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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Nov 03. 2021

어느덧 소고기 살 때가...

또다시 반마리를 쟁이다

한국의 음식 문화는 탄수화물 기반인데 반해서, 서양 음식 문화는 단백질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뭐니 뭐니 해도 쌀밥이 있어야 하고, 간식은 빵, 떡, 고구마인데, 남편을 보면, 식단에 고기는 필수이자 주인공이다. 그리고 간식은 견과류나 치즈, 햄 등을 선호한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식 음식 쟁이기의 기본은 쌀이다. 지금이야 아무 때나 마트에서 소량의 쌀도 쉽게 살 수 있지만, 예전 어른들은 늘 쌀을 한 가마니씩 사서 쟁여두셨다. 방금 산 쌀이 맛이 있는데 왜 그렇게 쟁이시느냐 해도,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이는 분들이 참 많았다.


캐나다인 남편은 고기를 그렇게 쟁인다.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양의 고기를 사는 것이다. 돼지고기는 한 마리 분량, 소고기는 주로 반마리 분량으로 구매한다. 그래서 집에 냉동고가 두 개다. 일 년치 고기가 늘 들어있는 셈이다. 처음에 결혼해서는 정말 놀랐다. 나는 냉동실에 저장하는 것은 견과류나 고춧가루, 깨 등의 양념을 보관하고, 사골국을 끓여서 저장해놨다가 몇 번에 나눠 먹는 수준이었을 뿐, 냉동실은 가볍게 하자는 주의였기 때문이다. 늘 신선한 냉장식품을 그때그때 사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먹는 냉동 고기가 너무나 맛있어서 놀랐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남편이 사는 고기는 동물복지 환경에서 키운 것들이다. 소고기는 목초사육이고, 돼지고기 역시 넓은 목장에서 키운 것이다. 닭도 들판에서 뛰노는 닭을 산다. 즉, 건강한 동물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농장을 운영하면서 동물에게 애정을 쏟아 키운다. 먹자고 키우는 것이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동물답게 살게 해 주겠다는 사람들이다. 음식을 제공해주게 될 동물들에게 나름 감사를 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보통 가을이 저물어 갈 때면 도육을 하는데, 아무래도 겨울에는 풀어놓고 키울 환경이 되지 않으니 그전에 정리를 할 수밖에 없다. 겨울 난방비나 관리비 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이 좁은 곳에 가둬놓고 키워야 하고, 목초사육을 할 수 없으니 사료 값도 많이 들 것이다. 그래서 그전에 대대적으로 정리를 하는 것이다. 


고기의 무게를 계산해서 가격을 매기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마트에서 소매로 살 때에는 '손질이 완료되어 잘라진 무게(take home weight)'를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처럼 큰 단위로 구입할 때에는 주로 '걸어놓은 무게(hanging weight)'로 계산한다. 이것은 도육을 한 후에 내장과 머리 등을 정리하고 냉장고에 매달은 무게를 말한다. 걸어놓은 무게는 '살아있을 때의 무게(Live weight)'의 60% 정도가 나간다. 고기는 이렇게 걸린 채로 남은 피를 빼며 냉장숙성 과정(dry againg)을 거치게 되는데, 그러면 고기가 더욱 연하고 맛있어진다. 보통 이때에 농장 주인은, 고기가 준비되었다며 구매자를 찾는다.


그리고 남편은 이맘때에 판매자를 찾는다.  요새는 인터넷이 발달되어 연결이 수월하다. 소고기는 워낙 크기 때문에 한 마리를 다 구입하려면 가정용 냉동고에 넣기에는 너무 많다. 일반 가정에서는 그래서 보통 반마리 단위로 산다. 1/4마리를 원하기도 하지만, 그러면 아무래도 부위를 고르게 얻기 힘들기 때문에 반 마리를 선호한다. 반이란 소의 대칭되는 점을 기준으로 반이기 때문에 모든 부위를 다 받을 수 있으며, 대칭 양쪽 중 한쪽을 산다고 하여 '사이드 비프(side beef)'라고 부른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연결이 되면, 사이드 비프의 무게를 알려주고, 어떻게 자를 것인지를 협의한다.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부위가 다르니,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잘라주는 시스템이다. 로스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구미에 맞게 부위별로 어떻게 자를지를 정하는 표를 준다. 소비자는 거기에 체크를 한다. 그러면 그들은 그 부위에 맞춰서 딱 한 끼 분량씩 잘라준다. 스테이크는 보통 두 개씩 한 묶음으로 들어있고. 로스트는 한 번에 조리하기에 적당한 크기의 덩어리로 되어있다. 여기저기 다 잘라내고 남은 고기는 한꺼번에 묶어서 다짐육이나 국거리로 준비되는데, 이런 것들은 1 파운드(450그램)를 한 묶음으로 준비된다. 사골국을 끓일 수 있는 소뼈도 달라고 하면 준다. 


