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추위에 봄을 기다리며...
날이 좀 풀리는 척하더니 다시 확 추워졌다. 추워봐야 0도 근처를 맴도는 밴쿠버 날씨를 무색하게 이번 겨울은 수시로 춥다. 그래도 잠깐 포근했던 틈새를 비집고 스노우드롭과 크로커스가 피어오르고, 튤립도 제법 높이 올라왔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들썩들썩하고,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밀고 올라온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화원에서 좋은 흙을 반값 세일을 하길래, 멀리까지 가서 잔뜩 사 왔다. Sea Soil이라고 바다의 양분을 이용해서 만든 양질의 흙인데, 이 화원은 가끔 이렇게 뭐든지 파격 세일을 해서,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1인당 4개밖에 못 산다길래, 남편과 따로 카트를 마련해서 8개를 집어왔다. 남편이 요새 팔이 아파서 돕겠다고 자그마치 35리터나 하는 봉지를 낑낑거리고 날랐다가 어깨가 뭉쳐서 며칠 고생을 했다.
그렇게 몇몇 실내 화분 분갈이도 하고 기분이 좋았는데, 다시 영하 8도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바깥에 있는 불쌍한 우리 꽃들은 어쩌란 말이냐!
그리고 어제는 텃밭 동호회에 있는 신입회원 한 분이 다녀갔다. 씨앗을 구하고 있다고 하길래,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물었다가 결국 이 근처에 올 일이 있다길래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나는 내 씨앗 책을 펼쳐 보이며 기르기 쉬운 것들을 권했고, 그분은 고맙다며, 자신이 구입한 티그렐라 토마토 씨앗을 한 봉 건네주었다.(호랑이처럼 얼룩무늬가 있는 토마토라고 하는데 무척 기대된다)
원래 생각했던 것은, 씨앗뿐만 아니라, 뿌리로 기르면 편한 돌나물이나 미나리 같은 것들도 퍼주겠다고 했었는데, 나가서 꽃삽을 들이대니 땅이 꽝꽝 얼어서 삽이 들어갈 생각을 안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결국 포기하고, 날씨 풀리거든 이 핑계로 다시 놀러 오라고 하며 마무리를 했다.
이렇게 날씨가 추우니, 얼른 봄이 와서 마당에서 놀고 싶은 나는 속상하다. 마음 같아서는 이것저것 모종도 만들고 싶지만, 토마토, 깻잎, 고추 같은 것들은 이 날씨에 만들어도 아직 밭에 나갈 날이 너무나 멀었기 때문에, 실내에서 전전하다가 허약하게 웃자라기 쉽기 때문에 마음을 꾹 눌러서 참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부터 준비하면 좋은 종류도 있다. 그것은 바로, 양파! 그래서 서운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모종 만들기에 돌입했다.
양파를 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세트라고 불리는 어린 뿌리를 사서 심기도 하고, 날린 풀린 후에 곧장 텃밭에 심기도 하는데, 이렇게 추운 2월에 심어서 모종을 내놓았다가 날씨 풀리는 4~5월 경에 심어주면 자라는 시기를 좀 당겨줄 수 있다.
양파는 햇볕을 좋아하는데, 작년에 내가 토마토 사이에 심는 바람에 볕을 못 봐서 비실거리고 제대로 못 컸다. 너무나 작은 양파를 뒀다가 다시 심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그냥 다 먹어버렸고, 올해 다시 도전이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왈라왈라 양파로 결정했는데, 알고 보니 양파 씨앗은 일 년이 넘으면 발아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약간 의기소침해졌지만, 이왕 있는 씨앗이니 버리느니 써보기로 했다. 양파 모종은 약간 깊은 곳에 다닥다닥 잔뜩 심어서 기르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나는 6칸짜리 모종 포트에 심기로 했다.
흙은 며칠 전에 사 온 고급진 바다 영양 흙에다가 코코피트와 펄라이트, 질석을 넉넉히 섞었다. 그리고 포트에 넣기 전에 물을 충분히 주면서 손으로 반죽을 만들었다. 이렇게 미리 흙에 물을 먹이는 것이 마른 흙에 심고 물을 나중에 주는 것보다 좋다. 물은, 흙을 손으로 꾹 쥐었을 때 약간 뭉쳐지면서 물이 흘러나오지 않을 만큼만 촉촉하게 해 주면 된다.
모종 포트에 꾹꾹 다지듯 넣어주고, 위에는 1센티 정도 남긴다. 그리고 그 위에 씨를 넉넉히 뿌렸다. 한 칸에 스물다섯 개씩 넣었는데, 그 정도만 사실 다 발아가 되어도 괜찮을 양이다. 신나게 넣다 보니, 우리 집에 양파를 그렇게 많이 심을 곳도 없는데 어쩔 셈인가 싶어졌다. 그래서 6칸 중에서 4칸만 양파를 심고, 나머지 두 칸에는 대파를 심었다. 대파도 마찬가지로 넉넉히 심어줬다.
이제 그 위에 다시 흙을 덮어주고, 그 위에 다시 질석을 덮어주었다. 위에 꼭 질석을 덮어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하면 모종이 자라는 동안 이끼가 끼거나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해서 한 번 그렇게 시도를 해 봤다. 질석으로 덮은 이후에는 스프레이로 다시 물을 촉촉하게 위에 뿌려준다.
모종용 씨앗 뿌리기 완료! 이제 볕이 잘 드는 따뜻한 곳에 모셔두려고 그로우 라이트(grow light) 아래로 데려왔다. 이곳은 우리 집의 사철 봄인 곳이다. 밤에는 자동으로 불이 꺼지게 세팅을 해놓아서 자연광처럼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빛을 준다.
나는 눈앞에 바로 이 푸르름이 보이는 곳에 앉아서 글을 쓰거나 일을 한다. 늘 비가 오는 밴쿠버에서는 이렇게 해서라도 빛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씨앗을 뿌리고 나면 마음이 조바심이 나기 마련인데, 심호흡하고 조용히 기다려야겠다. 발아가 잘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