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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Nov 17. 2021

진심으로 대할 때 마음이 열린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너무 쉽고, 또 너무 어려운 일...

남편은 아직도 직장에 다닌다. 은퇴할 수 있는 시점은 오래전에 지났는데, 매년 1년만 더, 1년만 더... 하며 연장을 하고 있다. 이것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스러운 마음은 물론 아니다. 마음에 걸리는 아이가 매년 있기 때문이고,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직업은 교육청 산하의 한 작은 대안학교 선생님이다. 하지만 남편은 스스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하지도 않는다. 학생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남편은 좀 특이한 학교의 특이한 선생님이다.


교실도 일반 교실처럼 생기지 않았고, 아이들도 다른 학교처럼 동시에 와서 동시에 같은 것을 공부하지 않는다. 여러 연령, 여러 학년의 아이들이 각각 자신이 올 수 있는 시간에 오고, 그러면 남편은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방향을 알려준다. 아이들은 알아서 공부를 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진행한다. 남편과 동료 한 명만이 이 아이들을 관리한다.


이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뭔가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다.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어릴 때 학대를 당한 아이도 있고, 왕따를 당해 우울증에 걸린 아이들도 있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 장애가 있는 아이들, 경찰서를 제 집 드나들듯 하던 아이들... 등등 모두 참으로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 아이들은 여러 학교를 전전하다가 이곳에 와서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는다.


남편이 하는 교육 방식은 한 가지 지침을 가지고 있다.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한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대우한다는 것은 사실상 그 어느 곳에서든 참으로 당연한 일인데, 놀랍게도 세상에는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없는 곳들이 너무나 많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로 인해서 상처를 받고,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저 아이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다.


이게 그로 하여금 아이들을 소중하게 대하게 만드는 힘이다. 모든 학교에서 문제아라고 일컫던 아이들은 이곳에 와서 얌전하게 앉아서 스스로 공부한다. 무슨 마법이 이루어지는지 교육청에서는 신기하기만 하다. 성매매에 끌려다녔던 아이도 무사히 졸업을 하고, 5년간 밖에 안 나갔던 아이도 여기 와서 상담을 받고 나면, 마음을 잡고 와서 앉아서 공부를 한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특별히 더 소중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 정당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는다. 남편과 동료는 손발이 잘 맞는다. 그들은 아이들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각자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한다. 아이들은 선생님들이 자신들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남편은 아이들을 훈련시키지 않는다. 스티커를 주거나 상벌제를 이용해서 빠르게 효과를 보려 하지 않는다. 으름장을 놓거나 협박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길들이려 하지 않는다. 친부모들도 어려워하는 일이다. 사실 우리가 만나서 재혼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우리가 가진 교육철학이 너무나 비슷하다는 데에 있었다. 나는 홈스쿨링으로 아이를 키웠고, 아이의 멘토였던 남편은 그 아이를 통해서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의 잠재성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그들 모습대로 존중한다. 그러면 아이는 알아서 자라난다는 것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교육자 알피코엔(Alfie Kohn)이 늘 강조하는 교육법이다.


요즘 남편은, 새로 오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고 공부 중이다. 이 아이는 자폐증이 심한 아이다. 여러 학교를 시도하다가 코비드가 발발하면서 포기하고 1년 반 동안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살았다고 한다. 그 아이의 부모님이 학교에 와서 한 시간 동안 상담을 했다.

짐볼. 사진출처 pixabay


이 아이는 한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증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걸 조절하기 위해서 커다란 짐볼을 구해서 앉아있으면 계속 몸을 흔들어야만 비로소 뭔가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일반 학교에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특수학교에서조차 그 아이가 그 짐볼에 앉아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하면서 남편은 화가 나 있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유일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방법인데, 그게 놀림감이 되고, 그걸 거절하는 학교라는 시스템에 화가 난 것이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간 부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다음 주부터 나오겠다고 했단다. 무엇이 아이의 심경변화를 일으켰을까? 아이가 나오겠다는 의지를 가졌다는 것에 감사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그래서 우리는 오늘 나가서 짐볼을 사 왔다. 부모가 사진 찍어 보내준 것과 똑같은 것을 샀다. 이제 그 아이는 학교에 와서 거기에 앉아 공부를 할 것이고, 다른 아이들은 어쩌면 그 아이가 왜 거기에 앉아있느냐고 물을 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서 그 이유를 듣고 수긍을 할 것이다. 그게 바로 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각자 서로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와 어떻게 다르든 간에 그 모습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또 그렇게 인정받는 것이다.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알아서 돕고, 더 잘한다고 우월하지 않고, 더 못한다고 부끄럽지 않은...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줌으로써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래서 그렇게 한 발씩 걸어 나가고 정규 교과과정을 끝내고 졸업을 하여 사회로 나가는 관문이다. 그곳의 졸업식은 정말 눈물과 감동의 순간이다.


남편은 내년엔 정말로 은퇴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 새로 오는 사람은, 얼마나 성과를 잘 내고 싶은 그런 사람이 아닌, 그리고 얼마나 학식이 많고 출중한 사람이 아닌, 정말로 아이들을 사랑해줄 사람이기를 손 모아 빌고 있다. 마음 문을 열고 아이들을 그들의 모습대로 사랑해줄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이며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쉽고 가장 기초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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