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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Dec 13. 2021

딸이 무사히 다녀갈 수 있기를...

1인 5역을 하며 하루하루를 불사르는 딸에게 쉴 시간을 주고 싶다

딸이 겨울방학을 맞이해서 올 날이 이제 일주일도 채 안 남았다. 나는 매일 가슴이 두근두근 하며 혼잣말을 한다.


"무사히 다녀갈 수 있겠지?"


오미크론이 들어왔다고 나라마다 난리인 시국에 내 마음은 오로지 딸이 올 수 있을까에 매달린다.  코로나 발생 이후 딸과 생이별했던 순간의 트라우마 때문이리라. 이러다가 또 국경이 덜컥 막혀버리면 안 되는데...


여러 가지 일들이 계획에서 틀어지고 마음고생 많이 했던 딸이, 지난가을부터 학교 생활로 바빠지면서 활기를 찾았다. 늘 용기 있고, 넓은 마음으로 엄마를 헤아려주던 딸이었는데, 2년간 참 힘들었기에,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많이 힘들었다. 일어나려고만 하면 꾹 눌러 주저앉히던 그 현실을 보면서, 역시 세상은 노력한다고 무조건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모든 것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힘, 즉 운도 따라줘야 함을 다시 느꼈었다. 


그래도 작년 겨울에 드디어 집에 올 수 있어서 쉬면서 몸과 마음을 추슬렀고, 이제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여전히 건강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활기차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알기에, 집에 와서 짧은 기간이라도 푹 쉬게 해주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다.




코로나 때문에 1년 연기되었던 대학원 생활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집 구하는 과정에서 애를 먹기도 했지만, 그래도 결국은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고, 활기차게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친구들은 가끔 이런 요구를 한다. "네 얘기 말고, 너네 딸 얘기 좀 해봐. 요새 어떻게 지내?" 이것은 딸이 사실 남들과 다른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이고, 그 때문에 이 아이는 커서 어떻게 될까 궁금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안다. 


딸에 관련된 홈스쿨링 이야기를 쓰다가 잠정 중단하였는데, 옛 일들을 그러모아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다른 일들에 비해 뒤로 밀리는 듯하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나는 또 아이의 지금 이야기를 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독자분들도 홈스쿨링으로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궁금할 수 있을 듯하여, 딸의 현재 상황을 간단히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영문과로 미국 대학을 입학했던 딸은 지금 역시 미국에 있는 대학원에서 애니메이션이 전공이다. 과거에 했던 일들은 모두 현재와 연결된다고 믿는데, 역시나 아이의 영어와 글쓰기 능력은 지금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오래 쉬어서 정말 몸이 근질근질했던 아이는 학교 생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수업만 들으면 되는 형편은 아니다. 미국 학비는 천문학적으로 비싸고, 장학금을 일부 받아도 돈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적 생활비도 필요하다. 월세만 해도 백만 원 가까이 들어가니 기본 유지를 위해서도 아르바이트는 필수다. 현재 영어 글쓰기 과외를 3명 하고 있고, 웹툰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콘티 작업을 하고 있다. 소설을 웹툰으로 바꾸는데 맞도록 스토리 라인을 잡아 스케치를 해주는 일이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조교를 하고 있다. 학부가 있는 종합대학이기 때문에, 학부 수업에 들어가서 학생들을 체크하고, 학생들의 숙제를 다 읽고 코멘트를 붙여놓으면, 교수는 그걸 점검해서 점수를 매긴다. 맡은 과목이 스크립트와 스토리보딩이니 아이가 원래 잘하는 일이다. 이미 학부에서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숙제를 봐주는 라이팅센터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런 일은 아주 능숙하다. 교수는 자기보다 빠르게 읽고 코멘트를 한다고 아주 만족한다니 다행이다. 사실 아이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일을 할 때 에너지를 얻는 성격이다.


학교에서는 따로 과대표가 있거나 하지는 않지만, 관련된 자질구레한 심부름들을 맡아서 하다 보니, 학과의 대표로 교수회의에도 참관을 한다고 했다. 그곳에서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세상을 또 만날 수 있으니 그것도 좋다고 했다.


