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Nov 26. 2021

한 달 전에 만드는 크리스마스 푸딩

대림절 전 일요일에 만들어서 한 달 동안 숙성시키는 명절 음식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은 무엇일까? 추석? 설날?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가장 큰 명절이라 볼 수 있다. 물론 크리스마스는 원래 예수님의 강림을 축하하는 종교적인 행사이지만, 세계적으로도 많은 나라에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축하를 하고 즐기는 서양의 큰 명절과도 같은 날이다. 


그래서 서양에서의 크리스마스 시즌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일찍 시작한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의 다음날을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부르며, 대대적인 크리스마스 세일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영국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캐나다에서는 대림절(Advent)을 준비하는 촛불을 4주 전부터 밝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보다 한 주 전 일요일을 스떨업선데이(Stir-up Sunday)라고 부르는데, 민중을 깨어나라고 기도하는 단어 stir가 '휘젓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은 그 단어로 인해 크리스마스 때 먹을 플럼 푸딩(plum pudding)을 저어서 만드는 것을 연상했고, 그게 전통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플럼 푸딩을 만드는 것을 기점으로 공식 크리스마스 시즌을 시작하는 셈이다. 올해는 그게 바로 11월 21일이었다. 


플럼 푸딩이라고? 자두로 만든 푸딩일까? 자두도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아는 그런 푸딩도 전혀 아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면, 혹시 피기 푸딩(figgy pudding)은 들어봤을 수도 있다.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럴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에 "Oh, bring us some figgy pudding..."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가사를 유심히 들어본 적이 있다면, "대체 저 피기 푸딩은 뭐지?"라는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좀 더 뒤로 가면, "We all like our figgy pudding"이라는 구절도 나온다


14세기 당시에 크리스마스에 먹던 피기 푸딩은 무화과(fig)를 넣어서 끓인, 좀 더 죽 같은 질감의 푸딩이었고, 이것이 그 이름을 간직한 채 지금은 무화과 대신 건포도를 넣어서 만드는 스팀 케이크로 변한 것이다. 그러면 뜬금없는 플럼(plum, 자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빅토리아 시기 이전에는 각종 건포도 종류를 플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다양한 건포도: 왼쪽부터, 톰슨, 설타나, 커런트. 


이름도 특이한 이 케이크의 또 다른 점은, 한 달 후에 먹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케이크이라면, 만들고 이삼일 이내에는 먹어야 하는 음식이 아닌가! 그런데 이 플럼 푸딩은 굽는 것이 아닌 찌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한 달간 숙성시켜 먹는 아주 특별한 케이크이다. 상하지 않을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고, 그 대신 풍미가 깊어진다.


우리 집에서는 사실 이 플럼 푸딩 대신에, 남편이 어릴 때부터 해 먹던 다른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전통이 따로 있는데, 그것은 며칠 후로 미뤄두고, 올해는 이 플럼 푸딩부터 꼭 해보기로 했다. 작년에도 만들고 싶었는데, 우물쭈물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는 재료를 몇 가지 못 구하면서 포기했지만, 올해는 기필코 해보고 싶었다.


이번에도 몹시 바빠서 미리 재료 구입을 못했지만, 토요일 밤에 기어이 모자라는 재료를 사다가 실천했다.

들어가는 재료 중 중요한 것은 플럼, 즉 여러 가지 건과일이다. 3가지 종류의 건포도와 오렌지 레몬 껍질 절임도 들어간다. 하루 전날인 토요일 밤에 이것들을 미리 브랜디에 담가 두어, 풍미가 배어 나오도록 한다. 


브랜디를 넣어서 섞은 후 뚜껑을 덮고 하룻밤을 재운다


그리고 다음날인 일요일에 만들기 시작이다. 집에서 직접 간 신선한 빵가루에 밀가루,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각종 향신료를 넣는다. 영국식 종합 향신료(mixed spice)를 넣는데, 계피, 생강, 올스파이스, 넛맥, 클로브, 코리앤더, 메이스가 다 들어간 종류의 향신료이다. 우리 집엔 이 모든 향신료가 다 있어서, 얼른 섞어서 만들었다. 그리고, 사과도 갈아 넣고, 오렌지랑 레몬의 껍질도 새로 다져서 넣고, 흑설탕도 넣고, 달걀도 넣고... 


