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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18. 2021

책을 좋아하게 만들었던 것이 재산

홈스쿨링의 초석이 되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홈스쿨링 하면서 가장 편했던 부분은, 아이가 책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관련된 책만 넣어주면 아이는 뭐든지 읽어나갔기 때문에 내가 따로 가르쳐줄 필요가 별로 없었다. 


수업은, 단기간 내에 스스로 습득할 수 없는 수학과 영어, 이 두 가지만 내가 붙들고 함께 하기로 했다. 사실 내가 홈스쿨링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이것이었다. 중요과목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은, 홈스쿨러뿐만 아니라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서도 역시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리라. 수학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번에 올렸고, 영어는 또 따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이 두 과목을 제외한 다른 과목들은 주로 책으로 대신했다. 국어도 책, 역사도 책, 과학도 책으로 접근이 가능했다. 심지어 수학이나 영어도 책은 필수였다. 내가 가르치는 과목이든 혼자 학습하는 과목이든 책은 언제나 꼭 필요한 도구였다.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아주 여러 가지가 있다.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과, 아이의 의견을 지지해주는 분위기, 든든한 조력자 등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쉽게 폭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독서라고 생각한다. 


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부모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책 읽는 거 중요한지 잘 알죠, 하지만 우리 애들은 책을 싫어해요.” 


아이가 책을 싫어한단다. 책을 왜 싫어할까? 어릴 때부터 쭉 싫어했을까? 물어보면 대부분의 경우는 어릴 때 좋아했지만 글밥이 많아지면서 싫어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책을 왜 싫어하게 되었을까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우선 책 읽는 환경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지 않으면 읽기 쉽지 않다. 


그런데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맨날 읽는 저 책은 이제 그만 읽고 새로운 책을 읽었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그 책만 고집하니까 그 책을 빼앗고 다른 책을 내밀기도 한다. 그러면, 단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빼앗겼다는 이유만으로 새 책은 무조건 싫은 게 된다. 아이들은 뭐든 충분히 하고 나면, 아무리 더 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 읽고 있는 책에서 억지로 흥미를 빼내려 하면 안 된다. 차라리 읽히고 싶은 책을 엄마가 옆에서 읽고 있는다면, 아이는 궁금해서 저절로 흥미를 갖게 될 수도 있다.


또,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있는데, 그거 그만하고 책 읽으라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 역시 위와 마찬가지 이유에서 흥미를 잃게 된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책을 읽으면 상을 주는 것도 좋지 않다. 당장은 책을 더 읽게 되겠지만, 그 상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거나, 상을 주지 않게 되면 책을 읽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책은 그 자체로 재미있어야 한다.


아니, 정말로 책은 재미가 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내용이라면 공감하게 되어서 재미있고,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면 새로운 체험을 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 준다. 아이들처럼 흡수를 많이 하는 시기에는 정말로 책은 재미있는 게 정상이다.


아이들에게 책에 대한 흥미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대부분의 집에 해당된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부모들이 의무감으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준다. 아이들은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엄마를 차지하여서 좋고, 엄마가 다정하게 해 주니 더욱 좋다. 그래서 자꾸만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엄마는 점점 힘들어진다. 책의 글밥이 늘어나니 더욱 힘이 든다. 동생도 돌봐야 하고, 할 일은 많은데...


바로 이 시점에서 아이가 한글을 깨치게 된다. 더듬더듬 글자를 읽기 시작하고, 흥미를 갖는다. 엄마는 옳다구나 하고 아이에게 책을 넘긴다. 하지만 이 시기의 아이들은 글자를 읽을 줄 아는 것일 뿐이지 내용 파악까지는 너무 힘이 든다. 글씨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면 글씨를 읽기에 급급해서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해서, 우리가 영어책을 소리 내어 읽는다고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어른들은 학교 다닐 때 영어를 배웠으니까 유창하지는 않더라도 더듬 더듬이라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옆에서 듣고 있으면, 잘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열심히 읽기는 하는데, 당최 무슨 내용인지는 하나도 모르겠다. 다 읽어지는 것을 보면 그다지 어려운 단어로 되어있는 문장도 아닌데, 문장이 길어지면 내용은 완전히 물 건너가고 괴로운 일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물론, 이 예는 영어에 능통한 부모님은 예외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읽을 줄 알게 되어서 신이 나기는 하지만, 긴 문장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읽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 읽고 나면 내가 뭘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자꾸만 더 읽으라고 한다. 피곤해 죽겠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들은 글자를 보는 것조차 싫어진다. 책은 말할 것도 없다. 글자가 하나 가득 들어있으니까. 그래서 초등학교 갔는 데에도 그림책만 자꾸 읽으려고 하지 글밥 많은 책은 싫어한다고 호소하는 엄마들이 참 많다.