이게 지난가을까지의 보고였다. 이미 아이의 스케줄은 포화의 상태로 보였지만, 아이는 딱 잠이 밑지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긴장감이라며, 일거리가 없는 것보다 이렇게 빡빡한 삶이 좋다고 말했다. 놀러 다닐 시간은 없지만 무엇보다도 꿈을 꾸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이 아이에게 용기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내가 좀 넉넉해서 돈 걱정 안 하고 공부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저렇게 일 해도 졸업할 때까지의 학비는 되지 않으니 말이다. 돈 욕심이 없는 나는 평생 수중에 돈을 제대로 쥔 적이 없었는데, 정말 자식이 이러고 있으니 뭔가 돈 벌 재주가 있으면 좋겠다 싶다. 그래도 아이가 늘 밝고 씩씩하게 임하니 엄마는 너무 고맙다.


그러던 와중에 최근에 일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교수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진행하는 외부 프로젝트가 있는데, 진행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서 새로이 PD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스토리보딩 교수가 그 자리에 아이를 추천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너무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덥석 수락을 해버렸다. 물론, 너무 좋은 기회 맞다. 그런 자리는 원래 경력자에게나 오는 것인데, 신입생에게 그런 기회를 준다니 아마 절대 놓칠 수 없었으리라. 함께 일하는 총 여섯 명의 학생을 잘 지휘해서, 수준 있는 상품을 시간 내에 맞춰서 생산해내게 하는 막대한 임무여서 리더십은 필수이고, 그쪽 분야를 다 이해해야 가능한 일이다. 


처음에 교수님은 대략 일주일에 6시간 정도 일 하면 될 거라고 하셨지만, 막상 착수하고 보니 그간 PD 없이 진행되던 일이라 두서가 없어서 손을 대야할 곳이 너무 많았다. 학생비자를 가지고 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최대 20시간 안에 조교 일과 함께 구겨 넣기에 모자랄 만큼 일이 많았다. 그리고 학교 일은 보수가 짜다. 최저시급을 살짝 넘기는 수준이다. 오로지 경력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다.


다시금 잠을 깎아 넣는 생활이 시작되었으니 엄마는 조마조마하다. 아이가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그래도 언덕 위에 있는 학교에 매일 자전거로 등하교를 하니 그걸로 운동이 된다며 웃는 아이는, 알러지가 있어서 못 먹는 음식도 많으니 매식도 거의 불가능하다. 사실 돈도 절약해야 하고... 그래서 매일 도시락을 스스로 싸가지고 다닌다. 요새는 아침마다 김밥을 싸서 등교한다고 하니 도대체 그 시간들을 어디서 만들어내는지 모르겠다. 


닭가슴살 김밥과 노버터 시나몬 롤


가끔 숙제로 만들었다고 애니메이션 만든 것을 보내오는데, 보고 있으면 재미나다. 남편은 아이가 문학에 소질이 뛰어난데 이렇게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는 게 아깝다고 - 아이에게 말은 못 하고 - 맨날 안타까워하는데, 결국은 그 소질이 애니메이션 작품에서도 끼를 발하고 있는 게 보이니, 나는 결국 하나로 연결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아이에게 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다. 아이가 행복해지는 것. 원하는 대로 꿈꾸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생산과 창작의 기쁨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아팠던 2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금 살아나서 달려주니 더할 나위 없이 고맙다.




다 쓰고 나서 보니, 읽어보니 실존인물의 스케줄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자식 자랑이 지나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냥 짠하다. 미안하기도 하고... 


남편은 아이 온다고 아이 방에 침대커버 빨리 안 사느냐고 맨날 성화해서 아이방 색에 딱 맞는 것으로 주문했다. 그리고 오자마자 빨아서 침대에 장착하니 색이 방이랑 딱 맞는다. 아이 그림들도 벽에 걸어주고, 마지막 마무리를 했다. (아이 방이 노란색이 된 사연 : https://brunch.co.kr/@lachouette/226)


어젠 학교 기말고사 영상 상영 행사가 과외 시간이랑 겹친 것을 잊어버려서 과외 수업을 펑크 냈다고 했다. 뒤늦게 깨닫고 속상해서 발 동동 구르는데 어찌나 짠한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그리 많으니 그런 실수도 나올 수 있다고 문자로 다독여줬다. 


와서 뭐 먹고 싶냐고 묻는 엄마의 말에, "많이 안아주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렴! 그래야지! 엄마도 그러고 싶다.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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