흰 빵가루가 필요했지만, 집에 있는 빵은 이 글루텐프리 식빵뿐이어서 이걸 갈아 넣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이 하나 더 들어가는데 그게 바로 쑤엣(suet)이다. 소 콩팥을 둘러싸고 있는 지방을 모은 것인데, 영국의 베이킹에 사용되는 고급 기름이다. 단단하게 굳어있어서, 파이를 만들 때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작년에는 못 구했는데, 올해는 우연히 한 마트에서 발견해서 냉큼 집어다가 냉동해뒀었다.


쑤엣(Suet)은 소 콩팥 옆의 지방이다


이미 잘게 부서져서 나와서, 그대로 넣으면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재료다 보니, 대체할 것들을 검색해봤다. 대부분 추천하는 질감으로는 쇼트닝이 있었고, 아니면, 일반 소고기의 지방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비슷하다고 한다. 사골국 끓이고 건져놨다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버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버터는 쑤엣보다 끓는점이 상당히 낮아서 푸딩이 제대로 형성되기 전에 녹아버려서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다.


플럼 푸딩을 익히는 틀은, 물을 담아봐서 1.5 리터면 딱 좋다. 스탠과 사기로 각각 해봤는데, 결과는 스텐이 더 좋았다. 넙적한 형태보다는 깊숙한 스타일이 더 좋다. 또한 테두리가 있는 그릇이 나중에 끈을 고정하기에 훨씬 편하다. 틀에는 미리 넉넉히 버터칠을 해주고, 그 위에 덮어줄 유산지도 그릇 크기에 맞춰서 잘라주고, 역시 버터를 발라준다. 잘 안 떨어질 것이 걱정되면, 팬의 바닥에도 유산지를 깔아주는 것이 좋다. 


 나는 무스링을 넣었는데, 하나로는 중심이 잘 안 잡혀서 두개를 넣었다.


그리고 이 그릇이 들어갈만한 넉넉한 냄비에 물을 넣고, 밑에는 삼발이나 찜기, 또는 뭔가 받침을 넣어서 케이크 틀이 직접 냄비 바닥에 닿지 않게 준비해준다. 물은 팔팔 끓이지 말고, 뭉근하게 끓으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준이면 충분하고, 물 높이는 케이크 틀을 넣었을 때 반 정도 잠기면 된다. 



완성된 반죽은 상당히 꾸덕하다. 이걸 버터 바른 틀에 꾹꾹 눌러서 담는다. 잘 누르지 않으면 공기층이 생겨서 좋지 않다. 단단히 눌러준다. 그리고 위쪽은 버터 바른 유산지로 덮어준다. 역시 단단히 눌러서 반죽에 바짝 고정해준다. 그리고 유산지를 다시 두장 넉넉한 크기로 잘라서 그릇을 감싸고 덮어준 후, 끈으로 고정해준다. 이때, 냄비에 안전하게 넣을 손잡이까지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나는 반죽을 담고 위쪽에 2cm 이상 남아서 괜찮지만, 만일 그릇의 끝에까지 꽉 찼다면, 아래 사진처럼 종이의 중간을 두 번 접어서 덮는 것이 좋다. 찌다 보면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데, 뚜껑이 바짝 붙어있다면 제대로 부풀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 오른 솥으로 투하! 이제 이대로 자그마치 8시간을 찔 것이다. 레시피들을 찾아보면 최저 4시간에서 최장 8시간까지 다양하게 추천을 하는데, 오래 찔수록 짙은 색이 된다고 하니, 처음 해보는 나는 일단 최대로 길게 쪄보기로 했다. 타이머는 1시간에 맞춰두고, 매시간 체크하면서 혹시 물이 모자라면 추가해줘야 한다.


대략 2시간이 넘어서니 좋은 냄새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향신료가 주는 행복한 베이킹의 냄새는 그렇게 밤까지 진동을 하였다. 중간에 전기포트로 물을 끓여서 세 번을 채워줬다. 푸딩이 부풀면서 유산지에 살짝 닿아있는 것이 보인다. 물방울이 송송 떨어지면 살짝 닦아 내기도 하면서 결국 8시간을 쪘다. 이제 꺼내보자.



