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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17. 2021

봉숭아물들이기성공

첫눈을기다릴까나

작년에 키웠던 봉숭아에서 씨앗을 받아 올 해도 키웠다. 작년엔 모종으로 네 그루 얻어다가 심은 것이었는데, 씨앗을 받아 놓은 덕에 올해는 넉넉히 심었다. 모종을 여유 있게 만들어서 몇몇 친구들에게도 나눠주고, 이웃집에도 나눠주고도 이렇게 많이 자랐다.


원래 봉숭아는 비옥한 땅에서 키가 삐죽하게 자라서 휘청거린다. 그래서 지주대를 받쳐주었다. 그러더니 안타깝게도 벌레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날이 더워서 잎이 마르나 싶었는데, 응애가 번지기 시작한 것이었고, 특히나 더운 날씨에 속수무책으로 번져갔다. 다행히 날이 다시 쌀쌀해지니 뜸해져서, 살아남은 것들은 그래도 푸른 잎을 가지고 있어서 가을을 쓸쓸하지 않게 맞이하게 해 줬다.



처음에는 연한 색 꽃들만 피더니, 점차 짙은 꽃도 피어오르면서 화단에 꽃을 채워줬다. 봉숭아 꽃은 참 예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려하면서도 우아하고, 얇은 꽃잎이 겹을 지어 한들거리는 모습은 한참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어린 시절에는 그리 예쁜 줄 몰랐던 것 같다. 그저 물들이기에 급급해서 꽃이 예쁜지 별 생각이 없었나 보다. 씨앗도 조롱조롱 매달리면 꽃 부럽지 않게 예쁘고, 톡 터져 나오는 씨앗은 건드리는 재미도 있다.



어릴 적, 봉숭아 꽃이 필 무렵이면 언제나 어머니가 손톱에 물을 들여주셨다. 집에서는 매년 사용하는 천이 있었다. 사용 후에 빨아서 가지런히 개서 서랍에 넣어두셨는데, 꽃물로 범벅이 되어 얼룩덜룩한 모양이 오히려 기대감을 상승시켜주었다. 분홍색 그 천이 눈앞에 아련하다.


그런 추억을 되살리려고 작년에 물들이기를 시도하였으나 백반이 없어서 완전히 실패하였다. 그때의 실망한 마음 이후로 그냥 시큰둥했는데, 빨간 꽃이 피는 것을 보니 마음이 동해서 다시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번엔 기어이 아마존에서 백반을 찾아냈다. 



백반은 영어로 alum이라고 하는데, 서양사람들은 옛날에 피클을 만들 때 넣었다고 한다. 백반을 넣으면 오이가 무르지 않고 더 아작한 맛을 내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식용으로 사용을 권고하지 않아서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예전엔 이렇게 양념통에 들어서 후추 구입하듯 쉽게 살 수 있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무기를 장전하였으니 물들이기에 돌입하였다. 비 예보가 있길래, 봉숭아 잎과 꽃을 하루 미리 따서는 그냥 그릇에 담은 채로 묵혔다. 잎이 너무 촉촉하면 오히려 즙이 너무 많이 나와 주체가 어렵다. 살짝 마르는 것이 좋다. 그래서 하루 전날 따두면 그다음 날 딱 적당해진다. 만일 당장 물을 들일 수 없다면, 그대로 냉동했다가 나중에 사용해도 된다.


사실 꽃보다는 초록색 잎사귀가 막상 물이 더 잘 든다. 꽃은 그냥 기분 내려고 넣고, 없으면 잎만 가지고 해도 충분하다. 잎은 초록색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붉은 색소도 함께 있다고 한다. 비록 양이 적어서 초록색으로만 보이지만, 붉은색은 물이 오래 남고 초록은 쉽게 빠지기 때문에 손톱에는 막상 붉은색만 염색이 되는 거라고 한다. 



흠! 백반을 얼마나 넣어야지? 하도 오래되어서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백반의 양이 적으면 물이 잘 안 들 것 같았다. 아마 작년에도 백반 대신 소금을 넣으면서 너무 소량을 넣어서 전혀 염색이 안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잎을 찧으면서 처음에 백반을 봉숭아 무게의 반을 넣었다가, 빻고 나서 다시 더 넣어서, 봉숭아와 백반의 비율이 1:1 정도 되게 만들었다. 


원래 봉숭아 물을 들여주던 어머니의 엄지와 검지가 먼저 물이 빨갛게 들던 것을 떠올리며 내 손가락을 봤더니 연하게 색이 비쳤다. 성공 예감! 일회용 장갑을 잘라 봉숭아 얹은 손톱을 감싸고 테이프로 붙여서 완성! 남편은 왼쪽 새끼손가락 하나만 들이고 나는 약지까지 두 개씩 감싸고 잠자리에 들었다. 


비포 & 애프터


아침에 눈 뜨자마자 부스럭거리며 비닐을 벗긴 남편이 외쳤다. "오, 이런! 이거 정말 빨갛잖아!" 작년에 워낙 드는 둥 마는 둥 거의 보이지 않았기에 올해도 그러리라 생각했다가 너무 빨갛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방금 풀었을 때는 더 빨개 보인다. 하지만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더니, 빨강이 아니고 오렌지 색이라며 더 반겼다. 헤나 염색 같은 색상이라고 했다. 하긴,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봉숭아 키트가 사실은 헤나로 만든 것이라는 소리도 들었는데, 색상이 비슷하게 나올 수 있겠다.


드디어 봉숭아 물들이기 한을 풀었네. 이제 첫눈 오기만 기다리면 되는 것인가? 하하!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 중 일부를 앞으로 함께 올릴 거예요. 내용이 같을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어투나 내용을 손 봐서 올라가게 되네요. ^^ 그리고 본사에서도 제목을 새로 달아서 나가느라 약간 분위기가 바뀌기는 해서 좀 놀라기도 하고요. 같은 주제 다른 내용으로 오늘 기사 올라갔으니 함께 구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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