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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n 07. 2021

남편의 생일, 최대한 파티 기분으로!

코비드여도축하할 거야!

남편을 만나고 나서 벌써 4번째 맞이하는 남편의 생일이다. 첫 번째 생일 때에는 연예 완전 초기, 원격으로 연애하던 시절이었다. 우리가 떨어져 있던 시기여서 축하해주러 갈 수 없음이 아쉬웠는데, 오히려 그가 원격으로 내게 꽃을 보내왔다. 생일에 선물을 보내야지 왜 선물을 보내냐고 했더니 그러고 싶었다고... 그것은 내 평생 처음으로 받아본 꽃배달이었다. 내가 그에게 보낸 것은 그 꽃을 들고 눈물이 글썽글썽한 사진이었다. 나는 그의 생일에 맞춰서 애틋한 마음으로 선물과 카드를 부쳤다. 다음번 생일부터는 꼭 함께 있겠노라고 약속을 했는데 결국 우리는 결혼을 했고 그 약속은 계속 지켜지고 있다.



두 번째 생일은 결혼 후 함께 맞이한 첫 생일이었는데, 늘 그래 왔듯이, 그의 자식들이 음식을 준비해서 집을 방문했다. 아빠가 좋아하는 해산물 콘셉트로 화끈하게 차린 식사였다. 굴과 연어로 모든 재료를 다 준비해와서 생일 때마다 콘셉트에 맞춰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남편 가족의 오랜 전통이다.



그러나 세 번째 생일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바로 코비드 팬데믹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로 미룬다고 하다가 결국은 가족 생일 파티를 하지 못했다. 물론, 집에서 남편이 좋아하는 한식들로 상을 차렸고, 우리 부부의 조촐한 생일을 보냈다.


이번 생일은 다시 집에서 파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락다운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고, 이번에도 계획을 전혀 세우지 못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캐나다의 상황이 조금 풀리면서 큰 딸이 자기 집에 모여서 마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생일이 낀 주말로 날짜가 잡혔다.


남편의 생일은 지난 금요일, 우리 둘이 맞이하는 생일이지만 최대한 흥겹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남편은 그냥 간단히 먹자고 하였지만, 늘 내 생일을 잘 차려주는 남편을 위해서 나도 상을 잘 차리고 싶었다. 생일 선물도 남편이 원하던 정원의 물분수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결국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해서 흐지부지 되었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민하였다. 그렇게 날짜는 가고 있었고, 뭘 먹고 싶냐는 내 말에 "뭐 아무거나..."라는 반응을 보이다가 결국, 좋아하는 엘에이 갈비와 밀푀유나베를 말했다. 


그래서 생일 이브에, 집에서 수확한 배추로 밀푀유나베를 끓여 먹었다!


하지만 둘 다 메인 메뉴여서 두 개를 동시에 하면 너무 배가 부를 테니 밀푀유나베는 생일 전날 이브로 해 먹자고 했다. 남편은 껄껄 웃으며, 무슨 생일을 이브까지 하느냐고 했지만, 먹을 핑계를 찾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리고는 나는 갈비와 잡채를 메인으로 한 메뉴를 정해서 남편에게 프린트를 부탁했다. 그게 생일 전날이었다. 이 역시 우리 집의 전통이지만 내가 메뉴판 만드는 것을 남편이 못 봐서 기대를 안 했던 것 같았다. 메뉴가 마음에 안 들면 바꿀 수 있다고 했으나, 남편은 아주 좋아했다. 생일 전날, 열두 시를 넘겨 잠자리에 들면서, 미리 생일 축하 인사말을 했다. 그런데 막상 생일날 아침에는 너무 졸려서 남편이 일어나는 것도 모르다가, 출근하려고 옷 챙겨 입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눈을 떴다. 눈을 비비며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 나를 보며 껄껄 웃더니 더 자라고 하고 그는 평소처럼 출근을 하였다.


남편을 보내 놓고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남편에게 생일 축하 인사를 문자로 다시 보냈고, 친정집 가족 카톡방에도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친정식구들도 앞다투어 메시지를 보내왔다. 



준비해놓은 생일 선물을 포장하고, 카드를 쓰고, 음악을 골랐다. 각종 생일 축하 노래를 유튜브에서 찾아서 하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케이크 대신 남편이 좋아하는 초콜릿 실크 파이를 준비했는데, 평소에는 그냥 먹지만, 아무래도 생일이니 예쁘게 장식하고 싶었다. 그래서 급히 딸기와 블루베리를 사러 나갔다. 


필요한 것만 부지런히 사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현관 앞에 꽃다발이 떡 놓여있었다! 한국에서 딸이 보낸 것이었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아이리스를 넣어서, 그리고 향기 풍성하게 나리를 넣어서 만든 완전히 럭셔리한 꽃다발이었다.



나는 바로 사진을 찍어서 남편에게 보냈다. 벅차오르는 감정이라는 반응이 남편에게서 왔다. 며칠 전 딸아이에게서 소포가 도착했기 때문에 남편은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었고, 꽃은 전혀 생각을 못 했었다.


요새 작은 방을 페인트 칠하는 중이어서 거실이 다소 산만하고, 많은 물건들이 다이닝 테이블에 쌓여있었는데, 싹 치우고, 선물들을 쌓아 올렸다. 멀리 동부에서 온 누님의 선물도 있었고, 딸이 가기 전에 만일을 대비해서 미리 준비해놓고 간 선물도 있었기에 그것도 같이 올려놨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선물도...



