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06. 2021

뒤늦게 시작한 엄마표 영어공부

남들이 늦었다고 생각한 때에 시작

엄마가 전 과목을 끼고 가르칠 수는 없지만, 영어와 수학은 마냥 혼자 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이 덕분에 나부터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을만큼 나도 마음이 급했다. 사실, 아이의 영어공부를 엄마표로 하고자 하는 마음은 진작부터 있었으나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몸이 약한 아이를 붙들고 방과후에 뭔가를 하려는 시도는 무리라 생각되기도 했고, 나는 나대로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이 있어서 아이를 온전히 붙들고 꾸준히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학원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 했던 것 같았다. 학원이 별로 미덥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돈이 아깝기도 했던것 같다. 그냥 집에서도 충분히 시킬 수 있는 것을 굳이 학원을 보내야할까 하는 터무니 없는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일 뿐, 현실은 그저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아이는 유아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 그러면 이미 발음을 터득하고 어느 정도 기초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만 두살도 되기 전에 가서 만 4살때 왔으니, 영어를 접한 시기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번, 2시간짜리 어린이집에 일년 채 안 되게 다닌 게 고작이었고, 그나마 처음 한달은 울기만 하였으니 영어로 문장을 만들 수준이 되지 않았다.


물론, 처음부터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겪었으니 발음은 아주 그럴듯했다. 그래서 한국 돌아왔을때 사람들이 귀엽다고 발음을 시켜보고 깔깔 웃곤하였는데, 아이는 그게 스트레스가 되어서 영어에 아주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바로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몇개 안 되던 영어단어조차 빛의 속도로 사라져버렸다. 주변에서는 아깝지 않냐며 집에서 영어로 대화를 나누라는 둥 속없는 소리를 했지만, 나는 그럴 엄두도 나지 않았고,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에 그냥 그렇게 아이의 영어 발음까지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시도를 전혀 안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학교 교과과정에 영어가 있었기때문에 아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친구가 자기 아이가 사용했던 학습지 교재를 주기도 했고, 나도 나름대로 이런 저런 시도를 하였지만, 모든 학부모들이 흔히 그렇듯이 자기 아이를 집에서 잡고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늘 작심삼일로 끝나곤 했었다.


하지만 홈스쿨링이 시작되고나니 더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더 어릴 때 시키지 않은 것이 후회 되기도 하였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고,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켜야할지 막막했다. 발음도 단어도 모조리 잊어버린 아이를 어떻게 해야할까, 참으로 미안하기도 했고, 난감하기도 했다. 나는 잠시 길을 잃은 듯 헤매었다. 


엄마표 영어에 관련된 글도 무지 많이 읽었고, 그런 책도 사서 보았지만, 정작 이 나이에 새로 시작하려면 어찌해야할지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어릴때에 재미있게 시키는 방법들 뿐이었다. 우리 아이는 3학년 하고도 2학기가 넘은 나이이니 단순히 유치원생들처럼 가르치다간 자칫 지루하고 흥미를 잃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더 난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차라리 아예 공부로 가르쳐보자, 하고 시작한 것이 파닉스였다. 그래서 아는 후배가 권해준 파닉스 책을 붙들고 A 부터 시작을 했다. 펜맨쉽노트에 알파벳을 쓰기 시작하였고, 무슨 철자가 무슨 소리를 내는지 테입을 틀어놓고 연습을 시켰다. 아이는 이미 머리가 어느 정도 큰 상태였기 때문에  예전에 시도했던 것보다 오히려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또한 홈스쿨링 초기여서 아이가 의욕에 차 있었던 것도 한 몫을 하였다. 뭔가 공부하는 기분이 들어서 뿌듯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소리만 내는 연습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문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어린이 영어회화 교재, 'Let's go' 시리즈였다. 그것도, 이웃에서 이미 공부하고 졸업한 책과 테입을 빌려다가 공짜로 시작하다니! 돈 안들이는 간 큰 방식이었다. 아직도 이 책이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특별히 재미난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들어맞았다.


이렇게 시작된 영어는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처음에는 알파벳 철자도 헷갈려하던 아이가, 열심히 쓰고, 열심히 읽으면서 자신의 답답한 실력을 이겨내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초기에는 안 되는 발음을 만들어내느라, "난 왜 이렇게 못하지?" 하며 눈물을 떨구기도 하고 답답해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뭔가 외운다는 것이 차라리 안도감을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교재로 쓰던 책의 진도에만 집착하지 않고, 다른 좀 더 즐거운 것들을 병행해보기로 했다. 테입이 들어있는 옥스포드 리딩트리 책을 몇권 구입해서 주기도 했는데 그것은 분량 대비 가격이 너무 비싸서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두권으로는 되지도 않는데... 

