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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11. 2021

즐겨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

자기 주도 학습의 열쇠

홈스쿨링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내가 억지로 뭔가를 시켜서 아이를 잘할 수 있게 하기는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이 본인의 동기부여가 필요한데, 그 유일한 방법은, 자기가 하는 것을 스스로 좋아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좋아하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좋아하면 자기 주도 학습이 가능해지고, 또 반대로 자기 주도 학습을 하면 좋아하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인데, 어느 쪽이든 접근이 더 용이한 쪽으로 시도해보면 좋을 것이다.


사실 우리 자신을 생각해봐도, 하기 싫은 것은 되도록 덜 하고 안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육아를 담당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엄마이므로, 엄마들을 기준으로 했을 때 뭘 싫어하는지 생각해보면 이렇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 때만 해도 시댁에 며칠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여쭈는 것이 며느리의 도리였다. 그런데 며느리들은 흔히 시댁에 전화 걸기가 싫다. 한 번씩 전화를 드려서 안부를 여쭤야 하는데 하기가 싫은 것이다. 시간이 없지도 않고,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걸기 싫어서 자꾸만 미루고, 그러고 나면 왜 그간 전화를 안 했는지 까지도 설명해야 하는 사태에 이르러 더욱더 난처한 지경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왜 그렇게 하기 싫을까? 그런 경우를 보면, 분명히 싫은 이유가 있다. 전화를 걸었을 때 그 내용이 즐겁게 진행되지 않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꾸중을 듣는다거나,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달라는 주문을 받게 되거나, 엉뚱한 일을 꼬집어 비난받게 되곤 하는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반면, 시댁에 전화 거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부담이 없는 주부도 있다. 딱히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그다지 싫을 일이 없는 경우는, 상대가 별로 부담스럽지 않은 경우다. 또, 드물기는 하지만, 시댁에 전화드리고 싶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며 정말로 안부가 궁금한 경우도 있다. 그 대부분은 상대방의 반응에 달려있다. 


또한 대부분의 주부들은 집안일이 재미가 없다. 청소와 밥만 다가 하루가 다 간다고 투덜대기 일쑤이다. 하지만 맛있는 것을 해놓고 식구들이 잘 먹으면 기분이 좋고, 그러면 다시 기운을 내서 즐겁게 다시 임하게 되기도 한다. 실수로 음식 맛이 이상해져도 타박하지 않고 고맙게 먹어주면,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반면에 어떤 주부들은 집안일을 정말 좋아하기도 한다. 파워블로거로 알려진 몇몇 주부 9단들은 집안을 항상 깔끔하게 유지하고, 그런 비법을 공유하는 글을 계속 올린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그게 즐거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나도 캐나다 와서 새 삶을 살게 되면서, 이 모든 집안일이 내 의무가 아니고 함께 나누는 일이 되었고, 그 이후로는 집안일이 싫어서 미루는 일로 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의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아이들은 정말 공부 그 자체가 무조건 재미있어서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공부는 더욱더 하기 싫어진다. 공부하는 만큼 성적이 척척 나오면 재미가 붙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잘 나가다가도, 뭔가 틀리고 망신당하면 의욕이 저하된다. 아이가 어릴수록 이런 문제는 더 심하다. 트라우마도 생기기 쉽다.


나 같은 경우, 홈스쿨링을 시작하면서 수학을 떠안게 되었는데, 사실 참 난감하였다. 나는 문과 출신이고, 이제는 초등수학도 상당히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수학을 좋아한다는 아이는 극히 드물지 않은가? 일부 수학천재 같은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지겨운 수학 문제를 엄마와 둘이 앉아서 풀고 있노라면, 엄마랑 공부하는 시간이 싫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안 하려고 뺀질거리면 어떻게 앉혀서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수학은 단기간에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하기 싫다고 마냥 뒤로 미뤄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단 아이를 데리고 서점에 나가서 적당해 보이는 참고서를 골랐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참고하면서 교과서와 더불어 함께 설명을 해주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초등수학도 만만치 않아서 나도 막히는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내게는 해답지라는 무기가 있었고, 당시에 “수학은 밥이다”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강미선 선생의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어떻게 수학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나도 함께 공부했다. 


