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도의 폭염이 찾아오다.
내가 사는 캐나다 밴쿠버 지역은 일 년 중 더운 날이 원래 한 사흘 정도 된다. 더워봤자 29도 정도면 최고 더운 것이고, 밤이 되면 선선해진다. 그래서 굳이 집에 에어컨도 없다. 비가 오는 것이 일상이고, 그래서 레인쿠버라는 별칭도 있다. 일기예보를 보면 일주일간의 모든 날이 비, 비, 비... 그게 정상인 이곳이다.
그런데! 기상 이변이 일어났다. 두 주일 전까지만 해도, 혹시라도 추워서 밤에 고추가 냉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하였는데, 갑자기 폭염이 시작된 것이다. 일기예보상으로 일요일은 40도, 월요일은 42도였다. 하지만 흔히 예보가 그렇게 떠도 진짜로 그리 더워지는 일은 없었으므로 콧방귀를 뀌었건만, 일기예보가 실제 현실로 다가왔다!
어제 토요일, 38도까지 올라갔던 기온이 기어이 오늘 40도까지 올라간 것이다. 혹시나 싶어서 바깥 그늘에 온도계를 내놓았는데, 그늘에서 정말 40도를 찍었다. "모나코, 그늘에서 28도(Monaco, 28 degrés à l'ombre)"라는 끈적하고 농염한 샹송이 무색한 날씨였다.
정원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말라죽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열심히 아침저녁으로 물을 듬뿍 주면서 갈증으로부터 구제하느라 애를 썼지만, 잠깐 방심한 사이, 애지중지하던 한련화가 크게 피해를 입고 말았다. 정말 잠깐 사이에 잎이 다 말라버린 것이었다.
사실 땅에 직접 심은 것들은 아무래도 지열이 더워지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안에 깊게 머금고 있는 수분이 있어서 그렇게 순간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는데, 아무래도 화분에 있는 것들이 피해를 쉽게 입는다. 좁은 화분 안의 수분은 금세 고갈되고, 낮에 잘못 물을 주면 오히려 찜솥에 넣는 것 같은 효과가 나기 때문에, 그럴 때는 재빨리 화분을 그늘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온도가 식을 때까지 물을 듬뿍 줘야 한다.
엊그제 드디어 첫 꽃이 피었다고 좋아했는데, 이런 낭패를 보았나!
부랴부랴 그늘로 옮기고 물을 듬뿍 주었지만 이미 손상된 잎들은 회복되지 못했다. 한탄하며 결국 마른 잎들을 정리해주었는데, 그러면서 생각하니, 오히려 이 날씨에도 꿋꿋하게 버텨주는 식물들이 더욱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잠시라도 마당에 나가 있으면 곧 쓰러질 거 같은 날씨인데, 그 볕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여전히 새로 꽃을 피우는 아이들도 있고, 살짝 고개 숙였다가 다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고개를 쳐드는 아이들도 있고... 그저 고맙고 또 고맙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사와 비슷하겠지. 어려운 일들을 버텨주는 이들이 고맙고, 버티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그런 마음이 딱 그러하다.
우리는 이 무더운 날씨에, 비록 에어컨은 없지만, 그래도 머리를 가릴 그늘이 있어서 감사하고, 와중에, 주문해놓았던 던지니스 크랩을 어제 픽업해다가 땀을 흘리며 게찜을 먹기도 하였으니, 사실 이 정도면 팔자가 늘어진 셈이다. 반쪽으로 접시를 이만큼 차지하는 큼직한 게가 맛도 아주 좋았다.
산 게를 사 왔으니 땀 뻘뻘 흘리며 이 더위에 게장도 담갔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이 더위에도 건재한 야채들 덕분에, 여전히 마당에서 수확한 상추와 치커리, 쑥갓, 갓, 오레가노, 깻잎, 방풍나물을 넣어서 샐러드를 먹었고...
역시 마당에서 수확한 챠드를 데쳐서 연어 구이와 먹었으며...
마당에서 딴 체리로 입가심을 하였으니, 무엇을 불평을 하겠는가!
그리고, 무더위 덕분에 남편은 내일 출근을 안 해도 되니 이 또한 하나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 지역에 살면서 폭설도 아닌 폭염으로 방학을 하루 앞두고 휴교라니! 분명 크게 놀랄 일은 맞다!
내일은 좀 더 높은 42도라니, 부디 녹아내리지 않고 모두 잘 버텨내 주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