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조심스레 하나씩 집어 먹던 예쁜 간식
아버지는 대학 교수님이셨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늘 제자들이 놀러 왔다. 주로 졸업생들이었고, 그분들은 아버지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크면서 아버지의 술자리는 우리에게 그리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특히 나는 맏딸이었기 때문에, 명절에 친구들을 만나러 놀러 나가지 못하고 어머니의 안주상 차리기를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덕에 부엌일이 생소하지 않아서 지금까지도 요리 포스팅을 올리며, 나름 레시피 의존적이 아닌 삶을 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어릴 적에는 이런 손님들의 방문이 무척이나 기대되는 일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절대 빈 손으로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졸업생들이 인사드린다는 명목으로 오면서 빈 손으로 올리가 없었고, 어린 우리 삼 남매는 그들의 손에 뭐가 들려있을까 궁금해하면서 내다보곤 했다.
제일 반갑지 않은 선물은 술이었다. 아버지가 워낙 술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술은 인기 품목 중 하나였다. 어떤 술은 그 자리에서 열어서 함께 드시기도 하고, 어떤 술은 오래오래 보관되기도 했다.
그리고 과일이나 생필품이 들어오기도 했다. 귤을 좋아하던 나는 덕분에 겨울에 귤을 듬뿍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설탕 포대를 어깨에 메고 우리 집으로 들어서던 한 아저씨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당시에는 이런 것들이 다 귀했으니, 선물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했다. 어린이 종합 선물세트가 들어오는 날은 완전 신났다. 열어보면 여러 종류의 과자들이 함께 들어있으니, 구미에 맞게 골라먹기 좋았다.
그중에서 내 눈길을 끌던 선물세트가 있었으니, 바로 종합 강정 세트였다. 참깨, 들깨, 흑임자, 잣, 호두, 호박씨 등등을 가지고 만든 강정은 어린 내 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웠다. 아름답게 진열되어서 고급진 박스에 담겨있었고, 보자기로 다시 싼 이중 패키지였다.
그중 두 가지 색의 깨를 가지고 태극무늬를 만든 것은 너무 예뻐서 볼 때마다 감탄을 했다. 어린이용 간식은 아니었지만, 어린이였던 우리 삼 남매에게도 이건 참 매력적인 간식이었다. 함부로 여러 개씩 집어 먹지 못하고 정말 아껴서 아껴서 먹었는데, 흑임자가 입안에서 터지면서 고소함과 달콤함을 동시에 제공했다.
하지만 이런 간식은 유행이 바뀌면서 점점 사라져 갔고, 어느샌가 찾기 힘든 선물세트가 되어버렸다. 간혹 마트 같은 곳에서 파는 것을 사봤으니 딱딱하기 그지없었고 그 풍미가 나지 않아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명절이 가까워오자 나는 문득 이 간식이 다시 생각이 난 것이다. 예전에 만들었던 기억도 나면서 추억의 맛을 생각하니 입에 군침이 돌았다. 게다가 설 저녁식사에 후배 부부도 초대했으니 뭔가 색다른 디저트를 만들고 싶었다.
이 강정은 무척 어려워 보이지만, 막상 해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대충 해도 적당한 맛이 나온다. 사실, 내용을 보면, 깨와 물엿이 들어가는데 어찌 맛있지 않겠는가! 한두 번 해보면 요령도 금방 생긴다.
기본적인 팁은 시럽의 비율이다. 정답은 없다고 본다. 탕수육도 부먹파와 찍먹파가 있고, 스테이크도 웰던과 레어로 갈리는 것처럼, 이 강정도 딱딱 바삭한 것이 좋은 사람과 부드럽게 꺾이는 것이 좋은 사람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쌀조청에 설탕을 섞는데, 이 설탕이 강정을 굳게 하는 힘을 가진다. 많이 넣으면 빨리 굳고 결과물이 더 딱딱하고, 적게 넣으면 천천히 굳고 더 무르다. 예전엔 잘 몰라서 반반의 비율로 하느라 너무 빨리 굳어버려서 바쁘고 분주했는데, 이제는 기분에 따라서 설탕 양을 조절한다. 조청 대 설탕의 비율은 1:1부터 3:1까지 가능하다.
팬에 물을 먼저 한 숟가락 붓고, 거기에 설탕을 넣으면 설탕이 빨리 녹는다. 조청도 넣어준다. 설탕이 다 녹으면 저어줘도 되지만, 그 전에는 차분히 기다리지 않으면 시럽이 딱딱해진다. 거품이 가득 차면서 점점 잔잔해지면 다 된 것이다. 완성된 시럽은 병에 담아두고 사용한다. 식으면 단단해지므로, 그럴 때에는 전자레인지에 살짝 20~30초 정도 돌려주거나 중탕해주면 재 사용할 때 편리하다.