그러면, 예전에 봤던 비디오를 틀어줄까 싶어서, 한동안 전혀 보지 않았지만, 미련때문에 버리지 못했던 영어비디오를 다시 틀었다. 미국에서 아기때 산 것이나 TV에서 녹화를 한 것이어서 자막도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것조차 흥미있게 바라보았다. 그냥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아주 쉬운 아가용 강아지 Spot 비디오도 마다 하지 않았고, 단순한 비디오북인 피터래빗도 보았다. 하지만, 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뒤져서 찾아낸 비디오가 '푸베어의 대모험(Pooh's Grand Adventure)' 이었다. 사실 이 영상은 나도 지금도 좋아한다. 나름 철학도 있고, 영상도 음악도 좋은 훌륭한 만화영화라고 생각한다. 역시 이 영화는 아이의 감수성을 건드려서 아이가 푹 빠져들었다. 아이의 영어 수준에는 다소 높았지만, 소리만 오디오테입으로 떠서 자주 틀어주었고, 어디 갈때에도 들고 다니면서 듣게 해주었더니 아이는 순식간에 그 내용을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다. 3학년 나이면 이런 자연습득이 늦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게 소리와 영상을 연결시키면서 언어를 받아들였다.

또 하나는 씨디롬이었다. 아이가 아가이던 시절에 미국에서 구입했던 교육용 씨디들을 들이밀었다. 아이들은 컴퓨터를 하게 해준다면 무조건 환영이지 않은가! 그래서 이 유아용 씨디 덕분에, 하다 말고 미뤄둔 파닉스를 해결하였고, 단어 암기도 하면서 쉬운 단계를 쑥쑥 지나갔다. 빨리 해서 더 높은 단계를 하고싶었던 것이다.


처음에 시작했던 Let's go를 계속 하기는 했지만, 이것 저것 다른 것도 병행하는 바람에 진도는 생각만큼 빠르지 못했다. 그래도 내용 이해는 훨씬 좋아졌다.

그러더니 전에 서점에 갔다가 한 번 해볼까 하고 사두고 밀어두었던 'Oxford Picture Dictionay'를 혼자 듣겠다고 나섰다. 하겠다는 공부를 말릴 이유는 없으니 놀듯 하라고 내버려 두었더니, 단어만 덜렁 나와있어서 별 재미도 없는 교재를 펴고는, 테입을 들으면서 거기에 나오는 문장들을 신나게 따라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책에 없고 테이프에만 있던 회화 부분을 듣고 혼자서 받아쓰기를 열심히 해가지고는 맞는지 확인해 달라며 들고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서 틀렸던 단어는 금방 외워지는지 쉽게 익혔다. 


비디오는 단편인 'Little Bear' 시리즈가 쉽기도 하고, 에피소드도 짧아서 외우기 더 쉬울것 같아 그쪽으로 방향을 바꿔봤는데 그것도 성공이었다. 단어수가 적지만, 내용이 재미있어서, 무척 좋아하면서 보더니만 역시 같은 방식으로 줄줄 외우기 시작했다. 모르는 단어 들어있는 문장들까지 통째로 다 외워버렸다.


우리 아이가 천재는 아니다. 하지만 본인이 좋아해서 수십번씩 반복해서 보니, 어린 나이에는 바로 암기가 가능하였던 것 같다. 이게 영어 공부를 시작한 후 4개월 째 접어들면서 정리해둔 내용이다. 

그덕에 엄마도 영어공부하느라고 바빠졌다. 아이가 실력이 늘고 있으니 엄마의 알량한 실력으로는 도움을 줄 수 없을 날이 코 앞에 있었기에, 나도 영어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스크립트가 없었기때문에, 아이 혼자 외우다시피 하던 비디오를 내가 나름 받아쓰기 해서 스크립트로 밀어넣었더니, 잘못 외워졌던 몇몇 문장들을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

영어 그림책 사는 것은 포기를 했지만, 그 대신 대여를 선택했다. 당시에 한달에 2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12권의 영어동화와 테입을 빌려볼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때문이다. 일주일에 세권 오는 쉬운 영어동화, 쉽지만 예쁜 그림책, 그리고 약간 유머러스한 내용들이 아이 마음에 드는지, 열심히 보고 듣고를 반복하였고, 시키지 않는데 독서록까지 쓰며 열의를 보였다. 

바비인형놀이 한다고 혼자 방으로 들어가면, 나름의 영어로 역할극을 하며 노는 것을 보면서, 자꾸만 자꾸만 영어를 쓰고 싶은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스스로가 자극이 되는 단계였다. 

문제는, 영어만 자꾸자꾸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수학도 해야하고, 독서도 해야하는데, 다른 것들도 다 재미있지만 그래도 자꾸만 영어만 하고 싶다고 해서 급기야 뜯어 말려야하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일주일에 세권 오던 그림책은 돈을 두배로 내고 진도를 빨리 빼서 일년치를 6개월에 끝냈다.

남의 애들의 진도를 바라보면서 나도 나름 초조했었는데, 이 일을 겪으면서 느긋하게 마음 먹기로 했다. 뭐든 스스로 즐기기만 한다면, 그 다음은 걱정이 없다고 엄마도 믿게 된 것이다. 


(영어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