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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19. 2021

추석 때 뭐 하고 싶어?

명절은 함께 해야 제 맛!

한국의 최대 명절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의 많은 며느리들은 벌써부터 추석 증후군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까짓 거 일 좀 하는 것 가지고 뭘 그리 엄살이냐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며느리들에게 추석은 단순히 전 부치기 싫은 행사의 날은 아니다. 일 보다 더 무거운 무게가 있다. 다들 아는 이야기이고, 보따리 풀면 모두들 한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더 할 필요도 없다.

추석 때 뭐 하고 싶어?


남편은 올해도 어김없이 물었다. 캐나다 와서 이 사람과 결혼하고 세 번째 맞이하는 추석이다. 아직도 한국 풍습이 낯선 그이지만 특히나 이런 명절에는 꼭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한다. 첫해에 남편에게 추석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물어오는 질문이지만, 한 번도 속시원히 대답한 적이 없었다. 


주부들에게 명절은, 무엇을 하고 싶은 선택권 같은 것이 없는 게 보통이다. 그냥 의무만 있을 뿐... 한국의 명절을 즐기고 싶다고 하기엔 생각나는 것들이 전부 일거리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의 남편과 함께 살면서 겪고 있는 삶에서, 음식 하기는 사실 더 이상 버거운 일은 아니다. 상당 부분을 남편이 함께 하기 때문에, 그저 즐거운 놀이가 되는 일이 많다. 언젠가부터 식사는 귀찮은 일거리가 아니라, 함께 차리고 함께 먹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추석 음식은 추억을 가지고 먹어줄 사람이 필요하긴 하다. 남편에게 있어서 송편은 그냥 몇 개 맛보는 음식일 뿐이고, 삼색전도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멸치 볶음이나 청국장이 더 맛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요란스럽게 음식을 하기에는 그다지 재미가 있지 않다. 물론 엘에이 갈비를 하면 좋아하겠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첫 해에는 추석 직전에 영주권이 나오는 바람에 국경 넘어 나들이 여행을 했었다. 떡 쪄서 들고 미국으로 넘어가서, 딸과 중간 지점인 시애틀에서 만나 추석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작년엔 코비드 사태 때문에 딸도 못 오고, 우리도 못 가고 가슴 아픈 기간이었기에 전혀 명절 기분을 내지 않고 넘어갔다. 


추석이면 송편 빚다 말고 딸아이가 장난을 하곤 했다.


올해는 뭘 할까? 한편으로 명절 음식을 좀 하고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뭘 얼마나 먹겠다고 이걸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런 기분이었다. 추석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서는 딸이랑 송편을 빚어야 제맛이고, 명절에만 먹는 음식에서 특별한 정감을 느낄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딸은 못 온다. 학기가 한창이다. 내가 망상 거리며 대답을 못 하고 있으니, 남편이 다시 덧붙였다. 무엇을 하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누구를 초대하고 싶으면 집에 불러도 좋다고 하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 명절에 혼자 지낼 그 아가씨가 생각났다. 나한테 토마토 모종을 얻어갔던 늦깎이 유학생. 지난번 홍합 주문할 때 불렀던 그 아가씨. 명절 때면 한국 생각도 날 테고, 여긴 가족도 없으니 불러다가 저녁이라도 함께 먹으면 좋겠다 싶었다. 혼자 추석에 수업 듣느라 바쁜 딸을 생각하며, 내 딸 대신 남의 딸을 챙기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음식을 할 이유가 생기는 게 아닌가? 떡도 좀 해서 가져가라 싸줘도 좋겠다 싶어 지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그런데 남편은 출근할테니 떡은 혼자 해야 한다. 이런 것은 누구랑 같이 해야 즐거운 법인데... 딸이 옆에 있어서 두런두런 하면 재미나겠지만 그것도 불가능하고...


그러자 내게 영어를 배우는 분들이 생각이 났다. 결국 그분들도 다 타국 생활을 하는 상황이니 이럴 때에 함께 떡 만들면서 수다를 떨어도 좋겠다 싶었다. 종종 연락하고 지내던 몇몇 분들에게 연락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명절에 떡 하는 것은 며느리들이 싫어하는 일들 중 하나인데, 내가 시어머니처럼 불러서 떡 하자고 하면 혹시 난처해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다들 반색을 하며 좋아했다. "어머! 정말요! 재미있겠다!" 하며 반기는 게 아닌가. "그러면 나는 콩을 준비할게요." "나는 쌀가루를 사 가지고 갈게요." 하면서 어느새 당번을 정하고, 들떠서 손꼽아 추석을 기다리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으로 간사하다. 떡 만들기가 의무가 아닌 자발적 선택이 되면서 놀이가 될 수 있다니 말이다. 내가 아이를 홈스쿨링으로 공부 가르칠 때에도 늘 그 점을 염두에 두었는데, 어른들의 삶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주부로 살면서 음식 몇 가지 하는 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다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지!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선물을 받은 이번 추석에, 나는 또 음식을 할 것이다. 같이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을 위해서... 이웃들과 깔깔거리며 송편을 빚고, 남편이 따주는 솔잎으로 송편도 찌고, 마당에서 깻잎과 호박을 따서 전도 부치고, 마트에서 사다 놓은 녹두로 전도 부치고 말이다. 나는 깨소를 담당했으니 오늘, 깨부터 볶아야겠다



오마이뉴스에 같은 글을 올리려고 하는데, 늘 글을 수정하면서 상당히 달라지네요. 아마 이곳 브런치에는 이미 저와 쭉 함께 해오신 분들이 많아서, 이어지듯 쓰고 싶어서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같은 주제, 살짝 다른 글로 제목도 완전 바뀌어서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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