그밖에 부속물은 덤이다. 원하는 사람만 준다. 이 부위는 걸어 놓은 무게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가격에 포함되어있지는 않다. 먹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서 운이 좋으면 여러 마리 분량의 부속물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한국인처럼 곱창을 먹지는 않기 때문에 그 부위는 진작에 버리는 듯하여 구하지 못하고, 간, 심장, 혀 같은 부위들이 온다. 남편은 이런 부위도 참 좋아한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토끼나 염소 정도는 집에서 도축하였기에 고기에 대해서도 잘 안다. 당시에는 추운 겨울에 고기를 잡아 손질해서 헛간에 걸어놓고 숙성을 시켰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 이전의 추운 시골에서 가능했던 일이었으리라.


남편의 최애템, 프라임립 스테이크. 고급 레스토랑 부럽지 않다.


한국에 살 때에 나는, 처음에 고기를 아무 생각 없이 사 먹다가, 언젠가부터 동물 복지에 눈을 뜨면서 고기를 가리기 시작했다. 기름지고 비싼 한우보다는 차라리 저렴한 뉴질랜드산 목초 고기를 먹었고, 농장에서 직접 판매하는 분에게 구매를 한 적도 있다. 소를 키우면 소의 트림이 유해가스 발생을 시킨다는 이유로 육식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한편으로, 사실 세상은 식물과 동물이 어울려 살기로 되어있으니, 정상적인 방법으로 키우면 그게 가장 친환경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많은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좁은 공간에 가둬두고 옥수수 사료를 먹이는 것이 아니라, 방목하여 목초사육을 하면, 소들이 풀을 뜯어먹으면서 흙에 대고 트림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자연의 사이클인 것이다. 고기는 몸에 해롭다고 하지만, 이렇게 키운 소고기에는 오메가 3이 많이 들어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양보다 질을 선택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저렴한 것을 많이 먹는 대신,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동물복지 육류를 소비함으로써 건강한 농부를 살리고, 나 역시 건강한 몸이 되는 선택을 하고 싶었다.


남편은 나랑 접근 방식이 다르긴 했지만, 결국 이 방식도 내가 원하는 방식과 통했다. 목초 먹여 키운 소고기를 농장에서 직접 사다 먹으니 고기 맛도 정말 다르다. 한우 같은 마블링은 없고, 지방질이 적은 대신 깊은 풍미가 있다. 심지어 다짐육에서도 깊고 구수한 맛이 난다. 


가격은 물론 목돈이 들지만, 이만큼 구입해서 일 년 내내 먹으니, 육식을 기반으로 하는 양식 문화에서는 이것이 훨씬 저렴하다. 그리고 손질 후 바로 개별 포장하여 급랭하였기 때문에, 맛도 일 년이 다 되어가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배달 받은 고기를 분류 중. 오른쪽은 스테이크만 모은 박스이다


평소에는 농장에 가서 직접 받아왔는데, 이번엔 좀 먼 농장에 주문을 했기에 배달을 받기로 했고, 어제 농장 주인이 고기를 가지고 왔다. 고기를 받으면 같은 부위끼리 재빠르게 분류를 한다. 다짐육과 국거리, 로스트, 스테이크 등을 정리해서 통에 담아 그대로 냉동실에 넣으면 일 년치 소고기 준비 완료다. 이제 먹고 싶을 때 하나씩 꺼내서 실온이나 냉장고에서 녹여서 사용하면 된다. 


남편이 아침에 찬장에 놓고 간 고기를 보면, 오늘 저녁은 로스트임을 알 수 있다.


남편은 원래 아침에 저녁 메뉴를 결정해서는, 고기를 미리 냉동실에서 꺼내놓고 출근한다. 그러면 퇴근해서 돌아올 때쯤이면 고기가 적당히 녹아서 조리하기 좋은 상태가 된다. 캐나다 날씨는 한여름을 제외하면 거의 일 년 내내 기온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 방법이 유용하다. 거의 실온이 된 고기는 딱 조리하기 좋은 온도로 준비되니, 그대로 손을 봐서 불에 올리면 된다. 


이번에 새로 받은 고기는 블랙 앵거스 종류인데, 맛이 어떨지 기대해본다. 집밥에 진심인 우리 부부는 겨울 전에 이렇게 또 한 가지 식량 준비 완료했다! 다음에는 또 뭘 저장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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