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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24. 2022

관상용 고추나무?

겨울잠을 재우려 했는데…

고추는 농약 없이 못 키운다든지, 키워도 고추 먹기는 힘들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텃밭을 가꾸기 전부터 자주 듣던 얘기였다. 물론 나는 텃밭 농부다. 고추를 많이 달아서 팔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전투적인 자세는 필요하지 않지만, 그런 말들은 사람을 참 조심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초보 농부답게 공부는 남 부럽지 않게 많이 한다. 예전에 혼자 가끔 베란다에 뭔가를 키울 때에는 툭하면 죽이던 마이너스의 손이었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내 손에 들어왔다가 죽게 될까 봐 아주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래도 첫 화분 농사 때 고추를 좀 따 먹었고, 그게 재미가 있었던 나는 매년 고추나무를 들이곤 하다가, 작년엔 꽤 많은 고추를 심었다. 고추는 추위에 약하고, 그래서 더욱 애지중지 하느라 땀을 뺐는데, 내 생각만큼 그렇게 까탈을 떨지 않고 잘 자라줬다.


특히나 꽈리고추는 얼마나 잘 열리던지, 손님 초대할 때 따서 살짝 볶아 내놓으면, 웬만한 애피타이저 부럽지 않은 근사한 메뉴가 되었다.


가을이 되어 모든 것을 거둬들이고 나서 나는 이 고추를 보며 잠시 갈등을 하였다.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에 나는 뭔가 더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움츠러들었지만, 그래도 얘네들을 그냥 떠나보내기는 아쉬웠다. 그리고 그간 내가 공부한 바로는, 고추는 날씨만 협조를 하면 다년생 작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추를 다년생으로 키운다니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사실 고추가 병충해에도 약하거니와, 처음 씨를 심어 키울 때는 추위에도 정말 약해서 자칫하면 비실비실해지기 쉽기 때문에, 튼실한 고추나무를 갖게 된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실천에 옮겼다.


수확을 끝내고, 잎까지 다 따서 고춧잎까지 말린 텅 빈 나무들은 적당이 가지치기를 한 후 화분에 옮겨 담았다. 고추는 처음 자랄 때 Y자 모양으로 갈라지는 부분이  중요하다. 방아다리라 불리는 그 부분의 아래는 꽃이 피어도 다 따줘야한다. 거기가 일종의 시작점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가지치기를 할 때에도 쌍둥 다 자르면 안 되고 이 Y 모양을 남겨둬야 한다.


여러 그루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대충 화분에 담아 온실에 넣어두고, 그중 꽈리고추 한 그루만 흙을 완전히 갈아서 통풍 잘 되는 종류의 코코피트를 넣어 채우고는 집안으로 들여왔다. 사실 잎도 다 땄기때문에 상당히 볼품이 없었지만, 어쩐지 하나는 집안에 두고 싶은 욕심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행인지! 지난겨울은 밴쿠버답지 않게 추웠고 눈이 엄청나게 많이 왔기 때문에,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사실상 온실을 따로 챙기지 못했다. 원래 마음 같아서는 전구라도 하나 켜서 온도를 보존해주고 싶었으나 우리가 그런 준비를 하기도 전에 추위가 닥쳤고, 안타깝게도 온실에서 대기하던 고추들은 영하 15도의 날씨에 다 죽은 것 같았다.


그러나 집안에 들여놓은 이 녀석은 귀엽게 새싹이 돋아나며 활기를 슬슬 찾기 시작했고, 볕이 별로 들지 않는 이 지역 날씨에도 불구하고, 창가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그 짧은 일조량을 이용하여 꽃을 피웠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나는 이 꽃들이 열매를 맺는 것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겨울에 창가의 고추를 따먹겠다고 할 만큼 염치가 없지는 않았다. 다만 예쁘게 피어 겨울에도 기쁨을 주니 관상용으로 만도 너무나 훌륭한 역할을 한다며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양분 있는 흙을 들인 것도 아니었고, 벌 나비가 있을 리도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저 죽지 말고 얌전하게 버티다가 날씨가 따뜻할 때 밖에 심어주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조심스럽게 돌보았는데, 며칠 전 무심히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고추가 달린 것이다!



도대체 수정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턱이 없지만, 그렇게 매달린 꽈리고추는 조금씩 자라서 점점 길어지고 있다. 내 마음은 아슬아슬하면서도, 역시나 자연이 가진 위대한 힘에 또다시 크게 탄복했다. 감히 따서 먹어볼 생각도 할 수 없는 소중한 이 열매는, 환경이 바뀌어도 여건만 되면 제 몫을 하겠다는 화초의 의견인 것 같았다.


블루벨 알뿌리를 얻은 줄 알았는데, 알리움처럼 올라오며 봄을 알리는 이것들의 정체는?
꼬마 아이리스들은 이렇게 땅에 바짝 붙어서 꽃이 핀다.


많이 누그러진 날씨에도 나는 옷을 겹겹이 입고 마당에 나가서 조금씩 기웃거리는데, 긴 겨울잠을 자고 나서 무사히 땅을 박차고 나오는 새순들이 저 여린 잎으로 추위를 견디며 단단해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참 힘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커먼 데이지는 진작부터 피어서 봄을 알린다.

이 고추가 밖으로 나가려면 아직도 최소한 두 달은 더 있어야 하는데, 남은 기간 잘 버텨서 다시금 풍부한 영양과 햇빛을 즐기며 전성기를 누려주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흙과 친해지면서 또 다른 모습의 환한 새 삶을 살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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