개를 해주었다. 당시만 해도 서양의 과자가 그리 다양하게 들어와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따라서 마시멜로가 뭔지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시작부터 호기심을 끌기에 적합했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어릴 때 방에 아이를 혼자 두고, 마시멜로를 앞에 둔 채 15분을 기다리면 하나를 더 주겠다는 실험을 한 것에 관한 책이었다. 즉, 좋아하는 것을 눈 앞에 두고도 참을 줄 아이가 나중에 성공한다는 종류의 인내 및 자기 컨트롤에 관한 계발서였는데 이 책이 아이들용으로도 나왔던 것이다. 지금 다시 돌아보면 그다지 좋은 책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처음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입장에서는 관심이 가는 내용이긴 했다.
처음 보는 과자의 달콤한 냄새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유혹적이었지만 하나씩 손에 쥐어주고, 15분 기다리라는 것을 모두 잘 참아냈다. 그럼! 벌써 3학년인걸!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 실제 아이들의 일도 비교하기도 하고, 우스운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니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상당히 집중해서 들었다.
그렇게 15분이 지나가고 두 번째의 마시멜로가 손에 쥐어지니, 아이들은 막상 두 개 다 자기들 입속으로 넣기보다는, 옆에 앉아 구경하던 엄마들에게 건네주는 예쁜 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책은 총 7 챕터로 구성되어있었는데, 이 날 첫 번째 챕터를 읽었다.
그리고 주제를 놓고 함께 글로 써보고 발표하라고도 해보고, 살짝 부담 적은 숙제를 내주기도 했는데, 혹시 지루해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이들은 즐겁게 무척 열심히 들었고, 다음 주 월요일에 그다음 이야기를 계속 읽어줄까? 했더니 모두 좋아라 했다.
사실 처음에 이 시도를 하면서, 나는 독서나 논술지도 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 좀 막막했었는데 모두 만족해했고, 결국은 이렇게 해서 벼르고 벼르던 우리 동네 독서 모임이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이 책으로 7장까지 함께 다 읽으며 이야기하고, 이 단계가 끝나면, 책을 정해서 함께 읽고 이야기하고, 돌아가면서 발표도 하고, 그렇게 하자고 했다. 처음이니 나도 아이들도 서툴겠지만, 차차 나아지리라 믿기로 하고 일단 저지른 셈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나도 아이들도 더 나은 방법을 찾으며, 진짜 어린이책을 가지고 독서 모임을 하게까지 발전하였다.
모임이 끝난 후, 아이들은 신나게 한 시간 정도 뛰어놀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이가 원하는 컴퓨터 수업을 했다. 나는 아이에게 포토샵의 간단한 기술들을 가르쳐주었고, 아이는 그것을 이용한 활용을 스스로 해봤다.
결국,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진 못했어도, 첫날 수업시간표에 있던 수업은 다 한 셈이었다. 조바심 내거나 아이를 닦달하지 말고, 차근차근하자고 다짐했던 일은 나 자신이 마음을 비우고 접근하니 의외로 쉬웠고, 공부를 함께 하는 시간들도 즐거웠다.
완벽하게 지켜지지 못하는 시간표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조금씩 좋은 습관을 들여 나가다 보면 점점 더 나아지는 우리들을 발견하게 되리라 믿어보자고 했다. 첫날 치고는 괜찮은 시작 아니었냐며 스스로를 격려했고 우리는 그렇게 첫 발을 정식으로 내디뎠다.
우리의 일정표는 처음에, 아침 9시에서 시작해서 45분간 수업하고 15분 쉬는 식으로 해서 몇 가지 과목을 돌려가며 만들었었다. 나름 인터넷에서 종소리도 다운로드하여서 시간 맞춰 울리게도 해 봤지만, 갑자기 이웃이 찾아온다거나 시어머니의 전화가 온다거나 하는 돌발상황이 흔히 발생하기 마련이고, 엄마인 내가 그걸 시간 맞춰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은 정말 큰 테두리만 정하고, 디테일한 것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가는 쪽으로 우리의 일정은 자연스럽게 진화해갔다. 요일별로 과목을 정해서, 어느 시간대에든 하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했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를 따로 정하지도 않았다.
사실 학교 수업이 50분 공부하고 10분 쉬는 시스템은, 옛날에 아이들을 공장 노동자로 쉽게 적응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는 만큼, 공부를 하는 데에는 나름의 리듬이 필요하기 때문에 억지로 시간에 끼워 맞춘다면 굳이 홈스쿨링 하는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홈스쿨링이 일반 학교보다 모든 점에서 다 더 좋은 것은 아니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선택하며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서서히 방식을 찾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