하지만 글밥 많은 책들이라고 해도 동화는 사실은 그다지 어려운 책들은 아니다. 어차피 초등학생용으로 나온 책들이라면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할머니가 오시면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곤 했던 기억들이 있으리라. 나 역시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몇 번씩 들어서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구수하게 들려주시는 그 말솜씨가 너무 재미있어서 또 해달라고 몇 번이고 졸랐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서 전래동화책을 미리 읽고 오셨다고 한다. 


당시 전래동화책이라면, 그림 같은 것은 거의 있지도 않고, 글로만 빼곡한 책들이었다. 만일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해주시지 않고, “이 책을 읽으렴” 했으면 우리 삼 남매가 그리 좋아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할머니 곁에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공감하고 웃던 그 시간이 더 좋았던 것이고, 그러다 보니 책 내용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초등학교 때에도 책을 읽어주었다. 구수한 옛날이야기는 해주지 못했지만, 그 대신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가 함께 읽었다. 아이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은 스스로 읽게 내버려 두고, 글밥이 많은 책들은 내가 읽어주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당시에 처음으로 외국동화 완역본들이 나왔다. 그전까지는 대부분의 동화들이 일본 번역본을 다시 번역한 것들이었고, 축약본들 이어서, 문학작품의 맛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것들이었다. 내가 첫 번째 선택한 책이 소공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두툼한 그 책을 잡으면서, 내가 옛날에 읽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나도 설렜다


나는 잠자리에서 아이에게 매일 한 챕터씩을 읽어주었다. 주인공 세라가 아빠의 죽음을 통보받는 장면에서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렸고 나도 아이와 함께 울었다. 아이는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어서 옛날이야기 듣듯이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하루 한 챕터 밖에 못 읽는다는 것이 몹시 감질났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자야 한다며 단호히 멈추었는데, 어느 날 보니, 아이가 몰래 그 책을 방에 들고 들어가서 혼자 순식간에 그 책을 다 읽어버렸다! 두꺼워서 엄두도 안 나던 책이었는데, 막상 내용은 너무나 재미있고, 읽어보니 생각보다 이해가 잘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재미없게 생긴 책들도 엄마가 읽어주면,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재미있어졌고, 어서 뒷내용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빠르게 읽어 내려가게 되었다. 그 이후로 아이에게 있어서 책은 재미있는 것이라는 등식이 저절로 성립되었고, 학교 끝나고 가끔 내가 다른 볼일이 있어서 데리러 가는 시간이 늦을 때면 학교 도서실에 가서 책을 읽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옛날 책들만 알고 있으니 아이에게 책을 권해주는 것이 한정되어있었는데, 어느 날 봤더니 처음 보는 마법의 시간여행이라는 시리즈를 도서관에서 거의 끝내가고 있었다. 2학년 때의 일이었는데, 그게 나중에 알게 된 유명한 영어 챕터북 매직트리하우스의 번역본이었다. 


내가 처음에 밝혔듯이, 나는 수학과 영어만 가르쳤고 나머지는 책 읽기에 맡겨버렸는데, 그것은 그 두 과목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두 가지는 혼자서 책을 읽는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학과 영어도 책 읽기 도움을 엄청나게 받았고, 그 과목들 역시 책 읽기의 힘 없이는 해낼 수 없었다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 수학도 문제 풀이뿐만 아니라, 책으로 배울 수 있는 부분들이 참 많았고, 영어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국어 같은 경우, 학교에서는 글을 읽고 꼼꼼히 분석하는 일을 시키는데, 나는 사실상 그걸 시키는 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때로는 EBS 강의를 들으면서 그런 필요한 부분들의 내용을 보충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그냥 완전히 자유롭게 읽었으며, 독서 일지도 남기지 않은 채 혼자 한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 시기의 이 자유로운 독서는 결국 나중에 아이가 작가가 되는 데에 정말 큰 영향을 미쳤다. 


앞에서도 이미 강조했듯이, 나는 선행학습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책도 나이에 비해 빠른 책들은 주지도 않았다. 도서대여 프로그램에서는 아이가 책을 잘 읽으니 두 학년 위의 책을 읽히자고 했지만, 나는 무엇이든 그 나이 때에 느껴야 할 감성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그냥 항상 나이에 맞는 책 위주로 읽혔다. 그리고 나중에 그 힘이 모두 아이의 글쓰기에 나타났다.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고 멘토가 되어준 캐나다인 선생님도 당시에 함께 하면서 감탄하셨는데, 아무런 분석 없이 스스로 많은 글들을 읽었기에 스스로 그 모든 구조를 깨닫게 되어서 이런 글쓰기가 가능한 것 같다고 하셨다.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감성을 배웠고, 정의를 배웠으며, 논리를 익히고, 역사를 배우고, 세상을 체험하였다. 물론 책으로만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지만, 단시간 내에 많은 것을 체험하는 특별한 도구가 책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이에게 책 읽는 힘이 생기지 않았다면, 우리의 홈스쿨링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아이를 끼고 앉아서 공부를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있으며, 모든 것들을 내가 아이에게 주입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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