그리고 내가 따로 선택한 방법이 있었다. 문제를 풀고 채점은 하되, 점수는 매기지 않았다. 다 맞으면 잘했다고 가볍게 칭찬하기는 했지만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았고, 많이 틀렸다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틀린 문제는 틀렸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이가 위축되면서 속상해했지만, 오히려 내가 괜찮다고, 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아이를 달랬다. 몰라서 틀릴 수도 있고, 실수를 해서 틀릴 수도 있다. 실수는 다음에 잘하면 되고, 모르는 것은 찾아내어서 다시 익히면 되는 것이다. 문제를 풀지 않으면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보충을 할 수 없고, 우리는 그런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문제를 풀고 채점할 뿐이었다. 시간을 정해놓고 시험을 보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잘했을 때 과도하게 칭찬하는 것은 스티커로 아이들을 길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에 해당된다. 즉, 칭찬이나 스티커가 없어지면 더 이상 할 의욕을 잃는 것이다. 또한 잘 보이기 위해서 백점을 맞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려운 문제는 되도록이면 풀지 않고 싶어 지게 된다. 반면에 엄마가 백점 맞는 것에 대해서 별 의미를 안 갖는 것 같으면 아이는 엄마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백점을 맞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면 문제를 대충 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백점을 맞기 위해서 어려운 문제를 기피하는 일이 사라지고, 문제를 문제 그 자체로 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어느 순간, 아이는 수학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틀리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부담을 갖지 않게 되었다.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 맞는 쉬운 문제를 푸는 것은 사실 별로 재미있지 않다. 우리가 핸드폰 게임을 한다면, 아주 수월하게 해결하는 단계는 건너뛰고 좀 더 어려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 한다. 처음에 잘 못할 때에는 너무 빨리 움직이는 게임은 버겁지만, 잘하게 되면 될수록, 느린 게임은 시시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음 단계, 다음 단계를 자꾸 추구하며 올라가게 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틀리는 것에 대한 벌이 없으므로, 척 봐서 술술 풀 수 있는 문제에는 더 이상 흥미를 갖지 않게 되었고,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났다. 이제 아이에게 수학은 퍼즐이나 게임처럼 재미있는 과목이었다. 


우리 엄마들더러 수학을 풀라 하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수학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과목이다. 그런 과목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틀리면 안 되는 조마조마함을 갖고 하라고 하면 얼마나 더 하기 싫겠는가. 틀릴 때마다 비난을 받고, 정신 똑바로 안 차려서 실수했다고 질책을 받으면, 정말 죽기보다도 싫은 과목이 될 수밖에 없다. 수학은 이해만 한다고 해서 되는 과목이 아니다. 다 아는 것 같아도, 여러 번 문제를 풀어서 그 이론을 완전히 체득해야만 내 것이 되는데, 틀릴까봐 문제 풀기를 두려워하면 어떻게 실력이 늘 수 있겠는가. 따라서 학원에서 수학을 배우고, 계속 선행학습을 하며, 그때에는 다 안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막상 시험을 보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 그 때문인 것이다. 


빨리 현재 학년을 떼고 선행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심화를 선택했다. 나는 빨리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게 마련이며, 어떤 나이이든지 그 나이에 맞는 경험은 그 나이 때에 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행보다는 심화가 더 좋겠다고 생각하여, 더 깊이 생각하게 하는 문제를 제시했다.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30분씩 붙들고 낑낑거려도 내버려 두었다. 도저히 못 풀겠다 하면, 해답 설명 중에서 한 부분을 슬쩍 던져주었고, 아이는 그것을 참고로 해서 다시 시도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렇게 해서 풀어냈을 때의 성취감은 게임에서 단계를 하나 깨고 올라가는 성취감과 아마 비슷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올림피아드 유형의 문제들은 오히려 선행보다 어려웠고, 숫자만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사고력을 함께 요구하였기에 아이를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우린 급한 것이 없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과정도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내 아이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천천히 하면 되었고, 또 빨리 습득하는 것은 간단하게만 체크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다. 이것이 홈스쿨링이 가진 장점이었다. 아이의 발걸음에 맞춰서 함께 걸어가는 것이 사실 모든 아이들에게 필요한 과정인데, 학교에 다니다 보면, 많은 아이들이 함께 진도를 나가 야하기 때문에 모두 똑같은 보폭으로 걸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늦게 가는 애들은 끌려가거나 쳐져 버리고, 앞서 가는 애들은 끌어당겨져서 같이 천천히 가야 하니, 모두가 흥미를 갖고 가기엔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수학을 가르친 기간은 고작 해서 2~3년이었고, 내용은 초등 수학과 그 심화가 전부였다. 간혹, 학교장 추천이 필요하지 않은 몇몇 경시대회를 시험 삼아 나가 본 적은 있었지만, 그 역시 상을 받아 경력을 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아이가 학년에 맞게 나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 역시 부담 없이 시험에 대한 연습을 해볼 수도 있었고, 나름 나쁘지 않은 성적을 얻어내곤 했다.


그 이후의 수학은 전부 아이 혼자 독학으로 해결하였다. 초중고 검정고시뿐만 아니라, 나중에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미국 대학을 위한 SAT 수학 I, II 과정 시험을 준비할 때에도 독학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였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체크했다가 아빠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공부 자체는 혼자 다 해냈다. 수학 II 시험 볼 당시에 한참 수학에 손을 놓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시간이 부족해서 포기하고 다음 시험을 기약해야 하나 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초치기 하듯이 한 달 동안 급히 공부하고 시험을 봤는데 좋은 성적을 내어서 나도 아이도 깜짝 놀랐다. 어렸을 때 즐겨 익힌 사고력 수학이 힘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아이가 수학에 능하다는 자랑을 하려는 글이 아니다. 수학 같은 과목을 즐기는 아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수학도 하나의 게임처럼 그 재미를 느낀다면 충분히 빠져들 수 있는 과목이며, 어떻게 흥미를 유도하고 인내심을 갖게 도와주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려있다고 보인다는 말이다. 인내심이 없다고 여겨지는 아이들도 컴퓨터 게임을 할 때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매달리곤 하는데, 그런 흥미를 갖도록 유도해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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