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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05. 2021

갑작스러운 손님 초대

함께 살아가기...

우리 부부가 먹방 부부라는 사실은 이미 구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 이리라. 우리는 정말 잘 먹고 지낸다. 외식은 전혀 안 하지만, 미식가 남편 덕분에, 계절별로 신선하게 나오는 각종 해산물과 농산물을 챙겨 먹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더구나 지금은 남편이 방학인지라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더욱 잘 먹고 지낸다.


최근에 남편이 신선한 홍합을 주문했다. 그날 잡아서 살아있는 홍합을 판매하는 시스템이므로, 미리 예약 주문을 받고 필요한 만큼 수확하는 홍합이다. 그에 맞춰서 큰 딸 내외도 초대를 해놓은 상황이었는데, 넉넉한 양을 주문하였으니 한 번은 더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누군가와 나눠 먹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생각이 나는 사람은 여럿 있었으나, 그중 딱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지난 늦은 봄, 토마토 모종 남은 것을 나눔 하던 때에 와서 받아간 아가씨가 한 명 있었다. 대부분은 아기 엄마들이었는데, 그중 유일하게 아가씨였고, 멀리 다운타운에서 이 토마토를 받기 위해 거의 한 시간을 운전해서 왔었다. 뭘 하느냐 물었더니, 공부도 하고 일도 한다고 했다. 가족 없이 타지에 혼자 나와있는 그녀를 보니 물론 나는 딸이 생각났다. 좀 가까우면 한 번씩 와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 하면 좋을 텐데 아쉽다고 말을 흘렸더니, 불러만 주시면 언제든 오겠다고 싹싹하게 대답을 하는데 가슴속이 찡 했던 기억이 가슴에 남아있었다.


우리 딸이 미국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지냈을 때, 매일 쓸쓸히 혼자 밥을 먹었을 생각을 하면서, 누군가가 아무 이유 없이 가끔 불러서 따뜻한 밥이라도 먹여주며 보듬어 주었으면 좀 덜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었는데... 그렇게 그녀가 계속 내 마음속에 있었다. 그래서 무작정 문자를 보냈다.


"토마토 잘 크고 있나요?"


다음날 아침에 답장이 왔다. 토마토가 한창 자라고 있는데, 아직 익지는 않고 녹색이라는 대답이었다. 게으른 방학을 보내고 있던 우리는 아침도 게으르게 보내고 있었다. 옆에 누워서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로 뉴스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우리 오늘 이 아가씨 불러서 저녁 같이 먹을까? 하고 물었다. 남편은 누구냐며 이름을 물었는데, 나는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몰랐다. 그냥 포럼에서 사용되는 닉네임을 알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남편은 이미 내 마음을 다 읽었고, 그러자는 대답이 나왔다. 다음 날이 남편의 큰 딸 불러 저녁 먹이는 상황이었으니 마음이 한가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간단히 먹자면 못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갑작스럽지만 오늘 저녁에 시간 되느냐고... 그 아가씨는 어리둥절해하면서, 무슨 일이냐고, 그리고는 시간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 홍합 주문한 거 받으러 가는데, 해산물 괜찮으면 와서 저녁 같이 먹겠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기분 좋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면 저야 너무 감사드리죠!" 그렇게 해서 약속이 잡혔다. 혹시나 싶어서 무슨 알러지는 없냐고 묻기도 했고, 자기만 오는 것인지 어떤 종류의 자리인지 묻는 질문도 왔다. 그냥 대단한 것 없이, 우리 먹는데 숟가락 하나 더 얹어서 먹는 것이니 아무 부담 없이 오라고 했다. 그게 정말 진심이었다.


식사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역시 양식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한식은 다운타운에 식당이 많으니 종종 사 먹을 것 같았고, 캐나다인 집에 초대되는 일은 드물 테니 말이다. 프랑스식 홍합요리와 꽈리고추 볶음을 전식으로 먹고, 생선을 메인으로 하기로 했다. 부랴부랴 바게트를 굽고, 오후에는 가서 홍합을 받아왔다. 길이 막혀서 순식간에 굉장히 분주해졌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그녀는 도넛을 사들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나타났다. 사실 와인을 사 오고 싶었는데, 이쪽 지리를 몰라서 리커 스토어를 못 찾았다며 수줍게 웃는 그녀의 도착으로 우리 집안에 활기가 돌았다. 처음에는 약간 쑥스러워했지만 잘 웃고, 붙임성이 좋았다.


데크에 앉아서 전식을 하면서, 어떻게 캐나다에 오게 되었는지 묻기도 하였고, 반대로 그녀도 우리 부부가 어떻게 만났는지에 관해 묻기도 하고, 제법 허심탄회하게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그렇게 전식을 마치고, 남편이 생선요리를 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도 뭘 같이 할까 했더니, 남편은 혼자 하겠다며, 날이 더 어둡기 전에 그녀와 마당 투어를 하라고 했다. 그 덕에 우리는 마당을 돌며 이야기를 나눴다. 작은 꽃화분도 하나 건네주며 잠시 동안 한국어로 수다를 떨었다.


뒷산 입구에 심었더니 과꽃이 처음으로 피었다.


룸메이트랑 셋이 사는데, 원래 알던 친구가 아니고, 그냥 방 구하면서 연결된 사이라고 했고, 음식은 거의 해 먹지 않고, 간단한 것을 사 먹거나, 아니면 밥에 계란 프라이 같은 것을 먹는다고 했다. 안 봐도 알것 같았다. 사실 혼자 살면서 뭔가를 해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자칫하면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그리고 일도 하고, 공부도 하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서 부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더욱 들었다. 