겉의 종이를 벗겨내고, 다시 안에 단단히 붙은 종이를 벗겨낸 후, 이대로 5분 정도 식기를 기다려줬다. 살짝 식으면서, 부풀어 올랐던 것이 진정되었고, 틀에 팽팽하게 붙어있던 푸딩도 살짝 느슨해졌다. 우리는 위에 접시를 엎어 놓고 확 뒤집어서 푸딩이 제 모양으로 서도록 했다.



원래는 이대로 식혀서, 유산지로 단단히 감싸고, 다시 쿠킹포일로 감싼 후,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서 한 달을 숙성시켜야 하지만, 이왕 만든 것, 기분 내고 사진이라도 찍어 보자 싶어서, 마당에 나가 호랑가시나무 가지를 조금 잘라다가 장식을 해보았다. 사진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비주얼이 나왔다!


그리고, 실험 삼아 두 개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중 모양이 덜 예쁜 것으로 조금 먹어보기로 했다. 사실, 한 달 전 일요일에 만드는 것이 전통이지만, 시기를 놓치면 좀 더 늦게 만들어도 되고, 심지어 크리스마스 당일에 만들어서 먹기도 하므로, 이대로도 충분히 맛있다.


조금 잘라서 접시에 담아봤다. 자르는 질감은 살짝 쫀득한 것이 설기떡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원래는 푸딩 전체를 불타는 브랜디로 덮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지만, 먹을 만큼만 해보자고 했다. 브랜디는 알코올 성분이 높기 때문에 이렇게 국자에 담아서 불을 붙인 후, 푸딩에 부으면 잠시간 타오르면서 알코올 성분을 날리게 된다. 아무래도 명절에 먹는 것이니 이런 퍼포먼스를 하는 것 같다.


플럼 푸딩 단면


맛은, 약간 쫀득하면서, 촉촉하였다. 부드럽고, 모든 풍미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어느 재료도 겉돌지 않는 그런 맛이었다. 난 원래 설탕 들어간 음식은 먹지 않지만, 이것은 전통음식이기에 내 마음대로 재료를 바꾸지 않았기에 내 입에는 많이 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단 정도는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즐겁게 먹을만한 풍요로운 맛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차곡차곡 싸서 어두운 지하실로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유산지로 한 번 싸고, 다시 쿠킹포일로 싸서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보관한다.




영국 정통 크리스마스 플럼 푸딩

북미식 계량(1컵=240ml), 1.5리터 틀 사용


재료:

말린 커런트 150g(1컵)

건포도 120g(3/4컵)

설타나(금색 건포도) 120g(3/4컵)

설탕 코팅 오렌지 필 2큰술, 잘게 다져서 준비

설탕 코팅 레몬 필 2큰술, 잘게 다져서 준비

호두(또는 아몬드) 2큰술, 잘게 다져서 준비

브랜디 120ml(1/2컵)

부드러운 흰 빵가루 2컵, 직접 갈아서 준비, 우리는 글루텐프리 식빵을 갈아서 사용

밀가루 70g (1/2컵), 우리는 Bob's Red mill 글루텐프리 1:1 밀가루 사용

베이킹파우더 1/2 작은술

소금 1/2작은술

믹스드 스파이스 1 작은술 *

계핏가루 1 작은술

부드러운 흑설탕 165g (1컵)

사과 작은 것 1개, 껍질 까고 갈아서 준비

당밀 1 큰술

레몬 제스트 1개 분량

오렌지 제스트 1개 분량

쑤엣 115g (1/2컵)

달걀 2개, 풀어서 준비

브랜디 소스 - 서빙용


만들기:

1. 하루 전날, 건과일 종류를 큰 볼에 담고, 브랜디를 부어 잘 섞이도록 저어준다. 뚜껑을 덮고, 브랜디가 잘 스며들도록 하룻밤 둔다. 나머지는 다음날 진행한다.


2. 당일, 시작 전에 틀을 먼저 준비한다. 냉면기 같은 큰 볼이 좋다. 1.5리터 용량이면 적당하다. 틀 바닥에 맞게 유산지를 잘라 깔아주고, 유산지에도, 틀에도  버터를 넉넉히 발라서 준비해둔다. 또한 틀의 입구 부분에 맞게  유산지를 자르고, 거기도 버터를 바른다.