평소에 입던 티셔츠 대신에 원피스로 갈아입고 앞치마를 두르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데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왔다. 색다른 나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하는 그에게 딸의 꽃다발을 전해줬다. 꽃다발에는 카드까지 끼어 있었다. 비록 딸아이의 필체는 아니었지만, 아이가 원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남편은 눈물을 글썽이며 카드를 읽었다. 


오늘 하루 종일 축하가 이어졌는데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고 했다. 남편 자식들에게 메시지가 왔을 것이며, 또한 주변에서 많은 축하가 왔으리라. 남편이 평소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보면 놀라울 일도 아니다. 


나는 음식을 준비하면서 음악을 틀었다. 계속 이어져서 생일 축하 노래가 나오니 남편이 너무나 재미있어했다. 그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부른 생일 노래, 그리고 여러 가지 재미난 생일 축하 음악들... (독자님들도 함께 들으시라고 리스트 공유한다) 생일의 분위기가 한껏 올라갔다.



남편도 옆에서 생일상 준비를 거들었다. 갈비가 메인이었고, 남편이 좋아하는 잡채가 빠질 수 없었다. 생일상이니 미역국은 기본이었고, 잔치상이니 녹두전이 빠질 수 없었다. 그리고 시금치나물, 호박나물, 가지나물, 갓 담근 물김치와 오이김치... 재료를 다 준비를 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따끈하게 차리려니 시간이 꽤 걸렸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거니와 둘이 먹기에 너무 많은 음식이 되어버려서, 전식으로 준비하려던 오징어 숙회는 건너뛰고 본식으로 바로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식사 도중에 딸에게서 생일 축하 전화가 왔다.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먹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때까지 먹은 다음에, 디저트로 가기 전에 배를 꺼트리기 위해서 선물을 여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여름을 위한 리넨 셔츠를 준비했고, 술 좋아하는 남편을 위한 진을 한 병 샀다. 평소에 먹는 것보다 좀 더 고급진 것으로. 작년에 남편이 몸이 좋지 않아서 암 수술을 하던 시절에, 나는 그가 술을 먹는 것을 반기지 않았고, 그러다가 술에 대해서 의도하지 않은 오해가 생겼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가 건강하기를 바라지만, 그가 원하는 것을 내 눈치 보느라 못하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그 오해를 풀고 싶었고, 그래서 더욱 이 술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남편은 나의 그 마음을 다 헤아려줬다.



딸아이가 한국에서 보내온 것은 바로 이것, 와인병에 붙이는 라벨이었다. 우리가 작년에 직접 포도를 사서 포도주를 만들었고, 딸이 그 숙성 기간에 한국에서 왔다. 남편은 이게 까보네 소비뇽의 올드 바인으로 만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을 했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술을 병에 담을 때를 위하여 와인 라벨을 디자인하여 보낸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 한 이름은, 딸의 닉네임인 Meredith Ardenne으로 들어갔다. 아덴 식구들이 만든 포도주, The Ardennes.  직접 포도를 짠 도구의 앤틱한 그림이 들어갔고, 글자는 반짝이는 엠보싱이 들어간 고급진 라벨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드는 선물이었다.



그게 딸 선물의 전부였을 거라 생각했던 남편은, 뜻밖에 또 하나의 선물을 발견했다. 카드에는, 자기가 한국에 갔다가 생일에 맞춰서 올 수 있을 거라 꿈꿔보지만, 못 올지도 모르니 이렇게 플랜 B를 준비했다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자기가 엄마의 목도리를 떠줬는데, 이제 이렇게 아빠 것도 떠주니, 누가 봐도 한 딸을 가진 부부인 줄 알 거라는 센스 있는 멘트를 넣는 바람에 우리를 또 가슴 뭉클하게 만들어줬다. 다시 눈물 글썽한 그.



딸이 여기 와서 지내는 동안, 정말 가슴에 와닿을 만한 순간들을 만들어주려고 그가 노력했던 시간들은 딸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아이 역시 또 그렇게 가슴에 와닿는 순간들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이렇게 하고 있으니,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너무나 감사하고 또 감동한다...


그렇게 카드를 열어보고, 딸과 원격 통화도 하고, 그리고 마지막 디저트로 생일을 마무리했다. 물론 여전히 우리의 배는 꺼지지 않았지만, 입안에서는 녹는 초콜릿 실크 파이는 감미로운 생일날의 마무리로 더할 나위 없었다.



이제 우리는 오늘 또 다른 생일상을 맞이하러 갈 것이다. 남편의 자식들이 준비하는 생일 저녁식사. 그가 베풀어준 사랑이 이렇게 돌아온다. 코비드 사태 이후로 너무나 오랫동안 함께 식사를 못했기에 모두들 들떠 있다. 생일 축제의 또 다른 클라이맥스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제 대부분의 가정에서 더 이상 생일상을 차리지 않는다. 축제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누군가, 즉, 주부가 고스란히 일을 다 해야 하고, 그래서 즐겁지 않고 고생해야 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지면서, 다 같이 즐기자는 차원으로 변화하였다. 그래서 생일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외식으로 이루어진다. 나도 그것에 동의했었고, 한국에 있는 동안 생일상을 집에서 차려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밖에 나가서 근사하게 먹는 것이 축제였다.


그런데 이렇게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이후로, 그가 기쁨에 차서 자식들의 생일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가 준비해놓은 재료를 가지고, 온 식구들이 덤벼서 즐겁게 함께 음식을 완성하고 상을 차리는 모습을 보면서, 음식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것도 축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화려하고, 왁자지껄하며, 럭셔리하고, 시종일관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집인 만큼 우리만의 축제로 왁자지껄 시간 제약 없이 즐기고 밀린 회포를 푸는 시간,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여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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