그녀는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모든 음식을 정말 맛있게 남김없이 잘 먹으니 음식을 준비한 사람의 입장에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서, 이제 자기도 뭔가 제대로 된 음식을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작은 것에 크게 감동하고, 밝으면서 예의 바르고, 꾸밈없는 모습이 참 예뻤다. 


전식 사진은 못 찍었고, 본식만... 크림소스 대구요리에 당아욱 꽃을 얹은 샐러드


저녁 7시에 도착해서 10시가 될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은 빵과 작은 화분을 챙겨주면서, 김치라도 좀 새로 해놨으면 주는 건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떠나는 그녀더러 남편은, 집에 도착하거든 잘 도착했다고 꼭 문자 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고, 그녀도 명랑하게 그러겠다고 대답하였다. 마치 자식을 먼 길에 보내듯이 말이다. 보내 놓고 들어오면서 남편이 내게 말했다. "저 아이, 부르길 잘했지?" 자식 가진 부모의 마음은 다 비슷하리라.


배웅하고 들어오면서 가슴속이 따뜻해져 왔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 기억들이 떠오르며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멀리 옛날, 내가 프랑스 유학하던 시절도 생각났다. 턱없이 가난하던 그 시절, 나를 불러다 밥을 차려주었던 아주머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겠구나 싶었다. 내가 책상과 책꽂이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자기도 이케아 가야 한다며, 차 없는 나를 데리고 가서, 그 조립식 가구를 함께 사서 우리 집까지 가져다주었던 분이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이케아라는 곳을 구경했으니 마냥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30년 전이니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하루는 한국에서 선편으로 부친 책들이 도착했는데, 내 키만큼 커다란 나무 궤짝에 들은 채로 배달이 되어 집 앞에 놓여있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포장이 되어서 오는 줄도 몰랐고, 사실 물건도 그리 많지 않았는데, 얼마나 난감했던지! 아무것도 없는 유학생이 이 단단한 궤짝을 어떻게 열겠는가? 고민을 하다가 무작정 집 밖으로 나가서, 코너에 있던 식료품 가게 주인아저씨에게 망치나 뭐 비슷한 도구가 있으면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랍인 가게여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문을 열던 곳이었다. (프랑스는 슈퍼마켓이 6시면 문을 닫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늘 부지런하고 성실한 모습의 아저씨였지만, 아저씨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냥 무뚝뚝해 보여서 그 전에는 딱히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는데도 나는 절박했다. 아저씨는 왜 그러느냐고 묻더니, 바로 연장통을 꺼내 들고 우리 집에 와서 박스를 해체하고 쓰레기를 처리해주었다. 그 이후로는 야채를 구입하며 안부를 묻곤 하였다. 지난번 신혼여행 갔을 때 그 가게를 찾아보았으나 흔적도 찾을 길이 없었다. 하긴, 그때 그 아저씨가 이미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테니...


그렇게 구한 집이 결국 너무 비싸서, 나중에 다른 집으로 옮겼는데, 그 주인 부부는 나를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근사하게 대접해주셨다. 화목하고 다정한 흑인 가족이었다. 부인 및 아이들과 일일이 비주(bisou, 볼을 맞대는 프랑스식 인사)를 하고는 애피타이저부터 풀 코스로 잘 먹었던 따뜻한 기억이 있다. 그 주인 부부의 마음이 지금 우리의 마음과 같았으리라.


프랑스 유학시절 참 많이 배가 고팠다. 슈퍼마켓에서 단돈 몇십 원 차이로 원하는 것을 구입하지 못하던 시간들을 보내고 결국은 공부를 끝마치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었는데, 그래도 그 힘든 순간들에 고마웠던 기억들이 남아있고, 나는 또 그렇게 성장했던 것 같다.


딸아이가 미국 대학에 유학 갈 때, 아이를 데리고 가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묵을 데가 없을 때, 선뜻 집에 오라고 하였던 지혜 씨는 전에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온라인 카페 지인이었고,  아이가 방학을 집에서 지내고 돌아갈 때면 아무 대가 없이 아이를 공항에서 픽업해주셨던 주디 할머니는 아무 연고 없는 미국인이었다.


또 그냥 가까운 최근만 생각해도, 얼마 전에는, 우리 집의 오이는 늙혀도 노각오이가 잘 안 되는 것 같다는 글을 페이스북 텃밭 모음에 썼더니, 집에 노각오이가 많다며 선뜻 와서 가져가라 하신 분이 있어서 덕분에 고향의 맛을 즐기기도 했다. 


아작아작 상큼 오독오독... 밥도둑 노각오이


세상은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돌아간다고 나는 믿는다. 삶은 그리 쉽지 않고, 누구나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런 일에는 국적도 인종도 중요하지 않다. 물리적 도움도 유용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교류가 이루어질 때 사람들은 위로를 받는다. 그것은 상호적인 것이며, 손길을 받은 사람뿐 아니라, 손길을 내민 사람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남에게 사랑을 받을 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남에게 사랑을 나눠줄 때 더 크게 느끼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시간이 지나서 잘 도착했다는 그녀의 문자를 받고, 사진도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꽉 찬 하루를 보냈다는 기분 좋은 마음이 들었다. 흔쾌히 식사를 함께 준비하고 맞이해준 남편에게 감사하고, 또 즐겁게 먼길을 달려와서 좋은 시간을 나누며 행복해했던 그녀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이렇게 나이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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