3. 큰 솥에 물을 담고, 바닥에는 찜기나 삼발이 등을 넣어, 케이크 틀이 직접 바닥에 닿지 않게 준비한다. 물은  틀이 반쯤 잠길 정도로 담고, 아주 나지막이 끓도록 준비한다.


4. 그동안, 빵가루,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소금, 흑설탕, 향신료 등의 가루 재료를 하나의 볼에 담아 잘 섞는다.


5. 전날 준비해 둔 건과일 믹스에 간 사과, 당밀, 쑤엣, 레몬 제스트, 오렌지 제스트, 달걀을 넣고 잘 섞는다.


6. 가루 재료를 과일 믹스에 넣고 완전히 섞이도록 잘 젓는다. 


7. 준비된 틀에 반죽을 담는다. 한꺼번에 쏟아 넣지 말고, 조금씩 덜어 꾹꾹 누르면서 담은 후, 반죽을 퍼서 담아 준다. 잘 눌리지 않으면 나중에 부서지기 쉽다. 윗면을 평평하게 다듬는다.


8. 버터 바른 유산지 뚜껑을 덮어주고, 단단히 고정해준다.


9. 다시 유산지 두장을, 이번에는 넉넉한 크기로 잘라서 틀을 단단히 잘 감싸준다. 면끈이나 시침실을 이용하여, 둘레를 빙 둘러 단단히 고정하여 묶어주고, 손잡이까지 만들어준다. 남는 유산지는 잘라낸다. 만일 반죽에 틀의 끝까지 꽉 차있다면, 위로 부풀어 오를 것을 감안하여, 가운데를 두 번 접어 주름을 만들어준다. (본문의 그림 참조)


10. 준비된 솥에 얌전히 넣는다. 바닥에 케이크 틀이 직접 닿으면 안 되고, 아무 받침대도 없다면 행주라도 여러 번 접어서 깔아준다. 물은 나지막이 끓도록 한다. 팔팔 끓으면 안 된다. 


11. 아주 낮은 불로, 6~8시간가량 찐다. 가끔 물을 확인하여, 모자랄 거 같으면 보충을 해준다

    오래 찔수록 케이크의 색이 짙어진다.


12. 찜이 끝나면 조심스레 꺼내서 5분 정도 실온에 식혀준다.


13. 접시를 틀 위에 덮어서 뒤집어준다.


14. 푸딩이 완전히 식거든, 유산지를 벗겨내고, 새로운 유산지로 감싸준 후, 다시 쿠킹 포일로 감싸서 어둡고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냉장고에 보관할 경우, 여러 번 랩으로 싸고, 지퍼백에 담아서 마르지 않게 한다) 푸딩 겉면에 브랜디를 한 번 바르고 보관하기도 한다.


15. 서빙할 때에는, 다시 틀에 넣고 한 시간 정도 쪄서 속까지 따뜻하게 준비한다.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경우, 마르지 않게 잘 덮어준다.


16. 서빙 순간에 브랜디에 불을 붙여 부어주는 불 쇼를 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그 이후에는 브랜디 소스나 거품 올린 생크림, 바닐라 커스터드, 아이스크림 또는 레몬소스와 함께 서빙하면 좋다.



* 믹스드 스파이스 (아래 재료를 섞어줌)

계핏가루(cinnamon) 1큰술

올스파이스(allspice) 2 작은술

넛맥 가루(nutmeg) 2 작은술

클로브 가루(clove) 1 작은술

생강가루(ginger) 1 작은술

코리앤더 가루(coriander) 1 작은술

메이스(mace) 가루 3/4 작은술


* 브랜디 소스

달걀노른자 2개

생크림 120ml

자일리톨(설탕) 1큰술

품질 좋은 브랜디 1~2 큰술


1. 크림과 달걀과 설탕을 작은 냄비에 넣고 낮은 온도로 가열하며 저어준다.

2. 중간에 멈추지 말고 계속 젓는다. 시럽 같이 되면, 브랜디를 넣고 마저 젛어주면 완성.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덧 소고기 살 때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