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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l 04. 2021

토마토 모종 나눔을 하고...

모종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기분

나는 이상하리만큼 토마토에 집착을 하는데, 토마토가 가진 성질이 참 특이해서 키우는 재미가 남다르다는 것이 그 가장 큰 이유이다. 하지만 오늘은 토마토 키우는 법에 대해 정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정리를 곧 하기는 할 거다) 내가 이렇게 토마토에 집착한 결과로, 혹시라도 모종 만들다가 잘못될까 봐 파종을 많이 하고, 나중에 추가로 또 하는 바람에 텃밭에 심고 나서도 많은 모종이 남은 것이다.


바구니에 매달아 키우는 토마토


사실 진작부터 나눔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농장에서 사 온 토마토를 먹고 씨를 받아 싹을 틔운 것이어서 혹여라도 모종이 신통치 않아서 꽃이 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그냥 미루고 또 미뤄왔었다. 그런데 이제 모종 트레이에 둘 상태를 벗어난 사이즈가 되면서, 누군가에게는 가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살며시 꽃이 보이는 상태를 보면, 그대로 키워도 잘 자랄 거 같았다. 


그래서 동호회에 나눔 글을 올렸다. 별거 아닌 것이라서 좀 민망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혼자 끼고 있느니 더 늦기 전에 나누고 싶었다. 이미 시기상으로 모종 심는 시기가 지나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올 거 같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모종이나 뭔가를 나눔 하면서 느끼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이렇게 외국에 나와 살고 있으면, 삶의 정이 더 필요하고, 또한 무료 나눔을 기꺼이 찾는 사람들은 삶에 열심인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남에게 뭔가를 공짜로 받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게 되기 때문에, 굳이 뭔가를 챙겨서 오는 사람들도 있다. 집에서 직접 만든 반찬이나 과일, 또는 음료수라도 챙겨가지고 오는 분들을 보면, 빈손으로 오라고 미리 말할걸...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이 작은 모종, 이제는 화원에서도 떨이로 싸게 파는 것을 받으러 오는 이에게 뭔가를 되받는 것은 오히려 내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작은 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냥 안 받겠다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빈손으로 오는 사람들이 편하다. 내가 뭔가 대접을 잘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덜고 싶은 내 이기심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 살아서 그냥 터덜터덜 와서 부담 없이 가져가면 주는 내 마음도 한결 편하다. 특히나 이런 모종 같은 것은, 그 집에 가서 잘 커야 하는데, 혹시라도 잘 안 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토마토를 건네주면서 옮겨 심을 때 주의 사항을 알려준다. 밑의 잎을 이렇게 따고 여기까지 깊게 묻으세요. 저녁에 옮겨 심으시고요, 화분에 심으실 거면 낮에 심어도 되는데, 심고 나서 그늘에 놔두세요. 첫날은 물을 듬뿍 주시고... 그러면서 나는 어쩐지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럴 때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눈을 반짝이는 상대방을 보면 나는 의욕이 샘솟는다. 적극적으로 듣는 것을 넘어서서 마당을 구경하면서 감탄을 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아, 이 사람이 정말 식물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러면 뭔가 더 줘도 좋겠구나 싶어 진다. 괜스레 오지랖을 떠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눈치를 보면서 "돌나물 이렇게 뜯어서 심으면 그냥 뿌리내리는데 심으실래요?" 이렇게 말이 저절로 나온다. 게다가 마당이 있다고 하면, 땅이 놀고 있다고 하면, "이 호박도 가져다 심으실래요?" 하며 화분 하나를 또 하나 건넨다. 


이민 와서 일 하느라 바쁘고, 세 들어 살고 있지만, 주인집 마당을 쓸 수 있다는 분은, 눈을 반짝이며 주는 것을 열심히 받아 들었다. 나가는 길에 "어머! 봉숭아도 있네요!" 하길래, 봉숭아도 하나 뽑아서 건네주었다. 타향살이하면서 내 고향에서 키우던 것을 키우면 어떤 기분인지 잘 알기 때문이리라. 


익어가는 라즈베리


아이가 따라와서 더 열심히 구경하는 경우에는 라즈베리 익은 것을 따주기도 하고, 꽃을 꺾어주기도 하며 아이들의 기분을 맞춰주기도 한다. 애들 때 이렇게 식물에 관심이 있으면 더 이쁘게 느껴진다.


제일 마지막에 왔던 사람은, 직장에 다니면서 자그마치 밴쿠버 시내에 살고 있는 아가씨였다. 우리 집에서 시내까지는 50분은 족히 걸리는데, 그 먼길을 이 토마토 하나를 바라보고 온다니 내가 미안스러웠다. 내가 모종을 고르는데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아서 들여다보고 같이 고르고,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멀리서 왔으니 뭘 더 줘야 하는데... 하면서 "부추, 어젯밤에 분갈이하고 남은 거 있는데 길러볼래요?" 했더니 신이 나서 좋다고 한다. 방울토마토 모종도 하나 더 건네주고, 돌나물도 꺾어주고... 처음 키우는 거라는데 너무나 의욕이 넘쳐있었다. 


내가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양파를 물꽂이 해서 쳐다보던 생각도 나고, 딸내미가 혼자 미국에서 지내던 재작년 생각도 나고... 그럴 때 뭔가를 키우는 것은 분명 힘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혼자 사느냐고 물었더니 룸메이트가 있다고 했다. "가까이 살면 가끔 놀러 오라고 하면 좋을 텐데..." 하며 말을 흐렸더니, "그러게요. 하지만 불러주시면 즐겁게 오겠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말을 하며 떠났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옛날엔 우리나라도 집에 사람 불러다가 숟가락 하나 더 얹어서 밥 먹이는 일이 흔했는데, 요새는 어디선가 외식을 하면서 밥을 사주는 경우가 아니면 그런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쓸쓸해졌다. 혼자서 식사 챙기는 딸이 생각나서 그랬겠지. 


보내 놓고 돌아서서 남편에게 그 아가씨 이야기를 하는데, 괜스레 청승맞게 눈물이 나왔다. 외국에서 씩씩하고 이쁘게 잘 살고 있는 아가씨를 보면서 쓸데없는 주책이다 싶으면서도, "우리 언제 불러다가 밥이라도 먹일까?" 했더니, 남편도 좋다고 하며 나를 안아줬다. 내 마음속에 지나가는 여러 가지 생각을 다 읽었으리라. 그러면 누군가도 우리 딸을 불러다가 그렇게 밥이라도 한 끼 먹자고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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