강정은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참깨, 들깨, 흑임자 등 잔잔한 깨 종류가 제일 만만하지만, 호두나 해바라기씨, 호박씨 등도 좋다. 모든 견과류가 다 가능하다. 다만 호두나 호박씨 같은 것들은 덩어리가 크므로 잘게 썰어주는 것이 좋다. 사실 잣도 맛있는데, 너무 비싸서 이번엔 통과했다. 참깨는 거피 깨로 한다. 참깨와 흑임자는 미리 볶아주고, 들깨는 볶지 않는다.
강정을 시작하기 전에 판을 미리 준비한다. 양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굳이 플이 필요하지는 않다. 나무 도마 위에 종이 포일을 까는 것으로 충분하다. 대신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려 고루 발라준다. 기름을 바른 종이 포일을, 덮어줄 것까지 해서 두장을 준비한다.
강정을 한 판만 만들 것이면 보관할 필요 없이 시럽에 곧장 깨를 부어도 되지만, 여러 가지로 만들고 싶다면, 시럽을 미리 만들어 놓고 작업하는 것이 편하다. 팬에 시럽을 다시 데울 때, 물을 한 숟가락 붓고 시작하면 더 부드럽게 시작할 수 있어서 좋다. 그렇지 않으면 시럽을 데우면서 빨리 증발해서 쉽게 굳는다.
거품이 가득 올라온 시럽에 깨를 붓고 빠르게 젛어준다. 시럽의 양은 너무 많으면 나중에 이빨에 쩍쩍 붙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차라리 살짝 부족한 듯하게 준비하고, 깨를 넣어 섞었을 때 모자라면 시럽을 조금 추가해주는 편이 낫다.
깨알들이 처음에는 낱낱이 떨어지다가 약간 서로 붙고 싶어 하는 느낌이 오는 순간이 있다. 겉돌던 물기가 사라지며 느낌이 온다. 불을 켜놓고 너무 오래 저으면 금방 딱딱해질 수 있으니, 물기가 충분히 날아가고 고루 묻었다 싶으면, 준비한 종이 포일 위에다 빨리 쏟아준다.
주걱으로 대충 모양을 잡아준 후, 위에 다시 종이 포일을 덮어주고 밀대로 눌러 모양을 정리한다. 부지런히 작업하지 않으면 작업 도중에 굳을 수도 있으니 그 점에 유의하여 빠르게 행동한다.
이제 살짝 굳을 때까지 기다린 후 썰어준다. 시럽의 농도에 따라 굳는 시간이 달라진다. 너무 굳으면 잘리지 않고 부서질 수 있으니 약간 유연할 때 자르는 것이 좋다. 칼에도 기름칠을 살짝 해주면 붙지 않고 좋다.
자르는 모양은 네모 반듯해도 좋고, 마름모 형으로 잘라도 되는데, 세팅하기에는 네모가 편한 것 같아서 나는 3cm 정도의 크기로 잘라줬다. 자르다 보면 좀 삐뚤빼뚤 해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담아놓으면 다 예쁘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즐겁게 만들기를 추천한다.
나는 음식 하기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만드는 사람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노동이다. 나는 놀이로 음식하기를 선택한다. 없어도 그만인 이런 디저트 만들기는 더욱더 놀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록달록 예쁜 음식을 만드는 공작시간인 것이다.
더 예쁘게 꾸미고 싶다면, 호두 중에서 예쁜 것을 골라서 위에 붙여 장식할 수 있다. 대추를 씨를 빼고 돌돌 말아서 자른 후 얹어도 좋다. 남은 시럽을 살짝 발라서 붙이면 풀로 붙이듯 달라붙는다.
두 가지 색을 겹쳐놓고 말아서 태극무늬를 만들까도 생각했는데, 그러다가 예쁘게 안 나오면 스트레스받을 것 같아서, 그 대신 흑임자와 참깨를 한 줄씩 잘라서 나란히 붙이고, 그걸 다시 잘라서 반대로 붙이니 바둑판무늬가 되었다. 역시 연결한 부분이 떨어지면 거기에도 시럽을 붙여주면 잘 붙는다.
예쁜 모양으로 된 것은 너무 많으면 정신없어 보이기 때문에 몇 개만 포인트로 해서 얹어주고, 나머지는 평범한 네모로 잘랐다. 접시에 어떻게 담으면 예쁠까를 고민했더니, 남편이 뒤지다가 동그란 접시를 가져왔다. 아버님이 열일곱 살 때 만드셨다는 원목 접시였다. 잘 보관되어서 윤기가 도는 예쁜 그릇이었다.
거기에 담아놓으니 안성맞춤이었다. 서양의 정갈한 그릇에 담긴 한국의 간식이 정겹게 조화로웠다. 사진 한 장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새해 인사글로 올렸더니, 색이 겹치지 않게 요모조모 담아서 낸 디저트가 조각보나 퀼트 같다는 평이 달렸다. 왕년 퀼트쟁이였던 나는 플레이팅 하면서 전혀 그런 생각을 못 하다니!
후배 부부와 함께 한 설날 저녁은 가족 식사처럼 아주 즐거웠다. 큼지막한 배를 사들고 들어온 후배 부부를 보니 우리가 모두 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좀 일찍 도착하여 함께 전도 부치고, 함께 상도 차리니 부엌이 북적북적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음식 종류가 한국 차례상처럼 많지는 않았지만 나름 푸짐하게 차린 저녁식사로 배불리 먹고 많이 웃었다. 둘 다 바쁜 친구들이라 집에서 한식 해 먹은지 정말 오래되었다며 잘 먹어서 아주 기분이 좋았다. 디저트는? 물론 완전 히트였다. 수정과와 함께 냈더니, 예뻐서 어떻게 먹느냐며 얌냠 잘 먹었다!
배웅하고 들어오니 바로 문자가 들어온다.
"언니! 진심 친정에 다녀온 기분이었어요. 진짜 넘 귀하고 맛난 시간 감사해요!"
우리도 친정처럼 대해줄 수 있으니 좋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달리 있겠는가. 타국에 살면서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도 축복 이리라.
깨강정, 잣 강정, 호두강정
시럽 만들기:
설탕:물엿 = 1:3 또는 1:2 또는 1:1
소금 한 꼬집
생강가루 (옵션)
- 시럽은 만들어 바로 사용해도 되는데, 여러 가지를 만들 거면, 미리 넉넉히 준비하면 편리하다.
- 물엿과 설탕의 비율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결정한다. 설탕이 많이 들어갈수록 빨리 굳는다.
빨리 굳고 싶으면 1:1로 하는데, 밀대로 밀 시간조차 부족할 수 있다.
3:1 까지도 하는데, 여유 있게 작업하고 맛이 부드럽지만, 성질이 급하면 굳히느라 애를 먹을 수도 있다.
- 시럽을 미리 만들어놨다가 사용하면 더 빨리 굳으므로 이때는 3:1로 하는 게 좋다.
- 강정을 한 판 만들어보고, 취향에 따라 다음번에는 설탕이나 조청을 살짝 추가하면 조절이 가능하다.
- 여름철에는 쉽게 무르므로 설탕의 비율을 올리고, 겨울에는 반대로 하는 것이 좋다.
- 타지 않기 위해 물을 약간 넣고, 소금도 약간 넣은 후, 불에 올려 녹인다.
- 시럽을 만들 때는 절대 젓지 않는다. 설탕이 들어간 시럽은 저으면 딱딱해진다
- 완전히 녹아 거품이 끓어오르면서 끈기가 생기면 완성이다.
- 만든 것은 병에 보관하고, 사용할 때 굳었으면 전자레인지나 중탕으로 살짝 데워준다.
- 취향에 따라 생강가루를 조금 넣으면 풍미가 좋다.
재료 준비 :
참깨 : 거피 깨를 사용한다. 거피 깨가 아닌 경우는 깨끗이 씻어 돌을 고르고, 한 시간 정도 물에 불렸다가, 물과 함께 그대로 커터기에 넣고 빠르게 몇 번만 돌려 거피한다. 위에 뜬 껍질을 따라 버리고, 깨만 체에 밭쳐준다. 물이 다 빠지면 깊은 냄비나 웍에 넣고 볶아준다. 한두 개씩 톡톡 튀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좀 더 저어준다.
검정깨 : 거피할 필요 없이 그대로 씻어서 볶아준다.
들깨 : 깨끗이 씻어서 말린 후 사용한다. 들깨는 볶지 않는다.
잣 : 고깔을 떼어 준비한다.
호두, 호박씨 : 적당한 크기로 잘라준다. 가루처럼 다지지 말고 씹는 맛이 있는 정도의 크기로 자른다.
만들기 :
1. 도마나 판 위에 종이 포일을 깔고, 위에 참기름을 발라 쉽게 떨어지게 준비한다.
2. 팬에 물을 한 숟가락 넣고, 시럽을 넣고, 바글바글 끓어 거품이 자잘해지면서 가득해지면 깨를 넣는다.
3. 깨 1컵(240ml)에 시럽은 1/4~1/3컵(80ml) 정도면 적당하나 대략 눈대중으로 맞춰도 된다
시럽이 너무 많으면 치아에 끈적하게 붙으니, 살짝 부족하게 넣고, 부족하면 추가해도 된다.
4. 빠르게 섞어주고, 겉도는 느낌이 사라지면서 살짝씩 뭉쳐 다니기 시작하면 도마에 쏟아준다.
깨를 시럽에 섞어줄 때, 너무 오래 가열하며 섞으면 강정이 딱딱해질 수 있다.
5. 그 위에 다시 종이 포일을 덮은 후 밀대로 밀면서 평평하게 다듬어 준다.
6. 완전히 굳으면 자르기 힘들기 때문에, 모양이 잡히고 살짝 굳으면 칼로 잘라준다.
7. 호두나 대추 등으로 장식하려면 남은 시럽을 발라 붙여준다.
* 무설탕 레시피가 아니어서 죄송합니다. 이건 도저히 어떻게 하는 것이 불가했네요. 이런 것들끼리 묶어서 폴더를 새로 만들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